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11. 14:13
[책 그리고 글]
미쳐야 미친다 - 정민 지음/푸른역사 |
작년에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통해 두명의 지식인을 만났다. 바로 다산 선생과 정민 교수이다. 서평에 적었듯이, 다산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책이지만, 또한 그 모든 것을 정리한 정민교수의 탁월함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책이다.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는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라는 부제와 함께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속내를 그들의 글을 통해 들여다 본 책이다. 정약용, 박지원, 허균등 역사시간에 내내 자지만 않았다면 들어봤을 이름들도 등장하지만, 김군, 이옥, 송희갑등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는 이름도 많이 있다.
책은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벽에 들린 사람들'는 흥미를 넘어서 집착 혹은 광기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열정을 보여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맛난 만남'은 서로의 인생을 바꿀만한 멋진 인연들을 소개한다. "일상 속의 깨달음"은 삶 속에서 드러나는 작은 이야기, 그렇지만 무한한 깊이가 담겨있는 선배 지식인들의 지혜를 다루고 있다.
독학으로 기하학을 배워 천문관측의 독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시기로 인해 굶어죽은 김영. 떨어지는 기억력을 몇만번 반복해서 읽음으로 보충한 김득신. 천하의 문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대를 잘못 만나 과거시험 대필을 해주던 노긍. 정약용을 만남으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황상.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번의 여행을 통해 좋은 글에 대한 가르침을 적은 홍길주. 이외에도 많은 지식인들의 알지 못했던 삶의 이면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글 속에서는 분명 조선후기의 지식인들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읽고 있는 것은 정민의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선배들의 '보석처럼 빛나는' 정신을 보면서 정민교수는 그들에 대한 경외심과 옅어진 우리네 심성에 대한 애탄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몇가지 대목을 옮겨 본다.
"잊는다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금도 세상을 놀래키는 천재는 많다. 하지만 기웃대지 않고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성실한 둔재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한때 반짝하는 재주꾼들은 있어도 꾸준히 끝까지 가는 노력가는 만나보기 힘들다. 세상이 갈수록 경박해지는 이유다."
"옛사람들의 편지글을 볼 때마다, 과연 물질 환경의 발전이 삶의 질까지 향상시킬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지울 수 없다. 물질의 삶은 궁핍했으되, 정신의 삶은 보석처럼 빛나던 선인들..."
"담배 연기와 향로 연기를 가지고 쓴 두편의 글(이옥의 연경과 박지원의 관재기)을 읽었다. 장난투가 있지만 행간에 만만찮은 내공이 느껴진다. 공연히 아는 것 많은 체해봤자, 우리가 이런 글 한줄 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옛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무작정 그들이 위대해 보이고, 우리의 삶이 초라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내가 나를 잘 아는 것. 복잡하기만 하고 결실 없는 삶이다 보니 옛선배들의 삶이 그러워지는 것일게다. 따지고 보면 그 때 생활보다 지금이 더 풍족하고 좋을 것이다. 지식적으로도 훨씬 뛰어나고, 정신적으로 부족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것일까? 우리가 부족하다 생각하는 모습들, 그렇게 되고 싶은 모습들을 옛선배들을 통해 투영하는 것은 아닐까?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시대를 잘 못 만났던 사람들, 신분의 제한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던 사람들, 사람들의 질시에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지조를 저버리지 않음을 자랑하고, 가난함을 당연히 여겼던 그들. 요즘 관점으로 보면 어쩌면 실패한 인생이라 할 수도 있다. 물질이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 지금 세상은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 살기 힘든 세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아름다운 정신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짧은 글 속에도 수없이 나타나는 은유와 인용, 그 해박함에 탄복하게 된다. 내 삶을 통해 이만한 깊이를 보여줄 수 있을까? 올려다 보기 힘들 정도로 그들의 삶은 높고 굳다. 그렇기에 그들을 부러워 하는 것이리라. 정신의 자리를 물질,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세상. 더욱 빨라지고 더불어 얇아지는 세상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여유와 깊이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평생 한번 만난 중국의 친구와 일년에 한번 주고 받을 편지로 우정을 나누었다는 홍대용과 엄성. 지금 기준으로 보면 속터져 죽을 만한 속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오히려 더 풍족했을 것 같은 이유는 뭘까? 마음 한구석에 있는 찬란한 정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닐까?
"절망 속에서 성실과 노력으로 자신의 세계를 우뚝 세워올린 노력가들. 삶이 곧 예술이 되고, 예술이 그 자체로 삶이었던 예술가들.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세워 한 시대의 앙가슴과 만나려 했던 마니아들의 삶 속에 나를 비춰보는 일은, 본받을 만한 사표도, 뚜렷한 지향도 없어 스산하기 짝이 없는 이 시대를 건너가는데 작은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그때와 우리의 지금은 똑같은 되풀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다. - 머리말"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갔던 선배들의 삶을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된다. '현실적 필요'라는 핑계로 물질만을 좇아 사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그들 '작은 영웅'들의 삶을 알게 해준 정민교수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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