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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6. 00:08
최근에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네요. 한번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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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즐기던 사업가가 점심을 뭘 먹을까 궁리하며 고요한 바다를 보고 있었다. 커다란 참치 한마리를 실은 작은 배가 근처에 있는 예쁜 멕시칸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부가 배에서 내렸다.

"굉장한 고기네요. 그거 잡는데 얼마나 걸렸어요?"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요."

"그럼 왜 시간을 좀 더 들여 고기를 더 잡지 그랬어요?"

"이거 하나 가지고도 저희 가족 먹고 살건 충분해요"

"그럼 남은 시간에 뭐 하나요?"

"늦게 일어나, 고기 좀 잡고, 아이들과 놀고, 점심 먹고, 제 아내 마리아와 낮잠 좀 자다가, 저녁에는 마을로 가서 와인 한잔하면서 기타를 치거나 친구들과 카드 놀이를 하지요 - 만족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

"음... 제가 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하버드에서 MBA를 받았습니다. 거기서 이런 거를 배웠어요. 고기잡이에 조금 더 시간을 들이세요. 큰 배를 사고, 돈을 좀 더 만든 다음에, 배를 더 사서 선단을 만드는 겁니다. 잡은 고기를 중간상에게 팔지 마세요. 직접 판매하다가 나중에는 통조림 공장을 직접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생산, 처리, 판매를 다 컨트롤할 수 있지요. 그러고 나면 이 작은 마을을 떠나 멕시코 시티로 가거나, LA 아니면 뉴욕에 진출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 그렇게 되기에 얼마나 걸릴까요?"

"15년 아니 20년 정도요"

"그러고 나선 뭐를 하죠?"

"그게 바로 가장 멋진 겁니다." 사업가는 신나서 말을 했다. "때가 무르익었을 때 주식시장에 상장을 해서 백만 장자가 되는 겁니다."

"백만장자라... 그 다음에는요."

"은퇴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거죠. 바다 근처의 조그만 마을에 집을 하나 사서, 늦게 일어나, 고기 좀 잡고, 아이들과 놀고, 점심 먹고, 아내와 낮잠 좀 자다가, 저녁에는 마을로 가서 와인 한잔하면서 기타를 치거나 친구들과 카드 놀이를 하는 거지요"

============================================

비슷한 이야기가 참 많지요. 그래도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리 복잡하게 사나 ㅡ.ㅡ 물론 안정성이나, 성취감을 생각하면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답은 아니지요. 그런데 정반대의 삶도 불쌍하긴 마찬가지일 겁니다. 열심히는 살되 단순한 삶.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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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5. 03:32
윌리엄 윌버포스는 1787년 10월 28일 일기장에 다음의 글을 남겼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내 앞에 두가지 큰 과제를 주셨다. 그것은 노예 매매의 폐지와 관습의 개혁이다." 몸집도 작고, 못 생겼으며, 당시에 혐오받던 '복음주의'자였던 윌버포스는 50년간을 노예제 폐지를 위해 헌신했고, 결국 그로 인해 영국은 가장 먼저 노예제를 폐지한 나라가 되었다.

노예제는 당시 영국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이를 없앤다는 것은 사회전반을 뒤흔드는 것이다. 노예제를 통해 가장 이득을 본 계층은 상류층이다. 상인, 귀족, 군인 (해군제독 넬슨을 포함), 그리고 이를 비호하는 왕족까지. 하지만 이들 기득권의 (두번의 테러를 포함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윌버포스는 멈추지 않았다.

만약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누군가 윌버포스와 같은 변화를 일으키려 한다면 어떤 취급을 받을까? 노예제 폐지 정도로 큰 건 없겠지만, 예를 들어 종부세 강화나 사교육 폐지, 변칙 상속의 엄단 같은 개혁을 한다면. 백이면 백 그는 좌빨로 몰릴 것이다. 사회 기득권이 그렇게 몰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랬을까? 윌버포스가 좌빨이어서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헌신했을까? 단연코 아니다. 사상이나 주의가 아니다. 그가 노예제 폐진에 앞장선 것은 그것이 '옳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좌도 우도 아니다. 그는 '정의의 편'이었다.

한동대가 생길 때부터 지켜본 사람으로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마음이 참 씁쓸하다. 그리고 걱정된다. 한국 기독교는 신앙의 후배들에게 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어찌 젊은 청년이 저리도 좁디 좁은 사고를 할 수 있는가 말이다.기독교에서 '자살'은 분명히 죄로 여긴다. 잘못된 선택이고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죄가 다른 죄보다 더 큰 것은 아니다. 모든 죄는 다 같은 죄다. 이것을 알고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한다.[각주:1]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은 '정의'와 '사랑'이다. 그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을 닮기 원하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거룩'은 '선'이고 '정의'다. 우리가 옳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 백명의 사람이 있는데,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 한명의 기득권자가 99명의 기회를 착취하며 사는 것. 어느것이 선이겠는가?

