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쉐퍼의 <위기에 처한 복음주의>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쉐퍼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주의에 대한 그의 관찰과 탄식을 담고 있습니다.
왜 쉐퍼는 복음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할까요? 간단히 말하면 복음주의가 성경의 절대적 권위에 무릎꿇지 않고 세상에 적응되며 결국 자유주의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산 정상에 있던 얼음이 녹아흐를때 산의 서쪽으로 흐르는 것과 동쪽으로 흐르는 것이 지면에 가서는 엄청난 거리의 차이를 가지듯,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처음에는 사소한 차이인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진리 안에서 남느냐 아니면 진리를 거부하고 배교의 길로 가느냐의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쉐퍼는 성경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 성경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으면 결국 세상과 타협하게 된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자유주의 신학은 배교이고, 자유주의 신학과 같이 하는 모든 행위 또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낙태나 동성애에 대한 다른 태도는 처음의 아주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이런 유연한 태도가 복음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겁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쉐퍼는 대결을 말합니다. 사랑이 담긴 대결이요. 사랑을 담았지만, 쉐퍼에게 세상은 분명한 선을 그어야할 대결의 대상입니다. 결코 타협은 없습니다.
청년의 때에 이 책을 읽었다면 쉐퍼의 말에 완전 동의했을 겁니다. 하지만, 쉐퍼가 말하는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도 사실은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다 생각하는 해석"을 믿는다는 겁니다. 세상에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게 가능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의 모든 글자 하나 하나에 전혀 오류가 없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문자 그대로 볼 때 보이는 분명한 모순이 다 설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근본주의든, 복음주의든, 자유주의든 모두 성경에 대한 해석입니다.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그렇기에 나만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 자신할 수 없는 겁니다.
세상과의 타협을 경계합니다. 진리에서의 이탈을 합리적인 해석이라 포장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과 합당하지 않은 차이는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누가 그 경계를 그을 것인가는 의문입니다. 쉐퍼가 그 줄을 그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 세상의 누구도 그 선을 그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쩌라는 거냐? 답이 뭔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쉐퍼 의견에 완전히 동감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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