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6. 14:27
[일기 혹은 독백]
누구에게나 결벽증은 있다. 커피를 아무 잔에나 안 먹고 자기 컵을 들고 다니는 사람, 혹은 여행 가방 안에 휴대용품이 원하는데로 배치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다. 배게가 바뀌면 잠을 잘 못잔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 절대로 책을 접어 표시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좋아서 하던 것에서 넘어서,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 될 때 그것을 결벽증이라 한다.
내게도 결벽증이 있다. 여러가지 있지만, 그중 살아가며 자주 느끼는 것이 필기구다. 중학교 때일 것이다. 국민 볼펜인 모나미 볼펜으로 필기를 하다가 잉크가 뭉쳐지는 것을 보고, 또 얼마 지나면 색이 변하는 것을 알게된 이후로, 볼펜을 쓰지 않았다. 변하는 것이 덜한 수성잉크로 된 펜을 썼고, 그중 애용했던 것이 플러스 펜이라 불리던 필기구였다.
이후 십여년간 여러가지를 거쳤지만, 볼펜을 들고 다니며 써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결혼도 하고, 세상에 필기구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부터 필기구에 대한 결벽증은 사라졌다. 아니 잠시 잠잠해졌다.
2006년 1월 집안에 굴러다니던 만년필이 갑자기 눈에 띄었다. (신기하게도 만년필은 한번도 쓰지 않았다. 잉크 갈아 넣는 것이 너무 귀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슈퍼-로텍스라는 이미 단종된 펜이었다. 안에 있던 잉크가 다 말라 못쓰게 되었던 것을 동호회의 도움으로 살려내고 만년필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만년필을 손에서 떼어본 적이 없다. 그랬다. 나의 필기구에 대한 결벽증은 다시 살아난 것이다.
가끔 급하게 메모를 해야할 때라면 몰라도, 두 줄이상 적어야하는 경우에는 꼭 만년필을 꺼내 필기를 했다. 그러니 소중한 일기를 만년필로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년필 이외의 펜이 일기장에 흔적을 남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후 몇가지 만년필을 거쳤다. 명품을 따지는 편은 아니기에, 또 하나의 장롱 만년필 파커 45와 저렴한 라미 제품 몇개를 구입해서 사용했다. 한때는 만년필 세개에 다른 색의 잉크를 넣어 다니며 사용한 적도 있었지만, 하나씩 하나씩 행방이 묘연해지니, 결국 나중에는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생겼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올 때 만년필을 비행기에 놓고 내린 것이다. 집을 뒤지면 한두개는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하나도 못찾았다.
생각했다. 그래. 꼭 만년필로 써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널린게 볼펜인데. 왜 내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제한을 두느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펜을 들어 일기를 쓰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 옮겨쓸 생각으로 워드로 일기를 써두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양이 맘에 안들어 플러스펜 비슷한 필기구를 구입해 일기를 썼다. 내 결벽을 깨고 싶었다. 하지만 이틀째 되는 오늘 다시 한번 집안을 뒤집으며 만년필을 찾다가 결국 온라인으로 전에 쓰던 것과 같은 제품을 주문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어느 도구를 사용하던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나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사용하는 것이다. 결벽증이라는 것이 머리 속에서 스위치 하나만 오프하면 없어지는 것일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별거 아니라는 것. 삶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바꾸기가 쉽지 않다.
결국 만년필에 대한 결벽증 없애기는 포기하고 말았다. 결벽증이라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인 선호일 뿐이라 취급하기로 했다. 내가 만년필을 무척 좋아하는구나 이 정도로 말이다.
어찌 보면 이런 결벽증, 고집들이 내가 아닌가 싶다. 내가 가진 이 육체가 '나'의 전부라면 생존을 위해서는 아무 상관 없을 필기구에 대한 결벽증 같은 것을 부릴리가 없지 않을까. 고집을 부리며 유난을 떠는 것 자체가 내 자아의 증거가 아닐까. 내 안에 조금은 독특한 '내'가 있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아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런 거창한 말 할 필요없이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것이라면 이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도 더불어 사랑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 만년필 아니면 글을 안쓰겠다 버티는 이건 결벽증에 가깝다. 하지만 뭐 어떤가.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만년필에 대한 유난은 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때가 되면 내가 자꾸 나를 벗어던지는 것 같아 오히려 서운할 듯 싶기도 하다.
