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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리고 글'에 해당되는 글 87건
2014. 3. 20. 12:31
올해 책에 대해 두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는 일주일에 한권은 읽는 것입니다. 안되면 전에 읽은 만화책이라도 꺼내서 숫자를 채우자고 했습니다. 방금 세어보니 올해 열권의 책을 읽었고, 읽고 있는 책은 25% 정도 남았습니다. 얼추 목표대로 가고 있습니다 ^^ 

두번째는 안 읽은 책 다 읽기 전 책 사지 말자입니다. 근데 어느새 구입 일곱권. 선물 받은게 세권. 결국 가지고 있는 안 읽은 책의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는 ㅡ.ㅡ 

(어느쪽으로든) 분발해야겠습니다 ^^

현재까지 읽은 책 목록입니다. 읽은 순서대로입니다. 

1. 나의 노래, 우리들의 이야기 - 윤형주
2. 꾿빠이 이상 - 김연수
3. 나과장의 에버노트 분투기 - 삼정
4. 특허로 경영하라 - 엄정한, 유철현
5. 손자병법 특허병법 - 이민재
6.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김태원
7. 특허전쟁 - 정우성, 윤락근
8. 삶을 위한 철학 수업 - 이진경
9.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10. 거대한 사기극 - 이원석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말콤 글래드웰의 Tipping Point입니다. 



2014. 2. 26. 12:42
밤이 선생이다 - 8점
황현산 지음/난다

이 책의 선택은 전적으로 <문학 이야기> 팟캐스트 덕분이다. 책이 나왔을 때 <문학 이야기>에 소개도 되었고, 황현산 선생이 직접 출현도 했다. 진행자인 신형철 평론가의 극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저자의 진솔하고 깊이 있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렇게 삶과 문학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는 분의 글이라면 믿고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은 저자가 다른 매체에 실렸던 글을 모은 거다.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진다. 1부에는 어딘가 (한겨례 신문?) 정기적으로 쓴 글을, 2부에는 사진에 대한 평을, 그리고 3부에는 여타 다른 매체에 쓴 글이 담겨 있다. 문학에 관한 논문이나 문학비평이 아닌 글로는 처음 엮는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불문학자로 시 평론가로, 그리고 번역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여러분야에서 많은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듯 하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나? 첫 몇 글을 읽고 당혹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짜임새 있게 연결되는 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저자의 글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세쪽, 길어야 네쪽에 끝나는 짧은 글인데 이야기가 계속 바뀌는 거다. 그것도 앞 이야기가 뒷 이야기를 자연스레 끄집어낸다기보다 샛길로 샌다는 느낌이 들고, 또 마지막 결론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게 저자 글의 특징인지, 아니면 문학 평론이 원래 이런식인지 모르겠지만 글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정도다. 뒤로 갈수록 그런 느낌이 덜 들어 다행이었지만.  

짜임새에 대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각 단락만 놓고 보면 너무 좋다. 문학적이라는 상투적 표현이 아까운, 깊이 있고 세밀한 문장들이 가득하기에 열심히 밑줄을 치며 읽게 된다. 따라할 수 없이 아름다운 문장들이다. 그중 몇개 단락을 소개한다. 

"그래서 몽유도원도의 관람은 일종의 순례행렬이 되었다. 사람들은 반드시 몽유도원도가 아니라 해도 위대한 어떤 것에 존경을 바치려 했으며, 이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고 싶어했다. 저마다 자기들이 서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랐고, 자신의 끈기로 그것을 증명했다. 특별한 것은 사실 그 끈기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두텁고 불투명한 일상과 비루한 삶의 시간을 헤치고 저마다의 믿음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아흐레동안 국림중앙박물관의 광장에 구절양장을 그린 긴 행렬은 이 삶을 다른 삶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의 끈질긴 시위였다." - 몽유도원도 관람기, p27.

"정작 비극은 그다음에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청소된 후) 올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 p33

"시인이 제 몸을 상해가며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새로운 깊이에서 통찰한다는 것이며,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한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 시가 무슨 소용인가, p184.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 대한 지식도 쌓을 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새삼스레 말해야겠다." - 먹는 정성, 만드는 정성, p218. 

