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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리고 글'에 해당되는 글 87건
2008. 12. 10. 14:24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라는 일반적인 질문에 대한 종교적인 답변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때 - 8점
고든 맥도날드 지음, 홍병룡 옮김/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작심삼일이라는 말은 사람의 결심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말해준다. 새해 첫날 굳은 결심을 깔끔히 적어 머리맡에 붙여논다 한들 채 첫달이 가기전에 흐지부지 되고 만다. 하물며 인생을 바꾸고자 하는 결심이랴. 부족한 나를 통감하고 이제는 새 사람이 되자고 피눈물 흘려가며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결국 일년에 한번씩 거치는 연례행사로 끝나고 말 뿐이다.

사람이 변할까? 내가 나를 변할 수 있을까? 의미 없이 살던 인생이 목표를 세우고 전진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누구나 한번씩 해볼만한 질문에 대해 고든 맥도날드는 이 책을 통해 답을 한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라고. "길을 잃어버린 캄캄한 숲속에 있음을 깨달을 때" 내 삶의 궤도를 수정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바뀌기 위해서 해야하는 것이 있다. 떠나야 하고, 따라야 하고, 뻗어 나가야 한다.

'바뀔수 있을까'라는 일반적 질문에 대한 답이 '회심'이라는 지극히 기독교적인 개념으로 답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단계들 때문이다. 나를 구속하고 있는 것을 떠나야 할 터인데 그럼 어디를 향해 떠나야 하는 것인가? 따르라면 누구를 따르라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향해 어떤 목적으로 뻗어나가라는 것인가?

이 책은 '중간 궤도 수정'이라는 쉽지 않은 일을 이루어낸 두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아브라함과 바울이다.

백세에 낳은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여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이다. 기독교인에게는 믿음과 순종의 상징으로, 비기독교인에게는 비윤리적이고 몰상식한 전형적인 예로서 말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에게도 이 이야기는 편치 않다. 상징적으로 혹은 구속사적으로 이야기하기 원하지 정면으로 대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명령을 그대로 따른 아브라함은 도데체 어떤 사람인가? 맥도날드는 아브라함이 '아비와 친척 집을 떠난' 이후 모리아산에 자식 이삭을 데리고 오르기까지 40년의 시간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의 궤도 수정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40년에 걸친 완만하면서도 가파른 변화임을 설명한다. 아브라함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절대적인 순종은 떠나고, 따랐던 40년 세월의 결과인 것이다.

같은 변화를 바울에게도 볼 수 있다. 30대 한창 나이에 극과 극의 변화를 겪었던 바울이 60대 후반까지 끊임없이 뻗어나갈 수 있었던 이면에는 끊임 없이 지속되는 떠남따름이 있었다. 현재 내가 사랑하는 것을 떠나 더 가치있는 것을 사랑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지의 것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나를 인도하는 음성을 신뢰하고 따르는 삶. 아브라함과 바울의 삶에 계속해서 보여지는 모습이다.

이 책이 고든 맥도날드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다.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듯한, 또 한번의 기회는 없을 듯한 절망을 경험한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내가 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모든 희망이 깨어지고,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 처참한 자신에게 그는 물었을 것이다. '나에게 기회가 있을까?' 이 책은 고든이 삶을 통해 찾은 답변을 닮고 있다. 책의 짜임새에 대해서는 조금 불만이 있지만, 그래도 주위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는 실패를 극복한 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이다.





2008. 9. 28. 23:19
난해한 나라로구나... 갇혀있는 조선의 국왕이 죽어가는 나라 명을 향해 춤으로 예를 올림을 보며 칸은 말했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는 아니였지만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었던 청을 조선은 굳이 적으로 만들었고 칸을 이 후미진 땅으로 불러들였다. 조선에 올 때는 시원한 싸움이라도 한판 기대했건만 남한 산성에 도착할 때까지 저항도 환영도 없었다. 조선은 너무나 조용했다.

