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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 해당되는 글 9건
2014. 9. 24. 11:19

프란시스 쉐퍼의 <위기에 처한 복음주의>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쉐퍼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주의에 대한 그의 관찰과 탄식을 담고 있습니다. 


왜 쉐퍼는 복음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할까요? 간단히 말하면 복음주의가 성경의 절대적 권위에 무릎꿇지 않고 세상에 적응되며 결국 자유주의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산 정상에 있던 얼음이 녹아흐를때 산의 서쪽으로 흐르는 것과 동쪽으로 흐르는 것이 지면에 가서는 엄청난 거리의 차이를 가지듯,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처음에는 사소한 차이인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진리 안에서 남느냐 아니면 진리를 거부하고 배교의 길로 가느냐의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쉐퍼는 성경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 성경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으면 결국 세상과 타협하게 된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자유주의 신학은 배교이고, 자유주의 신학과 같이 하는 모든 행위 또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낙태나 동성애에 대한 다른 태도는 처음의 아주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이런 유연한 태도가 복음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겁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쉐퍼는 대결을 말합니다. 사랑이 담긴 대결이요. 사랑을 담았지만, 쉐퍼에게 세상은 분명한 선을 그어야할 대결의 대상입니다. 결코 타협은 없습니다. 


청년의 때에 이 책을 읽었다면 쉐퍼의 말에 완전 동의했을 겁니다. 하지만, 쉐퍼가 말하는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도 사실은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다 생각하는 해석"을 믿는다는 겁니다. 세상에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게 가능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의 모든 글자 하나 하나에 전혀 오류가 없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문자 그대로 볼 때 보이는 분명한 모순이 다 설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근본주의든, 복음주의든, 자유주의든 모두 성경에 대한 해석입니다.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그렇기에 나만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 자신할 수 없는 겁니다.   


세상과의 타협을 경계합니다. 진리에서의 이탈을 합리적인 해석이라 포장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과 합당하지 않은 차이는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누가 그 경계를 그을 것인가는 의문입니다. 쉐퍼가 그 줄을 그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 세상의 누구도 그 선을 그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쩌라는 거냐? 답이 뭔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쉐퍼 의견에 완전히 동감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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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2. 14:46
꾿빠이, 이상 - 8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얼마전부터 문학과 책에 관련된 팟캐스트를 들으며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어 새해 두번째 책으로 선택했다.


이 소설을 쓴 김 연수는 차세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젊은 작가들중 두드러진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라는 작품을 들고 문학이야기라는 팟캐스트에 나왔는데, 글에 대한 그의 열정이 느껴졌다. 저렇게 치열하게 사색하고 글을 쓴다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꾿빠이 이상은 김연수의 작품중 처음으로 접한 소실이다. "김연수의 대표작은 최신작이다"라는 평을 듣는 작가이기에 2001년에 쓰여진 꾿빠이 이상보다 최근 작품들이 당연히 더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꾿빠이 이상은 충분한 책읽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소설은 천재 작가 이상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명의 각기 다른 화자가 일인칭으로 말을 하는 형식. 문예지에서 일하며 이상의 데드마스크 사건에 연루된 김연화 기자. 평생 이상이 되고자 그의 자취를 좇은 서민혁. 중국인으로 미국에서 자라 한국문학을 전공한 피터주. 이렇게 세명이다. 직업이나 환경이 다른 이들을 이어준 건 이상이다. 그들 모두 이상을 둘러싼 어떤 진술에 대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한가지를 정해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소설은 끊임없이 진짜와 가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가짜냐 진짜냐의 문제가 아니"다. "진위와는 무관하게 모든 정황이 진짜라면 진짜인 것이고 모든 정황이 가짜라면 가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의 중심에는 이상이 있다. 정확하게는 천재작가 이상과 현실의 삶을 살아내는 김해경이 있다. 김해경은 이상의 본명이다. 이상과 김해경은 같은 사람이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의 좌우가 바뀌듯 다른 인물이다. 전망 좋은 총독부 기수직의 이학박사 지망생 김해경과 기행을 일삼는 천재 작가 이상의 불일치는,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와 그의 최후에 대한 증언의 불일치로 확장된다. 이상의 데드 마스크와 오감도 16호는 진짜와 가짜에 대한 논란을 증폭하는 기제로 등장한다.


무엇이 진짜일까? 아니 무엇을 진짜라 생각하며 살아가야할까? 사실 진짜라 믿는 것중 진짜가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어릴적의 기억이 그렇다.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어쩌다 그렇게 생각해 왔고 이젠 의심조차하지 않는 그런 기억.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반론을 아무도 할 수 없는 기억. 그러면 그건 진짜가 되는 거다. 어디 기억뿐일까? 진짜가 아니라도 진짜로 믿을 수 있으면 진짜가 아니겠는가.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가짜임을 증명할 수 없더라도 가짜는 가짜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우리가 무엇을 믿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소설은 던지고 있다.


