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2. 14:55
[그밖에...]
자기 전에... 저도 블로거의 로망인 '현지 블로깅'을 하고 자려고 했는데, 로그인이 자꾸 풀립니다. 글만 있는 것은 어떻게
해보겠는데 사진은 올리고 나면 로그인이 풀려버려 저장을 전혀 못하게 되어버립니다. 오늘은 포기하고 그만 자야겠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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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12. 13:30
[일기 혹은 독백]
솔루션을 이야기하면서 최고의 것보다는
기간내에 싸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풀지?"보다
"누구한테 물어보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 때...
기간내에 싸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풀지?"보다
"누구한테 물어보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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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4. 06:27
요즘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난 글이 있어서 찾아 옮겨봅니다. 검색해보니 이미 저랑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이 있더군요 ^^;; 이면우 교수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세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앉은 적은 없었다"라구요. 그런데 드디어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나 봅니다. "무식하면서 소신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최고의 전문직에 앉아있으니까요 ㅡ.ㅡ;;
+++++++++++++++++++++++++++++++++++++++++++++++++++++++++++++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세가지 부류의 사회공적이 있다.
사회공적의 첫 번째 부류는 무식한 사람이 전문직에 앉아 있는 경우다. 이들의 취임사를 들어 보면 "이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고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이러한 중책을 맡게 되어 어깨가 무거움을 느낍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무사히..."라는 것이다.
이 취임사의 요점을 좀더 정확히 표현하여 보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통 모르겠다. 너희들만 믿는다. 재직하는 동안에 큰 실수나 없었으면 한다." 는 뜻이 아닌가.
이를 듣고 놀라고 걱정 해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칭찬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그래도 그 사람은 겸손하잖아!."
사회공적의 두 번째 부류는 무식한 사람이 소신을 갖는 경우다. 식견이 부족한 사람이 소신을 갖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 만일 소신이라도 없었으면 모르는 것은 주위에 물어 보고, 본인이 몸소 배우기도 하고, 본인이 몸소 배우기도 하고, 상대방과 대화라도 잘될텐데, 일을하는 과정에서 모르는 일만 생기면 곧 소신론을 들고 나선다. `소신'이라는 말의 뜻은 "누가 무어라 해도 나는 이렇게 하겠다. 나는 비장하다"일 것이다.
무식한 소신파는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점을 깨닫는 경우에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소신을 자주 바꾸는 사람을 보았는가? 실수도 보완대상이 아니다. "소신껏 추진하다 보니 다소 부작용이 있었다."라고 하면 되지 않는가?
이와 같이 위험한 사람을 우리들은 좋게 평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그래도 그 사람 소신은 있잖아!."
세 번째 부류는 무식한 사람이 부지런한 경우다. 중요한 자리에 사람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최상의 선택은 전문식견이 있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는 길일 것이다. 이것이 어려울 때에는 무식하면서 게으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맡기는 것이 차선의 방책이다. 게으르다보니 하는 일도 적어서, 저지르는 실수도 자연 줄어들것이 아닌가?
가장 최악의 선택이 무식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는 경우다. 무식한 사람이 부지런하면 어떤 현상이 야기되는가? 건드릴 것 안 건드릴 것, 갈 곳 안 갈 곳, 끌어들일 것 안 끌어들일 것 모두 쉬지 않고 찾아다니면서 사고를 저지를 것이다.
아마 여러분들의 친척 중에도 일가 대소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나름대로 성의를 갖고 일을 도와주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 중에 친척간의 오해, 불화, 갈등을 야기시키는 경우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런 사람이 일가친척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공공기관, 사회단체에서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면 국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클 것인가?
이러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골라내고, 도태시켜야 할 사회가 그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관행이 있다.
"그래도 그 사람은 부지런하잖아!."
그렇다면 무식하면서 야망이 있고, 소신이 있고, 부지런한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맡겨야 할 것인가? 전문지식이 필요없는 일자리도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지식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모든 여건이 무르익었는데 소신이 부족해서 해결 안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만 지정해서 맡기면 될 것이다. 자원봉사, 사회봉사, 해외파견, 아니면 교통이 복잡한 거리에서 하루 종일 밀려드는 차량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일도 있지 않은가?.