병자년에 청을 다시 불러들인 것은 말(言)이였다. 받아들이는 이들은 힘이 없건만 명에 대한 예를 지킨다 고집하여 오랑캐를 적으로 만들었다. 여진이 정묘년에 들어와 힘을 보였고 조선은 별 대항도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적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말은 다시 힘을 얻었다. 그릇됨이 드러나기 전까지 말의 힘은 끝이 없다. 말 잘하는 이들이 조선에 넘쳐나 세상을 개벽할 듯 하였다. 말로서 형제 나라 명을 회복시킬 수 있었고 말로서 오랑캐 여진을 물리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을 쌓았다.

힘이 없는 말은 약했다. 조선 안에 가득했던 그 말들은 한발자욱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조선은 조선 안에서는 굳센 나라였고 조선 밖에서는 어리석은 나라였다. 조선안의 말하는 이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동리 아이들의 짝짓기인양 명을 내 편이라 청을 내 편이 아니라 갈라놓고 천년만년 그렇게 살고자 했다. 바다와 중국에 막혀 있던 조선의 사람들은 눈 앞의 것밖에 볼 수가 없었다.

산성 밖에는 살 길이 아니라 죽을 길만 있었다. 싸우기를 주장하는 자들은 몸이 죽을수 밖에 없음을 알았고, 살고자 화친을 주장하는 자들은 결국 그들의 이름이 죽을 것을 알았다.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몸이 죽임을 당하거나 이름이 죽임을 당하거나 죽음은 산성 밖에 있었다. 산성 밖에 나가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 죽음을 알았기에 그들은 산성 안에 있었고 산성안에서 다투었다. 살 길을 만들어주지 못함에도 살아있음을 증명하고자 그들은 다투었다.

김훈의 남한산성 안에는 난해한 나라 조선이 있었다. 힘이 없음에도 힘을 키우지 않고 수모를 당해도 어쩌지 못하고 돌아서는 그 나라가 있었다. 살고자 자식과 며느리를 적에게 보내고 살고자 돌아온 자식과 며느리를 죽였던 임금이 그 안에 있었다. 살고자 적을 만들고 살고자 적에게 무릎 꿇었다. 살고자 싸우자 했고 살고자 항복의 글을 올렸다. 그 뜻이 때로는 강개하고 그 뜻이 때로는 저열하나 살고자 하는 이들의 몸부림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산성안에 갇혀있었다.

세상은 달라져 아무도 산성안에 갇혀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땅의 사람들은 땅 안의 것 밖에 보지 못한다. 나가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내며 무력함을 자부심으로 극복하려 한다. 실리가 필요할 때는 가치를 들어 말을 막고, 가치를 지켜내려 하면 실리를 들어 발을 뺀다. 살고자 함은 어느때보다 소중해 졌으되 살고자 다른 이를 죽이고자 하는 이기는 어느때보다 커졌다. 나라 안의 웅성거림은 더 커졌으되 그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멀리 나가지 못한다. 고집스레 현실을 보지 않는 단호함과 고집스레 자신만 위하는 이기심이 때로는 처연하다. 몸은 갇혀있지 않되 정신은 가두고 풀어주지 않는 답답함이 때로는 소름끼친다.

조선은 아직도 그 산성에 갇혀 있다.

*******************************

지난번 칼의 노래 때와 마찬가지로 김훈의 문체로 글을 써봤습니다.
서평, 특히 소설의 서평을 쓸 때는 저자의 문체를 흉내내어 볼려고 합니다.
근데 자연스런 저의 글모양이 아니기에 쉽지는 않네요. 이번엔 더 어려웠습니다.


남한산성 - 10점
김훈 지음/학고재




2008. 9. 4. 00:29
마시멜로 이야기 - 8점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정지영 외 옮김/한국경제신문

