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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16. 13:36
디지털 군자 'Inuit'님이 귀한 릴레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표현과 함께 넘겨주셨습니다 ^^ 바로 일년동안 지향할 모토로 사자성어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2009년 제가 가장 가치를 두고 노력을 기울여야할 내용을 사자성어로 함축한 후, 계속해서 돌아봄으로 스스로를 닦아 나가는 것이지요.

Inuit님의 부동여산 不動如山, 릴레이를 시작하신 격물치지님의 쾌도난마 , buckshot님의 기정지세 奇正之勢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평소에 블로그를 통해서 알고 있던 분들인지라 그 의미들이 더 새롭게 또한 익숙하게 다가온듯 합니다.

그리고 제가 2009년 지향해야할 것은 무엇일까를 곰곰히 신중하게 생각했습니다...만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 얼마전에 올린 글처럼 제가 지금 지향하는 점은 '물과 같이 고요한 마음 (Mind Like Water)'입니다.

수면은 평상시에는 고요함을 유지합니다. 그럼에도 주위의 아무리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작은 바람이 불면 세미한 떨림으로, 돌이 던져지면 무수한 동그라미로 그때 그때 적절한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듯 처음의 잔잔함으로 돌아갑니다.

언제부터인지 제 삶의 고요함이 사라졌습니다. 직장에서의 급격한 변화들이 시발점 역할을 했지만, 무엇보다 억지로 성취를 얻어내려는 제 마음의 욕심이 마음을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 내리락하게 만든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변화야 항상 있는 것이고 또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되, 그 변화에 제 마음을 더 이상 뺐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2009년은 저에게 어느해보다 변화가 큰 해가 될 것입니다. 제가 계획하고 있는 것도 크고, 직장에서 생길 변화도 큽니다. 날로 어려워지는 경제상황까지 생각하면 1년 후 제모습이 어떤게 변해있을까 짐작도 안갑니다 ㅡ.ㅡ 그 와중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물과 같이 고요한 마음 靜心如水(정심여수)'를 내년의 지향으로 삼으려합니다. 어쩌다보니 Inuit님의 不動如山과 대구를 이루게 되었네요. 솔직히 부동여산이라는 문구에 정심여수가 떠올랐다는 것을 숨기지는 않겠습니다 ^^

+++++++++++++++++++++++++++++++++++++++++++++++

릴레이를 받았으니 저도 다른 분에게 넘겨주어야지요. 어느 분에게 넘길까 생각하다 다음 두분이 떠 올랐습니다.

인생에는 새로이 도전할 것이 널려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미탄'님
제  젊은 시절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너무나 멋진 청년 '이균재'님

이 두분에게 릴레이를 넘깁니다. 받아주세요 ^^




2008. 12. 14. 01:05
목요일에 비가 왔습니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밤이 되니 얼어붙어, 자고 일어나보니 나무에 얼음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뒷마당에 있는 나무입니다. 한 15미터 정도 될거 같네요. 가지 전체가 하얗게 변했습니다. 이렇게 얼음꽃이 핀것을 전 참 좋아합니다. 가까이서 보면 더 예쁘지요.


근데 이번에 내린 얼음비(? 영어로 freezing rain이라 부릅니다)는 타격이 정말 컸습니다. 가지에 얼음이 엉겨붙어 너무 무거워지는 겁니다. 저희 집 옆에 평소에 정상적으로 서있던 나무들이 이렇게 쳐져서 길의 반이나 막아버렸습니다 (뒤에 보이는 하얀집이 제가 사는 곳입니다 ^^)


출근길이라 찍지는 못했지만, 다른쪽은 더 처참했습니다. 나무가지들이 무게를 못이겨 뿌리지면서 전기줄을 처버렸습니다. 전기줄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고 온동네가 정전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밤새 춥게 지냈던 지라 이날은 얼음꽃이 예뻐보이지 않았습니다 ㅡ.ㅡ)

목요일 자정쯤에 나간 전기가 금요일밤 저녁 여덟시 반에에 들어왔습니다. 저야 회사에 가 있어서 영향을 안받았지만, 가족들은 휴대용 가스레인지(보통 블루스타라 부르는)에 요리 해먹고 집에 난방도 안들어 오니 벽난로에 나무 때우며 하루종일 그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답니다 ㅡ.ㅡ 혹시나 해서 호텔까지 예약해놨는데 다행히 저녁에 전기가 들어와 어제는 그래도 따듯하게 잤습니다.

