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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4 16:17
#1.

최근 일년동안, 아니 훨씬 이전부터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는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그 얼마전부터 우리 가족은 나와 아버지를 빼놓고는 모두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따라서 환경의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혼자서 놀러다니다 "심심해서" 가족들이 다니던 교회에 들어섰던 그날 오후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이후 기독교는, 그리고 교회는 내 삶에서 빼놓기 힘든 것이였다. 목사가 되고 싶었던 중고생 시절, 독재와 사회 모순에 대한 대안으로 기독교 밖에 없다 믿었던 대학시절을 보냈다.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부모님을 보내드리고, 미국에 오는 인생의 굴곡에 맞추어 신앙의 업다운도 경험했다. 그리고 지난해 그동안 회피하고 있었던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정말 믿을만한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답을 찾기 쉽지 않은 질문들을.

#2.

질문과 고민으로 점철된 2007년 말에 이 책을 만났다. "내려놓음"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5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이 책을 쓴 이용규선교사는 원래 역사학도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하버드에서 중동사로 박사를 받았다. 박사를 받고나서 신학이나 선교학 공부도 하지 않은 저자는 몽골로 날아간다. 몽골국제대학교의 부총장으로, 이레교회의 담임으로, 부인은 몽골영양개선연구소의 소장으로 그 지역을 섬기고 있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저자가 경험했던 "은혜"를 기록하고 있는 일종의 간증서적이다.

간혹 어떤 간증서적은 개인의 경험과 보편적 진리를 혼동해서, 자신이 겪은 일이 전부인양 주장하는 일이 있다. 그래서 나는 간증서적을 즐겨읽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일관된 추천 때문이였다. 그렇게 좋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무엇을 제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런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오랜 교회 생활로 머리만 커지고 줏어들은 것은 많았기에,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이미 한번씩은 들어봤던 원리와 비슷한 경험들이였다. 하지만 고민 하나는 나에게 확실하게 던져주었다. 그것은 '과연 믿는다는게 도데체 뭔가?'라는 질문이다.

#3.

책을 통해 나타나는 이용규선교사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석을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지도교수가 바뀌면서 준비하던 논문을 재구성해야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에 기도하면서 결정했던 기간내에 졸업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믿고 맡기며 한달반을 준비한 결과 예상보다 너무나 쉽게 정리가 되었다. 새로운 교수도 그 결과에 너무 흡족해했고 원하는 시기에 졸업할 수 있었다. 제2외국어로 선택한 독일어가 너무 힘들어 논문심사에 떨어질 위험이였지만 다행히 번역할 본문으로 로마서가 나와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혹은 차가 없는 사람들을 태우고 교회에 가고 싶어서 미니밴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문제가 많아 팔 수도 없던 차를 누가 뒤에서 받았다. 차는 완전히 부서졌는데, 다행히 보험회사에서 산 가격보다도 더 많이 보상을 해주어 아주 쉽게 중고 미니밴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이런식을 우연들이 가득 차 있다.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를 비판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선택적 관찰'이다. 잘 되도 신의 뜻, 잘못 되도 신의 뜻. 이렇게 해석을 하고 나면 세상에 신의 뜻이 아닌게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해서도 같은 비판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학을 가기전 그는 공부하던 중국사를 계속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중국사로 지원한 학교는 다 떨어지고, 중동사로 지원한 하버드에 붙었다. 그는 이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생각한다. 원하고 기도하던 것을 받지 못했지만, 돌아보면 지금의 선교를 감당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였다는 거다. 반면, 아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영양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이는 나중에 선교에 쓰이게 되었다.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도 그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였다.

하지만 그저 벌어진 일만 놓고 본다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뜻이 될 수도 있고, 나의 뜻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신의 인도하심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이른바 믿음이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신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다. 이렇듯 이성적으로 접근했을 때 신에 대한 믿음이 자라날 틈은 별로 없다.

#4.

