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25. 16:23
[책 그리고 글]
경제학 콘서트 - 팀 하포드 지음, 김명철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06년의 베스트셀러였던 '경제학콘서트'를 이제야 봤다. 경제학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컸지만, 경제 관련해 많은 이들이 읽었던 책을 무시하고 있다는, 그래서 읽어봐야 한다는 은근한 의무감도 한몫했다.
책을 분류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한가지 기준이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책과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제시하기 위한 책으로 나누는 것이다. '경제학 콘서트'는 제목도 그렇고, 목차도 그렇고 단순히 정보 전달을 위한 책이라 생각을 했다. 경제학자가 풀어쓴 경제학 이야기. 하지만 읽다보니 뭔가 달랐다. 정보전달을 위주로 하지만 어딘가 정해진 결말로 이끌고 있다는 느낌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팀 하포드가 이 책을 쓴 이유를 발견했다. 하포드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경제학자가, 아니 하포드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경제학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부유해지며 성장하는 나라들은 우리가 이 책에서 배웠던 경제학 교훈을 받아들였다. 희소성에 맞서고, 부패와 싸우고, 외부효과를 수정하고,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고, 올바른 동기를 부여하려 하고, 다른 나라와 친해지려고 애썼고, 무엇보다 시장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 모든 일을 했다. (342쪽)
하포드가 바라는 세상은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학문 중의 하나가 경제학이다. 그에게 경제학은 돈 벌기 위한 것이 아니다. 좋은 데 투자를 해서 최대한 수익을 얻기 위한 학문이 아닌 것이다. 그보다는 카메룬 국민들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가난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학문이다. 경제학자들의 성향 (예를 들어 사회주의 기반 혹은 자본주의 기반)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기에 뭐라 판단할 수 없다. 다만 하포드의 사상이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경쟁식 자본주의에 근본을 두고 있지 않는다는 짐작이 든다.
(경제적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포드는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하는가? 그는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희소성의 원칙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1. 스타벅스의 경영 전략
스타벅스 커피의 가격 -> 비싼 임대료 -> 목좋은 장소의 희소성으로 연결하면서 하포드는 리카도의 차액지대론을 소개한다. A라는 것이 B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때 A는 B에 비해 희소해지는 것이고, 그 희소성 자체가 가치가 되는 것이다. 노동조합, 전문직 진입이 어려운 이유, 보통의 미국인이 이민을 반대하는 이유 등은 희소성의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포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려면 기업들이 너무 많은 희소성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117쪽).
#2. 슈퍼마켓이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
희소성이 가치를 만들어 내지만, 한계가 있다. 고객으로 하여금 최대한 구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추가 전략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표적화이다. 표적화에는 개인별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단일 표적화가 있고, 여러 그룹으로 가격을 나누어 고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게 만드는 그룹표적화가 있다. 예를 들어 '카라멜 마끼아또'와 일반 커피의 비용 차이는 $0.10에 불과해도 가격표에는 $1.50이 더 매기어져 있는 것과 같다. 여러 등급의 비행기 좌석, 나라마다 다른 약값 등이 가격표적화의 예이다. 표적화가 잘 적용될 때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고 최소한 한 사람에게 이득을 준다. 즉 더 효율적이 되는 것이고, (더 많이 판매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심이 (가난한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받게되는)공익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3. 경제학자가 꿈꾸는 세상, 완전시장
완전시장이란 생산비용, 구매욕구등의 모든 정보가 알려져 있고, 완전 경쟁이 이루어지며, 어떠한 제한규정도 없는 시장이다. 실제로 존재할 수 없음에도 완전시장을 생각하는 것은, 이를 통해 현재 상황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시장은 또 다른 고민거리를 제시한다. 효율성과 공정성이라는 문제다. 완전효율적인 시장이 곧 공정한 것은 아니다. 완전시장은 극단적인 부익부 빈익빈을 만들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는 세금을 통한 세금의 재분배를 시도하는 것이다. 효율적이며 또한 공정한 시장을 바라는 이론 중에 케네스 애로우의 '유리한 출발 원리'가 있다. 타이거 우즈같이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많은 사람에게 한차례 큰 세금을 부과해 다른 사람과 같은 라인에서 출발하게 한다는 것이다. 실현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정책을 만들 생각의 단초를 제공한다.
#4. 출퇴근의 경제학
외부효과란 의도하지 않은 혜택이나 손해에 대해서 대가를 받지도 않고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대기오염은 대표적인 부정적 외부효과이다. 운전자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대기오염에 대해 '바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운전하고 다닌다.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혼잡세를 제시한다. 이와 다르게 집 외부를 새로 칠하는 것 같은 '긍정적 외부효과'에 대해서는 지원해주기를 제안한다. 외부효과에 대한 세금(예: 오염세)이 GDP를 적게 한다는 비판이 있다. 그에 대한 하포드의 멘트가 흥미롭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GDP에 크게 인연하지 않는다. 경제학은 누가, 무엇을, 왜 얻느냐에 관한 것이다. ... 인생에는 숫자로 측정할 수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 심지어 경제학자들도 이를 알고 있다."