꾿빠이 이상은 재밌다. 무엇보다 이상에 대한 알찬 지식들이 작가 김연수의 상상력 속에 씨줄 날줄로 연결되어 있다. "1백여개의 조각"으로 "1천개의 조각이 필요한 퍼즐"을 만들어 그 빈칸을 이야기로 채워 넣었다. 그런데 그 1백여개의 조각도 엄청나다. 이상이 남긴 모든 작품과 지인들의 기록까지 오랫동안 샅샅이 뒤져야 했을 거다. 이 모든 조사를 작가 혼자 다 했을까? 아니면 다른 연구가들의 결과물을 짜맞추어 활용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직접 다 했다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아쉬움도 있다. 이야기의 짜임새가 2% 부족한듯. 예를 들어, 데드마스크가 가짜라는 정보를 김연화 기자에게 알려준 정씨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서민혁의 동생이라면 굳이 데드마스크 말고 서민혁의 수기에 나온 오감도 16호를 팔려고 할 것 같다. 오감도 16호에 대한 결론이 누군가의 말한마디로 너무 쉽게 내려진다. 김해경이 이상과 작별하려 하지 않았을까라는 떡밥은 너무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이상에 대한 방대한 조사에 걸맞는 완벽한 이야기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세명의 화자중 제일 마음에 와닿는 사람은 서민혁이다. "글을 베껴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이상의 삶까지 흉내냈"던, "김해경이 죽어 이상이 되는 그 비밀을" 알았다고 믿으며 "영원히 이상으로 다시 사는 길"을 죽음으로 이루려 했던. 그럼에도 결국은 이루지 못했던 인물.


우리는 모두 내가 아닌 누군가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오늘 내가 남긴 글. 오늘 내가 건넨 말. 그것들이 정말 내 진짜 모습인가? 그렇게 되고 싶은 누군가는 아닌가? 그렇게 기억되고 싶기에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김해경은 이상을 만들고, 죽음으로 이상을 이루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상을 기억한다.


누가 진짜인가? 이상? 김해경? 그게 중요한가? 난 둘 다 진짜라 생각한다. 사람 안에는 여러 모습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일본 작가는 사람은 Individual보다는 Dividual이라는 말을 했다. 나누어지지 않는 인간이 아니라 나누어질 수 있는 인간. 내 안에는 여럿의 내가 있다. 그 모든 '내'가 '나'다. 어떤 나는 좋아하고 어떤 나는 싫어할 수 있다. 어떤 나는 숨어있다가 나중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상도 김해경도 모두 진짜다. 그 중 누구를 '더 진짜'로 삼느냐는 믿음의 차원이다.


230쪽 정도의 분량이지만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다. 앞에서 지적한 이야기의 아쉬움은 있지만, 많은 정보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분 좋은 지적 유희였다. 책을 다 읽고 가지고 있던 이상선집을 찾았는데 없다. 여러번 이사 속에 버려졌나 보다. 검색해 보니 이상 전집이 나왔던데 조만간 구입할듯 ^^



2014. 1. 4. 07:17
나의 노래, 우리들의 이야기 - 8점
윤형주 지음/삼인


2013년 11월 이틀에 걸쳐 방송을 통해서만 보던 가수 윤형주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지요.


----------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윤형주 장로를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트윈폴리오, 그리고 세시봉 멤버로 알려진 가수 윤형주씨입니다. 제가 속한 온누리 교회의 장로이기에 윤형주 장로라는 호칭이 저는 더 편합니다. 


오랫동안 매스컴에 노출된 지라 사실 가수 윤형주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많이 없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그분을 알고 있었지요. 온누리 교회 장로이긴 하지만, 저는 보스톤 소속이기에 한국 온누리 장로를 볼 기회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틀 동안 소규모 인원과의 아침 식사, 개인적인 점심식사, 두 번의 집회, 또 소규모의 저녁 식사등으로 가까이서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전 소위 유명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인적 성숙과 상관없이 주어진 유명세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위험이 있고 또 그런 사람을 접했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선입견이 깨졌습니다. 아니 솔직히 반했습니다. 저 보통 이런 표현, 특히 남자한테, 쓰지 않습니다. ^^ 


윤장로님은 매우 편하게 사람을 대했습니다. 유머도 넘치구요. 저희 교회 목사님에게서 미리 들으셨겠지만, 아침 식사에 모인 여섯명의 이름을 듣고 인적 사항을 기억해내더군요. 참 대단하다 싶었는데 그 비밀은 노트에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 전에 커다란 대학 노트를 꺼내더니 만난 장소, 만난 사람과 자녀의 이름, 기타 기억할 내용을 깨알같은 글씨로 기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인상 깊어 허락하에 사진도 찍었습니다. 저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노트와 펜을 항상 들고 다닙니다. 그렇기에 그 정도 기록을 남기는게 보통의 내공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실한 자기 관리 없이 될 수 없는 일이지요. 


개인적인 문제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숨기고 싶을 수도 있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제 문제를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제 아이들 둘다 이름과 상황을 기억하고, 이름 적어서 사인을 주고, 또 마지막까지 물어보는 모습은 장로라는 위치 때문에 보이는 의례적인 관심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75년도 대마초 사건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 조금만 신경썼어도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감옥에 가게된 건 "하나님이 보내시려면 어떻게든 가게 되기" 때문이라 말하더군요. 하나님이 광야로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으면 피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 감옥에서 그분은 성경을 통해 평생 함께 하는 친구, 즉 에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교도소 전도, 청소년 사역, 그리고 해비타트 집지어 주기 등을 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집회를 통해 말씀도 전하구요. 이번에도 신체적인 무리에 건강이 안좋은 상태에서도 멀리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평가하기 위해서는 육십은 넘어야하나 봅니다. 중간에 닥치는 시련 혹은 저지른 실수는 오히려 사람을 성장시키는데 쓰여지는 필요한 훈련이니까요. 그런면에서 윤장로님은 훈련을 너무나 잘 통과했습니다. 아무나 그럴 수 있는게 아니구요. 


