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19. 00:13
얼마전 신문에서 NHN USA의 김범수 대표가 8월말로 사임하고 남궁훈 COO에게 자리를 물려준다는 기사를 봤다.
한게임을 통해 새로운 세계을 만든 사람, 가장 성공한 벤처 기업인, 꿈꾸는 승부사. 김범수 대표에 대한 언론의 평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에 대한 기대, 내 자신에 대한 도전, 그리고 자격지심이 버무려진 복잡한 감정이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는 성공한 기업가 이전에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젊은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산공과에 같이 입학해, 같이 대학원에 갔다. 그는 92년에 SDS에 입사를 했고, 나는 육개월방위를 마친 후 93년에 SDS에 입사했다. SDS의 생활이 내가 원했던 것과는 다르기에 나는 94년 말에 자동화 솔루션을 만드는 한연테크라는 작은 회사로 이전했고, 그는 SDS에 계속 근무하며 유니텔을 통해 인터넷 사업에 진출하게 된다.
지금 돌아보면 우습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를 편하게 "범수야"라고 부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 NHN Japan의 천양현 대표가 교회 선배이면서 김범수 대표와 절친한 친구라는 것이다. 천대표에게는 형이라 부르며 그 친구인 김범수에게 반말하는 것이 어색해 난 한번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그만큼 소심했다. ^^)
98년이였던 것 같다. 동창 결혼식에서 나는 그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때 김대표는 게임에 관련된 사업을 할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평소에 게임을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나있던 나에게 게임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때 미국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한창 준비중이였고, 또 한편으로는 게임사업으로 내 진로를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을 했다. 내가 그때 그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는 더 성공했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친구가 만든 회사다 보니 관심이 있던 차에 최근에 나온 "이것이 네이버다"와 "네이버 성공신화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을 통해 김범수가 한게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는지 알게 되었다.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한명만 남았었다고 한다. 설사 내가 김대표와 같이 일을 했더라도 계속 그의 곁을 지킬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는 회사를 세우겠다는 꿈이 있었고, 그에 비해 나는 참 소박한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엄청나게 가입자가 늘어났지만, 무료 사이트의 한계를 알고 있던 그였기에 김대표는 네이버와의 합작을 이끌어냈다. 중국시장을 가치를 알기에 염려하는 사람이 많았음에도 천억을 투자해서 중국의 렌종을 인수한 것도 김대표의 승부수라고 한다. 일찍부터 NHN Japan과 USA를 만들어 몇년간에 걸쳐서 도전을 했고 이제 그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보면 왜 그를 승부사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한게임의 출발부터가 그렇다. 회사내 벤처부터 출발해 다소 안정적인 길을 밟았던 네이버의 이해진 대표와는 달리, 김범수는 SDS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전재산과 사채까지 끌어 게임방 사업을 시작했다. 게임방을 통해 안정된 자금을 확보후 바로 한게임을 시작한 그의 모든 경로가 흐름을 읽고 바로 승부수를 던지는 그의 결단의 결과였던 것이다.
학교에서 그는 어찌 보면 조용한 사람이였다. 굉장히 안정적이였다고 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이 대학생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미 그는 몇살 더 먹은 사람이 할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동네였기에 부모님끼리도 알고 지냈는데, 김대표가 과외로 번 돈을 어머니에게 주었는데, 너는 도데체 뭐하는 거냐라고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ㅡ.ㅡ;;;
네이버와의 합작후, 그의 행로는 많이 알려져 있다. 가장 성공한 인터넷 벤처 기업인으로, 또 게임 산업의 가장 큰 맏형으로 그가 감당해야할 몫은 굉장히 큰 것이였다. 미국 진출을 진두지휘 했으며, 이제 그는 일선에서 물러나며 또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그가 NHN에서 물러난 후 어떤 일을 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인터뷰 기사에는"벤처와 해외 사업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후배 벤처기업인들을 지원해 우리나라 벤처산업 활성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펼쳤다. 업계에서는 진짜 이유가 뭐냐라는 것에 대해 말들이 많은 가보다. 내부 알력설도 있고, 스스로 게임사업에 대한 감각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제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의 새로운 꿈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이제 회사 일에서 물러났다고 하니 여유가 더 생겼겠지. 한번 만나서 물어봐야겠다. 하지만 모든 걸 떠나서 나는 그가 쉬기 위해 물러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그랫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언제나 꿈꾸는 김범수로 남을 거라고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친구 중에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 그건 단순히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어찌 보면 같은 출발점이였지만 그 친구와 나의 모습은 현저히 다르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그와 내가 처한 위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내가 가졌던 꿈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다.