이 아름다운 문장들은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에서 나온듯 하다. 특히 2부 사진에 대한 평은 멋지다. 사진에 담겨있는 혹은 담겨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세밀한 성찰은 정작 사진보다도 풍성하다.

황현산 선생의 글을 또 찾아보고 싶다. 문학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적이 없었던 내게 선생이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2014. 1. 26. 14:47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10점
김태원 지음/지식노마드

블로깅을 하며 오래 교제하며 많이 배웠던 inuit님의 첫 책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를 오늘에야 마쳤다. 2009년에 나온 책을 이듬해인가 한국 가는 길에 사와서 반쯤 읽다 공부에 치이고 뭐에 치이며 마무리를 못했던 것을 최근에 다시 꺼내어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진작 읽었다면 실수를 덜 했을텐데.

글을 읽으며, 또 만나서 대화를 나누며, '디지탈 시대의 선비'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분이라 생각했다. 깊이 있는 인격에 품위 있는 표현. 그럼에도 통상적인 '선비' 이미지만 생각한다면 inuit님을 반쯤 이해하는 것이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추진력까지 갖추었기 때문이다. 

책을 쓸 시간이 없어 토요일마다 밤을 새워서 쓴 이 책에는 inuit님이 오랜 기간 직장 생활과 컨설팅, 그리고 협상 경험을 통해 얻은 소중한 노하우가 담겨있다. 평소 블로그를 통해 세계 각국을 누비며 비즈니스 하는 모습을 봐왔기에 책의 내용이 더 믿음이 간다. 간접 경험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책은 뇌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뇌는 계속 진화되어 왔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은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구뇌, 즉 도마뱀의 뇌라 불리는 정서적 뇌가 좌우한다는 것이다. 직관을 좌우하는 도마뱀의 뇌에 속삭일 수 있어야 'Yes!'라는 답을 듣게 되는 것이다. (사족이지만, 책 쓰기 전 inuit님이 뇌에 대한 책을 정말 많이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며 왜 그랬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 도마뱀의 뇌에 어떻게 속삭일까? 저자는 WHISPer의 원리를 소개한다. Wake-Up 구뇌를 깨워라. Hot 뛸 듯이 생생하라. Interest 이익을 보여줘라. Story 이야기로 전하라. Persona 가면 쓴 도마뱀. 이중 Persona만 이성의 영역이고 앞의 네가지는 감성의 영역이다. 자극을 주며, 생생하게, 이익을 제시하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 심리학, 논리학, 수사학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설명된 원리를 어떻게 적용할까? 저자는 커뮤니케이션을 단방향인지 양방향인지, 또한 정보중심인지 이익중심인지에 따라 주장, 대화, 설득, 협상의 네가지 영역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 영역별로 WHISP 원리에 따라 어떻게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설명한다. 프레젠테이션, 글쓰기, 이메일, 이력서, 면접, 보고, 대화, 회의, 협상 등 비즈니스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다 언급되어 있다. 수단별로 이론에 근거하고 체험으로 실증된 소중한 메시지들이 담겨있다.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WHISPer의 원리를 설명하고, 주장, 대화, 설득, 협상에 적용하는 전체적인 짜임새가 일품이다. 각 주제별로 깊이 들어가는 것보다 '전체를 보는 안목과 근본 원리를 꿰뚫는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다. 각 장을 요약으로 시작하고, 다음장의 주제를 소개하며 마무리하는 구조도 WHISP 이론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간략한 문장마다 메시지가 상당하기에, 270쪽의 크지 않은 분량에도 계속해서 들추어 보고 익히고 싶은 상당한 내용이 담겨있다.   


마켓팅이 부족했는지 이 좋은 책이 1쇄에 머물러 있다 한다. 절판은 아닌지라 아직 책을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 혼자서 텃밭 가꾸며 자급자족할 것 아니라면, 누구와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길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저자의 '첫 책'이라 소개한 건 의도적이었다. 이렇게 멋진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한 권만 내고 멈추어서야 되겠는가. inuit님의 다음 책을 기대해본다 ^^   