누군가 그랬지요. 인간 문명을 일순간에 후퇴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기를 없애는 거라구요. 거의 하루 정도 전기 없이 살아보니 그 말이 정말 실감납니다. 정말 깜깜하더군요 ^^

이 날 학교도 쉬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영화를 보거나 Wii를 가지고 놀았을 남매가 이 날은 체스를 두더군요. 전기도 없고 난방도 없으니... 서로 얼굴 맞대고 가까이 지낼 수 밖에 없다는 것. 그것 하나는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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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10. 14:24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라는 일반적인 질문에 대한 종교적인 답변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때 - 8점
고든 맥도날드 지음, 홍병룡 옮김/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작심삼일이라는 말은 사람의 결심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말해준다. 새해 첫날 굳은 결심을 깔끔히 적어 머리맡에 붙여논다 한들 채 첫달이 가기전에 흐지부지 되고 만다. 하물며 인생을 바꾸고자 하는 결심이랴. 부족한 나를 통감하고 이제는 새 사람이 되자고 피눈물 흘려가며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결국 일년에 한번씩 거치는 연례행사로 끝나고 말 뿐이다.

사람이 변할까? 내가 나를 변할 수 있을까? 의미 없이 살던 인생이 목표를 세우고 전진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누구나 한번씩 해볼만한 질문에 대해 고든 맥도날드는 이 책을 통해 답을 한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라고. "길을 잃어버린 캄캄한 숲속에 있음을 깨달을 때" 내 삶의 궤도를 수정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바뀌기 위해서 해야하는 것이 있다. 떠나야 하고, 따라야 하고, 뻗어 나가야 한다.

'바뀔수 있을까'라는 일반적 질문에 대한 답이 '회심'이라는 지극히 기독교적인 개념으로 답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단계들 때문이다. 나를 구속하고 있는 것을 떠나야 할 터인데 그럼 어디를 향해 떠나야 하는 것인가? 따르라면 누구를 따르라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향해 어떤 목적으로 뻗어나가라는 것인가?

이 책은 '중간 궤도 수정'이라는 쉽지 않은 일을 이루어낸 두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아브라함과 바울이다.

백세에 낳은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여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이다. 기독교인에게는 믿음과 순종의 상징으로, 비기독교인에게는 비윤리적이고 몰상식한 전형적인 예로서 말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에게도 이 이야기는 편치 않다. 상징적으로 혹은 구속사적으로 이야기하기 원하지 정면으로 대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명령을 그대로 따른 아브라함은 도데체 어떤 사람인가? 맥도날드는 아브라함이 '아비와 친척 집을 떠난' 이후 모리아산에 자식 이삭을 데리고 오르기까지 40년의 시간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의 궤도 수정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40년에 걸친 완만하면서도 가파른 변화임을 설명한다. 아브라함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절대적인 순종은 떠나고, 따랐던 40년 세월의 결과인 것이다.

같은 변화를 바울에게도 볼 수 있다. 30대 한창 나이에 극과 극의 변화를 겪었던 바울이 60대 후반까지 끊임없이 뻗어나갈 수 있었던 이면에는 끊임 없이 지속되는 떠남따름이 있었다. 현재 내가 사랑하는 것을 떠나 더 가치있는 것을 사랑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지의 것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나를 인도하는 음성을 신뢰하고 따르는 삶. 아브라함과 바울의 삶에 계속해서 보여지는 모습이다.