마시멜로 이야기에 대한 상반된 견해

최근에 <마시멜로 이야기>에 대해 상반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아내가 먼저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 너무 좋았나봅니다.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다고 책을 주문했습니다. (아이들이 한글 읽기는 버거워하기에 원서가 필요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었지만, 가지고 있고 싶었습니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한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적은 분량입니다. 교훈은 간단히 정리하면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 "미래를 준비하라"입니다. 네살짜리 아이에게 앞에 있는 마시멜로를 안먹고 15분 동안 참으면 하나를 더 준다고 했을 때, 참고 마시멜로를 더 받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나중에 보여주는 성과의 차이에 대한 실험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이익에 만족하기 보다, 훗날 주어지는 더 큰 이익을 바라보라는 내용입니다. 몇년전에 쓴 '벌레먹은 사과'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이 책은 요즘 사람을 위해 잘 맞추어진 메시지를 제공합니다.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차를 타고, 고급 레스토랑에가서 점심 식사를 하는, 잘나가는 회사의 40대 사장이 나옵니다. 백만불의 매출에 만족하지 않고, 5억불을 위해 천만불을 과감히투자할 수 있으며, 기사가 공부하겠다고 회사를 관둘 때에 4년 등록금을 선뜻 내어줄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부러움 살만한성공 케이스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성공비결이 어릴적 참여한 마시멜로 실험을 통해 얻은 교훈라고 합니다. 젊을때 시간과 돈을아껴 열심히 공부했고, 눈 앞의 이익보다 훗날을 위해 성실하게 살았기에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성공을 바라는사람이라면 당연히 귀가 솔깃해질 메시지지요.

며칠 후 아는 분과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이 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번역도 하지 않고 이름만 빌려준 정지영이 한몫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아이들은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공지상주의가 휩쓸고 있는 세상과 아이들에게 경쟁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은 것이지요.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마시멜로 이야기,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힐 것인가?"의 근본에는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서 성공해서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깔려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두가지 반응 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세상적 성공을 바라보며 인내하는 방법을 가르칠 것인가? 아이들로 하여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시킬 것인가? 이런 이야기들이 추가로 오고 갔습니다. 늘상 나오는 이야기들이지요. 어느 부모든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어디까지 경쟁을 시켜야할지 고민이지요. 요즘처럼 무한 경쟁시대에서는요. 경쟁에서 이긴다고 행복하라는 법도 없지만, 경쟁에서 낙오한다면 만족하고 살아가기 힘든 것도 알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어떻든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자식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행복이라는 것이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높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남들과 비교되어지는 상황에서 적당한 경제력과 지위 없이는 불만이 없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혼자 산다면 아주 조금의 가능성은 있겠지만, 가족을 꾸리고 사는 사람에게는 현실을 무시하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경쟁적인 세상에 그냥 매몰되어 같이 열심히 뛰어다니기만을 요구하기는 싫습니다. 그게 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런 현실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배우되, 인생에서 추구해야할 것이 세상적 성공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이 책, 아이에게 읽힐 것인가?
 
제 결론은 '읽히겠다'입니다. 그냥 읽히는 것을 넘어 아이들이 책의 교훈을 마음 속 깊이 새기도록 하고 싶습니다. 발전을 위해 대가를 지불할 줄 아는 것. 이것은 누구든 꼭 배워야할 중요한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못살더라도 아이들에게만은 가르치고 싶습니다.

책에 마하트마 간디의 손자 아룬 간디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젊은 시절 놀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했던 그에게 아룬의 아버지는 야단을 치는 대신, 자신을 탓하며 다섯시간을 걸어서 집에 도착합니다. 거짓말을 알았을 때 바로 혼낼 수 있었던 눈 앞의 마시멜로를 먹어 치우지 않고, 진정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길을 택했던 겁니다.

저는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배웠으면 합니다. 얕은 욕심이 아닌, 보다 큰 가치를 위해 눈 앞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을 수 있는 그런 마음 말입니다. 거짓말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 보살피며,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제대로 된 지름길임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래도 얕은 가치의 성공만 바라고 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혹은 '성공'이다."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나오는 문장입니다. 손을 뻗으면 바로 잡힐 듯한 작은 성공만큼 커다란 유혹은 없지요. 만약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겉모습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은 조금 큰 듯한 하지만 결국은 부족한 눈앞의 마시멜로만 보는 것일 겁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이런 저의 바램이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제 아이들도 저처럼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근심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보다 멀리 진정한 성공을 위해, 참다운 가치를 위해, 인내를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있는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이 제 소망입니다.