2014. 1. 21. 05:45
손자병법에서 배우다 - 10점
이민재 지음/북콘서트

특허로 경영하라 - 8점
엄정한.유철현 지음/클라우드북스

특허에 관한 두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두권다 정성스럽게 쓰였고, 유익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특허에 관해 다른 분야를 다루기에 같이 읽으면 상호 보완이 되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특허가 왜 중요한지, 특허를 통해 어떻게 보호받고, 어떻게 특허를 관리할지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손자병법 특허병법>은 손자병법에서 제시한 전략을 특허라는 콘텍스트에 적용한 책입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작전임을 강조하며, 어떻게 특허전쟁에서 자신을 보호하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말합니다.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의 지재권보호 경영본부장으로 활동하시는 이민재라는 분이 쓴 책으로, 25년 넘게 회사에서 또 협회에서 일하신 분답게 풍부한 실전 지식이 담겨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각 전략별로 이에 잘 맞는 실제 케이스를 담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들 잘 아는 지피지기 백전불패는 서울 반도체가 니치아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냈는가로 설명하며, 싸움터에 늦게 도착한 쪽이 사용할 전략은 기븐이미징과 인트로메딕의 분쟁을 통해서 담아냅니다. 대부분의 케이스가 한국 회사가 관련되어 읽는 흥미가 더해집니다. 또한 분쟁의 현장에 있거나 아니면 당사자에게 듣지 않고는 모를 생생한 이야기들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손자병법 특허병법>이 역사책이나 사례집 같은 느낌이라면 <특허로 경영하라>는 회사가 특허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매뉴얼 같습니다. BLT 특허법률 사무소의 엄정한 유철현 두변리사가 같이 쓴 책으로 역시 오랜 경험에서 나옴직한 실제적 지침들이 도움이 됩니다. 

1장은 왜 특허 경영이 필요한가를 설명합니다. 애플과 삼성으로 대표되는 특허를 둘러싼 특허전쟁을 소개하며, 그 회사들이 왜 특허를 중요시하게 되었는지의 동기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책은 도입단계 - 양적확대 - 질적확대 - 특허경영의 특허를 경영에 사용하는 4단계를 설명합니다. 각 단계별로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하는지,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지 담겨 있습니다. 특히 단계별로 연구원, 경영지원팀, 경영팀, 그리고 외부인력(변리사)이 해야할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책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장 가져다 매뉴얼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이론적인 부분에서 새로 알게된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특허변호사잖아요 ^^) 하지만 이론이 실제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실제 사례들은 어떤게 있는지 넓게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또 로스쿨 다니면서 저널에 단편적으로 실린 관련 내용들만 봐왔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정리해주는 책은 처음입니다. 

한권만 읽어보라면 <손자병법 특허병법> 쪽에 기울겠지만, 특허를 어떻게 활용할지 방안을 찾는다면 <특허로 경영하라>도 꼭 같이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2014. 1. 12. 14:46
꾿빠이, 이상 - 8점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얼마전부터 문학과 책에 관련된 팟캐스트를 들으며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어 새해 두번째 책으로 선택했다.


이 소설을 쓴 김 연수는 차세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젊은 작가들중 두드러진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라는 작품을 들고 문학이야기라는 팟캐스트에 나왔는데, 글에 대한 그의 열정이 느껴졌다. 저렇게 치열하게 사색하고 글을 쓴다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꾿빠이 이상은 김연수의 작품중 처음으로 접한 소실이다. "김연수의 대표작은 최신작이다"라는 평을 듣는 작가이기에 2001년에 쓰여진 꾿빠이 이상보다 최근 작품들이 당연히 더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꾿빠이 이상은 충분한 책읽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소설은 천재 작가 이상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명의 각기 다른 화자가 일인칭으로 말을 하는 형식. 문예지에서 일하며 이상의 데드마스크 사건에 연루된 김연화 기자. 평생 이상이 되고자 그의 자취를 좇은 서민혁. 중국인으로 미국에서 자라 한국문학을 전공한 피터주. 이렇게 세명이다. 직업이나 환경이 다른 이들을 이어준 건 이상이다. 그들 모두 이상을 둘러싼 어떤 진술에 대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한가지를 정해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소설은 끊임없이 진짜와 가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가짜냐 진짜냐의 문제가 아니"다. "진위와는 무관하게 모든 정황이 진짜라면 진짜인 것이고 모든 정황이 가짜라면 가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의 중심에는 이상이 있다. 정확하게는 천재작가 이상과 현실의 삶을 살아내는 김해경이 있다. 김해경은 이상의 본명이다. 이상과 김해경은 같은 사람이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의 좌우가 바뀌듯 다른 인물이다. 전망 좋은 총독부 기수직의 이학박사 지망생 김해경과 기행을 일삼는 천재 작가 이상의 불일치는,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와 그의 최후에 대한 증언의 불일치로 확장된다. 이상의 데드 마스크와 오감도 16호는 진짜와 가짜에 대한 논란을 증폭하는 기제로 등장한다.