사실 기독교에는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러니들이 상당히 많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은 중요한 전쟁을 준비하며 제사장인 사무엘을 기다린다. 하지만 사무엘은 약속한 기한인 일주일이 지나도록 오지 않고, 백성들의 사기는 떨어져 도망가기 시작한다. 이에 사울은 스스로 제사를 지내고, 그 이후에야 도착한 사무엘은 오히려 사울을 책망한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사실 사울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말이 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상황에 따라 유연한 선택을 한 사울은 좋은 리더다. 게다가 먼저 약속을 어긴것은 사무엘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순종을 요구한다.

이 책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다. 어떤 문제를 놓고 시한이 다 되도록 기도해도 응답이 없더라는 말에, 저자는 이렇게 질문을 한다. "해결시한이 다 지나고 나서도 믿고 기다려 본적이 있느냐"라고. 집안 문제로 인해 백만원이 급히 필요하다고 치자. 내일 아침에 필요한데 밤 열두시가 다 되었는데, 돈 나올 구석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다 믿어진다면 믿고 기다리는게 신앙이라는 것이다.

살아 생전 오만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 조지 뮬러의 일화는 많이 알려져 있다. 평생 고아원을 운영하던 뮬러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았다. 어느날도 당장 다음날 아침 아이들 먹일 식량이 없었다. 마침 같은 지역의 정치인이 기부금을 냈는데, 그 금액이 아이들을 먹이고 남을만큼 충분했다. 하지만 이 정치인이 부도덕한 인물이였는지 뮬러는 그 돈을 거부했다.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이라 기대했을 때 다음날 아침 근처 제과점에서 원래 시간보다 조금 더 요리된, 하지만 먹기에는 충분한 빵을 보내왔다. 딱 아이들을 먹일만큼의 양이였다고 한다.

학비야 장학금을 받는다 쳐도 매달 2000불 정도가 생활비로 필요했다. 근처에 넉넉한 사람이 없기에 어디 도움 받을데도 없었는데도 이용규선교사는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돌아보면 그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한다. 한번도 여유 있었던 적은 없었지만 부족한 적도 없었단다. 누구는 그럴 것이다. "그만큼 열심히 그리고 검소하게 살았을꺼야." 당연히 그는 검소하게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5.

지난 일년간 나는 신앙을 이성적으로 접근했다. 누군가 신앙은 "상황에 대한 이성적인 반응"이라고 했다. 난 그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신앙은 머리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 내 삶에서 "선택적 관찰"의 한가지 예를 경험했다. 이전 일을 내려놓고 다음 일이 결정되기까지 세달의 기간동안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사업부의 최고 책임자에게도 여러번 불평을 했다. 그래도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내가 참 교만했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자 앞에서 한없이 부족한 나를 깨달았고, 그 문제를 내 손에서 내려놓았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절대적인 믿음도 없는 상태에서 "당신이 계시다면 당신이 책임져주세요"하고 하나님에게 맡겼다. 그리고 일주일도 채 안되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몇가지의 옵션이 주어졌고, 그 중에는 평소에 원했던 일보다 더 좋은 일도 있었다. 내가 최종목표로 삼는 일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일이다. 추가로 이전에 하고 싶었던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아직도 남아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조건이 좋아진 것이다.

우연이라 해석할 수 있다. 시기가 무르익었기에, 충분히 기다렸기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맘 깊은 곳에 침잠해 들어가 나는 무엇을 믿는가 물어보면,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라는 답을 듣는다. 그런 대답을 듣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믿고 싶으니까, 믿는 것일 수도. 하지만 그런 "우연"들이 계속된다면.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 현상들이 "믿음의 눈"으로 해석된다면, 그게 바로 믿는다는 것이 아닐까?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다. 그리고 나도 그런 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6.

아직도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 세상은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을 배제하고도 세상은 해석되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 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는 없다. 절대자를 배제하고는 나는 내 삶의 의미를 못찾겠다. 신이 있을 때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답다.

