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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7. 06:02

크리스찬은 답을 가진 사람들이다. 최소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도, 어떠한 궁지에 처해 있어도 의지하면 해결해 줄 분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렇기에 고난도 감사함으로 지날 수 있고, 절망함이 마땅한 상황에도 희망을 붙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때로 다른 이의 아픔에 둔감하다. 같은 상황에도 체감하는 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겪었던 상황은 어떤 이에게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려움일 수도 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지할 분이 있었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최근 몇달동안 자살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의 시작은 문학이었다. 자살하는 사람에 대한 소설을 읽고 평을 들었다. 처음 든 생각은 그들의 선택은 틀렸다였다. 하지만 문득 내가 너무 쉽게 답을 던지고 있구나 깨달았다. 

세모녀의 자살이 있었다. 노동당 부대표도 자살하고, 장애인도 자살했다. 공부하던 학생도 자살하고, 답을 가르치던 목사도 자살했다고 한다. 그들이라고 살고 싶지 않았겠는가. 세상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눈 앞에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벌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답은 정답이다. 내가 가진 그 답을 나누고 싶다. 힘들어 하는 이들이 내가 간직한 소망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게 도와주고 싶다. 그러나, 아픔에 대한 동감 없이 쉽게 던지는 해결책은 또 다른 폭력이다. 현실은 그대로 개판인데 잘 될거라는 어설픈 위로는 공허하다. 왜 포기해 노력하면 되잖아라는 충고는 애써 잡고 있던 끈마저 놓아버리게 할 수 있다. 믿고 기도하자는 말은 아직 답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답이 아닌 거다. 

더 민감해야겠다. 내가 가진 답을 제시하기 전에, 아픔을 같이 느끼는 것이 먼저다. 그게 시작이다. 

...

갑자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치시는 곳까지 자신을 낮추신 그 분의 마음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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