내게도 결벽증이 있다. 여러가지 있지만, 그중 살아가며 자주 느끼는 것이 필기구다. 중학교 때일 것이다. 국민 볼펜인 모나미 볼펜으로 필기를 하다가 잉크가 뭉쳐지는 것을 보고, 또 얼마 지나면 색이 변하는 것을 알게된 이후로, 볼펜을 쓰지 않았다. 변하는 것이 덜한 수성잉크로 된 펜을 썼고, 그중 애용했던 것이 플러스 펜이라 불리던 필기구였다.
이후 십여년간 여러가지를 거쳤지만, 볼펜을 들고 다니며 써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결혼도 하고, 세상에 필기구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부터 필기구에 대한 결벽증은 사라졌다. 아니 잠시 잠잠해졌다.
2006년 1월 집안에 굴러다니던 만년필이 갑자기 눈에 띄었다. (신기하게도 만년필은 한번도 쓰지 않았다. 잉크 갈아 넣는 것이 너무 귀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슈퍼-로텍스라는 이미 단종된 펜이었다. 안에 있던 잉크가 다 말라 못쓰게 되었던 것을 동호회의 도움으로 살려내고 만년필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만년필을 손에서 떼어본 적이 없다. 그랬다. 나의 필기구에 대한 결벽증은 다시 살아난 것이다.
가끔 급하게 메모를 해야할 때라면 몰라도, 두 줄이상 적어야하는 경우에는 꼭 만년필을 꺼내 필기를 했다. 그러니 소중한 일기를 만년필로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년필 이외의 펜이 일기장에 흔적을 남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후 몇가지 만년필을 거쳤다. 명품을 따지는 편은 아니기에, 또 하나의 장롱 만년필 파커 45와 저렴한 라미 제품 몇개를 구입해서 사용했다. 한때는 만년필 세개에 다른 색의 잉크를 넣어 다니며 사용한 적도 있었지만, 하나씩 하나씩 행방이 묘연해지니, 결국 나중에는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생겼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올 때 만년필을 비행기에 놓고 내린 것이다. 집을 뒤지면 한두개는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하나도 못찾았다.
생각했다. 그래. 꼭 만년필로 써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널린게 볼펜인데. 왜 내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제한을 두느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펜을 들어 일기를 쓰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 옮겨쓸 생각으로 워드로 일기를 써두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양이 맘에 안들어 플러스펜 비슷한 필기구를 구입해 일기를 썼다. 내 결벽을 깨고 싶었다. 하지만 이틀째 되는 오늘 다시 한번 집안을 뒤집으며 만년필을 찾다가 결국 온라인으로 전에 쓰던 것과 같은 제품을 주문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어느 도구를 사용하던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나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사용하는 것이다. 결벽증이라는 것이 머리 속에서 스위치 하나만 오프하면 없어지는 것일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별거 아니라는 것. 삶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바꾸기가 쉽지 않다.
결국 만년필에 대한 결벽증 없애기는 포기하고 말았다. 결벽증이라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인 선호일 뿐이라 취급하기로 했다. 내가 만년필을 무척 좋아하는구나 이 정도로 말이다.
어찌 보면 이런 결벽증, 고집들이 내가 아닌가 싶다. 내가 가진 이 육체가 '나'의 전부라면 생존을 위해서는 아무 상관 없을 필기구에 대한 결벽증 같은 것을 부릴리가 없지 않을까. 고집을 부리며 유난을 떠는 것 자체가 내 자아의 증거가 아닐까. 내 안에 조금은 독특한 '내'가 있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아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런 거창한 말 할 필요없이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것이라면 이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도 더불어 사랑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 만년필 아니면 글을 안쓰겠다 버티는 이건 결벽증에 가깝다. 하지만 뭐 어떤가.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만년필에 대한 유난은 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때가 되면 내가 자꾸 나를 벗어던지는 것 같아 오히려 서운할 듯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