그렇기에 나는 신을 믿고 싶어하고, 절대자를 그리워한다. 놀랍게도 내가 그를 따르려고 할 때 이성적으로 100%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너무나 좋은 "우연"들이 생기고,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가치있게 해석이 된다. 그를 의지할 때 행복하고, 그를 생각할 때 나의 결점들이 보인다. 그의 사랑을 느끼며,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다. 그 말씀에 순종하려 노력할수록 나는 내가 조금씩 더 "훌륭"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도 난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믿음을 소망한다. 하지만 분석만 한다고 이해되어지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한다. 내가 그 길을 걸어갈 때, 비록 하루 하루 이해할 수 없어도 돌이켜 보면 그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이였음을 믿게되는 것. 그것이 믿음임을 이 책 "내려놓음"이 가르쳐 주었다.

왜 그렇게 만드셨는지. 왜 모든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없게 해놨는지 솔직히 불만이다. 그리고 죽고나면 따질 것이다. 그럼에도 절대자가 그것을 원한다면, 내가 어찌하겠는가. 결국 직접 걸어봐야 이해되는 것이 신앙인 것이다. 걸어가 보면 그길은 더이상 착각, 망상, 혹은 자기 세뇌가 아니다. 그 길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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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etal Slug gratis | 2014/11/08 09:30 | DEL
Future Shaper ! - 신앙이란게 도데체 뭘까? - '내려놓음'을 읽고
BlogIcon CeeKay | 2008/02/04 17: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긴 서평 잘 봤습니다. 작년에 읽었는데 책 내용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BlogIcon 쉐아르 | 2008/02/05 10:58 | PERMALINK | EDIT/DEL
얼바인에 사시네요. 저는 동쪽끝 보스톤 위쪽에 살고 있습니다. 블로그가 참 깔끔하고 좋네요. 아이들도 예쁘구요. 자주 들르겠습니다. ^^
BlogIcon CeeKay | 2008/02/05 15:00 | PERMALINK | EDIT/DEL
블로그를 잠시 더 둘러 보았는데 읽을거리가 많이 있네요. 신앙생활과 관련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좋은 블로그 이웃이 되길 소망합니다.
BlogIcon 쉐아르 | 2008/02/07 07:31 | PERMALINK | EDIT/DEL
저도 CeeKey님 블로그 구독시작했습니다. 친하게 지내시죠 ^^
BlogIcon innerman | 2008/02/04 17:5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신앙생활 : 신을 앙모하는 생활,
신이 좋아하는 거 나도 좋아하고 신이 싫어하는 거 나도 싫어하는 것.
신이 원하는 거 나도 원하고 신이 원치 않는 거 나도 원치 않는 것.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는다는데... 신을 좋아하면 인간은 신을 닮아가겠죠.

그런데 대부분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신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하길 바라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신에게 요구한다는 거죠.
BlogIcon 쉐아르 | 2008/02/05 11:57 | PERMALINK | EDIT/DE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닮는 건 정말 맞는 말입니다. 사이좋은 부부가 닮는 것 보면 알수 있지요.

예수님은 생각할수록 놀라운 삶을 살은 것 같습니다. 그의 인간적인 매력과 신적인 거룩함을 닮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거기까지 미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긴 평생 예수 섬긴다며 살아가는 목사들이 하는 행동들 보면 바른 신앙 가지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BlogIcon brandon | 2008/02/04 20: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 역시 비슷한 고민들을 해봤기 때문인지 더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네요. 쉐아르님처럼 진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하진 못했지만서도요. 작은 내 머리로는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다고 일치감치 편하게(?) 포기한 부분들이 많지만 가끔은 그러한 것들에 다시 걸릴 때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참 우리 머리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습니다. 전에 쓰신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창조론이나 진화론으로 대두되는 근원적인 질문도 쉽게 대답하기 힘듭니다. 창조과학자 말들이나 진화론자 말들이나 다 수긍되는 부분도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그 방법밖엔 없었을까?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와서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왜 그렇게 어렵게 일을 진행하셨을까?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것처럼 보다 쉬운 방법들이 없진 않았을텐데...

