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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10. 17:36
지금까지 너무 편한 팀과 일을 해왔나 봅니다.

필요한 일 A, B, C, D를 정의합니다. 팀원에게 일을 하나씩 맡깁니다. 시간이 되어 결과를 묻습니다. A, B는 완수되었고, C는 아직입니다. 왜 안되었는지 묻고 장애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C'을 추가한 후 일정을 조정합니다. D는 시간이 충분하지만 다 못했답니다. 게으름 피우는 듯 하기에 한마디 해줍니다. 항상 이렇게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런 식으로 일을 했습니다.

A, B. C, D를 정의하고 일을 맡깁니다. A가 다 되었다고 합니다. 정작 써먹으려고 하니 안됩니다. 일을 하긴 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확인안했답니다. B도 다 되었답니다. 결과물을 달라고 하니, 지난번 파일을 이름만 바꾸어서 줍니다. C는 진행중이랍니다. 아직 시작 안했구나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D를 물어보니 전혀 기억안나는듯, 너가 언제 그런 말했냐는 표정으로 쳐다봅니다.

하루면 될 것이라 생각한 일이 사나흘 걸리고, 그 결과도 확인하기까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을만한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이 큰 축복이었음을 새삼 깨닫고 삽니다.



2009. 2. 5. 13:12
올해 책을 많이 읽고자 일주일에 하나씩 서평을 쓰겠다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책을 보고 그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은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내용을 되새김질하고 생각을 더하면서 읽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수 있기도 합니다. Inuit님 말한 것처럼 사전을 읽고도 서평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

글을 쓰면서 어떤 단계를 거치나 어떤 패턴을 취하나 스스로 분석해본 적이 있습니다. 서평도 글쓰기의 하나인지라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만, 나름대로 제가 사용하는 서평 쓰기의 원칙이 있는 듯 해서 한번 정리해봅니다.

1. 다 읽고 쓴다

당연한 원칙입니다. 그래도 여기에 적는 이유는 책을 다 읽지 않고도 서평은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업적 공간에 올려 있는 서평(이라기보다는 책소개라 불러야겠습니다만)중에는 정말 책을 다 읽긴 읽었나 의심가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의 몇장만 읽고 썼다는 물증은 없지만 심증이 가는 글들이 많이 있지요. 물론 책에 따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을 필요가 없는 책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서평이라면 책을 완전히 소화한 다음에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2. 책을 통해 글쓴이를 본다

김훈의 칼의 노래가 전환점이었을 겁니다. 언제부턴가 책을 통해 글쓴이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을 왜 썼을까? 저자는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나? 그의 인생관은 어떤가? 외국 저자라면 위키를 참조하고 국내 저자라면 검색이라도 한번 해봅니다. 그리고 책이 아니라 글쓴이의 생각에 마음을 맞추고 서평을 씁니다.

3. 우뚝 솟은 나무를 중심으로 숲을 말한다

영화평에 비유한다면 제 서평은 스포일러 투성이입니다. 책의 내용을 너무 많이 소개하는듯 합니다. 그래도 처음에 서평을 쓸 때 순서대로 내용을 요약했던 것(예: 마지막 통찰)에 비해 요즘은 전체 내용을 간단히 흝고 중심이라 생각하는 내용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에서는 '진짜되기'가 중심이었고, '나는 학생이다'에서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평을 했습니다.

4. 책과 글쓴이가 어떻게 다가오는가를 적는다

책에서 그리고 글쓴이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적습니다. 그리고 글쓴이가 나와 세상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집어내려 노력합니다. '마시멜로 이야기'에서는 아이에게 성공지향주의의 이 책을 읽어주는게 옳은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바리데기'에서는 작가의 무기력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한산성'에서는 치욕스러운 과거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듯한 한국을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을 적을지는 그때 그때 다릅니다. 한마디로 느낀대로 적습니다 ^^ 글의 패턴도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레 달라집니다.

