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9. 22:35
[일기 혹은 독백]
1.
집에 돌아왔습니다. 일주일의 고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었던 대만 출장 뒤에 이틀간 한국에 들렀습니다. 일도 일이지만 사람들 만나느라 바빴습니다. 목요일 두개, 금요일 네개의 약속을 통해 지인들과 친지들을 만났고, 토요일 가족들을 만나면서 짧지만 효과적인 일정을 마쳤습니다. 급하게 연락했는데도 달려온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2.
내일이면 학교가 시작합니다. 마음의 준비도 못하고 방학동안 부족한 과목 보충하겠다던 계획도 실행 못해 걱정이 많이 됩니다. 오늘부터 학생 모드로 (비록 50%라도) 전환해야겠습니다.
3.
14일부터 준비해왔던 스템셀 이식을 시작합니다. 4일간 약품을 투여해 골수에만 있는 성분을 인위적으로 키우고 18일 혈액을 뽑아 분리기에서 필요한 성분을 분리해내는 겁니다. 일곱시간 정도 제 안의 피를 빼냈다 다시 집어넣는 과정을 두번 정도 진행한다고 하네요. 여러 사람이 수고하는데 기증을 받는 아이(두살이라 들었습니다)가 암을 극복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4.
2010년 후반에 정신줄 놓은듯 음악에 관해 질러대었습니다. 주로 헤드폰 관련 아이템과 음반이었습니다. 대충 갖추었네요. 이제 음악만 들으면 됩니다 ^^ 마지막으로 지른 아이템이 뉴포스라는 USB로 연결해 듣는 DAC겸 헤드폰 앰프인데 크기도 정말 작은데 소리가 좋아 앞에 지른 다른 아이템들이 살짝 후회될 정도입니다. 찬찬히 듣고 소개도 좀 하겠습니다.
5.
아테나를 몇회 봤습니다. 출장중 공부할 시간을 부족하게 만든 원인입니다. 재밌네요. 그 정도면 짜임새도 있고 특히 과장되지 않은 액션이 좋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본' 시리즈와 비슷한. 근데 공부해야하는데 왜 시작했나 모르겠습니다 ㅡ.ㅡ
6.
대만에서 한국 갈 때도 예상치 않게 좌석 업그레이드가 있었는데, 이번 인천-샌프란시스코 구간도 비즈니스를 타고 왔습니다. 이번에 바꾼 유나이티드의 비즈니스석 참 좋더군요. 완전히 누워서 잘 수도 있고 LCD 화면도 크고. 이러면서 스포일되나 봅니다 ^^
7.
올해도 여전히 바쁘게 시작합니다. 회사에서는 새로 맡은 부서를 성장시켜야할 부담도 있고 해서 회사일을 작년만큼 쉽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열심히 하렵니다. 다 못할까봐 지래 겁을 먹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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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2. 09:01
[신앙 이야기]
솔직히 말해 난 적지 않은 사람을 혐오한다. 교양 없고 예의 없는 사람. 열심히 살지 않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혐오가 생긴다.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 다른 이의 행복을 파괴하는 사람은 혐오를 넘어 살의를 담아 증오한다. 이런 혐오는 시시때때로 나타나며 나를 포함해 내 주위의 어느 누구도 혐오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분명히 안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혐오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것은 바닥에 '내가 너보다는 나아'라고 가정하는 건데 솔직히 내가 누구보다 더 가치있다 자신있게 선언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규항의 이 글을 난 좋아한다.
세상은 '훌륭하게 사는 사람들'과 '훌륭하지 않게 사는 사람들' 둘로만 나뉘는 게 아니다. 아마도 숫자로는 가장 많은 또 하나의 사람들, '훌륭하게 살 수 없는(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는 바로 그들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했으며 전망했다.
내가 혐오하는 사람들은 김규항이 말한 '훌륭하게 살 수 없는' 혹은 '훌륭한 삶이 어떤 삶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는 그 사람들을 위해 살았고 또 그 사람들을 위해 죽었다. 예수가 보기에는 나도 훌륭해질 수 없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죽어야만 했다.