나름대로 이유를 짐작도 해석도 해보지만 분명한 건 그 분만이 아시겠죠, 저 역시 나중에 따지거나 물어볼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그런 것들이 눈 녹듯 다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겠죠. 화가 났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 화가 풀리고 단큐(?)에 이해의 경지를 넘어서는 깨달음이 생기겠죠. 화가 난 이유조차 알 수 없어지게되는 것 같은... 그런 예감(?)에 그냥 편하게 포기하고 살고 있습니다.^^

새벽에 일찍 잠이 깨서 컴퓨터를 키고 읽은 말씀이 바로 고린도 전서 1장 27,28절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숱한 악하고 어리석고 부족하고 심지어는 나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도 버젓이 그런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는 창녀도 있습니다. 다른 종교와 달리 미화되지 않고 걸러지지 않은 이유중의 하나는 그게 사실이고 또 하나님의 눈에는 그게 그리 중요하지도 큰 차이도 없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의 대학 입학을 놓고 기도하는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 역시 제가 좋은 대학을 가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거의 믿는 모든 부모님들이 다 자녀의 대학 합격을 위해 기도하실 겁니다. 하지만 내 자녀가 붙으면 누군가의 자녀는 떨어져야 하는게 현실입니다. 이기적으로 비칠 수 있는 이런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지만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이런 현실적인 기도들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끔은 기복신앙과 혼돈될 때도 있지만 우리는 늘 우리의 필요와 안전과 내가 아는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의 필요사항들을 적어놓고도 기도를 합니다.

세상은 제로섬 게임을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연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일들이 기도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도하면 그런 우연이 정말로 훨씬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의 결과가 하나님의 뜻을 판별하는 중요한 잣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들도 많구요. 기도하는 가운데 경험하는 진정성이나 간절함 역시 키포인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정한수 한그릇을 떠놓고 손이 발이 되도록 기도하는 분들에게도 그런 간절함은 있습니다.

결국 기독교 신앙은 체험인 것 같습니다. 말로는 머리로는 다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내 안에 느껴지고 경험되어지는 그 분을 체험하고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도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분을 만나게 되고 그리고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성과 감성, 그리고 자유 의지를 통해서 그 분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고 저역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 가운데 내가 달라지고 주위에 대한 내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도 되구요.

전에 90년대 초에 인디애나 존스라는 게임을 잠시 해본 기억이 있습니다.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다른 게임은 별로 해보질 않았습니다. 몇 년전 어느날 갑자기 우리 인생이 게임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 개발자가 다 만들어놓은 플랜 안에서 하나씩 묻고 찾으며 게임을 풀어 나갑니다. 처음과 끝은 분명히 정해져 있고 중간에는 하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다른 선택이 다른 길로 인도하지만 중간에는 다시 만나게도 되고 가끔은 어떤 사람을 만나 묻기도 하고 힌트도 받고 하면서 나름대로 길을 갑니다. 다 다른 방법으로 게임을 해서 목적지에 이르지만 분명한 건 어떤 길을 선택해서 가건 다 개발자의 손바닥 안에 있고 그리고 개발자가 원하는 정답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생이 그것을 개발자와 묻고 답하며 함께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범 정답과 메뉴얼도 주여져 있구요. 중간에 내 나름대로 우겨서 길을 갈 때도 있고, 길을 잃고 헤맬때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길에 들어섰는데도 졸라서 길이 터지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도움도 주고 받으며 함께 가기도 하고요. 우리가 정답대로 살 수는 없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며 배워나가는 거겠죠. 결국 그 분이 원하는 삶은 외형이나 결과가 아닌 성품과 과정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끝에 도착하면 그 때는 다 알게 되겠죠, 그리고 영원한 쉼도 있을 거구요.