무엇이 진짜일까? 아니 무엇을 진짜라 생각하며 살아가야할까? 사실 진짜라 믿는 것중 진짜가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어릴적의 기억이 그렇다.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어쩌다 그렇게 생각해 왔고 이젠 의심조차하지 않는 그런 기억.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반론을 아무도 할 수 없는 기억. 그러면 그건 진짜가 되는 거다. 어디 기억뿐일까? 진짜가 아니라도 진짜로 믿을 수 있으면 진짜가 아니겠는가.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가짜임을 증명할 수 없더라도 가짜는 가짜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우리가 무엇을 믿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소설은 던지고 있다.


꾿빠이 이상은 재밌다. 무엇보다 이상에 대한 알찬 지식들이 작가 김연수의 상상력 속에 씨줄 날줄로 연결되어 있다. "1백여개의 조각"으로 "1천개의 조각이 필요한 퍼즐"을 만들어 그 빈칸을 이야기로 채워 넣었다. 그런데 그 1백여개의 조각도 엄청나다. 이상이 남긴 모든 작품과 지인들의 기록까지 오랫동안 샅샅이 뒤져야 했을 거다. 이 모든 조사를 작가 혼자 다 했을까? 아니면 다른 연구가들의 결과물을 짜맞추어 활용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직접 다 했다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아쉬움도 있다. 이야기의 짜임새가 2% 부족한듯. 예를 들어, 데드마스크가 가짜라는 정보를 김연화 기자에게 알려준 정씨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서민혁의 동생이라면 굳이 데드마스크 말고 서민혁의 수기에 나온 오감도 16호를 팔려고 할 것 같다. 오감도 16호에 대한 결론이 누군가의 말한마디로 너무 쉽게 내려진다. 김해경이 이상과 작별하려 하지 않았을까라는 떡밥은 너무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이상에 대한 방대한 조사에 걸맞는 완벽한 이야기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세명의 화자중 제일 마음에 와닿는 사람은 서민혁이다. "글을 베껴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이상의 삶까지 흉내냈"던, "김해경이 죽어 이상이 되는 그 비밀을" 알았다고 믿으며 "영원히 이상으로 다시 사는 길"을 죽음으로 이루려 했던. 그럼에도 결국은 이루지 못했던 인물.


우리는 모두 내가 아닌 누군가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오늘 내가 남긴 글. 오늘 내가 건넨 말. 그것들이 정말 내 진짜 모습인가? 그렇게 되고 싶은 누군가는 아닌가? 그렇게 기억되고 싶기에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김해경은 이상을 만들고, 죽음으로 이상을 이루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상을 기억한다.


누가 진짜인가? 이상? 김해경? 그게 중요한가? 난 둘 다 진짜라 생각한다. 사람 안에는 여러 모습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일본 작가는 사람은 Individual보다는 Dividual이라는 말을 했다. 나누어지지 않는 인간이 아니라 나누어질 수 있는 인간. 내 안에는 여럿의 내가 있다. 그 모든 '내'가 '나'다. 어떤 나는 좋아하고 어떤 나는 싫어할 수 있다. 어떤 나는 숨어있다가 나중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상도 김해경도 모두 진짜다. 그 중 누구를 '더 진짜'로 삼느냐는 믿음의 차원이다.


230쪽 정도의 분량이지만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다. 앞에서 지적한 이야기의 아쉬움은 있지만, 많은 정보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분 좋은 지적 유희였다. 책을 다 읽고 가지고 있던 이상선집을 찾았는데 없다. 여러번 이사 속에 버려졌나 보다. 검색해 보니 이상 전집이 나왔던데 조만간 구입할듯 ^^



2014. 1. 4. 07:17
나의 노래, 우리들의 이야기 - 8점
윤형주 지음/삼인


2013년 11월 이틀에 걸쳐 방송을 통해서만 보던 가수 윤형주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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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윤형주 장로를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트윈폴리오, 그리고 세시봉 멤버로 알려진 가수 윤형주씨입니다. 제가 속한 온누리 교회의 장로이기에 윤형주 장로라는 호칭이 저는 더 편합니다. 


