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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7 10:20
'대체 나에게 왜 이런 재수 없는 일이?'하는 상황도 곰곰히 돌아보면 몇번의 '만약에'하는 순간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만약 이 순간에 좀 더 조심했다면,' '만약 그 사람에게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면,' 등등. 

실수에서 배운다는 것은 그 '만약에'하는 순간들이 다시 돌아올 때 이번에는 다른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이의 실수는 쉽게 잊어버리더라도, 자신의 실수는 오래 기억하며 곱씹어봐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거다. 

곁다리지만, 모든게 마음먹기 달렸다던가 과거와 현재는 잊고 현재에 집중하라는 가르침을 달가와하지 않는 것이 이런 이유다. 현실은 내버려두고 자기 최면을 통해 얻는 행복이 행복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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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7 06:02

크리스찬은 답을 가진 사람들이다. 최소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도, 어떠한 궁지에 처해 있어도 의지하면 해결해 줄 분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렇기에 고난도 감사함으로 지날 수 있고, 절망함이 마땅한 상황에도 희망을 붙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때로 다른 이의 아픔에 둔감하다. 같은 상황에도 체감하는 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겪었던 상황은 어떤 이에게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려움일 수도 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지할 분이 있었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최근 몇달동안 자살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의 시작은 문학이었다. 자살하는 사람에 대한 소설을 읽고 평을 들었다. 처음 든 생각은 그들의 선택은 틀렸다였다. 하지만 문득 내가 너무 쉽게 답을 던지고 있구나 깨달았다. 

세모녀의 자살이 있었다. 노동당 부대표도 자살하고, 장애인도 자살했다. 공부하던 학생도 자살하고, 답을 가르치던 목사도 자살했다고 한다. 그들이라고 살고 싶지 않았겠는가. 세상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눈 앞에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벌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답은 정답이다. 내가 가진 그 답을 나누고 싶다. 힘들어 하는 이들이 내가 간직한 소망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게 도와주고 싶다. 그러나, 아픔에 대한 동감 없이 쉽게 던지는 해결책은 또 다른 폭력이다. 현실은 그대로 개판인데 잘 될거라는 어설픈 위로는 공허하다. 왜 포기해 노력하면 되잖아라는 충고는 애써 잡고 있던 끈마저 놓아버리게 할 수 있다. 믿고 기도하자는 말은 아직 답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답이 아닌 거다. 

더 민감해야겠다. 내가 가진 답을 제시하기 전에, 아픔을 같이 느끼는 것이 먼저다. 그게 시작이다. 

...

갑자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치시는 곳까지 자신을 낮추신 그 분의 마음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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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7 06:00
순종 - 4점
존 비비어 지음, 윤종석 옮김/두란노

존 비비어가 쓴 <순종>이라는 책을 2장까지 읽고 덮었다. 너무 바쁜 일이 생기거나, 지쳤거나 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책을 읽는 나로서는 더 이상 읽을 가치가 없다며 책을 덮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하물며 기독교 서적을 그렇게 판단하는 적은 거의 없다. 


이 책의 주장은 이거다. 우리는 1)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고 2) 하나님이 세운 인간 권위에 순종해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에 비추어 인간 권위에 대한 순종하자는 것도 아니고, 권위를 보좌하는 직책에 있다면 그 권위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목사를 포함 모든 인간 권위는 하나님이 세운 것이기에 이에 대한 불순종은 "곧"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라 말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 개인의 신앙이 훈련될 수 있다는 건데, 그 훈련 과정에 피해받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자는 건지 아무 말이 없다. 예를 들어 8개월 동안 준비한 고등부의 셀모임을, 단지 담임 목사가 '성령이 원하시지 않으니 우리 교회는 셀모임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금지했다고 순종했고, 이를 통해 순종의 원리를 배웠다는 것이다. 그 고등부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었을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 모임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성경에는 권위에 순종한 경우도 있지만, 권위에 불순종한 경우도 많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을 비비어는 순종이라 생각하는데, 정말 순종했다면 순순히 사울에게 죽임을 당했어야 할 것이다. 아버지며 왕인 사울을 배반한 요나단의 불순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제사장 앞에서 예수님이 변명하지 않은 것도 순종이라 말하는데, 예수님은 당시 지배세력에 무엇보다 더한 불순종을 한 것이었다. 권위에 대한 무조건 순종을 지켰다면, 저자가 속한 기독교도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논리적 모순에 대한 고민은 전혀 안 보인다. 

실로 한국 목사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다. 쌍수를 들고 좋아하며 추천했을 거 같다. 이렇게 교인들을 세뇌시켜왔기에 조용기나 오정현 같은 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 책대로라면 조용기의 횡령을 도와주는게 마땅한 순종의 훈련이니까 말이다.  

하나님은 상식을 초월한 분이지 상식을 벗어난 분은 아니다. 대장이 옳든 그르든 무조건 순종해야한다는 것을 요구하실 분인지 조금만 생각하면 알지 않겠나. 만약 그렇게 상식을 벗어났다면 나부터 벌써 미련없이 떠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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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0 12:31
올해 책에 대해 두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는 일주일에 한권은 읽는 것입니다. 안되면 전에 읽은 만화책이라도 꺼내서 숫자를 채우자고 했습니다. 방금 세어보니 올해 열권의 책을 읽었고, 읽고 있는 책은 25% 정도 남았습니다. 얼추 목표대로 가고 있습니다 ^^ 

두번째는 안 읽은 책 다 읽기 전 책 사지 말자입니다. 근데 어느새 구입 일곱권. 선물 받은게 세권. 결국 가지고 있는 안 읽은 책의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는 ㅡ.ㅡ 

(어느쪽으로든) 분발해야겠습니다 ^^

현재까지 읽은 책 목록입니다. 읽은 순서대로입니다. 