너무 욕심이 큰가요?

추신) 책에 대한 평가가 없었네요. 나쁘지 않습니다. 그림도 예쁘고 편집도 잘 되어 있고. 글자수로 책의 가치를 메길 수는 없는 거니까요. 다만 책을 읽으면서 정지영이라는 사람. 이 책을 볼 때마다 두고 두고 부끄러울 것 같더군요. 그녀야말로 눈 앞의 작은 마시멜로를 먹어치운 것이니까요.




2008. 8. 28. 00:05
비슷한 것은 가짜다 - 10점
정민 지음/태학사

다산에 대한 흠모와 연암에 대한 호기심 그 중간에 정민 교수가 있다. "연암은 높고 크고 다산은 넓고 깊다. 연암은 읽고 나면 오리무중의 안개 속으로 숨는데, 다산은 읽고 나면 미운을 걷어내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라며 둘을 평했던 정민교수. 그가 바라본 연암이 궁금했다. 그래서 연암을 알기 위해 첫번째로 선택했던 열하일기에 대한 고미숙씨의 글 다음으로 이책을 선택했다.

제목이 심오하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비슷하다'와 '가짜다'는 어감상 큰 차이가 있다. 여성에게 '심은하와 비슷하다'라는 말은 대부분 기분좋은 칭찬일 것이다. 하지만 '가짜 심은하. 짝퉁 심은하'라 부르면 어떨까? 불쾌할 것이다.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때 비슷한 것을 넘어서 가짜라는 말을 붙이게 되는 것일까? 무엇을 의도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의지에 상관없이 비슷하다면 그것은 그냥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비슷하고자 애를 쓰고, 또한 대상과 비슷하다는 것으로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결국 가짜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연암이 활동하던 당시, 주류 지식인들은 당송 시대를 흠모하고, 사서삼경, 논어, 맹자를 만고불변의 진리로 삼아 어떻게든 그때와 닮기를 원했다. 시대가 달라졌건만, 옛것을 최고로 치며 그때와 다른 것은 수준이 낮은 것으로 취급하였다. 이런 이들에게 연암은 되묻는다.

"비슷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진짜는 아닌 것이다... 대저 진짜 같다고 하고 꼭 닮았다고 말할 때에 그 말 속에는 가짜라는 것과 다르다는 뜻이 담겨 있다. <106쪽>" "어찌하여 진짜가 되기보다 가짜가 되고자 애를 쓰는가? 그대들이 흠모하는 서경書經의 <은고>와 <주아>나, 그대들이 닮고자 애를 쓰는 왕희지의 글씨 모두 당시 세속의 노래였고 세속의 글씨였음을 모르는가? 또한 그대들이 가짜가 되는 것도 부족해 다른 진짜들에게 가짜가 되라고 강요하는가?'

그러면 무엇이 진짜인가? 어찌해야 진짜가 될 수 있는가? 연암은 '다른 것은 겉모습이고, 같은 것은 마음'이라 정의한다. 겉모양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새로움'만 추구하면 안된다. 검증되지 않은 새로움은 오히려 옛것만 못할 수 있다. '아아! 옛것을 본받는다는 자는 자취에 얽메이는 것이 병통이 되고, 새 것을 창조한다는 자는 법도에 맞지 않음이 근심이 된다 <160쪽>".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법고이지변 法古而知變, 창신이능전 創新而能典'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출 수만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글과 같게 될 것이다<160쪽>. 연암 사상의 핵심이 여기에 담겨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할 수 있음에도 그 안에 흐르는 정신만은 놓지지 않는 것. 그것이 연암이 추구하는 '진짜'인 것이다. 겉모양만 닮고자 했던 당시의 가짜 보수의 반대에 서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했던 연암은 오히려 참된 보수라 할 수 있다.

10년 가까이 곁에 끼고 살았음에도 연암에 대한 번듯한 논문 하나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는 정민 교수. 그가 선택한 연암의 글은 풍성한 잔치다. 고민하고 고민해서 스물 다섯개의 이야기를 골랐을 것이다. 각 이야기별로 중심이 되는 연암의 글이 실려있고, 때로는 연암의 글 혹은 다른이의 글이 덧붙여져 있다. 부록에 있는 원문이야 나같은 문외한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지만, 정성스런 직역과 정민 본인의 말로 덧붙인 해석은 참으로 보배롭다.