오랫동안 매스컴에 노출된 지라 사실 가수 윤형주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많이 없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그분을 알고 있었지요. 온누리 교회 장로이긴 하지만, 저는 보스톤 소속이기에 한국 온누리 장로를 볼 기회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틀 동안 소규모 인원과의 아침 식사, 개인적인 점심식사, 두 번의 집회, 또 소규모의 저녁 식사등으로 가까이서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전 소위 유명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인적 성숙과 상관없이 주어진 유명세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위험이 있고 또 그런 사람을 접했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선입견이 깨졌습니다. 아니 솔직히 반했습니다. 저 보통 이런 표현, 특히 남자한테, 쓰지 않습니다. ^^ 


윤장로님은 매우 편하게 사람을 대했습니다. 유머도 넘치구요. 저희 교회 목사님에게서 미리 들으셨겠지만, 아침 식사에 모인 여섯명의 이름을 듣고 인적 사항을 기억해내더군요. 참 대단하다 싶었는데 그 비밀은 노트에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 전에 커다란 대학 노트를 꺼내더니 만난 장소, 만난 사람과 자녀의 이름, 기타 기억할 내용을 깨알같은 글씨로 기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인상 깊어 허락하에 사진도 찍었습니다. 저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노트와 펜을 항상 들고 다닙니다. 그렇기에 그 정도 기록을 남기는게 보통의 내공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실한 자기 관리 없이 될 수 없는 일이지요. 


개인적인 문제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숨기고 싶을 수도 있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제 문제를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제 아이들 둘다 이름과 상황을 기억하고, 이름 적어서 사인을 주고, 또 마지막까지 물어보는 모습은 장로라는 위치 때문에 보이는 의례적인 관심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75년도 대마초 사건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 조금만 신경썼어도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감옥에 가게된 건 "하나님이 보내시려면 어떻게든 가게 되기" 때문이라 말하더군요. 하나님이 광야로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으면 피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 감옥에서 그분은 성경을 통해 평생 함께 하는 친구, 즉 에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교도소 전도, 청소년 사역, 그리고 해비타트 집지어 주기 등을 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집회를 통해 말씀도 전하구요. 이번에도 신체적인 무리에 건강이 안좋은 상태에서도 멀리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평가하기 위해서는 육십은 넘어야하나 봅니다. 중간에 닥치는 시련 혹은 저지른 실수는 오히려 사람을 성장시키는데 쓰여지는 필요한 훈련이니까요. 그런면에서 윤장로님은 훈련을 너무나 잘 통과했습니다. 아무나 그럴 수 있는게 아니구요. 


저와 20년 차이더군요. 생일도 비슷합니다. 20년 후에 제가 그 정도의 성숙함과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지 자신 없습니다. 그럼에도 소망을 봅니다. 당장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를 믿는 모든 이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그를 통해서 보았으니까요. 매일 예수님과 동행하며 한걸음씩 나아갈 때 제 모습도 예수님을 조금씩 닮아갈 거라 믿습니다. 


이틀의 시간을 통해 얼마나 친해질 수 있겠냐만 그래도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왠지 한국 방문때 전화 걸어서 밥한끼 사주세요 말을 해도 흔쾌히 응답하실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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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때의 인연으로 선물 받은 것입니다 ^^V 저희 부부의 이름을 적어 마지막 만남에 주시더군요. 그리고 읽을 시기를 찾다가 2014년 첫 책으로 읽었습니다. 이미 글쓴 이에게 반해 있는 상태라 ^^ 사심 없이 책을 평하기는 힘들겁니다. 그래도 올해의 첫 책이기에 짧은 평을 남깁니다.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 부분은 자전적인 글로 삶의 중요했던 열가지 장면을 적었습니다. 가장 주가 되는 부분이지요. 자전적인 글이라면 흔히 시대순으로 나열하는 것을 예상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맘에 들더군요. 첫 은퇴후 방송에 복귀하게된 사연,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에 갔을 때 자살을 생각하다 하나님을 만난 것, 씨엠송을 통한 재기, 사업 실패후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아내와의 만남, 아들의 조기 유학과 장로 장립을 통해 아버지를 기억하는 모습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진솔하면서도 편안하게 적혀있습니다. 카네키 공연을 하며 겪었던 가족간의 갈등과 화합의 모습은 너무 부럽더군요. 