1. 나의 노래, 우리들의 이야기 - 윤형주
2. 꾿빠이 이상 - 김연수
3. 나과장의 에버노트 분투기 - 삼정
4. 특허로 경영하라 - 엄정한, 유철현
5. 손자병법 특허병법 - 이민재
6.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김태원
7. 특허전쟁 - 정우성, 윤락근
8. 삶을 위한 철학 수업 - 이진경
9.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10. 거대한 사기극 - 이원석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말콤 글래드웰의 Tipping Poin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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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Icon inuit | 2014/03/21 20: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앗.. 재 책도 있군요. 전에 페북 포스팅하셨던...
감사합니다 . ^^
BlogIcon 쉐아르 | 2014/03/24 08:32 | PERMALINK | EDIT/DEL
inuit님. 블로그 댓글로 인사 나누는게 얼마만인지요 ^^ 잘 지내시죠? 자회사를 맡으시면서 너무 바쁘게 지내시는 것 같습니다. 책은 오래전에 구입했고, 반정도 읽었었다가 올해 다시 읽었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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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0 05:02

자기계발은 '잘' 살기 위한 여정이다. '잘' 산다는 것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고 (꼰대스럽게 말한다면) 훌륭하게 사는 것이다. 훌륭하게 사는 것은 이룰 수 없는 목표다. 날마다 내 안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성찰하며,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루어야 하지만, 이룰 수는 없는, 그럼에도 이루려 노력할 가치가 있는 목표다지향점이나 동인은 다르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화'도 같은 과정으로 본다. 


세상이 지랄 같아져 '잘' 산다 하면 곧 부와 성공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이 자기계발서에서 바라는 것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자기계발이란 개인의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듭 말해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계발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최소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원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지금 처한 상황이 내 잘못이든 불의한 사회의 책임이든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것. 그것이 자기계발이다. 


스티븐 코비의 일곱가지 습관은 '주도적이 되라'로 시작한다. 주도적이 되는 것은 나에게 영향을 주는 영역인 '관심의 원' 대신에 내가 영향을 줄 수 있는 '영향력의 원'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자는 거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잊어버리라 해석될 수 있다. 눈 앞에 보이는 일, 가족, 돈, 공부 이런 일에 집중하고, 정치나 국가 경제, 멀리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영향력 밖이므로 신경쓰지 말라고 이해될 수 있다. 같은 선에서 , 사회나 국가가 아니고, 개인이 자기계발의 의무를 가지고 책임을 져야한다. 노력하지 않아 실패하는 이는 동정할 필요가 없다. 앞에서 말한 자기계발이 비판 받는 이유이다.  


맞는 말이다. 영향력의 원과 관심의 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시각으로 본다면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또 그렇게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혹은(OR)'의 문제로 바라봐야하나? '그리고(AND)'의 시각으로 바라볼 순 없나? 


짐 콜린스는 그의 책 <Build to Last>에서 '그리고의 천재 (Genius of the And)'라는 말을 소개했다. 위대한 기업들은 핵심 분야를 공고히 하면서 동시에 미래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광하는 조직을 만들면서도 고객만족에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한쪽의 시각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컨텍스트는 다르지만, 같은 시각을 여기에도 적용하고 싶다. 자기계발에 대한 비판은 사회대 개인의 대립구조의 시각을 가질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청년실업이 왜 개인의 문제냐, 국가와 기성세대의 책임이지 이런 식이다. 물론 청년실업은 국가와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은 가만히 있을건가? 국가가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개선할 책임이 있다면, 개인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을 계발할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각자 처한바에 따라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의 시각이 필요한 이유다. 사회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고 개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관심의 원'과 '영향력의 원'이 고정되어 있는 개념도 아니다. 지금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도 꾸준한 관심과 노력을 통해 '영향력의 원'에 들어오게 할 수 있다. 오랫동안의 기자 경력을 바탕으로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을 보호하는 단체에서 활약할 수도 있고, 변호사 생활을 하다 사회적 불의를 없애기 위해 정치에 나설 수도 있다. '배워서 남 주고' 싶어할 수 있는 거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는 것. 단점을 알고 극복함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지경에 이르는 것. 사회구조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며 자신을 성장시켜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는 그런 자기계발이 신자유주의의 지배도구라 할 수 있을까. 개인의 부와 성공이 목적이 아닌, 내가 성장함으로 주위와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삶이 훌륭한 삶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누구에게나 자기계발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도덕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알고 있을 당연한 이야기를 사서 읽어야 하는가 하는 거다. 자기계발이 필요하다고 그것이 자기계발서를 읽어야 할 이유인가? 당연히 아니다.  


성숙해지기 위한 교훈은 어디서든 얻을 수 있다. 굳이 자기계발서를 통해서만 얻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예를 들어, 습관에 대해 이해하고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고칠 방법에 대해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자신의 강점을 몇십년동안 쌓여진 통계 자료를 기반으로 상당한 정확도로 진단해줄 수 있다면. 마흔이 넘어선 늦은 나이에 멋진 새 인생을 만들어낸 사람들을 소개하며, 희망과 동시에 구체적 방향을 제시해 준다면. 이런 내용을 닮고 있는 책이 있다면 편의상 자기계발서로 분류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자기계발서냐 아니냐를 떠나 훌륭한 삶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이다. 이건 자기계발서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소설이든 인문학이든 옥과 석은 있게 마련이다. 


필요한 건 도움이 되는 '착한 자기계발서'와 사이비 혹은 새로울 것 없이 돈벌기만 위한 '나쁜 자기계발서'를 구별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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