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나라로구나... 갇혀있는 조선의 국왕이 죽어가는 나라 명을 향해 춤으로 예를 올림을 보며 칸은 말했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는 아니였지만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었던 청을 조선은 굳이 적으로 만들었고 칸을 이 후미진 땅으로 불러들였다. 조선에 올 때는 시원한 싸움이라도 한판 기대했건만 남한 산성에 도착할 때까지 저항도 환영도 없었다. 조선은 너무나 조용했다.

병자년에 청을 다시 불러들인 것은 말(言)이였다. 받아들이는 이들은 힘이 없건만 명에 대한 예를 지킨다 고집하여 오랑캐를 적으로 만들었다. 여진이 정묘년에 들어와 힘을 보였고 조선은 별 대항도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적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말은 다시 힘을 얻었다. 그릇됨이 드러나기 전까지 말의 힘은 끝이 없다. 말 잘하는 이들이 조선에 넘쳐나 세상을 개벽할 듯 하였다. 말로서 형제 나라 명을 회복시킬 수 있었고 말로서 오랑캐 여진을 물리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을 쌓았다.

힘이 없는 말은 약했다. 조선 안에 가득했던 그 말들은 한발자욱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조선은 조선 안에서는 굳센 나라였고 조선 밖에서는 어리석은 나라였다. 조선안의 말하는 이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동리 아이들의 짝짓기인양 명을 내 편이라 청을 내 편이 아니라 갈라놓고 천년만년 그렇게 살고자 했다. 바다와 중국에 막혀 있던 조선의 사람들은 눈 앞의 것밖에 볼 수가 없었다.

산성 밖에는 살 길이 아니라 죽을 길만 있었다. 싸우기를 주장하는 자들은 몸이 죽을수 밖에 없음을 알았고, 살고자 화친을 주장하는 자들은 결국 그들의 이름이 죽을 것을 알았다.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몸이 죽임을 당하거나 이름이 죽임을 당하거나 죽음은 산성 밖에 있었다. 산성 밖에 나가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 죽음을 알았기에 그들은 산성 안에 있었고 산성안에서 다투었다. 살 길을 만들어주지 못함에도 살아있음을 증명하고자 그들은 다투었다.

김훈의 남한산성 안에는 난해한 나라 조선이 있었다. 힘이 없음에도 힘을 키우지 않고 수모를 당해도 어쩌지 못하고 돌아서는 그 나라가 있었다. 살고자 자식과 며느리를 적에게 보내고 살고자 돌아온 자식과 며느리를 죽였던 임금이 그 안에 있었다. 살고자 적을 만들고 살고자 적에게 무릎 꿇었다. 살고자 싸우자 했고 살고자 항복의 글을 올렸다. 그 뜻이 때로는 강개하고 그 뜻이 때로는 저열하나 살고자 하는 이들의 몸부림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산성안에 갇혀있었다.

세상은 달라져 아무도 산성안에 갇혀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땅의 사람들은 땅 안의 것 밖에 보지 못한다. 나가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내며 무력함을 자부심으로 극복하려 한다. 실리가 필요할 때는 가치를 들어 말을 막고, 가치를 지켜내려 하면 실리를 들어 발을 뺀다. 살고자 함은 어느때보다 소중해 졌으되 살고자 다른 이를 죽이고자 하는 이기는 어느때보다 커졌다. 나라 안의 웅성거림은 더 커졌으되 그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멀리 나가지 못한다. 고집스레 현실을 보지 않는 단호함과 고집스레 자신만 위하는 이기심이 때로는 처연하다. 몸은 갇혀있지 않되 정신은 가두고 풀어주지 않는 답답함이 때로는 소름끼친다.

조선은 아직도 그 산성에 갇혀 있다.

*******************************

지난번 칼의 노래 때와 마찬가지로 김훈의 문체로 글을 써봤습니다.
서평, 특히 소설의 서평을 쓸 때는 저자의 문체를 흉내내어 볼려고 합니다.
근데 자연스런 저의 글모양이 아니기에 쉽지는 않네요. 이번엔 더 어려웠습니다.


남한산성 - 10점
김훈 지음/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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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처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쓰신 글이 남한산성 인용글인줄 알았습니다.
    인용표시가 없어서 이상하다 싶기도 했지만요, 저도 슬쩍 따라해 보아야겠습니다.

    어찌 살아야합니까?
    나루의 아비처럼 얼어붙은 강 안내를 했다는 이유로 베여도 살아야겠고,
    서날쇠의 똥물은 인조가 머리를 깨던 말던, 다음 해 봄 농사를 위해 익어가고,
    성안의 노인들은 죽음의 위기에서도 파종 시기를 놓칠까바 전전긍긍,

    전 그저 나루 아비가 불쌍할 뿐 이네요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감기조심 하세요

    2008/09/29 20:33
    • 쉐아르  수정/삭제

      비슷했나요? 직접 인용한 문장도 있습니다. 첫번째 단락의 첫번째와 세번째 문장입니다. 나머지는 제가 쓴 거구요. 굳이 인용부호를 사용 안한 것은 분위기를 갖게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루 아비가 불쌍하지요. 어찌보면 나루가 더 불쌍할 수도 있구요. 산자는 죽은자의 짐까지 같이 안고 가야하니까요.

      2008/10/06 23:17
  2. 데굴대굴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책은 나오자마자 샀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습니다. (아.. 정말 책 정리라도 좀 해야지 안되겠어요)

    2008/09/29 23:24
    • 쉐아르  수정/삭제

      저도 책 욕심이 많아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이 오십여권 됩니다. 상당부분이 쉽게 읽히지 않는 책들이라 더 그런가 봅니다.