저와 20년 차이더군요. 생일도 비슷합니다. 20년 후에 제가 그 정도의 성숙함과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지 자신 없습니다. 그럼에도 소망을 봅니다. 당장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를 믿는 모든 이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그를 통해서 보았으니까요. 매일 예수님과 동행하며 한걸음씩 나아갈 때 제 모습도 예수님을 조금씩 닮아갈 거라 믿습니다. 


이틀의 시간을 통해 얼마나 친해질 수 있겠냐만 그래도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왠지 한국 방문때 전화 걸어서 밥한끼 사주세요 말을 해도 흔쾌히 응답하실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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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때의 인연으로 선물 받은 것입니다 ^^V 저희 부부의 이름을 적어 마지막 만남에 주시더군요. 그리고 읽을 시기를 찾다가 2014년 첫 책으로 읽었습니다. 이미 글쓴 이에게 반해 있는 상태라 ^^ 사심 없이 책을 평하기는 힘들겁니다. 그래도 올해의 첫 책이기에 짧은 평을 남깁니다.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 부분은 자전적인 글로 삶의 중요했던 열가지 장면을 적었습니다. 가장 주가 되는 부분이지요. 자전적인 글이라면 흔히 시대순으로 나열하는 것을 예상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맘에 들더군요. 첫 은퇴후 방송에 복귀하게된 사연,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에 갔을 때 자살을 생각하다 하나님을 만난 것, 씨엠송을 통한 재기, 사업 실패후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아내와의 만남, 아들의 조기 유학과 장로 장립을 통해 아버지를 기억하는 모습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진솔하면서도 편안하게 적혀있습니다. 카네키 공연을 하며 겪었던 가족간의 갈등과 화합의 모습은 너무 부럽더군요. 


다음 부분은 가수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송창식, 조영남, 김세환, 양희은, 김민기 등 한 세대를 풍미했던 그들과의 인연과 일반인이 모르는 그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등장하는 모두 방송에서 한번씩은 보았고, 양희은씨가 김민기씨 같은 경우 개인적으로 좋아하기에 즐겁게 읽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사진들이 실려있습니다. 일종의 부록이지요. 저자와 친구들의 예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책은 참 쉽게 읽힙니다. 두세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이 주는 공명은 큽니다. 


개인적으로 감옥에서의 회심후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예수를 만나 한바탕 운다고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 이렇게 적혀있네요. "감옥에서 놀라운 영적 체엄을 하고, 깨닫게 되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이 아닌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신앙적 각성이 현실의 막막함을 극복하게 해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불쑥 불쑥 이러다가 폐인으로 굳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럴 때면 더 미칠 것 같았다." 그 솔직한 고백이 참 좋으면서도, 이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용기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에 고마웠습니다.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양이 너무 적은 것 같아요. 더 읽고 싶었지만 벌써 책이 끝났습니다. 첫 부분에서 개별 사건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혀있지만 열개의 이야기만 다루기에 양이 적었고, 다음에 나오는 지인들의 이야기도 한명당 짧게는 세 페이지에 끝이 나서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가수, 디제이, 작곡가, 사업가, 장로, 그리고 사회봉사가로서 다양한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좀더 알고 싶거나 혹은 기독교 신앙이 삶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일을 하는가 알고 싶은 분은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2009. 2. 5. 13:12
올해 책을 많이 읽고자 일주일에 하나씩 서평을 쓰겠다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책을 보고 그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은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내용을 되새김질하고 생각을 더하면서 읽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수 있기도 합니다. Inuit님 말한 것처럼 사전을 읽고도 서평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

글을 쓰면서 어떤 단계를 거치나 어떤 패턴을 취하나 스스로 분석해본 적이 있습니다. 서평도 글쓰기의 하나인지라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만, 나름대로 제가 사용하는 서평 쓰기의 원칙이 있는 듯 해서 한번 정리해봅니다.

1. 다 읽고 쓴다

당연한 원칙입니다. 그래도 여기에 적는 이유는 책을 다 읽지 않고도 서평은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업적 공간에 올려 있는 서평(이라기보다는 책소개라 불러야겠습니다만)중에는 정말 책을 다 읽긴 읽었나 의심가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의 몇장만 읽고 썼다는 물증은 없지만 심증이 가는 글들이 많이 있지요. 물론 책에 따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을 필요가 없는 책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서평이라면 책을 완전히 소화한 다음에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2. 책을 통해 글쓴이를 본다

김훈의 칼의 노래가 전환점이었을 겁니다. 언제부턴가 책을 통해 글쓴이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을 왜 썼을까? 저자는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나? 그의 인생관은 어떤가? 외국 저자라면 위키를 참조하고 국내 저자라면 검색이라도 한번 해봅니다. 그리고 책이 아니라 글쓴이의 생각에 마음을 맞추고 서평을 씁니다.