정의만 있다면 세상은 삭막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도 요구하신다.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99명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한 사람이 자기 능력을 이용해 남들을 착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의'이다. 더 나아가 그 능력을 사용해 부족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도와준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이런 하나님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한동대 안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라고 말하실까? 아니면 선한 뜻을 가지고 좋은 나라를 만드려 애썼던 그의 마음을 생각하며 안타까워 하실까? 교회에 헌금 잘하던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무턱대고 좋아하실까? 아니면 장로라는 이가 눈앞의 이익만 보고, 1%의 기득권자를 위해서만 정치하는 것을 한탄하실까?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우도 아니고 좌도 아니다. 좌가 (상대적으로) 선한 사회라면 좌로 여겨질 것이고, 우가 (상대적으로) 선하다면 우라 불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선하게 사는 것이고, 선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주의가 아니다. 이 원칙은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선한 것을 지향하는 모두에게 적용된다.

윌버포스는 25세때 목회자로의 전향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로 하여금 정치에 남게 한 사람은 존 뉴튼이었다. 뉴튼은 노예상인으로 일하며 수많은 노예들의 행복을 앗아갔던 사람이다. 그가 예수를 믿고 돌이켜 목회자가 되었다. 뉴튼은 윌버포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주님이 국가를 위해 일하도록 당신을 세우셨다고 믿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선배가 올바른 의식을 후배에게 심어주었을 때 노예제 폐지라는 선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 한국 기독교의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한국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만들겠다며 설립한 한동대는 어떤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고 있는가? 불의한 목회자들이야 정죄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다. 옳고 그름이 기준이 아니라, 기독교 패거리의 이익만을 기준으로 생각하니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못끼치는 거다. 이명박의 장로직 박탈을 요구한 신학자들의 요구는 고무될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너무 부족하다.

묻고 싶다. "예수가 지금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1.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더 깊은 생각을 위해 서울비님의 이글 (http://seoulrain.net/1343)을 읽어보기 바란다. [본문으로]


2009. 6. 3. 15:37
나만의 80/20 법칙 만들기 - 8점
리처드 코치 지음, 신동기 옮김, 공병호 해제/21세기북스(북이십일)

'시간관리의 파레토법칙'에 관해 생각하며 '이거 괜찮은데' 흐뭇해 하던 마음을 여지없이 부수어버렸던 리처드 코치의 책이다. 원제는 'Living the 80/20 Way'. 원서로 읽었는데 찾아보니 번역판이 있다. 공병호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어 꺼림칙하긴 하지만.

리처드 코치는 80/20 혹은 파레토 법칙의 철저한 신봉자다. 그는 처음에 쓴 <80/20 법칙 (The 80/20 Principle)>에서 파레토 법칙이 과학이나 경제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이 책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리처드 코치는 이 개념을 기반으로 매니저들을 위한 <80/20 Individual>과 삶의 전분야에 걸쳐 파레토 법칙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다룬 <나만의 80/20 법칙 만들기>를 썼다.

파레토 법칙이란 '20%의 원인'이 '80%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의 상품이 전체 매출액의 80%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원칙을 삶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전에 쓴 것처럼 '가치'와 '우선순위'로 해석해 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리처드 코치는 반발자국 정도 더 나갔다.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힘을 모으는 것이 출발이 아니라 '게을러'지는 것이 출발점이다. 중요한 것이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말자. 일단 게을러지자라는 것이 리처드 코치의 주장이다. (이 부분에서 귀가 솔깃해진다 ^^) 그러면 결과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고, 무엇보다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코치는 다음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목적과 경로, 그리고 행위에 각각 80/20의 원칙을 적용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1. 80/20 목적에 집중한다: '이것 아니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라고 할만한 목적지를 정한다.
  2. 80/20 경로를 찾는다: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쉬운길도 있고 어려운 길도 있다. 가장 쉬운 길을 선택한다.
  3. 80/20 행동을 취한다: 80/20 목적을 위한 80/20 경로를 따라 가장 효과적인 행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프레임 위에서 '나 자신', '일과 성공', '돈', '인간관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단순하고 좋은 삶'이 80/20 법칙을 적용하는 가장 중요한 것임을 역설한다.

