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564)
책 그리고 글 (87)
미래 빚어가기 (79)
시간/행동 관리 (44)
조직을 말한다 (16)
마케팅 노트 (14)
짧은 생각들 (33)
사랑을 말한다 (27)
세상/사람 바라보기 (40)
그밖에... (83)
일기 혹은 독백 (85)
신앙 이야기 (24)
음악 이야기 (19)
법과 특허 이야기 (13)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08. 9. 26. 13:25
회사 일로 중국에 갔다 왔습니다. 출장이야 처음 있는 일도 아니기에 블로그에 아무글도 남기지 않고 갔었지요. 호텔에 도착하면 '서안의 첫인상'이라는 글을 올리겠다 생각하고 글까지 써놨었습니다.

근데 왠지 제 블로그에 접속을 못하더군요. 첫날에는 속도 때문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이튿날도 그러더군요. 제 블로그 뿐아니라 모든 티스토리 기반 블로그가 접속이 안되었습니다. 알아보니 중국 정부에서 소셜네트워크성 사이트를 다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신청서를 내고 중국 정부에 해가 안될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해당 사이트는 풀어준다고 하는데, 출장가서 그럴 시간은 없었구요.

그래서 결국 본의 아닌 단절을 경험했습니다. 방금 전 집에 들어와서 접속하자마자 이 글을 남깁니다. 이제 씻고나서 남겨주신 댓글도 보고, 그동안 못했던 포스팅도 해야겠습니다 ^^

'일기 혹은 독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Mind Like Roller Coaster  (2) 2008.11.13
나는 누구인가?  (32) 2008.10.27
결벽증 : 만년필로 일기 쓰기  (25) 2008.09.06
어제 일기  (6) 2008.08.16
생존 신고  (4) 2008.08.05


2008. 9. 6. 14:27
누구에게나 결벽증은 있다. 커피를 아무 잔에나 안 먹고 자기 컵을 들고 다니는 사람, 혹은 여행 가방 안에 휴대용품이 원하는데로 배치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다. 배게가 바뀌면 잠을 잘 못잔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 절대로 책을 접어 표시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좋아서 하던 것에서 넘어서,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 될 때 그것을 결벽증이라 한다.

내게도 결벽증이 있다. 여러가지 있지만, 그중 살아가며 자주 느끼는 것이 필기구다. 중학교 때일 것이다. 국민 볼펜인 모나미 볼펜으로 필기를 하다가 잉크가 뭉쳐지는 것을 보고, 또 얼마 지나면 색이 변하는 것을 알게된 이후로, 볼펜을 쓰지 않았다. 변하는 것이 덜한 수성잉크로 된 펜을 썼고, 그중 애용했던 것이 플러스 펜이라 불리던 필기구였다.

이후 십여년간 여러가지를 거쳤지만, 볼펜을 들고 다니며 써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결혼도 하고, 세상에 필기구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부터 필기구에 대한 결벽증은 사라졌다. 아니 잠시 잠잠해졌다.

2006년 1월 집안에 굴러다니던 만년필이 갑자기 눈에 띄었다. (신기하게도 만년필은 한번도 쓰지 않았다. 잉크 갈아 넣는 것이 너무 귀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슈퍼-로텍스라는 이미 단종된 펜이었다. 안에 있던 잉크가 다 말라 못쓰게 되었던 것을 동호회의 도움으로 살려내고 만년필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만년필을 손에서 떼어본 적이 없다. 그랬다. 나의 필기구에 대한 결벽증은 다시 살아난 것이다.