3. 우뚝 솟은 나무를 중심으로 숲을 말한다

영화평에 비유한다면 제 서평은 스포일러 투성이입니다. 책의 내용을 너무 많이 소개하는듯 합니다. 그래도 처음에 서평을 쓸 때 순서대로 내용을 요약했던 것(예: 마지막 통찰)에 비해 요즘은 전체 내용을 간단히 흝고 중심이라 생각하는 내용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에서는 '진짜되기'가 중심이었고, '나는 학생이다'에서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평을 했습니다.

4. 책과 글쓴이가 어떻게 다가오는가를 적는다

책에서 그리고 글쓴이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적습니다. 그리고 글쓴이가 나와 세상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집어내려 노력합니다. '마시멜로 이야기'에서는 아이에게 성공지향주의의 이 책을 읽어주는게 옳은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바리데기'에서는 작가의 무기력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한산성'에서는 치욕스러운 과거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듯한 한국을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을 적을지는 그때 그때 다릅니다. 한마디로 느낀대로 적습니다 ^^ 글의 패턴도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레 달라집니다.

5. 서평을 쓰기전에는 서평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서평을 쓰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서평을 읽지 않습니다. 찬성을 하던 반대를 하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될수 있는 한 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자료조사가 아닌 이상 책에 대한 글은 안보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책 읽기 시작하기 전에 접했던 서평은 괜찮습니다. 책을 읽으며 다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ㅡ.ㅡ

6. 서평을 쓰고 나서는 다른 서평을 찾아 다닌다

서평을 쓰고 나서는 적극적으로 다른 분들의 글을 찾아다닙니다. 서평을 읽고, 댓글도 달고 트랙백도 남겨봅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썼을 때는 제 하나 몫의 지식을 쌓았습니다. 다른 분들 서평을 읽고 교류를 하면서 여러 사람분의 지혜를 얻습니다. 다양한 시각만큼 이해도 좋아집니다.

7. 인용을 하되 문장을 재구성한다

단순인용은 주로 안하는 편입니다. 인용을 하되 원래의미를 변경하지 않는 한도내에서 문장을 재구성,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합니다. 읽으며 밑줄을 많이 그었던 책인 경우 특히 인용을 하고 싶은 욕심이 많이 생기지요. 최근에 읽은 책중에서 '나는 학생이다'가 그런 책이었습니다.

8. 책이 아니라 나에 대해 쓴다

서평은 또 다른 글쓰기일 뿐입니다. 책에 대한 글이지만 책에 비추어 내 이야기를 담아내려 애씁니다. 어느 분이 그러더군요. 과거에 쓴 서평을 보면 책이 아니라 당시의 자신이 담겨 있다구요.





2008. 9. 28. 23:19
난해한 나라로구나... 갇혀있는 조선의 국왕이 죽어가는 나라 명을 향해 춤으로 예를 올림을 보며 칸은 말했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는 아니였지만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었던 청을 조선은 굳이 적으로 만들었고 칸을 이 후미진 땅으로 불러들였다. 조선에 올 때는 시원한 싸움이라도 한판 기대했건만 남한 산성에 도착할 때까지 저항도 환영도 없었다. 조선은 너무나 조용했다.

병자년에 청을 다시 불러들인 것은 말(言)이였다. 받아들이는 이들은 힘이 없건만 명에 대한 예를 지킨다 고집하여 오랑캐를 적으로 만들었다. 여진이 정묘년에 들어와 힘을 보였고 조선은 별 대항도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적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말은 다시 힘을 얻었다. 그릇됨이 드러나기 전까지 말의 힘은 끝이 없다. 말 잘하는 이들이 조선에 넘쳐나 세상을 개벽할 듯 하였다. 말로서 형제 나라 명을 회복시킬 수 있었고 말로서 오랑캐 여진을 물리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을 쌓았다.

힘이 없는 말은 약했다. 조선 안에 가득했던 그 말들은 한발자욱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조선은 조선 안에서는 굳센 나라였고 조선 밖에서는 어리석은 나라였다. 조선안의 말하는 이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동리 아이들의 짝짓기인양 명을 내 편이라 청을 내 편이 아니라 갈라놓고 천년만년 그렇게 살고자 했다. 바다와 중국에 막혀 있던 조선의 사람들은 눈 앞의 것밖에 볼 수가 없었다.

산성 밖에는 살 길이 아니라 죽을 길만 있었다. 싸우기를 주장하는 자들은 몸이 죽을수 밖에 없음을 알았고, 살고자 화친을 주장하는 자들은 결국 그들의 이름이 죽을 것을 알았다.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몸이 죽임을 당하거나 이름이 죽임을 당하거나 죽음은 산성 밖에 있었다. 산성 밖에 나가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 죽음을 알았기에 그들은 산성 안에 있었고 산성안에서 다투었다. 살 길을 만들어주지 못함에도 살아있음을 증명하고자 그들은 다투었다.

김훈의 남한산성 안에는 난해한 나라 조선이 있었다. 힘이 없음에도 힘을 키우지 않고 수모를 당해도 어쩌지 못하고 돌아서는 그 나라가 있었다. 살고자 자식과 며느리를 적에게 보내고 살고자 돌아온 자식과 며느리를 죽였던 임금이 그 안에 있었다. 살고자 적을 만들고 살고자 적에게 무릎 꿇었다. 살고자 싸우자 했고 살고자 항복의 글을 올렸다. 그 뜻이 때로는 강개하고 그 뜻이 때로는 저열하나 살고자 하는 이들의 몸부림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산성안에 갇혀있었다.