책은 쉽게 쓰여졌다. 각 단원별로 80/20의 프레임웍을 적용하기 위해 여러가지 질문이 담겨 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예와 템플릿이 담겨져 있다. 빨리 끝까지 읽고 싶은 욕심에 질문에 대해 나의 답을 달아보지는 않았다. 이제 질문을 찾아 읽으며 진지한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모든 자기계발 책이 그렇듯 어디서 읽은 듯한 내용들이 많다. 적게 할수록 많은 것을 얻는다는 접근방법이 새로운 것이긴 하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늘 급한 일로 쫓기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본다면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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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3. 14:26
논쟁을 지켜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싸움 구경만큼 재미난게 없다'는 못된 심보는 아니다. 살다보니 논쟁을 하는 적도 있고, 나름대로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요령도 생긴다. 그러다 보니 남들 논쟁하는 것 지켜보며 오고가는 심리전을 내 맘대로 복기해보거나,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당사자들이야 피가 튀는 일이지만, 내 편이 당하지만 않는다면 느긋하게 관전하며 즐길 수 있다. 

그동안 변희재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에 대한 나의 관심은 칠할은 가여움이요 삼할은 호기심이다. 가여움이란 어떻게든 떠보고자 하는 노력이 애처롭거니와 언젠가 그의 이름이 잊혀질 것을 알기 때문이고, 호기심이란 대체 어떤 정신 상태를 가졌기에 젊은 나이에 저리도 바꿈질을 뻔뻔하게 할 수 있나 싶어서다. 가끔 그의 글을 읽다가 화가 나는 적도 있지만,  본인에 대한 화는 아니다. 다만 그의 엉성한 논리 때문에, 그리고 그럼에도 그 글을 싣는 매체들 땜에 화가 난다. (foog님 표현대로) 그는 위험하지도 않거니와 가끔 웃기기도 하다 ^^

한가지 짚고 넘어갈 거라면 고재열기자의 표현처럼 더이상 변희재는 듣보잡은 아니라는 거다. 특히 이번 일로 인해 변희재 본명은 몰라도 '변듣보'를 아는 사람들은 꽤 된다. 그러니 '듣도 보도 못한'이라는 표현은 이제 지워줘야겠다. '꽤나 알려진 잡것'이라고 해야할까? 꽤알잡? 근데 듣보잡만큼 입에 착 붙지는 않는다. (확실히 난 작명에 소질이 없다.)

추가: foog님이 괜찮은 말을 만들어 내셨다. '어들잡' .. '어디서 들어본 잡놈'이다 ^^ 어감도 좋고 앞으로 '듣보잡'의 다음 단계를 '어들잡'으로 해야겠다.

변희재가 진중권교수(이하 진중권)에게 가진 컴플렉스야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이기에 여기에 언급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궁금한 분은 이글이글을 참조하시면 된다.) 디워 때부터 끈질기게 스토킹을 하던 그가 드디어 큰 맘먹고 결전을 시작했다. 문화부를 등에 없고 한예종과 진중권을 겨냥한 것이다. 이를 알고 있었던 듯 진중권은 블로그를 통해 다가올 싸움을 예고했고 이미 일합을 겨루었다.

시작은 문화부에서 한 것 같다. 2학기에 진중권의 강의가 없다는 것을 핑계로 반년치 연봉을 토해내라고 한예종에 요구한 것이다. (도데체 교수는 강의만 하는 사람이라는 그런 유아적 발상은 누가 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에 대해 문화부에 대해 공개 질의를 통한 일차 반격이 있었다, 솔직히 진중권의 글 치고는 다소 유한 글이었다. 그래도 김우재님의 지적처럼 진중권이 조롱과 냉소를 통해 오히려 손해를 봤다 여기기에 차분한 언조가 오히려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이에 대해 변희재는 반격을 시도했다. 뭐가 급했는지 세시간만에 글을 써서 올렸다. 대략 요점은 다음과  같다.

1. 진중권은 객원교수가 될만한 전문성이 없다.
2. 출판의 목적과 재원이 분명치 않다.
3. 급료 환수에 대해서는 문화부가 아니라 한예종에게 물어야한다. 

이번에도 역시 진중권의 전문성에 대한 딴죽으로 시작한다. 지겹지도 않나? ㅡ.ㅡ 실패한 유학과 방송출연 몇번이 경력의 전부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변희재 본인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한윤형님의 이글에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근데 변희재가 공격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 '미네르바 사건'에 대해 진중권의 전문성을 거론한 것은  어느 정도 말이 된다. (물론 같은 점이 자신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변희재는 모르는 것 같다.) 근데 이번에는 진중권의 전공인 미학이다. 아무리 그래도 <미학 오디세이>와 <현대미학강의>의 저자다. '풋~ 맛뵈기로'라는 제목으로 올린 진중권의 글은 사뭇 통쾌하다. 변희재의 수를 미리 알고 준비했다는 것에 백원 걸겠다 ^^.

두번째에 대해서는 양쪽이 다른 이야기를 하기에 뭐라 말은 못하겠다. 정리가 되겠지. 그런데 개인이 출판한 것이라면 문화부에서 계약서 사진을 찍은 것이 문제가 되고, 그게 아니라고 하면 진중권의 연구결과를 인정하는 꼴이 되는 자기 모순 때문에 이것도 변희재쪽이 더 곤란하다.