가끔 급하게 메모를 해야할 때라면 몰라도, 두 줄이상 적어야하는 경우에는 꼭 만년필을 꺼내 필기를 했다. 그러니 소중한 일기를 만년필로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년필 이외의 펜이 일기장에 흔적을 남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후 몇가지 만년필을 거쳤다. 명품을 따지는 편은 아니기에, 또 하나의 장롱 만년필 파커 45와 저렴한 라미 제품 몇개를 구입해서 사용했다. 한때는 만년필 세개에 다른 색의 잉크를 넣어 다니며 사용한 적도 있었지만, 하나씩 하나씩 행방이 묘연해지니, 결국 나중에는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생겼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올 때 만년필을 비행기에 놓고 내린 것이다. 집을 뒤지면 한두개는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하나도 못찾았다.

생각했다. 그래. 꼭 만년필로 써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널린게 볼펜인데. 왜 내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제한을 두느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펜을 들어 일기를 쓰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 옮겨쓸 생각으로 워드로 일기를 써두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양이 맘에 안들어 플러스펜 비슷한 필기구를 구입해 일기를 썼다. 내 결벽을 깨고 싶었다. 하지만 이틀째 되는 오늘 다시 한번 집안을 뒤집으며 만년필을 찾다가 결국 온라인으로 전에 쓰던 것과 같은 제품을 주문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어느 도구를 사용하던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나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사용하는 것이다. 결벽증이라는 것이 머리 속에서 스위치 하나만 오프하면 없어지는 것일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별거 아니라는 것. 삶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바꾸기가 쉽지 않다.

결국 만년필에 대한 결벽증 없애기는 포기하고 말았다. 결벽증이라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인 선호일 뿐이라 취급하기로 했다. 내가 만년필을 무척 좋아하는구나 이 정도로 말이다.

어찌 보면 이런 결벽증, 고집들이 내가 아닌가 싶다. 내가 가진 이 육체가 '나'의 전부라면 생존을 위해서는 아무 상관 없을 필기구에 대한 결벽증 같은 것을 부릴리가 없지 않을까. 고집을 부리며 유난을 떠는 것 자체가 내 자아의 증거가 아닐까. 내 안에 조금은 독특한 '내'가 있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아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런 거창한 말 할 필요없이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것이라면 이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도 더불어 사랑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 만년필 아니면 글을 안쓰겠다 버티는 이건 결벽증에 가깝다. 하지만 뭐 어떤가.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만년필에 대한 유난은 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때가 되면 내가 자꾸 나를 벗어던지는 것 같아 오히려 서운할 듯 싶기도 하다.

'일기 혹은 독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누구인가?  (32) 2008.10.27
돌아왔습니다 - 타의에 의한 소통의 단절  (6) 2008.09.26
어제 일기  (6) 2008.08.16
생존 신고  (4) 2008.08.05
역마살  (10) 2008.07.28


2008. 9. 5. 01:27
ㅡ.ㅡ 원래 여름 특집으로 쓸려고 했던 글이었건만 벌써 가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마무리는 지어야지요.

========================

2006년 2월이었습니다. 토요일 수업이 있어 학교에 있을 때였죠. 여러가지로 분주하던 중이라 수시로 음성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마침 음성 메시지가 두개가 와서 들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 메시지가 제 목소리더군요.

"여보 난데~ (100% 제 억양이였습니다. 약간 코 맹맹한 음성으로...). 그 아이가 여자 아이래"

저는 완전히 얼어버렸습니다. 아무 설명도 없이 제 목소리로 여자 아이라는 말을 남기도 듣다니. 수업받고 있던 제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아이가 여자 아이래'라는 메시지를 남길 리도 없고. 평생 이런 말을 아내에게 한 기억도 없고... 아무리 머리를 싸매야 설명이 안되었습니다.

당시 '착신아리'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그 영화가 생각나더군요. 혹시 미래의 내가 메시지를 남긴 걸까?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혹시 아기라도?' 요즘은 태몽을 이런 식으로? ㅡ.ㅡ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겪고 나서 며칠이 지났습니다.