이 책이 고든 맥도날드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다.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듯한, 또 한번의 기회는 없을 듯한 절망을 경험한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내가 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모든 희망이 깨어지고,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 처참한 자신에게 그는 물었을 것이다. '나에게 기회가 있을까?' 이 책은 고든이 삶을 통해 찾은 답변을 닮고 있다. 책의 짜임새에 대해서는 조금 불만이 있지만, 그래도 주위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는 실패를 극복한 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이다.





2008. 12. 2. 16:03

올초까지만 해도 나름 열심히 하던 아들이 요즘은 기운을 잃었는지, 아님 사춘기의 절정을 이루는지 행동이나 결과가 영 성에 차지를 않습니다. '적극적인 토론 ^^ '도 해보고 훈계도 해보며 그 녀석의 '대강 대강' 습관을 고쳐보려고 애를 써 왔습니다.

오늘 아이가 가고 싶어하는 학교에 인터뷰를 다녀왔습니다. 경쟁률이 8대1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학교입니다. 그 학교 때문에 아이와 또 대화를 했습니다. (이번엔 그냥 '대화'였습니다 ^^)

"그 학교 보니 어떠니?" "좋아요"
"그 학교 가고 싶지" "네"
"그럼 그 학교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잔뜩 힘을 주고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너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봐라. 합격 불합격도 중요하지만 너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여 보는 것을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단다.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일. 한계를 확인하는 일. 이거 아무나 또 아무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계까지 가본 적이 두번 밖에 없었다. 너도 이번 기회에 한계까지 너를 푸쉬하는 경험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아이의 눈에 약간의 결의가 보이더군요. 근데 제 마음속에는 오히려 부끄럼움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제 스스로 한계까지 밀어붙였던 경험이 두번 있기는 합니다. 문제는 그게 참 멋 옛날의 기억이라는 거지요. 요즘 그만큼 최선을 다해본 기억이 별로 안납니다. 마음을 장검으로 푹 찌르듯,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저에게 없다는 것이 뼈저리게 다가왔습니다. 그저 하루 이틀 반짝할 뿐입니다.

어른인 너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최선을 요구하는 게 말이 되니?

많이 찔렸습니다. 아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말입니다. 오늘 아이에게 한 말... 아이가 아니라 제가 들어야할 말이었습니다.


2008. 11. 30. 23:50
헬라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두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입니다.

크로노스는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말합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면 하루가 지나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바퀴 돌고 나면 일년이 지나갑니다. 지나간 인류의 역사도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쓰인 연대기라는 말의 크로니클(Chronicle)이 크로노스에서 유래되었지요.

크로노스의 시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최근에 회사일이 너무 정신없이 돌아가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도에 도착하고 포스팅을 한 이후에 벌써 3주가 지났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있구요. 3주의 시간은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 버렸습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카이로스입니다. 카이로스는 특정한 시간을 말합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이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크로노스가 타자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나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3주 많은 일이 있었네요. 사명감에 불타 두세시간씩 자면서 밥까지 굶어가며 일을 하기도 한 반면, 조직의 최고 책임자를 비롯 주위의 가깝다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모두 거두어 들여야 하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즐거운 카이로스의 시간도 있었고, 돌아보기 싫은 카이로스의 시간도 있습니다.

미카엘 엔데는 모모에서 '진정한 시간은 시계로 잴 수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크로노스와는 다르지요.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크로노스가 될 수도 있고 카이로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근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너무 쉽습니다. 모든 시간이 내 하기 나름인 것처럼 되어버리지요. 그런데 실제 그렇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억하기 싫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mariner님이 트랙백을 남겨주셨든 내 시간의 의미를 내가 정의하지 않는다면 남이 그 의미를 정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방법은 그 의미를 내가 재정의하는 것입니다. 다시 일곱가지 습관의 첫번째로 돌아가는군요.

크로노스의 시간은 누가 뭐래도 흘러갑니다.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리고 그 의미를 내가 부여하는 것. 그것이 진정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24시간을 흘려 버리는 것이 아니라 24시간을 붙잡는 것. 누구나 원하는 것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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