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17. 12:51
[책 그리고 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고미숙 지음/그린비 |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의 서설에서 정민교수는 "연암은 높고 크고 다산은 넓고 깊다. 연암은 읽고 나면 오리무중의 안개 속으로 숨는데, 다산은 읽고 나면 미운을 걷어내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며 연암과 다산에 대해 논한다. "연암과 다산을 만나 내 학문이 풍요로워지고, 공부의 안목이 넓어지고, 삶의 눈길이 깊어진 것이 참 기쁘다"라고, 성향은 많이 다르지만 "누가 낫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닌" 두 사람의 거인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정민교수를 통해 만난 다산이 너무나 거대하였기에, 더불어 연암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호질, 허생전, 열하일기등의 작품명과 함게 고등학교 국어시간의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연암 박지원'. 그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대단한 평을 받는 것일까? 이는 최근에 생긴 조선후기 지식인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연암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장자 - 소통의 철학이라는 글을 통해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를 소개해주신 buckshot님의 글이 생각나, 이 책을 연암에 대한 첫 책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열하일기의 '다름'에 저자는 주목을 한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신기함을 논하는가 싶으면, 세상사물의 다양함에 대한 자세를 이야기하고, 불어난 강물을 넘는 고난을 이야기하는 중에, 위험의 상대성을 지적한다. 주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이런 연암의 문체(연암체)를 저자 고미숙은 들뢰즈/가타리의 표현을 들어 '리좀'이라 평을 한다. "뿌리라는 중심이 없을뿐 아니라 목적도, 방향도 없이 접속하는 대상에 따라 자유롭게 변이하는 특성을 지닌다(p135)"는 것이다. 중구난방의 부정적 모습이 아니라, 목적하는 대상에 접목하여 바로 뿌리를 내리는 긍정적인 유연성. 이런 연암의 특징을 저자는 '유목'을 들어 설명한다.
책은 체계적으로 잘 쓰여져 있다. 연암 개인의 마이너한 성품에서부터 시작하여, 친구들의 모습. 당시의 정세와 연암과 문체반정등의 관계등이 1장과 2장을 거쳐 다각적으로 다루어진다. 이렇게 연암에 대해 어느 정도 안 연후에야, 열하일기의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이후 3장, 4장, 5장은 열하일기를 통해 보여준 연암의 해학과 철학을 이야기한다. 넓은 벌판을 만나 '한판 울어볼만하다'고 말하는 연암의 모습(호곡장론), 당시 조선의 지배가치였던 소중화주의와는 영판 다른 실용주의적인 시각, 중국의 선비들과 만나 필담을 통해 나눈 사상의 교환, 조선땅에서 볼 수 없었던 동물과 마술을 보고 난 연암의 평, 이단이라 여겨지는 티베트의 판첸라마와의 만남을 통해 바라본 이국의 모습등. 열하일기의 다양한 모습들이 저자의 눈을 통해 재배치된다. <야출고북구기>, <일야구도하기>, <상기>등의 명문에 대한 설명도 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구성이 돋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 대해 불만이 있다. 첫째, 저자의 억양은 시종일관 하이톤이다. 따옴표와 느낌표가 난무하고, 강조를 위한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현학적인 수사까지 곁들여져, 나는 아직 준비를 못했음에도 책 속에서는 몇번의 흥분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린다면, "끊임없이 나타나는 감정의 격렬한 표출에, 어디가 중요한지, 어디에 감정을 고조시켜야하는지 알 수 없는 이 지독한 패러독스!"
또한 연암에 대한 진솔한 소개라기보다 '연암의 삶에 투영된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이라고 할만큼 저자의 관점을 시종일관 적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 연암에 대해 아는 것이 적기에 판단을 내리기는 조심스럽다.
단점을 이야기하였으나, 이 책의 미덕은 앞에 말한 단점을 덮기에 충분하다. 열하일기라는 텍스트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열정. 그리고 이를 통해 알게된 '유목'에 대한 새로운 시각. 열하일기가 시대에 미친 영향과 조선후기 지식인의 흐름까지 이 책은 다양한 정보를 알려준다.
이 책을 통해 연암을 조금 엿본듯 하다. 아직 그의 뒤통수만 살짝 본듯한 형국이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그의 여정을 따라가 본 시간은 즐거운 경헙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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