+++++++++++++++++++++++++++++++++++++++++++++++++++++++++++++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세가지 부류의 사회공적이 있다.
1. 무식한 사람이 전문직에 앉아 있는 경우
2. 무식한 사람이 소신을 갖고 있는 경우
3. 무식한 사람이 부지런한 경우
사회공적의 첫 번째 부류는 무식한 사람이 전문직에 앉아 있는 경우다. 이들의 취임사를 들어 보면 "이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고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이러한 중책을 맡게 되어 어깨가 무거움을 느낍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무사히..."라는 것이다.
이 취임사의 요점을 좀더 정확히 표현하여 보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통 모르겠다. 너희들만 믿는다. 재직하는 동안에 큰 실수나 없었으면 한다." 는 뜻이 아닌가.
이를 듣고 놀라고 걱정 해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칭찬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그래도 그 사람은 겸손하잖아!."
사회공적의 두 번째 부류는 무식한 사람이 소신을 갖는 경우다. 식견이 부족한 사람이 소신을 갖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 만일 소신이라도 없었으면 모르는 것은 주위에 물어 보고, 본인이 몸소 배우기도 하고, 본인이 몸소 배우기도 하고, 상대방과 대화라도 잘될텐데, 일을하는 과정에서 모르는 일만 생기면 곧 소신론을 들고 나선다. `소신'이라는 말의 뜻은 "누가 무어라 해도 나는 이렇게 하겠다. 나는 비장하다"일 것이다.
무식한 소신파는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점을 깨닫는 경우에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소신을 자주 바꾸는 사람을 보았는가? 실수도 보완대상이 아니다. "소신껏 추진하다 보니 다소 부작용이 있었다."라고 하면 되지 않는가?
이와 같이 위험한 사람을 우리들은 좋게 평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그래도 그 사람 소신은 있잖아!."
세 번째 부류는 무식한 사람이 부지런한 경우다. 중요한 자리에 사람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최상의 선택은 전문식견이 있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는 길일 것이다. 이것이 어려울 때에는 무식하면서 게으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맡기는 것이 차선의 방책이다. 게으르다보니 하는 일도 적어서, 저지르는 실수도 자연 줄어들것이 아닌가?
가장 최악의 선택이 무식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는 경우다. 무식한 사람이 부지런하면 어떤 현상이 야기되는가? 건드릴 것 안 건드릴 것, 갈 곳 안 갈 곳, 끌어들일 것 안 끌어들일 것 모두 쉬지 않고 찾아다니면서 사고를 저지를 것이다.
아마 여러분들의 친척 중에도 일가 대소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나름대로 성의를 갖고 일을 도와주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 중에 친척간의 오해, 불화, 갈등을 야기시키는 경우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런 사람이 일가친척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공공기관, 사회단체에서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면 국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클 것인가?
이러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골라내고, 도태시켜야 할 사회가 그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관행이 있다.
"그래도 그 사람은 부지런하잖아!."
그렇다면 무식하면서 야망이 있고, 소신이 있고, 부지런한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맡겨야 할 것인가? 전문지식이 필요없는 일자리도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지식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모든 여건이 무르익었는데 소신이 부족해서 해결 안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만 지정해서 맡기면 될 것이다. 자원봉사, 사회봉사, 해외파견, 아니면 교통이 복잡한 거리에서 하루 종일 밀려드는 차량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일도 있지 않은가?.
- 신사고 이론 20 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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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5. 29. 14:57
[책 그리고 글]
![]() |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 ![]() 고든 맥도날드 지음, 홍화옥 옮김/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
대학 시절에 IVF(한국 기독 학생회) 활동을 했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당시 IVF내의 필독도서중 첫번째로 꼽히던 책이 (줄여서 '내면세계'라 부르던) 이 책이었다. 학생때 한번 읽기는 했지만 제대로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졸업하고 몇년 지나서인듯 하다. 그때의 나는 생각의 중심이 굳게 서있지 않았다. 여러번 혼란을 겪었고, 나아지는 것은 없으면서도 생각의 겉멋만 든 그런 모습이였다. 그때 접한 이 책은 나를 얼마나 부끄럽게 만들었던지. 열매없이 지내버린 시간이 너무나 아쉬웠다. 미국으로 옮긴 후 고든 맥도날드 목사가 담임하고 있던 그레이스 채플에 출석할만큼 이 책의 영향은 컸다.