5. 서평을 쓰기전에는 서평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서평을 쓰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서평을 읽지 않습니다. 찬성을 하던 반대를 하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될수 있는 한 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자료조사가 아닌 이상 책에 대한 글은 안보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책 읽기 시작하기 전에 접했던 서평은 괜찮습니다. 책을 읽으며 다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ㅡ.ㅡ

6. 서평을 쓰고 나서는 다른 서평을 찾아 다닌다

서평을 쓰고 나서는 적극적으로 다른 분들의 글을 찾아다닙니다. 서평을 읽고, 댓글도 달고 트랙백도 남겨봅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썼을 때는 제 하나 몫의 지식을 쌓았습니다. 다른 분들 서평을 읽고 교류를 하면서 여러 사람분의 지혜를 얻습니다. 다양한 시각만큼 이해도 좋아집니다.

7. 인용을 하되 문장을 재구성한다

단순인용은 주로 안하는 편입니다. 인용을 하되 원래의미를 변경하지 않는 한도내에서 문장을 재구성,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합니다. 읽으며 밑줄을 많이 그었던 책인 경우 특히 인용을 하고 싶은 욕심이 많이 생기지요. 최근에 읽은 책중에서 '나는 학생이다'가 그런 책이었습니다.

8. 책이 아니라 나에 대해 쓴다

서평은 또 다른 글쓰기일 뿐입니다. 책에 대한 글이지만 책에 비추어 내 이야기를 담아내려 애씁니다. 어느 분이 그러더군요. 과거에 쓴 서평을 보면 책이 아니라 당시의 자신이 담겨 있다구요.





2009. 2. 3. 08:36
이런 원칙들(자신을 생생하게 글 안에 담는 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배울 수는 있다 - 윌리엄 진서

Can such principles be taught? Maybe not. But most of them can be learned - William Zinsser

살아가면서 알아야할 많은 것들은, 중요하면 중요할 수록,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며, 넘어지고 깨어지고 상처 받아가면서, 배워야 한다. 삶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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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1. 07:34
장영주는 우리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바이얼리니스트다. 네살때 바이얼린을 시작 여섯살에 줄리어드의 (아이작 펄먼, 미도리등을 가르쳤던) 도로시 딜레이의 제자로 들어가고, 같은 해 필라델피아 뮤직홀에서 데뷰했다. 9세 데뷰앨범 레코딩(최연소), 11세 베를린필과 협연(메뉴인과 같이 최연소), 19세 에버리 피셔 프라이즈(Avery Fisher Prize), 24세 할리우드볼 명예의 전당(최연소)등 천재소녀로 시작 끊임없이 성장해가고 있다. 그녀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타고난 천재성'과 '끊임없는 노력'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천재성과 노력만 있으면 모두 장영주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각주:1]


아웃라이어 - 10점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김영사

아웃라이어(Outlier)는 원래 통계 용어다. 검출된 값중 다른 값들에 비해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값을 말한다. 실험결과 분석시 아웃라이어는 보통 제외한다. 이상한 결론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 용어를 말콤 글래드웰이 빌려온 것이다. 좋은 선택이다. 책에서 예로 들은 비틀즈나 빌게이츠 모두 보통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이다. 블랙스완이니 롱테일이니 하며 두드러진 것에 관심이 많은 세상이다 보니 아웃라이어라는 용어도 시류에 편승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통계 용어를 가져다가 성공한 사람을 지칭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웃라이어>는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게 된다는 성공의 부익부 빈익빈으로 시작한다. 그 이유로 10,000시간의 법칙을 든다. 비틀즈, 빌게이츠, 모짜르트, 체스마스터등 두드러진 성공에 이르기까지는 대략 잡아 십년, 10,000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십년법칙은 하워드 가드너, 공병호등 여러 사람이 이야기한 성공의 조건이다. 한가지 일에 십년정도 노력을 기울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원칙으로 새로울 것은 없다. 모두가 알고 있다. 지키기가 어려울 뿐 ㅡ.ㅡ

'결국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네.'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아웃라이어>는 성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는 일인칭의 책이 아니다. '성공'은 어떻게 오는가 하는 삼인칭의 책이다. 말콤은 질문한다. 만시간의 노력을 들일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있는가? 그리고 만시간의 노력을 들이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는가? 대답은 둘다 'No'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능이나 노력 이외에도 기회(Opportunity)와 유산(Legacy)이 필요하다.