세상은 달라져 아무도 산성안에 갇혀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땅의 사람들은 땅 안의 것 밖에 보지 못한다. 나가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내며 무력함을 자부심으로 극복하려 한다. 실리가 필요할 때는 가치를 들어 말을 막고, 가치를 지켜내려 하면 실리를 들어 발을 뺀다. 살고자 함은 어느때보다 소중해 졌으되 살고자 다른 이를 죽이고자 하는 이기는 어느때보다 커졌다. 나라 안의 웅성거림은 더 커졌으되 그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멀리 나가지 못한다. 고집스레 현실을 보지 않는 단호함과 고집스레 자신만 위하는 이기심이 때로는 처연하다. 몸은 갇혀있지 않되 정신은 가두고 풀어주지 않는 답답함이 때로는 소름끼친다.

조선은 아직도 그 산성에 갇혀 있다.

*******************************

지난번 칼의 노래 때와 마찬가지로 김훈의 문체로 글을 써봤습니다.
서평, 특히 소설의 서평을 쓸 때는 저자의 문체를 흉내내어 볼려고 합니다.
근데 자연스런 저의 글모양이 아니기에 쉽지는 않네요. 이번엔 더 어려웠습니다.


남한산성 - 10점
김훈 지음/학고재




2008. 4. 5. 07:15
Getting Things Done (Reprint, Paperback) - 8점
Allen, David/Penguin Group USA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 - 8점
데이비드 알렌 지음, 공병호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GTD(Getting Things Done)를 처음 접한 것은 작년에 한국 팜 유저그룹에 올라온 GTD 요약본을 통해서였다. 그때 받은 느낌은 흥미롭긴 했지만, 너무 단편적인 기술에 집착한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한 GTD의 꾸준한 인기는 다시 GTD에 대해 흥미를 갖게 만들었다. 데이비드 알렌이 쓴 GTD는 2001년 "Getting Things Done"이라는 책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벌써 7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이 책은 아마존에서 64번째로 많이 팔리는 책이며, 자기계발 분야나 시간관리에서는 1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터넷 검색으로 GTD를 찾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GTD를 적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읽은 것은 원서지만 2002년에 (그렇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 ^^) 공병호 박사를 통해 번역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서평을 보니 좋지 않다는 의견들이 있다. "복잡하다" "겉돈다"며 실망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번역자의 의역이 오히려 헷갈리게 했다는 평도 있지만, 책 자체가 한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지지가 않았다는게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두가지 원인이 있다. 같은 내용이 약간씩 다르게 반복이 되며, 어떤 내용은 안 맞는 위치에 있어 오히려 헷갈리게 한다. 한편, GTD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데, 책에서 그 점을 해결을 안하고 넘어간다.

그럼에도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GTD의 원리가 맘에 들기 때문이다. 원리는 두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무언가 '해야할 일 (Open Loop)'이라 생각하면, 우리의 머리는 중요성, 남은 기간, 가능성등을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무게로 취급한다. 그렇기에 그 일들을 머리 밖으로 끄집어내서 믿을만한 장치에 기록해놔야한다. 둘째, 기록을 주기적으로 검토하고, 처리하거나 혹은 재협상해야한다.

알렌은 이 두가지 원리를 적용하여 다섯단계로 이루어진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1. 수집 (Collect) - 모든 Open Loop를 기록한다 2. 처리 (Process) - Open Loop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한다 3. 정리 (Organize)  - 적절하게 분류하고 리마인더를 설정한다. 4. 검토 (Review) - 정기적으로 전체를 검토하고 재조정한다. 5. 실행 (Do) - 상황에 맞는 일을 선택해서 실행한다.

이 법칙을 기반으로 책은 세부분으로 나뉘어져서 구성되어 있다. 1장, 2장, 3장에서 GTD애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하며, 기반에 깔려있는 철학을 설명한다. 4장부터 10장에서는 프로세스의 각단계를 자세하게 설명하며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11장부터 13장은 보완하는 글로 GTD 원칙의 장점을 여러 각도에서 강조한다.

문장 하나 하나는 깔끔하다. 중간 중간 나오는 인용문이나 강조문을 읽는 즐거움도 있다. 그런데 읽고 나니 헷갈린다 ㅡ.ㅡ;;; 막상 적용하려고 하니까 앞뒤가 엉키는 기분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같은 것을 느꼈나 보다. 그래서 책을 다시 들쳐보고, 운전할 때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어느 부분이 안맞나 생각해 봤다. 내 경우 가장 큰 원인은 수집과 처리, 정리가 섞였기 때문인 것 같다. 기존의 사고 방식은 수집을 하자마자 (할 일이 생각나면), 카테고리에 리마인더까지 설정하는 즉 정리까지 끝내버리는 것이다. 그 생각을 바꾸지 않고 GTD를 적용하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책의 내용과 맞지 않으니 헷갈렸던 거다.

