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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8. 00:05
비슷한 것은 가짜다 - 10점
정민 지음/태학사

다산에 대한 흠모와 연암에 대한 호기심 그 중간에 정민 교수가 있다. "연암은 높고 크고 다산은 넓고 깊다. 연암은 읽고 나면 오리무중의 안개 속으로 숨는데, 다산은 읽고 나면 미운을 걷어내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라며 둘을 평했던 정민교수. 그가 바라본 연암이 궁금했다. 그래서 연암을 알기 위해 첫번째로 선택했던 열하일기에 대한 고미숙씨의 글 다음으로 이책을 선택했다.

제목이 심오하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비슷하다'와 '가짜다'는 어감상 큰 차이가 있다. 여성에게 '심은하와 비슷하다'라는 말은 대부분 기분좋은 칭찬일 것이다. 하지만 '가짜 심은하. 짝퉁 심은하'라 부르면 어떨까? 불쾌할 것이다.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때 비슷한 것을 넘어서 가짜라는 말을 붙이게 되는 것일까? 무엇을 의도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의지에 상관없이 비슷하다면 그것은 그냥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비슷하고자 애를 쓰고, 또한 대상과 비슷하다는 것으로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결국 가짜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연암이 활동하던 당시, 주류 지식인들은 당송 시대를 흠모하고, 사서삼경, 논어, 맹자를 만고불변의 진리로 삼아 어떻게든 그때와 닮기를 원했다. 시대가 달라졌건만, 옛것을 최고로 치며 그때와 다른 것은 수준이 낮은 것으로 취급하였다. 이런 이들에게 연암은 되묻는다.

"비슷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진짜는 아닌 것이다... 대저 진짜 같다고 하고 꼭 닮았다고 말할 때에 그 말 속에는 가짜라는 것과 다르다는 뜻이 담겨 있다. <106쪽>" "어찌하여 진짜가 되기보다 가짜가 되고자 애를 쓰는가? 그대들이 흠모하는 서경書經의 <은고>와 <주아>나, 그대들이 닮고자 애를 쓰는 왕희지의 글씨 모두 당시 세속의 노래였고 세속의 글씨였음을 모르는가? 또한 그대들이 가짜가 되는 것도 부족해 다른 진짜들에게 가짜가 되라고 강요하는가?'

그러면 무엇이 진짜인가? 어찌해야 진짜가 될 수 있는가? 연암은 '다른 것은 겉모습이고, 같은 것은 마음'이라 정의한다. 겉모양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새로움'만 추구하면 안된다. 검증되지 않은 새로움은 오히려 옛것만 못할 수 있다. '아아! 옛것을 본받는다는 자는 자취에 얽메이는 것이 병통이 되고, 새 것을 창조한다는 자는 법도에 맞지 않음이 근심이 된다 <160쪽>".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법고이지변 法古而知變, 창신이능전 創新而能典'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출 수만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글과 같게 될 것이다<160쪽>. 연암 사상의 핵심이 여기에 담겨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할 수 있음에도 그 안에 흐르는 정신만은 놓지지 않는 것. 그것이 연암이 추구하는 '진짜'인 것이다. 겉모양만 닮고자 했던 당시의 가짜 보수의 반대에 서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했던 연암은 오히려 참된 보수라 할 수 있다.

10년 가까이 곁에 끼고 살았음에도 연암에 대한 번듯한 논문 하나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는 정민 교수. 그가 선택한 연암의 글은 풍성한 잔치다. 고민하고 고민해서 스물 다섯개의 이야기를 골랐을 것이다. 각 이야기별로 중심이 되는 연암의 글이 실려있고, 때로는 연암의 글 혹은 다른이의 글이 덧붙여져 있다. 부록에 있는 원문이야 나같은 문외한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지만, 정성스런 직역과 정민 본인의 말로 덧붙인 해석은 참으로 보배롭다.

앞에서 말한 '진짜되기'가 책의 중심 주제이지만, 이외에도 연암의 문장론, 삶의 철학, 친구 관계, 그리고 말년의 쓸쓸함까지 다양한 연암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속에는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며 끝내 주류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천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내내 다산과 연암을 비교하였다. 그리고 나라면 어떠했을까? 다산과 연암 둘중의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질문을 하였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다산 쪽이다. 시스템 밖에서 머물기보다 그 안에 들어가 어떻게든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내 취향이다.

그렇다고 연암의 글과 사상이 가치없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연암의 글은 난공불락'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그는 내게 언제나 오리무중이다. 막상 그의 글은 달콤하다. 늘 사람을 긴장시킨다. 그러나 글을 손에서 놓고 나면 그는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없다. 내 손에 남는 것은 손 끝을 스쳐간 나비의 날갯짓 뿐이다'라는 정민 교수의 평에는 동의한다. 책 한두권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연암이 아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듯 정민교수의 책은 실망을 주지 않는다. 시대를 넘나들며 현란하게 구사되는 연암의 인용을 좇아가며 상세한 해석을 해준 정민 교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또한 중간 중간 비치는 본인의 관점과 사상은 옛사람 못지 않은 거장의 깊이를 담고 있다는 것도 아울러 알리고 싶다. 나는 그를 '이 시대의 진정한 학자'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