집에서 책을 보고 있을 때, 음성 메시지가 왔다는 신호가 왔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첫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또 제 목소리였습니다 ㅜ.ㅜ

다행히 이번에는 그 메시지를 남겼던 기억이 나더군요. 이렇게 해석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기간이 지나 보관된 메시지를 지우기 전에 전화회사에서 다시 그 메시지를 듣게 해준다. 근데 아내의 전화도 제 명의로 되어 있으니 저한테 보냈다. 그걸 새로운 메시지라고 해서 놀랐던 거다. 이렇게요. '그 아이가 여자 아이래'라는 그 말도 분명히 제가 했었을 겁니다. 한참 전에. 기억을 못할 뿐이지요.

그렇게 맘을 놓고 나서 하루가 지났습니다. 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것도 네개나요.

하나 하나 들었습니다. 근데 이번에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거 있잖습니까? X-File같은데서 나오는, 잡음 속에 들리는 희미한 사람 목소리. 그걸 연속해서 네개를 듣다보니 머리가 이상해지더군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별거 아닌듯 싶은데, 그때는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멀더와 스컬리를 부르고 싶었다구요 ㅡ.ㅡ

'그밖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음으로 달아본 광고  (14) 2008.09.30
중국 서안의 첫 인상  (4) 2008.09.26
인도 영화의 발견  (8) 2008.08.20
인도판 엄마 친구 아들  (8) 2008.08.12
도착 그리고 인도의 첫 인상  (12) 2008.08.06


2008. 9. 4. 00:29
마시멜로 이야기 - 8점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정지영 외 옮김/한국경제신문

마시멜로 이야기에 대한 상반된 견해

최근에 <마시멜로 이야기>에 대해 상반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아내가 먼저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 너무 좋았나봅니다.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다고 책을 주문했습니다. (아이들이 한글 읽기는 버거워하기에 원서가 필요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었지만, 가지고 있고 싶었습니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한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적은 분량입니다. 교훈은 간단히 정리하면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 "미래를 준비하라"입니다. 네살짜리 아이에게 앞에 있는 마시멜로를 안먹고 15분 동안 참으면 하나를 더 준다고 했을 때, 참고 마시멜로를 더 받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나중에 보여주는 성과의 차이에 대한 실험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이익에 만족하기 보다, 훗날 주어지는 더 큰 이익을 바라보라는 내용입니다. 몇년전에 쓴 '벌레먹은 사과'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이 책은 요즘 사람을 위해 잘 맞추어진 메시지를 제공합니다.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차를 타고, 고급 레스토랑에가서 점심 식사를 하는, 잘나가는 회사의 40대 사장이 나옵니다. 백만불의 매출에 만족하지 않고, 5억불을 위해 천만불을 과감히투자할 수 있으며, 기사가 공부하겠다고 회사를 관둘 때에 4년 등록금을 선뜻 내어줄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부러움 살만한성공 케이스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성공비결이 어릴적 참여한 마시멜로 실험을 통해 얻은 교훈라고 합니다. 젊을때 시간과 돈을아껴 열심히 공부했고, 눈 앞의 이익보다 훗날을 위해 성실하게 살았기에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성공을 바라는사람이라면 당연히 귀가 솔깃해질 메시지지요.

며칠 후 아는 분과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이 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번역도 하지 않고 이름만 빌려준 정지영이 한몫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아이들은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공지상주의가 휩쓸고 있는 세상과 아이들에게 경쟁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은 것이지요.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마시멜로 이야기,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힐 것인가?"의 근본에는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성공해서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깔려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두가지 반응 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세상적 성공을 바라보며 인내하는 방법을 가르칠 것인가? 아이들로 하여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시킬 것인가? 이런 이야기들이 추가로 오고 갔습니다. 늘상 나오는 이야기들이지요. 어느 부모든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어디까지 경쟁을 시켜야할지 고민이지요. 요즘처럼 무한 경쟁시대에서는요. 경쟁에서 이긴다고 행복하라는 법도 없지만, 경쟁에서 낙오한다면 만족하고 살아가기 힘든 것도 알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어떻든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자식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행복이라는 것이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높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남들과 비교되어지는 상황에서 적당한 경제력과 지위 없이는 불만이 없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혼자 산다면 아주 조금의 가능성은 있겠지만, 가족을 꾸리고 사는 사람에게는 현실을 무시하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경쟁적인 세상에 그냥 매몰되어 같이 열심히 뛰어다니기만을 요구하기는 싫습니다. 그게 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런 현실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배우되, 인생에서 추구해야할 것이 세상적 성공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이 책, 아이에게 읽힐 것인가?
 