"꿈꾸는 자가 자유롭다." 이제 그의 좌우명을 내가 좀 빌려써야겠다 ^^
한게임을 통해 새로운 세계을 만든 사람, 가장 성공한 벤처 기업인, 꿈꾸는 승부사. 김범수 대표에 대한 언론의 평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에 대한 기대, 내 자신에 대한 도전, 그리고 자격지심이 버무려진 복잡한 감정이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는 성공한 기업가 이전에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젊은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산공과에 같이 입학해, 같이 대학원에 갔다. 그는 92년에 SDS에 입사를 했고, 나는 육개월방위를 마친 후 93년에 SDS에 입사했다. SDS의 생활이 내가 원했던 것과는 다르기에 나는 94년 말에 자동화 솔루션을 만드는 한연테크라는 작은 회사로 이전했고, 그는 SDS에 계속 근무하며 유니텔을 통해 인터넷 사업에 진출하게 된다.
지금 돌아보면 우습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를 편하게 "범수야"라고 부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 NHN Japan의 천양현 대표가 교회 선배이면서 김범수 대표와 절친한 친구라는 것이다. 천대표에게는 형이라 부르며 그 친구인 김범수에게 반말하는 것이 어색해 난 한번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그만큼 소심했다. ^^)
98년이였던 것 같다. 동창 결혼식에서 나는 그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때 김대표는 게임에 관련된 사업을 할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평소에 게임을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나있던 나에게 게임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때 미국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한창 준비중이였고, 또 한편으로는 게임사업으로 내 진로를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을 했다. 내가 그때 그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는 더 성공했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친구가 만든 회사다 보니 관심이 있던 차에 최근에 나온 "이것이 네이버다"와 "네이버 성공신화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을 통해 김범수가 한게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는지 알게 되었다.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한명만 남았었다고 한다. 설사 내가 김대표와 같이 일을 했더라도 계속 그의 곁을 지킬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는 회사를 세우겠다는 꿈이 있었고, 그에 비해 나는 참 소박한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엄청나게 가입자가 늘어났지만, 무료 사이트의 한계를 알고 있던 그였기에 김대표는 네이버와의 합작을 이끌어냈다. 중국시장을 가치를 알기에 염려하는 사람이 많았음에도 천억을 투자해서 중국의 렌종을 인수한 것도 김대표의 승부수라고 한다. 일찍부터 NHN Japan과 USA를 만들어 몇년간에 걸쳐서 도전을 했고 이제 그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보면 왜 그를 승부사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한게임의 출발부터가 그렇다. 회사내 벤처부터 출발해 다소 안정적인 길을 밟았던 네이버의 이해진 대표와는 달리, 김범수는 SDS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전재산과 사채까지 끌어 게임방 사업을 시작했다. 게임방을 통해 안정된 자금을 확보후 바로 한게임을 시작한 그의 모든 경로가 흐름을 읽고 바로 승부수를 던지는 그의 결단의 결과였던 것이다.
학교에서 그는 어찌 보면 조용한 사람이였다. 굉장히 안정적이였다고 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이 대학생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미 그는 몇살 더 먹은 사람이 할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동네였기에 부모님끼리도 알고 지냈는데, 김대표가 과외로 번 돈을 어머니에게 주었는데, 너는 도데체 뭐하는 거냐라고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ㅡ.ㅡ;;;
네이버와의 합작후, 그의 행로는 많이 알려져 있다. 가장 성공한 인터넷 벤처 기업인으로, 또 게임 산업의 가장 큰 맏형으로 그가 감당해야할 몫은 굉장히 큰 것이였다. 미국 진출을 진두지휘 했으며, 이제 그는 일선에서 물러나며 또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그가 NHN에서 물러난 후 어떤 일을 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인터뷰 기사에는"벤처와 해외 사업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후배 벤처기업인들을 지원해 우리나라 벤처산업 활성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펼쳤다. 업계에서는 진짜 이유가 뭐냐라는 것에 대해 말들이 많은 가보다. 내부 알력설도 있고, 스스로 게임사업에 대한 감각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제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의 새로운 꿈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이제 회사 일에서 물러났다고 하니 여유가 더 생겼겠지. 한번 만나서 물어봐야겠다. 하지만 모든 걸 떠나서 나는 그가 쉬기 위해 물러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그랫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언제나 꿈꾸는 김범수로 남을 거라고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친구 중에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 그건 단순히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어찌 보면 같은 출발점이였지만 그 친구와 나의 모습은 현저히 다르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그와 내가 처한 위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내가 가졌던 꿈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다.
"꿈꾸는 자가 자유롭다." 이제 그의 좌우명을 내가 좀 빌려써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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