기회나 유산이 성공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말콤은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캐나다의 뛰어난 하키 선수들 중 많은 수가 1월부터 3월에 태어났다는 것, 같은 뛰어난 IQ를 가지고 출발했지만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아이들, 한국을 비롯 아시아 학생들이 수학에 뛰어난 이유, 켄터키 할란에서 벌어진 복수극들, 칼 801의 괌에서의 추락사건,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둘 다 55년생인 이유. 관련없어 보이는 케이스들이지만 밑바닥에는 한가지 원리가 흐르고 있다. 작은것들이 쌓여 큰 차이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가 성공이나 실패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월 1일 기준으로 선수의 학년을 나누는 캐나다에서는 1월에 태어난 아이는 12월에 태어난 아이보다 하키연습을 할 시간이 많다. 연습할 시간이 많으므로 더 좋은 팀에 선발이 된다. 더 좋은 팀이기에 더 열심히 연습을 시키고,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작은 차이에서 출발하지만 나중에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빌 게이츠는 학생시절 자유롭게 컴퓨터를 사용할 기회가 주어졌고, 프로그래밍에 시간을 많이 보내며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에서 퍼스널 컴퓨터의 탄생을 맞이했다. 빌 게이츠와 같은 시기의 아이들 전부 컴퓨터를 쓰고 싶은데로 쓸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 아니었고, 프로그래밍 연습을 많이 했던 사람들 모두가 퍼스널 컴퓨터와 같이 새로운 시기를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한다고 시기를 잘못 만나면 소용이 없다.

장영주는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고 또 엄청난 노력도 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장민수가 도로시 딜레이의 제자였기에 남들보다 더 빨리 출발할 수 있었다는 것도 분명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계층간의 간격이 커지는 것도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개천에서 용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미국의 경우) 학기중에는 모든 아이들이 성적에서 비슷한 진보를 보인다. 하지만 부유한 집 아이들은 3개월간의 여름 방학동안 꾸준히 관리를 받으며 실력이 느는 반면 가난한 계층의 경우 오히려 후퇴한다. 이런 차이가 초등학교 기간 내내 쌓이면 졸업할 때쯤 되면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이쯤되면 슬슬 기분이 나빠진다. 그렇다면 운도 없고 빽도 없는 나 같은 놈은 그냥 이렇게 살다 죽으라는 거냐. 답은 'Yes AND No'다.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다 평범하게 죽는다. 정해진 범위에 머무를 뿐이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뉴욕의 사우스 브롱크스 지역, 가난하고 위험한 지역에 KIPP이라는 학교가 있다. 부모들 대부분 대학에 못가고, 아이들 지원도 못해주는 형편이지만 졸업할 때쯤이면 84프로의 학생들이 평균이상의 수학 성적을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학교에 비해 KIPP는 30~40% 정도 수업시간이 길다. 부모가 지원못해주는 것을 학교가 대신해주는 거다.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기회조차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어쩔 수 없다. 스스로 만들수 밖에.

성공이란 결국 남들보다 더 많이 나아가는 거다. 어떤 이는 기회가 있어 몇미터 점프를 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환경의 영향으로 몇미터 더 앞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그게 없다면 열심히 하면 된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왔다.