다음 부분은 가수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송창식, 조영남, 김세환, 양희은, 김민기 등 한 세대를 풍미했던 그들과의 인연과 일반인이 모르는 그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등장하는 모두 방송에서 한번씩은 보았고, 양희은씨가 김민기씨 같은 경우 개인적으로 좋아하기에 즐겁게 읽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사진들이 실려있습니다. 일종의 부록이지요. 저자와 친구들의 예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책은 참 쉽게 읽힙니다. 두세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이 주는 공명은 큽니다. 


개인적으로 감옥에서의 회심후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예수를 만나 한바탕 운다고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 이렇게 적혀있네요. "감옥에서 놀라운 영적 체엄을 하고, 깨닫게 되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이 아닌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신앙적 각성이 현실의 막막함을 극복하게 해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불쑥 불쑥 이러다가 폐인으로 굳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럴 때면 더 미칠 것 같았다." 그 솔직한 고백이 참 좋으면서도, 이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용기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에 고마웠습니다.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양이 너무 적은 것 같아요. 더 읽고 싶었지만 벌써 책이 끝났습니다. 첫 부분에서 개별 사건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혀있지만 열개의 이야기만 다루기에 양이 적었고, 다음에 나오는 지인들의 이야기도 한명당 짧게는 세 페이지에 끝이 나서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가수, 디제이, 작곡가, 사업가, 장로, 그리고 사회봉사가로서 다양한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좀더 알고 싶거나 혹은 기독교 신앙이 삶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일을 하는가 알고 싶은 분은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2011. 8. 11. 05:18


2년전에 제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Getting Organized가 한국말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이 책을 만드신 지상사 편집부의 김청희님께서 책을 보내주셨네요. 제가 한 거라고는 블로그에 올라왔던 리뷰중 일부가 소개말로 인용된 것 밖에 없는데 이렇게 멀리까지 책을 보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내용은 같지만 느낌은 원서와 많이 다르더군요. 심플하지만 다소 건조한 느낌이었던 원서에 비해 번역판은 편집의 맛을 더해 눈에 더 잘 들어옵니다. 제목은 직장업무에 초점이 맞추어져 책의 내용을 제약하는 느낌이지만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추어 지은 거라고 하시더군요. 

인용된 소개말처럼 자기계발에 대해 딱 책 한권을 구입하고자 한다면 자신있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정리된 삶을 살게되길 바랍니다. 그런 면에서 저도 번역판으로 다시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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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21. 08:56
로스쿨 두번째 해를 마쳤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마음이 분주하고 심란하네요. 무엇보다 자신감의 상실이 가장 큰 문제인듯 합니다. 한동안 '자신감' 빼면 남는게 없었던 저였는데 몇년 안되어 이렇게 떨어져 버리니 저도 참 당황스럽더군요. 인정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구요. 

마음의 정리를 위해 다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미탄님이 소개한 모닝 페이지입니다. 어느 정도 싸이면 저도 미스토리를 쓰면서 정리를 해봐야겠습니다. 글을 쓰면서 느꼈던 즐거움도 회복했음하구요. 그런데 블로그에 공유할 수는 없겠지요 ^^ 

방학이 어느덧 한달 가까이 지나가 버렸네요. 이제 두달 남짓한 시간이라도 잘 보내려합니다. 작년처럼 후회하면 안될테니까요. 우선 글쓰기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2010. 7. 16. 02:44
요즘 글쓰기가 참 힘들고 두렵기까지 하네요. 근데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블로그 포스팅은 시작하기가 엄두가 안나고 하다못해 트위터의 140자 문장도 선뜻 써지지가 않네요.

