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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3. 22:09
피터 드러커, 마지막 통찰 - 10점
엘리자베스 하스 에더샤임 지음, 이재규 옮김/명진출판사


이 책은 드러커가 생애 마지막에 자신의 철학을 정리하기 위해 엘리자베스 에더샤임에게 책을 써달라 부탁함으로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그는 자신이 선택한 후배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도록 한 것이다. 그 부탁이 흥미롭다. "이것은 내 책이 아니라 당신의 책이다", "숨기지 마라", "드러커 회사의 CEO처럼 생각하라. 내 모든 작업에 질문을 던지고 현재와 미래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다 지워라", "(내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해석이다" 드러커가 보기에는 한참 밑의 후배이다. 드러커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후배에게 자신의 작업을 평가하고 해석하고 추려달라는 부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존경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 드러커의 기대에 에더샤임은 멋지게 부응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리에 떠오른 말이 "거인의 어깨"라는 말이다. 내가 작더라도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간다면 멀리 볼 수 있다. 에더샤임은 드러커라는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고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드러커의 평생 작업을 멋지게 요리하며 자신의 키만큼 높이를 더하였다. 드러커의 저서를 많이 읽지 않았기에 조심스럽지만, 누구도 에더샤임보다 더 뛰어나게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말 그대로 결정적 드러커 (Defintie Drucker:원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누가 경영에 관한 책을 추천해달라 하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다 읽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9월 22일에 읽기 시작했으니 이 책을 읽는데 사흘 모자른 두달이 걸렸다. 중간에 다른 책을 읽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문장이 엉망이라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번역은 어떨지 모르지만 올해 읽은 원서중 문장이 가장 깔끔했다. 내용적으로 새로운 것도 많지 않다. 드러커가 현대 경영에 미친 영향이 워낙 크기에 상당부분이 이미 다른 책에서 언급되었거나, 여기 저기서 줏어 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게을러진 탓도 있겠지만 ㅡ.ㅡ 그보다 책의 내용을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내용이 방대하다.

에더샤임은 드러커의 평생작업을 일곱가지 항목으로 분류하였다. 여기서 정리를 하였지만, 세세한 내용 하나 하나 소중한 것이기에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1. 드러커는 현재 사화를 레고월드로 정의한다. 세상은 편평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전처럼 나뉘어진 것도 아니다.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레고처럼 이 세상도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은 변하기에 어제의 원칙이 오늘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하게 내어주라고 드러커는 이야기한다.

#2. 드러커에게 있어서 고객은 시작이며 끝이다. 드러커의 유명한 질문 "고객이 누구인가?", "고객이 어떤 것을 가치있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드러커는 모든 사업이 계속해서 고객에게 초점을 맞추어야한다고 강조한다. 당연한 진리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한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듯이, 그렇지 않은 회사들이 너무나 많다.

#3.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는 말처럼 드러커는 혁신이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혁신은 항상 버림을 동반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혁신을 하기 위해 무엇을 버릴 것인가?", "기회를 체계적으로 찾고 있는가?", "아이디어를 해결책으로 변환할 방법이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좋은 인력(노력)을 배치고 있는가?"고 묻는다. 이런 질문들은 회사 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물어볼만한 것이다.

#4. 현대 사회의 특징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협력의 필요이다. 더 이상 한 개인이나 한 회사가 독자적인 연구를 하고 비용투자를 감당하기에는 힘이 드는 세상이 되었다. Wikinomics로 표현되는 새로운 경제질서 속에서는 각자 독자 영역을 확보하면서도, 그 이외의 것은 다른 이들과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5. 드러커는 경영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에 관한 것임을 강조한다. '지식근로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 드러커이다. 드러커는 근로자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고, 사람 관리에 대한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함을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임과 목표이다. 목표를 분명히 한 상태에서 필요한 모든 권한을 위임할 때 근로자는 가장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가장 행복해 한다.

#6. 빠르면서 옳은 의사 결정을 위한 조직과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드러커는 섀시(Chassis)라는 표현을 썼다. 일회적으로 좋은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묶어줄 생각의 프레임을 말하는 것이다.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묻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프로세스는 의사결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조직내 모든 분야에 프로세스의 정립이 필요하다.

#7. 말년에 드러커의 주된 관심은 CEO에 있었다고 한다. CEO가 중요한 이유는 회사 방향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하고, 또 어느 CEO든 조직 문화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 각자의 삶에 대해 CEO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라고 도전한다. 성공적인 커리어는 계획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관리되어지는 것이다.

고객을 우선시하고, 혁신을 강조하며, 무엇보다 사람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드러커에게, 최근 일련의 사태는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장기적인 비전 없이 단기로 주식값만 올려 자신들 이익만 챙기려고 하는 경영진이 얼마나 많은가? Enron이나 Worldcom 사태를 보면서 드러커는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수단과 가치로서 회사를 인식하고, 정도를 통해서 회사가 성장할 수 있음을 가르쳐왔는데, 눈 앞의 이익만 좇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과 서운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요즘 삼성을 놓고 말이 많다. 삼성을 옹호하는 자들은 비자금으로 대표되는 편법운영에 대해 사회적 통념이라는 면죄부를 주고 싶어한다. 다 그래왔지 않았냐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다 과거에 그랬기에 앞으로도 그래야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산은 말했다. 학문하는 자는 지름길을 찾아야하고, 순서를 밟아 차근 차근 단계별로 나아가는 것이 그 지름길이라고. 성공이라는 잣대로 모든 것이 평가받는 세상과, 성공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람들에게 드러커는 바른 길이 옳은 길이요,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 역설한다. 그의 경영이론을 적용해 단순한 성공을 넘어서 위대함에 이른 기업들(GE, Toyota, P&G 등등)이 이를 증명한다. 아쉬운 점이라면 40여개가 넘는 예제 기업중에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예로 들을만큼 크지가 않았거나, 아니면 예가 될만한 기업이 없었거나,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경영인과 관리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했던 드러커는 진정한 거인이다. 앞으로 그는 과거의 인물이 되어갈 것이지만, 그의 가르침을 과거의 것이라 잊어버릴 수 없는 이유는, 거인의 어깨위에 설 때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드러커가 후배들에게 바란 것이 아닐까? 자기를 도움닫이로 삼고 자신을 넘어서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