      책도 계획적으로 읽어야겠다 마음만 먹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ㅡ.ㅡ

      2008/09/30 01:08
  3. 헤밍웨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잊어서는 안될 국가의 치욕 중에 하나죠. 읽는 내내 답답하고,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2008/09/30 00:33
    • 쉐아르  수정/삭제

      더 답답한 것은 오늘의 현실이 많이 다르지 않아서입니다. 만약 중국이 일본이 미국이 우리에게 무릎 꿇으라 강요한다면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당당히 대항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히려 항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아직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2008/09/30 01:10
  4. inuit  수정/삭제  댓글쓰기

    쉐아르님 문장력이 장난 아니신게.. 저번보다 더 김훈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김훈 작가의 문하생이라 해도 믿겠습니다. ^^

    2008/10/01 23:04
    • 쉐아르  수정/삭제

      ㅎㅎ 과찬이십니다. 문체만 흉내내느라 정작 제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담기에 힘이 부쳤습니다 ^^

      2008/10/02 02:34
  5. 風林火山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라... 이런 능력까지 겸비하셨군요.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는 김훈 필체같아 보입니다. 이 참에 작가로 등단하시는 것이 어떠실지. ^^ 쉐아르님의 색다른 면을 본 듯 합니다. 글 자알 읽었습니다. ^^

    2008/10/02 02:52
    • 쉐아르  수정/삭제

      작가는 소망이긴 하지만 제가 저를 잘 압니다. 그저 흉내만 낸 정도입니다 ^^

      2008/10/06 11:20
    • 風林火山  수정/삭제

      흉내지만 이렇게 쓰는 것은 아무나 하지는 못할 듯 하네요.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

      2008/10/07 00:57
    • 쉐아르  수정/삭제

      기운나게 해주시는 말씀 감사합니다. 풍림화산님 칭찬 믿고 (언젠가) 꼭 시작하겠습니다 ^^

      2008/10/07 13:53
    • 風林火山  수정/삭제

      나중에 작가 등단하실 때 힘이 될 수 있도록 터를 닦아 놓겠습니다. 그 터의 시작은 내일 마무리가 될 듯 하네요. ^^

      2008/10/08 01:38
    • 쉐아르  수정/삭제

      이미 지금 시간이면 마무리가 되었겠습니다. 기대되는데요? 그동안 준비해오셨던 일이 본격적으로 마무리가 되나 봅니다 ^^

      2008/10/08 23:48
    • 風林火山  수정/삭제

      뭐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구요. 제가 약간 관여하면서 made만 했을 뿐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길 기대하면서... 저는 별도로 준비하고 있지요. 모두 다 콘텐츠라는 부분에서만 공통 분모를 갖고 있네요. ^^

      2008/10/09 01:57
    • 쉐아르  수정/삭제

      풍림화신님은 잘 하실 겁니다. 하시는 일도 모두 잘 되어지기를 소망하구요... ^^

      2008/10/09 13:21
  6. 산골소년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김훈의 글 맛이 이 글에서도 느껴지는군요..소설 배경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속에서도 특유의 글맛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 ^

    2008/10/05 13:57
    • 쉐아르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문체를 훔치는 것 자체는 어려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문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지요. 트랙백 감사합니다 ^^

      2008/10/06 11:25
  7. 책 읽는 키노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 작품을 읽고 제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우연하게 쉐아르님 글을 읽고 내용을 되새겼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위의 로처님은 같은 책을 읽고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들 다르다,고 제 블로그에 댓글을 다셨는데, 저는 오히려 이 소설에 대한 평을 볼 때마다 근본적으로는 다들 생각이 같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2008/10/10 18:59
    • 쉐아르  수정/삭제

      트랙백 감사합니다. 키노님 블로그는 전에 한번 방문했던 적이 기억납니다. 정성스레 적어놓으신 서평들이 참 좋습니다.

      남한산성이라는 소설에 대해 각자 바라보는 시각들이 약간씩 다름이 재미있으면서도 말씀하신데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들이 있는듯 합니다. 치욕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의미 이런 것들이지요. 많은 분들이 같은 감정을 느낀 것 같더군요.

      2008/10/11 04:09
  8. 맑은독백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참.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까요?..
    전 쉐아르님이 김훈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까지 하게됬습니다...
    쉐아르님 문장력에 한번 더 탐복하고 갑니다.
    올해 자주 들러 많은 걸 배워야겠어요...
    감사합니다.

    2009/01/14 11:35
    • 쉐아르  수정/삭제

      진지하게 고민까지 하셨다니... 감사하다고 해야겠습니다 ^^ 문장력이라기보다 흉내내기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제 색을 찾지 못했거든요.

      저도 맑은독백님 블로그에 자주 갈듯 합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

      2009/01/14 15:21
  9. okto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조선은 아직도 그 산성에 갖혀있다'는 말이 오래 남네요. 과거에 미덕으로 여겨졌던 가치들이 결국 조선을 멸망으로 이끈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에서 임금이나 과덕한 신하나 민초나 앞으로 닥칠 결과를 알고 있었음에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산성은 오랫동안 견고하게 뿌리박혀 현재까지도 내려오고 있는 것 같아 묘한 여운이 남습니다.

    2009/01/28 16:09
    • 쉐아르  수정/삭제

      책을 읽으며 내내 느꼈던것이 한국의 상황이 이전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였습니다.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로서의 모습이 남아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머리에 계속 머물러있었습니다. 사실 이글은 마지만 문장을 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2009/01/2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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