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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1 05:10
산나님의 런던의 누드 사이클링 글을 보니 (상관은 없지만) 옛 일 하나가 생각이 납니다.

때는 80년대 후반 어느 봄날. 시간은 열시반 정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이였습니다. 왜 늦은 시간에 학교에서 나왔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저는 성실한 학생이였으므로 열심히 공부하다 왔을 겁니다 ㅡ.ㅡ;;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한 스무명. 띄엄 띄엄 앉아있었고, 저는 맨끝 세명 앉는 자리의 출입구 쪽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건너편에는 교복입은 여학생이 두명 있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 칸안의 적막은 중간문이 열리며 옆칸에서 한사람이 건너오면서 깨졌습니다. 빈자리 하나 사이에 두고 옆에 앉는데 섬찟하더군요. 건너편 여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저는 책에서 눈을 떼며 그 사람 발부터 봤습니다. 신발이 없더군요. 바지도 없었습니다. 중간에 잠깐 '흠칫'하며 멈추었다 계속 올라가는데,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뭐 하나 걸친것이 없습니다.

그가 남자였기에 저도 다른 자리로 옮기고 싶었지만 ㅡ.ㅡ, 그래도 꾹 참고 옆에 앉아 그 사람을 지켜봤습니다. 그는 자기 몸을 보며 어리둥절해하더군요. 자기가 왜 이러고 있나 이해안간다는 표정으로요. 그때 머리속에 스치는 생각은 터미네이터였습니다. '터미네이터' 첫장면을 기억하시는 분은 제가 무슨 이야기하는지 알겁니다. '혹시 이 사람 미래에서 온 것 아닐까?' 그 사람도 제 얼굴을 쳐다보고, 또 제 몸도 쳐다봤습니다. '쟤는 왜 옷을 입고 있는 거야?'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ㅡ.ㅡ

아까 도망치며 딴자리로 갔던 여학생들 포함 ^^;; 모두들 힐끗힐끗, 혹은 빤히 그 사람을 쳐다보며, 한참을 그 상태로 있었습니다. 다음역에 올라타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놀라서 멀찌감치 가고는, 구경하는 사람들에 합류했습니다. 저는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정말 뻘쭘했습니다 ㅜ.ㅜ 결국 몇명 남자들이 나서서 그를 내리게 했습니다. 내리는 걸 보니 (낯도 익혔는데) 말이라도 건네볼 걸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ㅡ.ㅡ

아직도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를 끌어내린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크지도 않으면서...' 분명히 그 사람은 175에서 180 정도 큰 키였는데 말입니다. 키작은 다른 남자들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ㅡ.ㅡ;;

ㅎㅎ 이건 답을 아는 거고, 정말 궁금한 건 이겁니다.

도데체 그 사람은 어디에서 옷을 벗었을까요? 벗고서 탔을까요? 아니면 전철 안에서 벗었을까요? 왜 아무도 막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 상태에서 도데체 몇칸을 건너왔을까요?

요즘도 가끔 그 날 생각이 납니다. 그 남자 요즘은 안 그러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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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g | 2008/07/11 06: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왠지 엑스파일 분위기네요. :)
쉐아르 | 2008/07/11 10:46 | PERMALINK | EDIT/DEL
'진실은 저 너머에...'죠 ^^;;

더 엑스파일 같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1라는 번호를 붙였습니다.
WndProc | 2008/07/11 07: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마 '쟤는 왜 옷을 입고 있는 거야?'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옷 사이즈를 찾고 있던것이 아니였을까요? '삑삑 스캐닝: 사이즈 맞지 않음'
쉐아르 | 2008/07/11 10:48 | PERMALINK | EDIT/DEL
예리하십니다 ^^

다행이네요. 만약에 옷 사이즈가 맞았다면... 그자리에서 옷을 뺐겼을지도. 어쩌면 죽었을지도... 터미네이터에서 그러던데요 ㅡ.ㅡ
데굴대굴 | 2008/07/11 14: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진실은 저 넘어에..... 이군요.
쉐아르 | 2008/07/11 14:39 | PERMALINK | EDIT/DEL
그렇지요 ^^
쟈꼬미노 | 2008/07/11 22: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요즘 전철이 더워서 가끔 저도 저런 충동을... 꽤액
쉐아르 | 2008/07/12 03:41 | PERMALINK | EDIT/DEL
그 정도로 덥나요? 저는 몸매에 자신이 없어서 아무리 덥더라도 꼭꼭 숨기고 있을 겁니다 ㅡ.ㅡ;;
daewonyoon | 2008/07/12 02: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나성에 가면 박명(薄明 twilight)사우나라고 있습니다. 거기 사우나 2실과 3실 사이에 2와 2/3실이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은 문을 못 보니까 모르지만, 정신을 놓고 사이로 걸어들어가게 되면 문고리를 잡게 되죠. 그 문을 찾아서 통과하게 되면, 지하철 2호선 31415번 차량 1번 문으로 나오게 됩니다.

제가 한 번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낮시간이라서 졸고있는 사람들만 몇명 차 안에 앉아 있어서, 빨리 나왔던 문을 되돌아가서 창피당하지 않을 수 있었죠.

박명사우나 옷장에 보면, 옷이 들어있는 채로 잠겨있는 옷장이 일년에도 수십개는 생긴다고 하더군요. 술깨려고 사우나에 왔다가 2와 2/3실 문을 통과한 사람들은 되돌아올 생각을 못하거든요.
쉐아르 | 2008/07/12 03:43 | PERMALINK | EDIT/DEL
저런... 미리 알았다면 그 아저씨 다시 나성으로 돌려보냈을텐데 말입니다.

ㅎㅎ 멋지십니다. 정말 구글에서 '박명사우나'라고 찾아봤지 말입니다 ^^;;

'박'자 '명'자가 들어가면, 요즘은 다 오리무중이 되어가나 봅니다.
brandon419 | 2008/07/20 02: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 친구 터미네이터1을 넘 감명깊게 본 것이 아닐까요?
쉐아르 | 2008/07/23 06:24 | PERMALINK | EDIT/DEL
ㅎㅎ 혹시 터미네이터4일지도 모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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