글이라고까지 뭐하지만 전에 활동하던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전보다 많은 양의 글을 생산해냈습니다. 그러다 개인홈피를 거쳐 블로그까지 적지 않게 글을 써왔습니다. 최근 6년동안요. 근데 이런 적은 처음이예요.

뭔가 새로운 시간이 필요한듯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대신 사진을 찍습니다.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사진들이지만요. 

그냥 간략히 요즘 근황을 적어야할 것 같아서요 ㅡ.ㅡ


2009. 10. 12. 06:13
예수전 - 8점
김규항 지음/돌베개

장님이 먼나라로 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코끼리'라는 동물을 만져볼 기회가 있었다. 돌아와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전했다. '코끼리는 엄청 굵은 기둥과 같은 동물'이라고. 그때부터 동네 사람들은 코끼리는 기둥같은 동물이라 믿어왔다. 나중에 그 동네에 책이 한권 흘러들어왔다. 코끼리에 대한 책인데 오래전에 쓰여졌고, 작자는 있으되 정말 그 사람인지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책의 내용이 논란이다. 기둥같은 다리가 있다고 적혀있기는 한데, 구렁이 같은 코와 넓적한 귀도 있다는 것이다. 고민하던 동네 사람들이 결론을 내렸다. 기둥처럼 생긴 것이 코끼리의 본 모습이고 코와 귀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추가한 내용이라고.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를 좀 각색했다. 김규항의 예수전을 읽으며 이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거다. 작은 나라 변방에 태어나 3년간 지방무대에서 전전하다 중앙무대에 진입한지 일주일만에 잡혀서 죽은, 내노라할 만한 제자 하나 없는 목수의 아들이 있었다. 잊혀지는 것이 당연한 그런 삶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30년이 채 안되어 많은 사람이 그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그의 가르침이라는 성서를 쓰기 시작했다. 문제는 스승이나 제자나 사회적 유명인사는 아니었고, 공식기록도 없는데다, 오래전 일이다 보니, 어느게 진짜 가르침인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거다. 해석하는 이마다 원래의 가르침이라고 다른 것을 내어놓는다. 처한 상황에 따라 생긴 시각을 적용해 곁가지를 쳐내고 입맛에 맞는 '중요' 메시지만 남겨놓을 수도 있다.   

사실 어떤 관점으로 예수를 해석하려 하던 이를 지지할 수 있는 내용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철학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일례로 평생 결혼한 적 없는 예수지만, 결혼한 사람도 이혼한 사람도 예수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다. 이중 저자는 '죽음으로 내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 예수, 즉 신학과 교리 속에 갇힌' 종교적 예수를 버리고 '역사 속의 예수', 계급적 관점을 가졌던 다분히 정치적인 예수를 말했다. 가장 처음 쓰였기에 예수의 가르침에 근접할 것이라는 마가복음을 강독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나는 (이전에도 꾸준히 진행되어 왔던) 이런 시도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교회 속에 갇혀있는 예수는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예수는 분명히 말했다. 예수는 정치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정치적'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넒고 깊어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정치적 메시지를 제외한 종교적 메시지는 후세의 변질이라 쳐버린다. 그를 따르는 이들이 종교적 예수라고 포지셔닝을 했기에 종교적 예수가 된 것이고, 따라서 종교적 예수를 주장하는 메시지는 모두 이후에 추가되거나 변질된 것이라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런 식이다. 예수가 가르침을 전했다. 아쉽게 본인은 기록을 남기지 않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남긴 책 밖에 없다. 참고로 이 집단의 특징을 말하자면 순수성을 굉장히 강조한다는 거다. 조금이라도 해석을 달리하거나 다른 내용을 추가하면 저주를 하며 난리다. 그들이 남긴 기록은 예수의 죽음 이후 30년 이내부터 쓰여지기 시작했고 당대의 어느 기록물보다도 사본이 많이 남아 있으며, 사본간의 일치율도 뛰어나다. 그럼에도 이 기록들은 믿을 수가 없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거다. 자신들이 믿는데로 스승의 가르침을 변형시킨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같이 생활했고 그를 위해 목숨을 버린 이들의 기록을 무시하고) 예수 가르침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과연 그럴까?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가 없다.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기반으로 전체적인 이해를 해야지 미리 짜여진 틀을 가지고 재단하듯 맘에 드는 것만 남겨놓으면 안된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김규항은 '예수가 왜 죽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왜 그가 '정치적' 죽음을 당했는지 설명할 수 없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기에 영성가인, 사랑과 용서만을 주장하는 예수는 잘못된 것이라 단정한다. 하지만 나는 더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왜 죽으려고 했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왜 그토록 죽기를 원했는가를 설명할 수 없다면 예수를 이해할 수 없다.