#5. 좋은 중고차는 중고차 시장에서 팔지 않는다
'정보의 비대칭'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방해한다. 중고차 딜러는 차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 그래서 좋은 차는 높은 값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구매자는 그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평균적인 기대치에 따라 지불하기를 원한다. 결국 좋은 차는 안팔리고 문제있는 차만 판매되는 불합리가 생긴다. 같은 이유로 미국의 의료비는 갈수록 비싸진다.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정부가 강제적으로 저축하게 하면서도 개인에게 어디 쓸지 판단을 맡기는 싱가포르의 의료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에서 한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6. 주식으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주식을 로또처럼 고르는 경향이 있다. 어떤 제품이 요즘 뜨니까, 주식값도 오를 것이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하포드는 주식이란 기업 이익의 일부를 배분받는 권리이고, 주가는 미래의 기업이익을 반영하게 된다고 말한다. 어빙 피셔는 '영원히 허락하지 않을 고지'를 말하며 20년대말 주가 폭락을 예견했다. 여러가지를 조합하면 이해가 된다. 철도가 미국 역사에 미친 영향은 인터넷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개별 회사의 수익은 크지 않았다. 철도처럼 웹은 희소성을 떨어뜨린다. 결국 주식에 투자할 때는 희소성을 가지고 이를 지속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회사를 선택해야한다.
#7. 인생도 세상도 게임이다
포커판 뿐만 아니라 실제 경제생활에도 게임은 존재한다. 포커든 경매든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베팅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 하포드는 예상 수익의 1% 밖에 얻지 못한 미국의 2차 주파수 대역폭 경매와 30억 파운드 예상에 225억 파운드를 달성한 영국의 주파수 대역 경매를 비교한다. 그 차이는 게임의 설계방식에서 온 것이다. 비밀리에 입찰가만 제시하는 경매가 아니라, 상대방의 정보를 모두 알고 있는 환경에서 입찰자들은 면허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더 많은 금액을 베팅하게 된 것이다.
#8. 정부가 도둑인 나라
하포드의 관심은 갑자기 카메룬이라는 못사는 나라로 선회한다. 보통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도로 등의 인프라, 인적자원, 그리고 기술자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가지가 다 있다고 하더라도 경제발전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카메룬 같은 나라는 너무나 뒤쳐져 있기에 조금만 투자를 해도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가난한 상태로 남아있다. 그것은 제도의 문제이다. 20년간 독재를 하는 비야 대통령과 그 밑에 계속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자 비야의 집권연장을 선호하는 부정부패가 카메룬을 계속 가난하게 남게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가 도둑인 것이다.
#9. 다 함께 잘 사는 방법
한편 작은 나라라 하더라도 세계에 문을 열고 개방하면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교환의 마법이다. 어느 나라든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것을 생산하고 다른 것은 교환으로 충당할 때 전체적으로 성장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보호무역은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 하포드의 주장이다. 개발도상국가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을 통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다국적기업(예: 나이키)에 대한 비판이 크지만, 그래도 현지 환경보다는 좋다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을 받아들임으로 부자가 된 나라의 예로 한국을 들고있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젊은 시절을 보낸 나로서 반발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하포드의 말에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개방을 할 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10. 중국, 무엇이든 기회가 되는 곳
마지막으로 하포드는 중국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국은 20세기 대부분의 기간을 카메룬보다도 가난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나라다. 1976년까지 중국은 마오쩌둥의 불합리한 계획경제와 문화 대혁명으로 인해 수천만명이 기근으로 죽었고, 대학 시스템이 붕괴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오의 뒤를 이은 덩샤오핑은 계획경제를 유지하면서도 그 한계이상은 시장시스템에 맡기는 실험을 통해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개방 이전에 강조되었던 교육에 대한 투자와 세계와 통하는 홍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중국에게 행운이였다. 아직도 중국의 근로환경은 끔찍하지만, 경제성장은 중국인들에게 이전에 갖지 못했던 '어디에서 일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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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경제학을 해석의 학문이라 생각했다. 경제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 하지만 경제학은 또한 대안을 제시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실패를 하는지 답을 발견할 수 있는 학문이다. 경제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경제'는 2008년 한국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만이천불이였던 일인당 국민소득이 5년사이에 이만불이 넘었음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경제가 엉망이라며 정부 욕을 한다. '무능한 이상주의'를 거부하고 비윤리적이긴 하지만 '효과적인 현실주의'를 선택하겠다는 것이 50% 가까운 국민들의 선택이였다. '잘 먹고 잘 살자'가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 것이다. 뭐가 문제일까? 수치만 보면 국민들이 5년전보다 60%이상 잘 살아야 하는데 왜 청년실업은 늘어나고, 가난한 사람은 더 죽겠다고 하는 걸까? 언론의 호도만으로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있을까?
정치적인 견해야 여러가지 있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경제라는 것이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돈'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한국의 풍조가 한탄스럽지만 그럼에도 다만 바라기는 (하포드의 말처럼)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고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이명박 밑에 한두명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사족) 책을 번역했다고 하면서도 마치 첫장만 읽고 쓴 것 같은 '옮긴이의 글'이 참 거슬린다. 번역은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역자가 단 글이 줄거리 다 적어놓고 '누구누구를 본받아야겠다'라고 하는 초등학교 시절 독후감을 보는 듯해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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