방법 자체에서도 충돌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2단계에서 숙성(incubation)이 필요한 것을 따로 분류하라고 해놓고, 3단계에서 someday/maybe를 이야기한다. tickler file을 언제 써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언제 쓸지 헷갈리게 한다. 4단계의 검토를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1~4단계를 다 수행해야하는 weekly review를 이야기한다. 5단계 실행에서 말한, 비행높이에 따른 할 일을 생각하는 프레임은 오히려 1단계의 수집에 더 어울린다. 이런 점들이 GTD의 이해와 적용을 방해하는 점들이다.

그래도 그 차이를 깨닫고, 따라하니 꽤나 명쾌하고 쉽다. 처음 생각은 GTD의 장점을 파악해서, 기존에 사용하는 프랭클린 플래너에 적용해볼까 하는 것인데, 그 생각이 바뀌었다. 요즘은 GTD를 100% 적용하고 있다. 시간은 꽤 걸렸다. 최초 수집및 정리까지 16시간은 족히 걸렸다. 그래도 그 시간이 아깝지가 않다.

GTD는 (책에서 강조하듯) Bottom-up 접근 방식이다. GTD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주로 사람들은 Top-down 방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GTD의 접근 방식에도 장점이 있다. 나중에 자세히 쓰겠지만, GTD의 Bottom-up은 일곱가지 습관의 Top-down과 반대방향에서 접근하지만, 그렇기에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두가지 방식을 조합한다면 최적의 시간관리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삶이 피곤한 사람. 다른 시간관리법을 사용해도 별 효과가 없었던 사람. 한번 GTD를 시도해볼만 하다. 단 읽을 때 위에서 말한 점들을 감안한다면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08. 3. 3. 13:36
글쓰기의 전략 - 8점
정희모.이재성 지음/들녘(코기토)

사람들은 전략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전쟁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이나 책략'이라는 군사용어에서 출발한 전략은 다른 분야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전략'이라는 단어를 보면 사람들이 무얼 기대할까? 대부분 이기기 위한 방법, 혹은 효과적으로 자원을 이용하는 방법등 목적을 이루기위한 가장 빠른 길을 기대하리라 생각된다.

정희모, 이재성. 현장에서 글쓰기를 지도하는 두분의 교수님이 쓴 '글쓰기의 전략'이라는 책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같은 것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내 글이 별로인 것은 뭔가 방법이 틀려서일거야. 사람들을 확 잡아당길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백전필승의 전략이 책에 담겨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기대를 처음부터 부수어버린다.

"글쓰기는 순전히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중략> 이를 준비하는 것도 노동이다. 그뿐만 아니라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학습도 당연히 고된 노동이다. (p20)"라고 이 책은 선언한다. 글짓기에는 지름길 혹은 전략은 없다. 다만 '숙련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요령(전략)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만드는 책이라기보다, 그 능력을 갖도록 훈련하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글쓰기는 노동이다', '2. 관습적 학습에 저항하라'를 거쳐 글쓰기에 대한 전반적인 자세를 제시한 후, 세부항목에 대한 학습을 시작한다. '3. 계획 - 설계도는 구체적으로 그린다'에서 전체적인 밑그림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4. 구성1 - 세밀한 연쇄고리를 만들자', '5. 구성2 - 구성은 흐름이다'에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는 글을 쓰는 법을 이야기한다. '6. 구성3 - 화제식 유형의 다양한 응용법', '7. 구성4. 나열식 유형의 다양한 응용법'에서는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유형을 소개한다. '8. 서두 - 인상적으로 쓰라', '9. 결말 - 영화의 엔딩신처럼 연출하라'에서 글의 시작과 끝맺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야기한 후에 '10. 글 한편을 멋지게 써보자'로 전체를 다시 정리해본다.

그리고 '11. 단락 -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 '12. 문장1 - 일곱가지만 알면 된다', '13. 문장2 - 바른 문장 쓰는 법'은 좋은 문장을 쓰기위한 추가 강의라 생각하면 된다. 더불어 맞춤법을 제대로 쓰기 위한 짤막한 강의들도 있다.

아쉽다면 글의 전체적인 모양새에 집중하다 보니 좋은 '문장'에 대한 내용은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논설이나 수필등 제한적인 형태의 글만 다루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책을 읽는다고 글짓기가 당장 좋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통 서두는 글의 5분의 1 정도로, 한두 단락으로 구성된다. (p197)"라든가 "현상->원인->해결책"등의 유형을 안다고 해서 거기에 맞춘 글이 바로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닐테니까.

그  점들을 감안하고 보면, 이 책에서는 '좋은 글'에 대한 패러다임과, 그에 다다를 수 있는 훈련방안을 얻을 수 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리고 이를 위해 충분한 대가를 치를 의향이 있다면, 이 책은 두고 두고 들쳐볼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


2008. 2. 11. 14:13
미쳐야 미친다 - 8점
정민 지음/푸른역사

작년에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통해 두명의 지식인을 만났다. 바로 다산 선생과 정민 교수이다. 서평에 적었듯이, 다산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책이지만, 또한 그 모든 것을 정리한 정민교수의 탁월함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책이다.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는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라는 부제와 함께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속내를 그들의 글을 통해 들여다 본 책이다. 정약용, 박지원, 허균등 역사시간에 내내 자지만 않았다면 들어봤을 이름들도 등장하지만, 김군, 이옥, 송희갑등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는 이름도 많이 있다.