아이고 덧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그리고 자꾸 수정도 하게 되구요. 이제 그만해야 겠습니다. 전에 다른 블로그 할때도 어떤 분의 블로그만 가면 주책없이 주저리 주저리 떠들곤 했었는데 그 버릇이 또 나오네요. 사실 가끔 쉐아르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러고 싶은 충동(?)이 여러번 있었지만 시간관계상 자제해 왔었는데 오늘은 새벽에 좀 일찍 깨서 결국 사고를 칩니다.^^ 내려놓음 책, 저도 몇 년전에 인상깊게 읽었었는데 결국 책 내용에 대해선 한줄도 적지 못했네요. 다른 건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 꿇는 이용규 선교사님의 자세는 정말로 존경합니다. 지금도 가끔씩 그 분 웹싸이트에 방문하곤 하구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담에 또 뵙겠습니다.
BlogIcon 쉐아르 | 2008/02/05 12:00 | PERMALINK | EDIT/DEL
보통의 포스팅보다도 긴 댓글 ^^ 정말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아이러니가 참 많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각도로 보면 무엇보다도 아름다운게 기독교의 신앙, 특히 예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제로섬게임을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라고 하신 말씀에 적극 찬성합니다. 무조건 좋은 길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돌아보면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져 있는 그런 삶이 신앙인의 삶이겠지요. 바쁘시다면서 길게 써주신 댓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BlogIcon 큰바보 | 2008/02/05 04: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세상에는 우연아닌게 없죠 그렇다고 필연아닌 것도 없습니다. 몇 퍼센트가 되어야 필연이 되고 몇 퍼센트 이하여야 우연이 되는지 모르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의미로서 소화하기는 어렵죠. 필연이든 우연이든 상관없는 운명처럼 버려버리기는 쉽지만 미래의 의미로서 -그걸 은혜라고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나 생각합니다.

쉽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아픈 몸과 어려움들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몸에 임바디하고 의미를 찾고 필연도 우연도 아니라고 부정하며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쉬운게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님의 고뇌가 소중하군요.
몸부림이라고도 하죠.
종종 들리겠습니다.
BlogIcon 쉐아르 | 2008/02/05 12:02 | PERMALINK | EDIT/DEL
네. 종종 들러주세요. 블로그에 가보니까 전에 한번 읽었던 글이 보이네요. 창조론과 진화론의 맞짱뜨기요. ㅎㅎ 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듯해서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주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BlogIcon 미디 | 2008/02/08 17: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신앙적인 부분에 관심있으시면..http://www.zbuzok.com/ 에 가보세요.
어렵게 생각되신다면 제 블로그 http://blog.naver.com/iminia 에 오셔도 좋고요.
BlogIcon 쉐아르 | 2008/02/09 01:15 | PERMALINK | EDIT/DEL
감사합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에 대한 해석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이미 다양하게 접했으니까요. 그보다는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겠지요.

율법에 대한 생각이 저와는 좀 다르시네요. 율법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성경 전체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율법을 안지키면 구원을 못받는다는 해석은 무리가 있다 생각합니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은혜만 강조하다 혹시 놓치는 것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 부분을 다시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BlogIcon 미디 | 2008/02/10 01:57 | PERMALINK | EDIT/DEL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기 보다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율법은 지킬려고 노력해야 되는것 같아요.
바쁘실텐데 하나하나 답글 다시는건 대단하시네요.
BlogIcon 쉐아르 | 2008/02/10 03:32 | PERMALINK | EDIT/DE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율법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지요.