처음 접한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반갑게도 개정판이 있었고, 책 속의 고든은 지나간 시간만큼 더 성장한듯 하다. 그가 겪었던 실패와 회복이 그를 더 성숙하게 만든 것일까? 그 답은 모르지만,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내 내면세계에 비해, 그의 마음 속 정원은 너무나 깔끔해 때로는 질투가 나기도 한다.
번역판의 제목도 좋지만 나는 이 책의 영어 제목을 더 좋아한다. "Ordering Your Private World." 개인의 영역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겉모습을 잘 가꾸는 사람은 많으나, 남이 보지 않을 때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성숙함을 필요로 한다. 신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성품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분명히 목사가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기독교 서적이라는 틀로 제한하기에는 이 책이 너무 아깝다. 고든이 제시하는 보편적 교훈은 비기독교인에게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면세계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고든은 '함몰 웅덩이' 증상을 소개한다. 지하수가 고갈되어 지표를 지탱할 힘이 없을 때, 그 땅은 겉보기에는 단단해 보여도 속은 텅비어 있고, 언젠가는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내면에 질서가 없다면 사람은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 손대고 있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든다면 이미 내면세계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살아가며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다. 고든이 표현한 '벽에 부딛히는 순간'이었다. 그런 나에게 고든은 묻는다. "내면 생활을 정돈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지고 있습니까?"
내면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고든은 다섯가지 영역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기, 시간사용, 지적 성장, 영적성장, 그리고 쉼이다.
우선 내 삶의 동기가 무엇인지,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이 책은 질문한다. 크게 두가지 유형이 있다. '쫓기는 삶 (driven life)'이 있고 '부름받은 삶 (called life)'이 있다. 쫓기는 삶은 외형적인 성공을 바라고 사는 삶이다. 무엇이든 더 크게, 더 잘 하기를 원한다. 그 욕심은 소중한 것이되, 그것 뿐이라면 곤란하다. 고든은 세례 요한의 삶을 통해 부름받은 삶의 특징을 설명한다. 자신의 위치와 목적을 알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삶. 그런 삶이 부름 받은 삶이다.
무질서함은 시간의 무분별함으로 나타난다. 흘러서 새버리는 시간을 잡기 위해, 고든은 시간예산 세우기를 제안한다. 중요한 항목에 사용할 금액을 미리 정해놓듯, 시간에도 미리 정해놓는 예산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방치된 시간은 중요한 일보다는 약점을 보충하기 위해 쓰이고, 외부의 지배를 쉽게 받으며, 급한 일에 소모되고,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 주로 사용되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 사용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미리 계획 세움을 통해 시간을 통제해야한다.
지성을 훈련시키는 것은 하나의 의무다. 카터 전 대통령의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책을 쓴 계기를 소개하며, 우리도 지성을 훈련시키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고든은 강조한다. 훈련되지 않은 지성은 읽혀지지 않은 책과 같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으며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또한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투자하는 '공격적인 공부'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영적인 질서는 고난의 시기를 극복하게 해준다. 마음 속 정원이 한없이 고요하고 평온할 때, 우리는 비로서 삶의 중심을 찾을 수 있다. 마음속이 혼란스러우면 정말 중요한 것을 못듣는다. 침묵과 고독, 일기쓰기, 묵상 등을 통해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소음을 없애고 마음 깊숙히 침잠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회복이 필요하다. 시간이 남아서 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한순간에 마침표를 찍는 '회로 닫기'로서의 쉼을 가질 때 참다운 회복이 있다. 이전 한 일의 의미를 생각하고, 지금 삶의 원칙을 검토하며, 앞으로 해야할 일을 삶의 목표, 즉 사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든처럼 "죄책감 없이 안식일의 쉼을 추구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그런 쉼을 가질 때, 분주함에 혼란스러워진 내면세계에 다시 질서를 가져올 수 있다.