책은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벽에 들린 사람들'는 흥미를 넘어서 집착 혹은 광기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열정을 보여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맛난 만남'은 서로의 인생을 바꿀만한 멋진 인연들을 소개한다. "일상 속의 깨달음"은 삶 속에서 드러나는 작은 이야기, 그렇지만 무한한 깊이가 담겨있는 선배 지식인들의 지혜를 다루고 있다.

독학으로 기하학을 배워 천문관측의 독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시기로 인해 굶어죽은 김영. 떨어지는 기억력을 몇만번 반복해서 읽음으로 보충한 김득신. 천하의 문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대를 잘못 만나 과거시험 대필을 해주던 노긍. 정약용을 만남으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황상.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번의 여행을 통해 좋은 글에 대한 가르침을 적은 홍길주. 이외에도 많은 지식인들의 알지 못했던 삶의 이면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글 속에서는 분명 조선후기의 지식인들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읽고 있는 것은 정민의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선배들의 '보석처럼 빛나는' 정신을 보면서 정민교수는 그들에 대한 경외심과 옅어진 우리네 심성에 대한 애탄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몇가지 대목을 옮겨 본다.

"잊는다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금도 세상을 놀래키는 천재는 많다. 하지만 기웃대지 않고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성실한 둔재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한때 반짝하는 재주꾼들은 있어도 꾸준히 끝까지 가는 노력가는 만나보기 힘들다. 세상이 갈수록 경박해지는 이유다."

"옛사람들의 편지글을 볼 때마다, 과연 물질 환경의 발전이 삶의 질까지 향상시킬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지울 수 없다. 물질의 삶은 궁핍했으되, 정신의 삶은 보석처럼 빛나던 선인들..."

"담배 연기와 향로 연기를 가지고 쓴 두편의 글(이옥의 연경과 박지원의 관재기)을 읽었다. 장난투가 있지만 행간에 만만찮은 내공이 느껴진다. 공연히 아는 것 많은 체해봤자, 우리가 이런 글 한줄 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옛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무작정 그들이 위대해 보이고, 우리의 삶이 초라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내가 나를 잘 아는 것. 복잡하기만 하고 결실 없는 삶이다 보니 옛선배들의 삶이 그러워지는 것일게다. 따지고 보면 그 때 생활보다 지금이 더 풍족하고 좋을 것이다. 지식적으로도 훨씬 뛰어나고, 정신적으로 부족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것일까? 우리가 부족하다 생각하는 모습들, 그렇게 되고 싶은 모습들을 옛선배들을 통해 투영하는 것은 아닐까?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시대를 잘 못 만났던 사람들, 신분의 제한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던 사람들, 사람들의 질시에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지조를 저버리지 않음을 자랑하고, 가난함을 당연히 여겼던 그들. 요즘 관점으로 보면 어쩌면 실패한 인생이라 할 수도 있다. 물질이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 지금 세상은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 살기 힘든 세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아름다운 정신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짧은 글 속에도 수없이 나타나는 은유와 인용, 그 해박함에 탄복하게 된다. 내 삶을 통해 이만한 깊이를 보여줄 수 있을까? 올려다 보기 힘들 정도로 그들의 삶은 높고 굳다. 그렇기에 그들을 부러워 하는 것이리라. 정신의 자리를 물질,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세상. 더욱 빨라지고 더불어 얇아지는 세상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여유와 깊이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평생 한번 만난 중국의 친구와 일년에 한번 주고 받을 편지로 우정을 나누었다는 홍대용과 엄성. 지금 기준으로 보면 속터져 죽을 만한 속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오히려 더 풍족했을 것 같은 이유는 뭘까? 마음 한구석에 있는 찬란한 정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닐까?

"절망 속에서 성실과 노력으로 자신의 세계를 우뚝 세워올린 노력가들. 삶이 곧 예술이 되고, 예술이 그 자체로 삶이었던 예술가들.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세워 한 시대의 앙가슴과 만나려 했던 마니아들의 삶 속에 나를 비춰보는 일은, 본받을 만한 사표도, 뚜렷한 지향도 없어 스산하기 짝이 없는 이 시대를 건너가는데 작은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그때와 우리의 지금은 똑같은 되풀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다. - 머리말"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갔던 선배들의 삶을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된다. '현실적 필요'라는 핑계로 물질만을 좇아 사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그들 '작은 영웅'들의 삶을 알게 해준 정민교수에게 감사를 드린다.