나라의 독립을 오매불망 원하는 사람들이 '독립 기념일'을 맞이해 수도인 예루살렘에 모여있다. 그곳에 지방에서 활동하던, 독립을 가져다 줄 메시야라 소문난, 예수가 찾아온다. 이전에도 여러명의 '자칭' 메시야가 있었지만 사기꾼으로 판명되어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다르다. 능력도 있고 믿을 만하다. 이제 때가 되었구나. 드디어 독립이 되는구나 사람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그런데 정작 예수의 모습은 다르다. 혁명에 대한 의지도 없고, 죽기라도 작정한 것처럼 지도층과 마찰을 일으킨다. 안전에 대한 고려도 없고 '내가 하나님(I AM)이다'라며 신성모독을 저지르며, 재판정에 잡혀와서도 '내가 그리스도다'라는 말로 죽음을 자초한다. 마지막 일주일 예수의 행적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이렇게 죽기를 원하는 예수의 행동을 '계급적' 혹은 '정치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개)죽음이 예상되는 상황에 왜 예수는 그렇게 자신을 몰아 넣었을까? 무엇을 위해서?

(종교적인) 초월적 존재로서의 예수를 빼버렸기에 부활에 대해서도 정면승부를 할 수가 없다. 부활이라는 비논리적 사건에 대해 직접적 설명보다 '문제는 예수의 부활이 사실인가가 아니라 부활이 무엇인가'를 논하면서 비껴갈 수 밖에 없다. 제자들은 예수가 말한 '진정한 목숨'의 의미를 깨달았기에, '예수가 죽지 않았다고, 영원히 살아있다고 외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했다. 스승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았기에 도망쳤던 제자들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기에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놓았던 거라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눔의 원리'만을 남겨놓는 '오병이어'에 대한 어정쩡한 해석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예수의 '정치적' 죽음에 결정적 증거 노릇을 한 '나는 그리스도'라는 발언에 대해 별다른 해석없이 넘어가는 부분에서는 당혹감마저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김규항을 좋아한다. 그의 글을 좋아하고 그의 생각을 좋아한다. 몇년에 걸쳐 그의 글은 하나도 빼어놓지 않고 읽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이용해 교회를 키우고 제왕적 권위를 즐기다 자식에게 넘겨주는 일부 목사들보다 김규항이 하나님 나라에 더 가까울 것이다. 간통 목사들은 비교할 가치도 없고. 그럼에도 이 책에 나타난 예수에 대한 그의 이해는 편협하다. '예수전'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닌 '예수의 말을 인용한 김규항의 세계관'이다.   

하긴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는 예수의 가르침 때문이다. 중간 어디쯤으로 해석하려는 어떤 시도든 무리수를 낳을 수 밖에 없다.

몇년전 신앙의 갈등을 겪고 있던 때 시절 쓴 글이 있다. 거기서 C.S 루이스의 다음 문장을 인용했다.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정말 멍청한 말이 있다. 난 그 말이 다시는 안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인 선생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를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이 말은 정말 말이 안되는 말이다. 만약 그저 인간이기만 한 어떤 사람이 예수와 같은 말을 한다면 그는 도덕적 선생이 될 수가 없다. 그는 미쳤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 정도 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한다. 이 예수라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아니면 정신병자 혹은 그보다 더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우리는 그를 미쳤다고 입을 다물게 하고, 침을 뱉고, 혹은 그를 죽여버릴 수가 있다. 아니면 그의 발에 엎드려 그를 주님 혹은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잘봐주는 척 하면서 예수가 위대한 스승이라고 하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말을 해서는 안된다. 예수는 그런 선택권을 남겨주지 않았다. 그는 절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를 주로 인정하고 굴복하던지 정신병자라고 무시하던지 둘 중 하나다. 이도 저도 아니면서 그 주위에 머무르는 것은 시간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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