내 태도가 쉽게 변하지는 않겠지. 그럼에도 기대한다. 언젠가는 나도 예수의 마음을 닮을 수 있을 거라는 걸. 그때는 다른 이를 제대로 마음에 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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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1. 11:15
[일기 혹은 독백]
어째 2011년의 시작을 객지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학교 수업 때문에 출장에 제약이 있고, 또 제가 맡은 부서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힘든지라 자의반 타의반 (보통은 꺼릴) 일정에 오케이하고 온 겁니다. 가족들은 New Year's Eve라 보스톤에 얼음 조각 보러 갔다고 하고, 팀원들은 주말이라 게으름을 부리는지 호텔이 마련해 준 미팅룸에 오지 않고, 저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으려니 기분이 좀 거시기합니다 ㅡ.ㅡ
대만은 참 오랜만입니다. 1998년도에 신쥬에 일주일 정도 왔었고 2002년는 타이난에서 한달 정도 지냈습니다. 지금 와 있는 곳은 신쥬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신쥬는 참 많이 달라졌네요. 길거리도 훨씬 깨끗해지고 신호가 뭐야 룰이 뭐야 하고 운전하던 택시들도 많이 얌전해졌습니다. 참고로 98년도에는 저를 태우러 왔던 택시가 왕복 6차선 도로가 만나는 교차로 안에서 (주변의 골목길이 아닙니다. 교차로안 4각형 영역입니다) P자 턴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스쿠터 하나에 아빠 엄마, 아이들 셋이 타고 가던 곡예운전도 더 이상 볼 수 없구요.
제일 싫어하던 음식이 대만 음식이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면 냄새가 일단 식욕을 반으로 떨구고 식당의 지저분함이 나머지 반을 날려버렸습니다. 이번에 오니 그것도 다르네요. 식당도 깨끗해지고 냄새나 맛도 꽤나 익숙해졌습니다. 그래도 제가 접한 음식 순위를 매긴다면 대만이 아직 최하위입니다.
한달 넘게 와있는 팀원들 위로도 할겸 일요일에는 가까운 타이페이로 놀러가기로 했습니다. 가서 사진좀 찍어와야죠. 저도 타이페이는 처음이거든요.
다음주 수요일까지 빡시게 일하다 목요일에 한국에 가렵니다. 2박 3일의 일정이라 아쉽긴 하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가족들도 만날 생각하니 기분이 좋네요. 더 있고 싶지만 10일부터 개학이라 서둘러 돌아가야 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시작하는 2011년이지만 작년보다 기분은 좋습니다. 아쉬움이 많은 한해를 보냈는데, 올해 그 아쉬움을 깨끗이 날려 버릴 수 있는 한해가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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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31. 01:07
[미래 빚어가기]
존 맥스웰이 쓴 'How Successful People Think?'라는 다소 원색적인 제목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작은 사이즈에 120 페이지 남짓 되어 분량은 적지만, 내용을 꾹꾹 눌러담은 책이라 진도가 빨리 나가지는 않는 책입니다.
하나 하나 중요한 내용인데, 그중 서론에 담긴 "어떻게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How to become a Better Thinker?)" 부분이 맘에 크게 와닿기에 여기에 소개합니다.
1. 좋은 인풋을 많이 접해라 (Expose Yourself to Good Input)
좋은 책이나 잡지 읽기, 오디오북 듣기 등을 통해 생각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좋은 인풋을 많이 접하라는 겁니다. 2011년 지향으로 삼은 '學而時習'과도 방향이 맞는지라 더 맘에 착 붙었나 봅니다 ^^
2.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해라 (Expose Yourself to Good Thinkers)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라는 겁니다. 맥스웰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저도 같이 있고 싶어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대부분 Good Thinker라는 생각이 드네요.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현명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근묵자흑이라는 한자성어를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지혜로와지고 싶으면 지혜로운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하는건 당연한 것일 겁니다.
3. 좋은 생각 하기를 선택하라 (Choose to Think Good Thoughts)
훌륭한 생각이라는게 그냥 원한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의지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Chick-fil-A라는 요즘 뜨고 있는 닭요리집의 창업자는 '사고 계획'을 세운다고 합니다. 이주에 반나절, 한달에 하루, 일년에 2~3일을 생각만을 위해 비워놓는 것이지요. 그 시간이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유지'하게 만들어주었답니다.