제 결론은 '읽히겠다'입니다. 그냥 읽히는 것을 넘어 아이들이 책의 교훈을 마음 속 깊이 새기도록 하고 싶습니다. 발전을 위해 대가를 지불할 줄 아는 것. 이것은 누구든 꼭 배워야할 중요한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못살더라도 아이들에게만은 가르치고 싶습니다.

책에 마하트마 간디의 손자 아룬 간디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젊은 시절 놀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했던 그에게 아룬의 아버지는 야단을 치는 대신, 자신을 탓하며 다섯시간을 걸어서 집에 도착합니다. 거짓말을 알았을 때 바로 혼낼 수 있었던 눈 앞의 마시멜로를 먹어 치우지 않고, 진정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길을 택했던 겁니다.

저는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배웠으면 합니다. 얕은 욕심이 아닌, 보다 큰 가치를 위해 눈 앞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을 수 있는 그런 마음 말입니다. 거짓말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 보살피며,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제대로 된 지름길임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래도 얕은 가치의 성공만 바라고 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혹은 '성공'이다."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나오는 문장입니다. 손을 뻗으면 바로 잡힐 듯한 작은 성공만큼 커다란 유혹은 없지요. 만약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겉모습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은 조금 큰 듯한 하지만 결국은 부족한 눈앞의 마시멜로만 보는 것일 겁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이런 저의 바램이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제 아이들도 저처럼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근심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보다 멀리 진정한 성공을 위해, 참다운 가치를 위해, 인내를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있는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이 제 소망입니다.

너무 욕심이 큰가요?

추신) 책에 대한 평가가 없었네요. 나쁘지 않습니다. 그림도 예쁘고 편집도 잘 되어 있고. 글자수로 책의 가치를 메길 수는 없는 거니까요. 다만 책을 읽으면서 정지영이라는 사람. 이 책을 볼 때마다 두고 두고 부끄러울 것 같더군요. 그녀야말로 눈 앞의 작은 마시멜로를 먹어치운 것이니까요.




2008. 8. 28. 00:05
비슷한 것은 가짜다 - 10점
정민 지음/태학사

다산에 대한 흠모와 연암에 대한 호기심 그 중간에 정민 교수가 있다. "연암은 높고 크고 다산은 넓고 깊다. 연암은 읽고 나면 오리무중의 안개 속으로 숨는데, 다산은 읽고 나면 미운을 걷어내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라며 둘을 평했던 정민교수. 그가 바라본 연암이 궁금했다. 그래서 연암을 알기 위해 첫번째로 선택했던 열하일기에 대한 고미숙씨의 글 다음으로 이책을 선택했다.

제목이 심오하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비슷하다'와 '가짜다'는 어감상 큰 차이가 있다. 여성에게 '심은하와 비슷하다'라는 말은 대부분 기분좋은 칭찬일 것이다. 하지만 '가짜 심은하. 짝퉁 심은하'라 부르면 어떨까? 불쾌할 것이다.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때 비슷한 것을 넘어서 가짜라는 말을 붙이게 되는 것일까? 무엇을 의도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의지에 상관없이 비슷하다면 그것은 그냥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비슷하고자 애를 쓰고, 또한 대상과 비슷하다는 것으로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결국 가짜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연암이 활동하던 당시, 주류 지식인들은 당송 시대를 흠모하고, 사서삼경, 논어, 맹자를 만고불변의 진리로 삼아 어떻게든 그때와 닮기를 원했다. 시대가 달라졌건만, 옛것을 최고로 치며 그때와 다른 것은 수준이 낮은 것으로 취급하였다. 이런 이들에게 연암은 되묻는다.