2007. 12. 3. 22:09
피터 드러커, 마지막 통찰 - 10점
엘리자베스 하스 에더샤임 지음, 이재규 옮김/명진출판사


이 책은 드러커가 생애 마지막에 자신의 철학을 정리하기 위해 엘리자베스 에더샤임에게 책을 써달라 부탁함으로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그는 자신이 선택한 후배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도록 한 것이다. 그 부탁이 흥미롭다. "이것은 내 책이 아니라 당신의 책이다", "숨기지 마라", "드러커 회사의 CEO처럼 생각하라. 내 모든 작업에 질문을 던지고 현재와 미래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다 지워라", "(내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해석이다" 드러커가 보기에는 한참 밑의 후배이다. 드러커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후배에게 자신의 작업을 평가하고 해석하고 추려달라는 부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존경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 드러커의 기대에 에더샤임은 멋지게 부응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리에 떠오른 말이 "거인의 어깨"라는 말이다. 내가 작더라도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간다면 멀리 볼 수 있다. 에더샤임은 드러커라는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고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드러커의 평생 작업을 멋지게 요리하며 자신의 키만큼 높이를 더하였다. 드러커의 저서를 많이 읽지 않았기에 조심스럽지만, 누구도 에더샤임보다 더 뛰어나게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말 그대로 결정적 드러커 (Defintie Drucker:원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누가 경영에 관한 책을 추천해달라 하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다 읽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9월 22일에 읽기 시작했으니 이 책을 읽는데 사흘 모자른 두달이 걸렸다. 중간에 다른 책을 읽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문장이 엉망이라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번역은 어떨지 모르지만 올해 읽은 원서중 문장이 가장 깔끔했다. 내용적으로 새로운 것도 많지 않다. 드러커가 현대 경영에 미친 영향이 워낙 크기에 상당부분이 이미 다른 책에서 언급되었거나, 여기 저기서 줏어 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게을러진 탓도 있겠지만 ㅡ.ㅡ 그보다 책의 내용을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내용이 방대하다.

에더샤임은 드러커의 평생작업을 일곱가지 항목으로 분류하였다. 여기서 정리를 하였지만, 세세한 내용 하나 하나 소중한 것이기에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1. 드러커는 현재 사화를 레고월드로 정의한다. 세상은 편평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전처럼 나뉘어진 것도 아니다.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레고처럼 이 세상도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은 변하기에 어제의 원칙이 오늘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하게 내어주라고 드러커는 이야기한다.

#2. 드러커에게 있어서 고객은 시작이며 끝이다. 드러커의 유명한 질문 "고객이 누구인가?", "고객이 어떤 것을 가치있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드러커는 모든 사업이 계속해서 고객에게 초점을 맞추어야한다고 강조한다. 당연한 진리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한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듯이, 그렇지 않은 회사들이 너무나 많다.

#3.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는 말처럼 드러커는 혁신이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혁신은 항상 버림을 동반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혁신을 하기 위해 무엇을 버릴 것인가?", "기회를 체계적으로 찾고 있는가?", "아이디어를 해결책으로 변환할 방법이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좋은 인력(노력)을 배치고 있는가?"고 묻는다. 이런 질문들은 회사 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물어볼만한 것이다.

#4. 현대 사회의 특징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협력의 필요이다. 더 이상 한 개인이나 한 회사가 독자적인 연구를 하고 비용투자를 감당하기에는 힘이 드는 세상이 되었다. Wikinomics로 표현되는 새로운 경제질서 속에서는 각자 독자 영역을 확보하면서도, 그 이외의 것은 다른 이들과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5. 드러커는 경영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에 관한 것임을 강조한다. '지식근로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 드러커이다. 드러커는 근로자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고, 사람 관리에 대한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함을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임과 목표이다. 목표를 분명히 한 상태에서 필요한 모든 권한을 위임할 때 근로자는 가장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가장 행복해 한다.

#6. 빠르면서 옳은 의사 결정을 위한 조직과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드러커는 섀시(Chassis)라는 표현을 썼다. 일회적으로 좋은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묶어줄 생각의 프레임을 말하는 것이다.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묻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프로세스는 의사결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조직내 모든 분야에 프로세스의 정립이 필요하다.

#7. 말년에 드러커의 주된 관심은 CEO에 있었다고 한다. CEO가 중요한 이유는 회사 방향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하고, 또 어느 CEO든 조직 문화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 각자의 삶에 대해 CEO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라고 도전한다. 성공적인 커리어는 계획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관리되어지는 것이다.

고객을 우선시하고, 혁신을 강조하며, 무엇보다 사람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드러커에게, 최근 일련의 사태는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장기적인 비전 없이 단기로 주식값만 올려 자신들 이익만 챙기려고 하는 경영진이 얼마나 많은가? Enron이나 Worldcom 사태를 보면서 드러커는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수단과 가치로서 회사를 인식하고, 정도를 통해서 회사가 성장할 수 있음을 가르쳐왔는데, 눈 앞의 이익만 좇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과 서운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요즘 삼성을 놓고 말이 많다. 삼성을 옹호하는 자들은 비자금으로 대표되는 편법운영에 대해 사회적 통념이라는 면죄부를 주고 싶어한다. 다 그래왔지 않았냐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다 과거에 그랬기에 앞으로도 그래야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산은 말했다. 학문하는 자는 지름길을 찾아야하고, 순서를 밟아 차근 차근 단계별로 나아가는 것이 그 지름길이라고. 성공이라는 잣대로 모든 것이 평가받는 세상과, 성공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람들에게 드러커는 바른 길이 옳은 길이요,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 역설한다. 그의 경영이론을 적용해 단순한 성공을 넘어서 위대함에 이른 기업들(GE, Toyota, P&G 등등)이 이를 증명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40여개가 넘는 예제 기업중에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예로 들을만큼 크지가 않았거나, 아니면 예가 될만한 기업이 없었거나,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경영인과 관리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했던 드러커는 진정한 거인이다. 앞으로 그는 과거의 인물이 되어갈 것이지만, 그의 가르침을 과거의 것이라 잊어버릴 수 없는 이유는, 거인의 어깨위에 설 때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드러커가 후배들에게 바란 것이 아닐까? 자기를 도움닫이로 삼고 자신을 넘어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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