4. 좋은 생각이 들었다면 실천해라 (Act on Your Good Thoughts)
생각은 보관기간이 짧습니다. 실천하지 않는 훌륭한 생각은 잡생각과 다름 아니지요.
5. 감정이 좋은 생각을 이끌어 내는걸 지켜보라 (Allow Your Emotions to Create Another Good Thought)
대부분의 경우 감정을 기다리면 늦습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싶어'지는 걸 기다린다면 좋은 생각을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좋은 생각이 들어서 실천을 하고 그때 느꼈던 즐거운 감정이 또 다른 좋은 생각을 끄집어 내도록 내버려둘 수 있습니다. 선순환을 이끌어내라는 겁니다.
6. 과정을 반복하라 (Repeat the Process)
한가지 훌륭한 아이디어로 평생을 욹궈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어떻게든 보호하려 애쓰는 경우를 봅니다. 훌륭한 생각을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한번의 과정을 거쳤으면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하고 또 반복함으로 좋은 생각을 계속 발굴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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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30. 02:54
[음악 이야기]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 꼭 들르게 되는 사이트 중 하나가 고!클래식 아닐까 합니다. 줄여서 고클이라고들 부르죠. 요즘 고클의 오디오파일 게시판에 실용/비실용 논란이 한참입니다. 전세계 어디든 오디오 사용자들 사이에 항상 있어왔던 논쟁이라 또 그러나 싶었지만 이번에는 꽤 오래 가네요. 제가 아는 분야의 논쟁이라면, 숟가락 하나 올려놓고 싶은 충동이 드는 성격인지라 ^^ 저도 그 게시판에 글 하나 올리면서 기록 목적으로 이 블로그에 복사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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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5일 가입한 이후에도 몇번 이 게시판에서 실용/비실용 논쟁을 봤습니다. 오디오 하시는 분들은 전세계 어디든 같은 논쟁을 하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이번에는 좀 오래가네요. 논쟁이 과격해지다보니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도 나오고 상대방 주장과는 상관없는 논지로 반박하는 것도 보입니다. 오디오보다는 음악에 더 중점을 두고, 또 이른바 하이엔드 제품을 많이 접해보지도 않았지만 경험과는 상관없이 사실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논쟁에 글 하나 더해봅니다.
오디오 객관주의/주관주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왜 하는가?
블라인드 테스트의 종류
블라인드 테스트는 가치가 있는가?
블라인드 테스트는 무엇을 증명/반증하는가?
그렇다면 블라인드 테스트는 의미가 없는가?
결론은?
결국 선택은 개인의 몫입니다. 그래도 많은 경우 제품간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지요. "과학적 사실은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독자성과는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그렇지 않고 믿는대로 종교적 주장을 되풀이 한다면 논쟁의 끝은 안날 겁니다.
오디오 객관주의/주관주의
실용오디오 사이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실용주의/비실용주의라 불리우는 이 논쟁을 영어권에서는 객관주의/주관주의라 부릅니다. 두가지 다 논쟁의 초점을 명확히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비실용주의'라는 용어가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주장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느낌을 주기에 저는 객관주의/주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걸 선호합니다.
먼저 짚고 넘어갈 거는 객관주의나 주관주의 진영 안에서도 상당한 의견차가 있다는 겁니다. 객관주의가 극단으로 가면 '오디오의 특성은 제품과 상관없이 모두 같다'가 되고 주관주의의 극단으로 가면 '어느 제품이든 모두 현저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가 됩니다. 이런 양진영의 극단적 주장을 놓고 논쟁을 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건 마치 극보수의 기독교인이 이슬람 원론주의자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극단적 주장을 제하고 나면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는 보통 하나의 가설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그 가설은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가진 비슷한 스펙의 오디오 제품간의 차는 사람의 귀로 구별할 수 없다'입니다. 짚고 넘어갈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비슷한 스펙'간을 비교하는 것과 '사람의 귀로 구별할 수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객관주의자가 '모든 오디오가 같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스펙이 다른 제품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스펙이 다르면 제품간의 차이는 있거든요.
블라인드 테스트를 왜 하는가?