"비슷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진짜는 아닌 것이다... 대저 진짜 같다고 하고 꼭 닮았다고 말할 때에 그 말 속에는 가짜라는 것과 다르다는 뜻이 담겨 있다. <106쪽>" "어찌하여 진짜가 되기보다 가짜가 되고자 애를 쓰는가? 그대들이 흠모하는 서경書經의 <은고>와 <주아>나, 그대들이 닮고자 애를 쓰는 왕희지의 글씨 모두 당시 세속의 노래였고 세속의 글씨였음을 모르는가? 또한 그대들이 가짜가 되는 것도 부족해 다른 진짜들에게 가짜가 되라고 강요하는가?'

그러면 무엇이 진짜인가? 어찌해야 진짜가 될 수 있는가? 연암은 '다른 것은 겉모습이고, 같은 것은 마음'이라 정의한다. 겉모양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새로움'만 추구하면 안된다. 검증되지 않은 새로움은 오히려 옛것만 못할 수 있다. '아아! 옛것을 본받는다는 자는 자취에 얽메이는 것이 병통이 되고, 새 것을 창조한다는 자는 법도에 맞지 않음이 근심이 된다 <160쪽>".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법고이지변 法古而知變, 창신이능전 創新而能典'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출 수만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글과 같게 될 것이다<160쪽>. 연암 사상의 핵심이 여기에 담겨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할 수 있음에도 그 안에 흐르는 정신만은 놓지지 않는 것. 그것이 연암이 추구하는 '진짜'인 것이다. 겉모양만 닮고자 했던 당시의 가짜 보수의 반대에 서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했던 연암은 오히려 참된 보수라 할 수 있다.

10년 가까이 곁에 끼고 살았음에도 연암에 대한 번듯한 논문 하나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는 정민 교수. 그가 선택한 연암의 글은 풍성한 잔치다. 고민하고 고민해서 스물 다섯개의 이야기를 골랐을 것이다. 각 이야기별로 중심이 되는 연암의 글이 실려있고, 때로는 연암의 글 혹은 다른이의 글이 덧붙여져 있다. 부록에 있는 원문이야 나같은 문외한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지만, 정성스런 직역과 정민 본인의 말로 덧붙인 해석은 참으로 보배롭다.

앞에서 말한 '진짜되기'가 책의 중심 주제이지만, 이외에도 연암의 문장론, 삶의 철학, 친구 관계, 그리고 말년의 쓸쓸함까지 다양한 연암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속에는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며 끝내 주류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천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내내 다산과 연암을 비교하였다. 그리고 나라면 어떠했을까? 다산과 연암 둘중의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질문을 하였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다산 쪽이다. 시스템 밖에서 머물기보다 그 안에 들어가 어떻게든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내 취향이다.

그렇다고 연암의 글과 사상이 가치없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연암의 글은 난공불락'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그는 내게 언제나 오리무중이다. 막상 그의 글은 달콤하다. 늘 사람을 긴장시킨다. 그러나 글을 손에서 놓고 나면 그는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없다. 내 손에 남는 것은 손 끝을 스쳐간 나비의 날갯짓 뿐이다'라는 정민 교수의 평에는 동의한다. 책 한두권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연암이 아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듯 정민교수의 책은 실망을 주지 않는다. 시대를 넘나들며 현란하게 구사되는 연암의 인용을 좇아가며 상세한 해석을 해준 정민 교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또한 중간 중간 비치는 본인의 관점과 사상은 옛사람 못지 않은 거장의 깊이를 담고 있다는 것도 아울러 알리고 싶다. 나는 그를 '이 시대의 진정한 학자'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