댓글에 대한 답을 남기는게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에는 댓글이 많이 남겨지지 않았기에 별로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앞으로 많이 있더라도 그렇게 할 생각이구요 ^^
BlogIcon 곰돌이 | 2008/02/10 11:1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글 잘읽었습니다. 닌텐도 관련해서 다음에서 글을 클릭해서 들어왔는데,
여기저기 블로그를 헤집고 다니다가 위와 같은 포스트를 발견했네요.
도움이 됩니다. 제가 했던(하고 있는) 고민과 비슷한 종류인듯 하여 유심히 읽었습니다.
몇번 읽었는데, 몇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학교 시절 선교단체에 있었고, 현재는 경기도 수원에서 엔지니어로 재직중입니다.
하나님이 왜 앞길을 미리 다 알려주시지 않고 조금씩 그 여정을 예측못하게 이끌어 가시는지(아니면 힌트를 내게 던져주시는데도 내가 둔해서인지..^^)
이해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이해가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지만요. 제가 그렇게 지어지지 않은것 같단 느낌이 강하게 들고
반발심도 생기네요 ^^;;

담에 또 들리겠습니다. ^^
BlogIcon 쉐아르 | 2008/02/11 13:40 | PERMALINK | EDIT/DEL
저랑 비슷한 길을 걸으신 것 같습니다. 저도 대학교 때 선교단체에 있었고, 엔지니어 출신이지요.

분명하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고, 자신을 확실히 드러내신다면 이런 고민 안할텐데요. 그러시지 않는 이유야 자유의지를 주시기위해서라고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힘들기는 합니다.

곰돌이님 사이트를 통해서 대구의 모습을 보게되네요.자주 들러주세요.
ojongchul | 2009/01/05 12: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2009년 초에 좋은 글 접했습니다 ^^ 신앙을 되짚어 보게 되네요.
BlogIcon 쉐아르 | 2009/01/05 13:46 | PERMALINK | EDIT/DEL
감사합니다. 신앙이라는게 쉬운듯 어렵기도 하고, 또 어려운듯 쉽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신앙은 생각만으로 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BlogIcon 여호수아 | 2009/05/13 22: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연히 검색하다가 쉐아르님의 이 블로그에 오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고민의 어투(문체는 영적여정과 관련은 없습니다만)에 압도 당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많은 말들을 적고 싶습니다만,

만약 하나님과의 관계(솔직히 이성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려면 결론은 불가능이란 생각이 드네요.성경에서 못박기를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하니 말이죠..단순히 생각해서 모세의 홍해사건이나 여호수아의 여리고 사건이나 엘리야의 불사건등의 일을 인간의 의도에 따라 재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로 신앙의 어떠함을 판단하고자 하신다면,관계성에 따른 신앙을 판단하고자 하신다면(솔직히 답은 안될겁니다 허나 제가 추천할 책들은 "우연"으로 신앙이나 상황을 설명하진 않을겁니다)

"영적가면을 벗어라" - 저자 : 래리크랩 출판사 : 나침반
"파파기도" - 저자 : 래리크랩 출판사 : IVP

를 읽어보시면 내려놓음보다 더 탁월한 관점을 가지시리라 생각됩니다(사실 전 내려놓음 못봤습니다^^)
BlogIcon 쉐아르 | 2009/05/14 04:03 | PERMALINK | EDIT/DEL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성으로 이해하기보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씀에 적극 동감합니다. 관계가 좋다면 사소한 문제는 별로 어려움없이 해결되기도 하니까요.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내려놓음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깊이 있는 (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용규님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이런게 신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
리피치프 | 2010/12/08 13: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결국 직접 걸어봐야 이해되는 것이 신앙인 것이다.
걸어가 보면 그길은 더이상 착각, 망상, 혹은 자기 세뇌가 아니다.
그 길은 현실이 된다.

크리스천의 '간증'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만
저도 전지자에게 따지고싶기도 합니다만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만들어놓으신 '감추어진 보물'이니...^^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저도 많이 감명깊게 읽은 책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이지만 쉐아르님과 만나게되어 매우 반갑습니다!
BlogIcon 쉐아르 | 2010/12/23 08:14 | PERMALINK | EDIT/DEL
저도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인간에게 이성을 주신 이상 끊임없이 공부하고 찾아보는게 의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성으로 어쩔 수 없는 초월의 세계가 있는 것도 겸손히 인정해야한다 생각합니다. 제가 다시 좀 뜸했습니다.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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