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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 14. 23:22
지금 제가 다니는 회사에 다닌지 13년이 되었습니다. 회사 이름은 여러번 바뀌고, 여러번 팔리고, 살고 일하는 장소도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었지요. 그래도 변하지 않고 제가 참여해서 일했던 제품이 있습니다. 처음 고객사에 적용될 때 그 현장에 있었고, 그 제품의 상당 부분을 직접 개발도 했고,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조직이 그 제품 개발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13년의 시간을 그 제품을 빼놓고는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그랬던 제품이 몇번의 실수로 퇴출될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더이상 투자를 안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참 허탈하더군요. 아직도 가능성이 있는 제품인데, 일부의 문제로 전체에 대한 결정을 너무나 쉽게 내린 듯 해서요.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고 해서, 큰 타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맡고 있는 일이 그것만도 아니고, 제가 맡고 있던 조직도 능력을 인정받는 조직이기에 별 걱정은 안합니다. 하지만 제가 애정을 바쳐서 일을 해왔던 제품이 이런 상황에 처하니 많이 아쉽습니다.

이 제품을 위해서, 그리고 이를 담당하는 제 팀을 위해서 제 보스 한명을 나가게 한 적까지 있습니다. 몇년동안 계속되는 잘못된 결정으로 제가 일해왔던 제품이 망가져가는 것을 더 이상 보기가 힘들었지요. 그래서 그 사람을 내보내던지 내가 나가던지 하고 반기를 들었었죠. 결국 그 사람이 나갔습니다. 그 다음에 새로 조직을 담당한 사람에게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대로 가서는 심각한 상황에 다다를거라고요. 상황을 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다른 팀에 끌려다니지 말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한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끌려다니더군요. 안타깝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득을 거듭해서 결국 문제를 해결할 비밀팀을 만들고 그 팀을 이끈지 반달 정도 되었습니다. 당면한 문제를 일년내에 해결하고 화려하게 복귀할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투자를 안한다는 결정이 회사 차원에서 내려진 겁니다.

근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네요. 제품을 책임지는 제 보스까지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왜 이렇게 안타까워 하나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직이나 제품이나, 애정을 가지고 일해봐야 별 소용이 없는데 말입니다. 내 회사도 아니고, 책임감을 가진다고 아닌 말로 월급 더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냥 시키는 일만 해도 남들보다 성과 좋은데, 뭘 조바심 가지고 살 필요 있겠냐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회사와, 조직과, 제가 일해왔던 제품에 애정을 가지는 것은 결국 제 자신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한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이지요. 제가 하는 일이 단순히 돈벌기 위한 수단은 아니라는 저의 자존심입니다.

이런 결정으로 제가 실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회사 다닐 맘이 안생긴다느니 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고, 또 제가 그 정도로 어리지는 않으니까요 ^^;; 하지만 앞으로도 제가 하는 일에 애정을 쏟는 일은 계속 할 겁니다. 제가 맡고 있는 일이 최고라는 자부심도 계속 가질 거구요. 이미 결정은 내려졌지만, 그래도 제품을 살려볼려고 노력을 할 거구요. 미운 털이 박히더라도, 할 말은 할 생각입니다.

그 정도 자존심도 없으면 회사는 저에게 돈 버는 수단 밖에 안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