말콤 글래드웰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일반화의 오류가 없을리 없는 주장임에도, 다양한 꺼리를 엮어 탁월하게 엮어놓은 그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성공을 개인의 노력으로만 바라보던 기존 시점에 비해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 좋았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에 읽지 않았던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1. 장영주는 이 책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장영주와 같은 시기에 천재로 출발한 다른 바이얼리니스를 비교하는 것도 아웃라이어에 대한 흥미로운 케이스 스터디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본문으로]


2009. 1. 29. 18:42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 대한 서평을 썼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하더군요. 온라인 기독교 서점에 가서 서평을 봤습니다. 극과 극인 반응이 있습니다. 저자의 의견에 동감하는 의견도 많지만 반대하는 의견도 꽤 되었습니다. 주로 반대하는 의견을 읽어보았습니다.

워낙 책의 주제가 '폭탄'과 같은지라 논란은 예상되었습니다.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심리학 혹은 상담학을 전공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수긍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존재가치가 흔들리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반박을 하더라도 본질이 뭔지 알고 반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흔히 보는 난독증 수준은 아닙니다. 정성스레 생각하고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비판에 대해 제대로 반응하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문제점을 보는 능력과 입 밖에 낼 수 있는 무대뽀만 약간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건설적 비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비판하는 쪽도 비판받는 쪽도 다 사람인지라 문제만 보지 못하고 사람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비판받기는 더 어렵습니다. 방어본능 때문입니다. 비판 받으면서 '저 사람이 말하는 문제가 이거구나. 그래. 이건 잘못된 것 같아. 고쳐야지'라고 처음부터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있다고 말한다면 위선일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에는 자신이 옳다고 반항 한번 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입니다. 처음에야 흥분해서 본질을 못본다 하더라도, 잠깐 멈추고 생각 해야합니다. 이해부터 해야지요. 도데체 뭘 이야기하는 건가. 시작을 '부족한 기독교' 서평에서 했으니 그 책을 예를 듭니다만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패턴은 발견됩니다.

책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심리학의 도움없이는 성경의 가르침이 불완전하다는 생각과 그 이면에 깔려있는 인본주의적 접근에 대한 우려입니다. 심리학 자체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심리학이 왜 도움을 주는가만 강조를 합니다. 책에서 인용된 사람이 '이런말도 했다'라며 반박을 합니다. 책에 인용이 잘못되었다면 그걸 반박을 해야지요. 성령을 통한 도우심을 이야기하며 상담이 필요하다 말하며 저자가 틀렸다 합니다. 책에서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런 상담이었는데 말입니다.

더불어 상대방 말투가지고 비판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안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네요. 조금이라도 비판을 하면 은혜가 안되네 새로 신자된 사람들 볼까 겁나네 하며 성령세례를 받고 온순한 마음으로 쓰라 충고합니다. 말투가 맘에 안들면 아예 안들을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비판하는 사람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책임이 있습니다. 상대방 감정 건드릴려고 작정하는 경우에는 효과적으로 긁어야겠지만 ^^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은 문제 자체에 집중하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비판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비판받는 사람의 몫은 따로 있지요. 상대방의 말투가 어떻든 간에 말입니다. 가끔 이걸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상대방 몫과 내 몫을요.

비판 자체를 아예 듣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리 선을 그어놓고 그것을 넘어서면 무조건 다 틀렸다 생각합니다. 그걸 신념이라 할 수 있을까요? 쓸모없는 자만심 아닐까요? 비판을 듣지 않는 것은 결국 자기 손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피드백은 발전을 위한 중요한 메카니즘입니다.

최근에 여러군데서 마음 불편하게 하는 글들을 봤습니다. 비판하는 사람도 비판받는 사람도 자기 이야기만 하지 상대방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항상 잊지 않는' (이라 적고 '잊어버리고 뒤늦게 후회하는'이라고 읽는) 원칙이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그리고 "내 방법도 상대방 방법도 아닌 더 좋은 방법이 항상 존재한다"입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제대로 된 토론을 하려면 잊지 말아야합니다.

"내가 틀렸다"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그건 토론이 아닙니다. 말싸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반박할 때 하더라도 제발 문제는 이해하고 반박합시다. 난독증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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