스테레오파일 같은 잡지를 보면 가끔 제품의 주파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 나옵니다. 최근에는 지터 문제를 놓고 다른 주파수 특성을 보여주면서 어떤 제품이 특성치가 좋은지 보여주더군요. 그렇게 계측기를 가지고 비교를 하면 제품간의 다른 특성은 쉽게 '증명'이 됩니다. 그렇기에 '제품간의 차이가 없다'라는 가설을 놓고 이야기하면 토론이 진행이 안됩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증명 혹은 반증하려는 가설은 '제품간의 소리차이를 사람의 귀로 구별할 수 있나'하는 겁니다. 블라인드 테스트 자체는 중립입니다. 과학이라는게 그렇거든요. 가설을 하나 세우면 실험을 통해 증명하거나 혹은 반증해야합니다. 반증가능성이 없으면 과학이 아니지요.
실험 모델링을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떤 것이 독립변수인지 어떤것이 비독립변수인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독립변수의 수를 최소한으로, 이상적으로는 하나로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가 서너개 되어버리면 결과를 도저히 분석해낼 수 없습니다.
블라인드 테스트는 독립변수의 수를 하나로 줄이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테스트하고자 하는 시스템 이외의 모든 것을 같게 합니다. 케이블을 테스트한다면 이외 모든 것은 같은 제품을 씁니다. 소리의 크기도 같이하고 스피커의 위치도 동일하게 유지합니다. 제품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소리만으로 판단하게 하는 겁니다. 일부 글에 눈으로 보지 않고는 (unless through sighted test) 소리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건 정당한 테스트가 아니지요. 보지않고 구별할 수 없는 것을 보고서 구별한다는 것은 소리 이외의 다른 변수가 이미 개입된 것이니까요.
블라인드 테스트의 종류
오디오 업계에서 사용하는 블테는 두가지입니다. 그냥 블라인드 테스트라 하면 실험자는 모든 상황을 알지만 답변하는 사람은 모르는 경우입니다. 실험자가 알면 혹시나 생길 외부요인마저 없애고자 사용하는 방법이 더블 블라인드 테스트(DBL)입니다. 자동 스위치를 통해 모든 사람이 어떤 시스템을 듣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는 겁니다.
제품간 차이를 구별하기 위한 실험의 경우 답변은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AB방식과 '모르겠다'를 추가한 ABX방식이 있습니다. 선호도를 평가하는 경우는 테스트하는 제품만큼 답을 하게 될테구요.
블라인드 테스트는 가치가 있는가?
사실 이런 질문 과학이나 의학쪽 종사하는 분에게 하면 무식하다 욕먹습니다 ^^ 블라인드 테스트는 실험의 한가지 방법일 뿐이고 잘만 설계된다면 방법론에 합당한 실험입니다. 블라인드 테스트 자체를 부정한다면 그건 실험을 통한 증명이라는 전제를 모두 부정하는 거지요. 그 주장은 종교가 되어버리는 거구요.
오디오 업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폄하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밥줄이 달려있으니까요 ^^ 하지만 오디오 업체들이 블테를 사용안하느냐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캐나다의 National Research Council (NRC) 에서 스피커 업체들과 같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습니다. 하만사의 블라인트 테스트 결과도 찾아볼 수 있구요. Good Sound지의 Doug Schneider와 같이 블테가 좋은 오디오를 평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하는 평론가도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블라인드 테스트 자체는 중립적입니다.
모든 블테가 효과적으로 설계가 된 것은 아닙니다. 답변자들에게 전혀 생소한 제품들을 사용한다든지, 시스템의 배치가 너무 엉망이라 테스트하고자 하는 제품들의 특성치가 다른 요인으로 인해 무시될 정도로 떨어진다든가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답변자들이 듣는 훈련이 안되어 있는 이른바 '막귀'인 경우 실험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오디오 잡지들이 주로 공격하는 블테가 이런 실험들이지요. 반대로 제품간 차이가 없음에도 다른 요인으로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Radio & Television에서 1982년도에 한 프리앰프의 블테에서 고급제품에 한해 채널간 0.06dB의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두가지 제품을 쉽게 비교할 수 있었지요. 물론 두번째 실험부터는 이 차이를 없앴지만요.
블라인드 테스트는 무엇을 증명/반증하는가?
