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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5. 03:32
윌리엄 윌버포스는 1787년 10월 28일 일기장에 다음의 글을 남겼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내 앞에 두가지 큰 과제를 주셨다. 그것은 노예 매매의 폐지와 관습의 개혁이다." 몸집도 작고, 못 생겼으며, 당시에 혐오받던 '복음주의'자였던 윌버포스는 50년간을 노예제 폐지를 위해 헌신했고, 결국 그로 인해 영국은 가장 먼저 노예제를 폐지한 나라가 되었다.

노예제는 당시 영국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이를 없앤다는 것은 사회전반을 뒤흔드는 것이다. 노예제를 통해 가장 이득을 본 계층은 상류층이다. 상인, 귀족, 군인 (해군제독 넬슨을 포함), 그리고 이를 비호하는 왕족까지. 하지만 이들 기득권의 (두번의 테러를 포함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윌버포스는 멈추지 않았다.

만약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누군가 윌버포스와 같은 변화를 일으키려 한다면 어떤 취급을 받을까? 노예제 폐지 정도로 큰 건 없겠지만, 예를 들어 종부세 강화나 사교육 폐지, 변칙 상속의 엄단 같은 개혁을 한다면. 백이면 백 그는 좌빨로 몰릴 것이다. 사회 기득권이 그렇게 몰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랬을까? 윌버포스가 좌빨이어서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헌신했을까? 단연코 아니다. 사상이나 주의가 아니다. 그가 노예제 폐진에 앞장선 것은 그것이 '옳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좌도 우도 아니다. 그는 '정의의 편'이었다.

한동대가 생길 때부터 지켜본 사람으로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마음이 참 씁쓸하다. 그리고 걱정된다. 한국 기독교는 신앙의 후배들에게 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어찌 젊은 청년이 저리도 좁디 좁은 사고를 할 수 있는가 말이다.기독교에서 '자살'은 분명히 죄로 여긴다. 잘못된 선택이고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죄가 다른 죄보다 더 큰 것은 아니다. 모든 죄는 다 같은 죄다. 이것을 알고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한다.[각주:1]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은 '정의'와 '사랑'이다. 그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을 닮기 원하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거룩'은 '선'이고 '정의'다. 우리가 옳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 백명의 사람이 있는데,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 한명의 기득권자가 99명의 기회를 착취하며 사는 것. 어느것이 선이겠는가?

정의만 있다면 세상은 삭막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도 요구하신다.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99명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한 사람이 자기 능력을 이용해 남들을 착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의'이다. 더 나아가 그 능력을 사용해 부족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도와준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이런 하나님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한동대 안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라고 말하실까? 아니면 선한 뜻을 가지고 좋은 나라를 만드려 애썼던 그의 마음을 생각하며 안타까워 하실까? 교회에 헌금 잘하던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무턱대고 좋아하실까? 아니면 장로라는 이가 눈앞의 이익만 보고, 1%의 기득권자를 위해서만 정치하는 것을 한탄하실까?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우도 아니고 좌도 아니다. 좌가 (상대적으로) 선한 사회라면 좌로 여겨질 것이고, 우가 (상대적으로) 선하다면 우라 불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선하게 사는 것이고, 선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주의가 아니다. 이 원칙은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선한 것을 지향하는 모두에게 적용된다.

윌버포스는 25세때 목회자로의 전향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로 하여금 정치에 남게 한 사람은 존 뉴튼이었다. 뉴튼은 노예상인으로 일하며 수많은 노예들의 행복을 앗아갔던 사람이다. 그가 예수를 믿고 돌이켜 목회자가 되었다. 뉴튼은 윌버포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주님이 국가를 위해 일하도록 당신을 세우셨다고 믿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선배가 올바른 의식을 후배에게 심어주었을 때 노예제 폐지라는 선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 한국 기독교의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한국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만들겠다며 설립한 한동대는 어떤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고 있는가? 불의한 목회자들이야 정죄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다. 옳고 그름이 기준이 아니라, 기독교 패거리의 이익만을 기준으로 생각하니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못끼치는 거다. 이명박의 장로직 박탈을 요구한 신학자들의 요구는 고무될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너무 부족하다.

묻고 싶다. "예수가 지금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1.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더 깊은 생각을 위해 서울비님의 이글 (http://seoulrain.net/1343)을 읽어보기 바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