세번째가 압권이다. 변희재 본인이 글 속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계약의 ‘갑’ 한예종이 책임지고 국민세금을 돌려받으라 명"했다 표현해 놓고, 이에 대한 이의제기는 왜 황지우 총장에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문화부가 요구한 것을 뻔히 아는데 중간에 끼어있는 한예종에게 따질 이유가 뭐가 있는지. 추가로 진중권의 글에 객원교수의 역할에 강의와 연구가 들어가 있다 분명히 밝혔는데, '오직 강의만을' 거듭 주장하는 것은 도데체 뭔가? 이 정도면 너무 성의 없는 것 아닌가?

추가: '지나가다'님이 잠깐 들르셔서 한예종 학칙의 객원교수의 의무에 대해 댓글을 달아주셨다. (감사합니다 ^^) 정리하자면 객원교수도 일반 교수와 마찬가지로 강의의 의무를 가지되 총장 재량하에 면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객원교수의 임무중 연구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칙상으로 볼 때 진중권이 강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아닌 듯 하다.

어쨋든 지금까지 봐서는 게임이 안된다. '자살세' 건으로 그래도 변희재가 조금 기를 펴나 싶었는데, 너무 성급하게 덤볐다. 생각좀 하고 글을 쓰지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빨리 써서 올렸는지. 도데체 그 무모한 용감성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뭏든 다음번에 있을 변희재의 반격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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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나도 '듣도 보도 못한' 블로거다 보니, 이런 글 써봐야 효과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또 이 정도 시간 들일만큼 가치 있는 주제도 아니고. 좀전에 보니 변희재가 동아일보 우경임기자에게도 논쟁하자며 싸움을 걸고 있다. 좌충우돌하는 것 보니 이 사람의 상품가치도 얼마 안 남았나 보다. 글쎄 유인촌이 그를 필요로 한다면 조금 연장은 될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검색하다 발견한 변희재 후배의 을 일부 옮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다른 사람의 죽음을 지켜봐야하는 거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여기서 '죽음'이란 단지 육체적 죽음만을 의미하지는 않겠죠. 희재형, 그래도 몸은 건강하셔야 해요.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형이 어떤 입장에 섰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꼭 지켜보셔야 할테니까요. 그럼, 안녕."

그 '결과'가 빨리 올 것 같아, 그가 주는 독특한 즐거움을 보지 못할까봐 우려가 되지만, 한편 변희재의 행보를 통해 '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위해 글 쓰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 같기도 해서 아쉽지만은 않다.







2009. 5. 30. 15:30
일년반동안 50명의 검사를 풀어 노무현 대통령을 샅샅이 뒤졌던 검찰은 삼성에게는 공소시효 전까지 미루다 결국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만 기소하는 태만함을 보였고, 그들이 속한 사법부는 15년이나 끌다가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보고자 애썼던 전 대통령의 영결식날 아침 현 대통령은 용산에 경찰과 용역을 보내, 생사람이 타죽으며 지켜냈던 그곳을 철거했다.

이 정권은 이미 1%를 위한 것이다. 1%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99%의 행복쯤 언제든지 짓밟을 수 있다. 1%가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 몰았다. 그 1%안에 이재용이 있고, 사법부가 있고, 용역깡패를 보낸 땅주인이 있다. 그리고 이명박이 대표(혹은 얼굴마담)으로 서있는 것이다.

500만명이 노 대통령을 애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99%에 속하면서 아직도 이명박이 99%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깨어있는 이들은 이미 나라가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힘을 그 분노를 어디로 향해야 하나? 87년은 오히려 쉬웠다.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는 것이 아니고, 선거를 통해서 뽑을 수만 있다면, 그러니까 직선제만 쟁취하면 일단 승리하는 것이다.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탄핵 정국에서도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목표였다. 굵직한 한가지가 있었기에 자잘한 차이는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얼 내걸어야 하나? 이명박의 사과 한마디? 그럴리야 없겠지만, 설사 이명박이 사과를 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렇다면 1%에게 빼앗긴 나라를 99%가 되찾기 위해 무엇을 내걸어야 하나? 검찰총장 경질? 미디어법 철폐? 중요한 사안이긴 하나 결정적이진 않다.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도 없다. 어찌 되었든 선거를 통해 뽑힌 대통령이고 선거를 통해 구성된 국회이다.

다음 선거를 기다려야 하나? 그때까지 국민들의 마음이 변치 않을까? 아니 그때는 선거에 참여라도 할까?

선거가 답이 아니라면, 혁명은 답일까? 무슨 혁명? 현실적으로 이룩할 수 있는 혁명이 있기는 하나?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그 목숨으로도 정권을 그리고 나라를 바꿀 수 없다면, 그때는 정말 절망이다. 그런데 그 절망이 현실이 될까 싶어 가슴이 벌써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