열네개의 장과 서문과 후기로 이루어진 책은 꽉 차서 군더더기가 없다. 이전판도 좋았지만, 개정판은 오랜 세월 보살핀 잘 정돈된 정원을 보는듯 하다. 각 장별로 제시되는 질문들에 답해보는 것도 스스로의 내면질서를 체크하는 좋은 수단이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책에서 말하는 질서있는 내면세계를 못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난감하긴 하나, 책을 통해 얻은 교훈으로 최소한 내 마음밭의 바위들은 발견하지 않았나 싶다. 그 바위들을 제거하고 나서 이 책을 다시 펼칠 생각이다. 그때는 바위에 가려져 있던 작은 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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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5. 27. 11:39
[일기 혹은 독백]
이번주는 회사가 일을 안하는 기간입니다. 미국 회사들은 경상 수지를 맞추기 위해 일괄적으로 직원들을 쉬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쉬라면 편히 쉬면 되는데, 지금까지 맘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고, 또 이번에도 틈틈히 일을 해야하는 상황입니다. 한달전부터 기다려온 Shutdown이건만 ㅡ.ㅡ 일을 완전히 놓을 수 있을거라 아예 기대도 안합니다.
게다가 이번주 월요일(26)은 미국은 메모리얼데이로 기념하며 학교나 회사가 쉬는 날입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일박으로 여행을 가기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틈틈히 쌓아놓은 호텔 마일리지를 써서요. 그래도 중간에 미팅도 잡아놓고 이메일도 체크해야한다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쉬어도 맘편히 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요.
그러다 지난주에 읽은 책중에 '쉼'에 대한 우선순위를 생각하게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쉬는 것이 아니라 '쉬기로 결심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죄책감 없이' 쉬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이였습니다. '쉼'이 없이는 마무리를 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쉼을 얻기 위해서는 추구해야할 목표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한 일의 의미를 생각하며 (과거) 원칙을 재검토하고 (현재) 자신의 사명을 다시 확인하는 (미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쉼'에 대한 이런 접근 방법도 필요하겠지만, 우선순위로서의 '쉼'을 생각하게 해준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습니다.
맘 편히 쉬기 위해서는 평소의 성실함이 필요할겁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질서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참다운 '쉼'이 필요한 것도 진리라 생각됩니다.
일주일의 휴식이 시작되기 바로 전 '쉼'에 대한 부분을 읽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얼마나 고마운지요. 비록 일하는 계획을 중간 중간 잡아놨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을 보내며 참다운 휴식을 가져볼까 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보는 시간도 갖고, 또 미뤄놨던 영화와 책도 보면서요. 그리고 아내와의 데이트도요. ^^;;
게다가 이번주 월요일(26)은 미국은 메모리얼데이로 기념하며 학교나 회사가 쉬는 날입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일박으로 여행을 가기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틈틈히 쌓아놓은 호텔 마일리지를 써서요. 그래도 중간에 미팅도 잡아놓고 이메일도 체크해야한다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쉬어도 맘편히 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요.
그러다 지난주에 읽은 책중에 '쉼'에 대한 우선순위를 생각하게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쉬는 것이 아니라 '쉬기로 결심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죄책감 없이' 쉬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이였습니다. '쉼'이 없이는 마무리를 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쉼을 얻기 위해서는 추구해야할 목표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한 일의 의미를 생각하며 (과거) 원칙을 재검토하고 (현재) 자신의 사명을 다시 확인하는 (미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쉼'에 대한 이런 접근 방법도 필요하겠지만, 우선순위로서의 '쉼'을 생각하게 해준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습니다.
맘 편히 쉬기 위해서는 평소의 성실함이 필요할겁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질서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참다운 '쉼'이 필요한 것도 진리라 생각됩니다.
일주일의 휴식이 시작되기 바로 전 '쉼'에 대한 부분을 읽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얼마나 고마운지요. 비록 일하는 계획을 중간 중간 잡아놨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을 보내며 참다운 휴식을 가져볼까 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보는 시간도 갖고, 또 미뤄놨던 영화와 책도 보면서요. 그리고 아내와의 데이트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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