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5. 13:17
[책 그리고 글]
나는 학생이다 - 왕멍 지음, 임국웅 옮김/들녘(코기토) |
왕멍의 '나는 학생이다'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중용을 요구하고, 가치를 중시하며, 순리를 강조한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어느 것 하나 지금까지 배운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다. 역경을 당할 때야말로 "자기를 반성하고, 타인을 원망하지 않으며, 억지로 변명하지 않으며, 가능한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작은 집단으로 묶지 말라" 하고 "기쁘게 헤어졌다 기쁘게 헤어지라" 말한다. 세속화를 경계하나 혁명만이 답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이치에서 벗어나는 것 없이 모든 말이 타당하다. 새로운 교훈이나 시대를 뛰어 넘는 해석은 없다.
그럼에도 왕멍의 책은 읽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인생의 세파를 거친 그의 인생 철학에 읽는 내내 가슴 깊은 동의를 하며 기본 원칙에 대한 생각을 다시 가다듬게 된다. 노작가의 말에는 힘이 있다. 귀에 듣기 좋은 미사여구도 아니고, 듣는이의 마음을 계속 찔러대는 야단조도 아니다. 오히려 담담하다 할 수 있는 그의 말에는 그 앞에 무릎꿇고 귀기울이고 싶게 만드는 깊이가 있다. 물론 작가로서의 표현력도 한 몫을 한다.
왕멍은 열한살때 혁명에 투신했다 한다. 책을 쓸 때 그의 나이 예슨여덟. 57년의 시간동안 그는 분별없었을 어린 혁명당원, 혈기 왕성한 젊은 작가, 권력에서 밀려난 유배자, 화려하게 복귀한 작가, 작가회의 부주석, 중앙의회 의원등 정치가의 생활을 살았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맛보았다고 할까? 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까지 다다른, 그가 정의하는 그 자신은 무엇일까?
왕멍은 스스로를 학생이라 칭한다. 농민도 아니고, 시민도 아니고, 관리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다. 생각의 끄뜨머리에서 발견한 것은 자신은 평생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학생은 그의 신분만이 아니고 그의 세계관이자 인생관이며, 성격과 감정의 세계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단어였다." "생활을 하나의 큰 책으로 보고, 한권 또 한권의 책을 생활의 지침과 참고로 삼거나 대화와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학습과 생활이 일치된 삶의 자세인 것이다. 자신을 학생이라 단정짓는 그의 단호함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같은 강물을 두번 건널 수 없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생에 대해 왕멍은 기다림을 논하고, 큰 덕과 큰 지혜를 논하고, 벽을 쌓아놓지 않는 처세를 논하고, 품격을 논한다. 깊이 있는 그의 교훈은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 당연히 따라야할 삶의 자세이건만, 세상이 굽었는지 사람이 굽었는지 주위에 그에 따라 사는 이 보기가 쉽지 않다.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비상식적인 세상에서 왕멍이 주는 교훈은 도드라진다.
400페이지 남짓 되는 책에 얼마나 많이 밑줄을 그었는지 모른다. 그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사람의 일생은 곧 연소이다"라는 문장이다. "한 사람은 한 에너지의 발원지이다. 사람의 일생은 곧 연소이다. 즉 에너지의 충분한 방출이다... 빛과 열이 없고, 연소하지도 않는다면, 조금 타다가 불을 끈다면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너무 커다란 고통일 것이다." 왕멍이 말하는 연소는 순간적 뜨거움에 모든 것을 태우고 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신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기다리며, "도전과 초월을 선택하는" 긴 호흡이다. "이것이 나의 인생이고, 나의 가치이며, 나의 선택이고, 나의 쾌락이며, 나의 고통이다. 한평생 진정한 고통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헛되이 산 것이 아닌가?"라며 당당히 외칠 수 있는 뜨거움이다.
왕멍은 단순히 새 세대가 윗세대를 능가할 것이라 생각지 않아도 "적어도 인간은 발전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발전은 이전 세대의 경험을 통한 교훈이 받아들여지고, 또 발전되어질 때 가능할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으로, 일생을 거진 사회주의에서 보낸 사람으로, 어떤 말은 어색하고 어떤 말은 진부하다. 그럼에도 귀담아 들어야할 "어른"의 이야기가 이 책에는 참 많이 담겨있다. 들을만한 이야기를 듣고, 따를만한 이야기를 따를 때 사람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자주 들추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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