위에서도 말했지만 블테를 통해 증명/반증하고자 하는 가설은 '제품간 차이를 사람의 귀로 구별할 수 있는가?'입니다. 소리의 특성치는 계기 측정만으로 가능합니다. 블테의 결과를 놓고 보면 99% 이상 제품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로 나옵니다. 스피커의 경우만 예외입니다. 케이블의 경우는 차이를 밝혔다는 테스트를 보지 못했구요. 50미터(50ft 인지 기억은 확실치 않습니다) 이상의 스피커 케이블은 대부분 쉽게 구별해냈다는 결과를 봤습니다. 블테라고 모두 구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
하지만 그 결과를 놓고 '제품간 차이가 전혀 없다'라고 확대해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TV를 사러 전자 매장을 가면 보통 여러제품을 놓고 비교하게 됩니다. 이렇게 눈 앞에 놓고 비교하면 구별이 쉽습니다. 어떤 제품이밝고, 어떤 제품이 더 녹색을 띠고 있고, 어떤 제품이 더 선명한지 쉽게 보입니다. 그래서 맘에 드는 것을 집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다른 집에 놀러가서 비교했던 다른 TV를 봅니다. 이때 두 제품간의 차이를 판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내가 산 제품이 친구의 TV보다 밝은지 선명한지 알 수 있을까요? 백이면 백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것은 아니지만, 비교하는 대상을 동시에 들을 수 없는 오디오 블라인드 테스트의 특성상,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듣는 제품을 오래 들을 수록 이전에 들었던 것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기억상의 근거가 서서히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차이가 있더라도 구별할 수 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따라서 블테 결과만을 놓고 제품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블라인드 테스트는 의미가 없는가?
여기 게시판에 보면 사람의 귀는 오묘해서 블테만 가지고는 진정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라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렇기에 블테가 의미 없다는 것은 억지입니다. 그 주장은 소리 이외의 다른 요인이 반영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앞에서 제시한 하만사의 테스트를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옵니다. 동일한 사람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스피커 선호도 테스트를 했습니다. 블라인드 테스트와 보면서 하는 테스트를 둘다 했습니다. 실험자 모두 하만사에서 근무하는 이른바 듣기에 '훈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테스트의 결과는 현저하게 다릅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게 있습니다. 스피커의 위치를 바꾸어놓고 청취실험을 합니다. 이때 블라인드 테스트의 결과는 스피커 위치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보면서 하는 테스트는 스피커 위치와 상관없이 비슷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결국 어떤 제품인지 알면서 하는 테스트에서는 소리가 아닌 '스피커 자체에 대한 선호도'를 보여준다는 겁니다. 선입견이 그만큼 크게 작용하는 거지요. 또한 스피커 위치가 제품간 차이보다 소리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은?
마지막으로 제 입장을 밝힌다면 저는 객관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험의 결과가 그렇게 나타나니까요. 일정 시간 넘게 듣고 있으면 구별할 수 없는 소리의 차이를 위해 몇백, 몇천씩 더 투자할 용의는 없거든요. 그보다는 더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간이나 배치에 더 신경을 쓸 겁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시스템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 믿으니까요.
그럼에도 오디오가 꼭 소리가 다는 아니라는 것에 동감합니다. 좋은 오디오 시스템이 디자인도 괜찮고 내구성도 좋습니다. 들여다놓으면 폼도 납니다. 재력만 된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 없습니다. 이에 관해, 제가 음악을 다시 듣게되는데 가장 큰 공을 한, 현카피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저는 인용한 문장처럼 제품간 차이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글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현카피님도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구별할 수 있을만큼 차이가 없다'는 것이 실험의 결과입니다.
만약 어떤 이가 "실제 맛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내가 청자잔으로 술을 마시는 건 내게 아주 우아하고 고급스런 느낌을 준다" 한다면 그건 심미주의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 일이고, 누가 뭐라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청자잔이 실제로 화학적으로 작용하여 맛을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값비싼 청자잔을 무리해서라도 구입한다"고 한다면 이때는 누군가 "청자잔이 실제 당신이 마시는 술을 화학적으로(차이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바꾸어놓은 것은 아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건 상대의 심미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사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결국 선택은 개인의 몫입니다. 그래도 많은 경우 제품간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지요. "과학적 사실은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독자성과는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그렇지 않고 믿는대로 종교적 주장을 되풀이 한다면 논쟁의 끝은 안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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