앞에서 말한 '진짜되기'가 책의 중심 주제이지만, 이외에도 연암의 문장론, 삶의 철학, 친구 관계, 그리고 말년의 쓸쓸함까지 다양한 연암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속에는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며 끝내 주류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천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내내 다산과 연암을 비교하였다. 그리고 나라면 어떠했을까? 다산과 연암 둘중의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질문을 하였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다산 쪽이다. 시스템 밖에서 머물기보다 그 안에 들어가 어떻게든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내 취향이다.

그렇다고 연암의 글과 사상이 가치없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연암의 글은 난공불락'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그는 내게 언제나 오리무중이다. 막상 그의 글은 달콤하다. 늘 사람을 긴장시킨다. 그러나 글을 손에서 놓고 나면 그는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없다. 내 손에 남는 것은 손 끝을 스쳐간 나비의 날갯짓 뿐이다'라는 정민 교수의 평에는 동의한다. 책 한두권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연암이 아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듯 정민교수의 책은 실망을 주지 않는다. 시대를 넘나들며 현란하게 구사되는 연암의 인용을 좇아가며 상세한 해석을 해준 정민 교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또한 중간 중간 비치는 본인의 관점과 사상은 옛사람 못지 않은 거장의 깊이를 담고 있다는 것도 아울러 알리고 싶다. 나는 그를 '이 시대의 진정한 학자'라 부른다.




2008. 8. 9. 00:06
2003년 여름이었습니다. 가족들을 한국에 보내놓고 두달 가까이 혼자 지낸 적이 있었지요. '그와 그녀의 만남'을 이때 썼습니다. 그런데 그때 쓴 글이 더 있습니다 ^^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시나요? 혼자 있음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우연히 시작했는데 이틀 합쳐 네시간 미만의 수면으로 버티며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ㅡ.ㅡ

드라마가 끝나고 재미삼아 끄적인 글을 시청자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어떤 분이 그걸 보고 다음에 있는 카페에 저를 초대해주었습니다. 지금은 닉네임도 잊어버렸지만, 옥고의 다음 이야기를 너무나 재미있게 써주시던 분이 이미 글을 연재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 외전이라는 형태로 몇개의 글을 썼습니다. 원작의 허술한 부분을 짜맞추는 것이 꽤 재미가 있더군요. 이 글은 정은이 공항에서 경민이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순간부터 시작합니다. 싸우고 헤어진 정은이 어떻게 경민을 계속 잊지 않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달아보고 싶었습니다.

옥고 매니아가 아니라면 중간에 이해가 안가는 장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좀 유치하긴 합니다 ^^;; 그래도 이 글을 쓸 때는 참 즐거웠습니다. 흩어진 실타래를 여기저기 연결하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깨달았던 계기도 되었구요.

====================

##### 1. 공항

동준을 따라 걸어가는 정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뒤를 몇번 돌아다 본다...

동준: 정은씨. 왜 그래요? 뭐 두고 왔어요?

정은: (동준에게) 저 실장님... 아까 혹시...

동준: 예? 아까 뭐요?

정은: 아니예요... 누가 제 이름을 부른 것 같아서요...

동준: 저는 못 들었는데요... 다시 한번 가볼까요?

정은: ... 아니예요. 제가 잘못 들었을 거예요. (마음을 다잡으며) 실장님. 이러다 늦겠어요. 어서 가죠...

앞서서 걸어가는 정은이... 경민 생각이 나지만... 잊어버릴려고 애쓰며 그냥 말없이 걸어간다... 아직도 정은을 찾아다니는 경민의 모습이 오버랩... 외로워 보이는 정은의 뒷모습을 보며 말없이 따라가는 동준


##### 2. 비행기 안

정은 창가에 앉아 있고, 동준 옆에 앉아 있다. 아무 말 없이 창 밖만 쳐다보는 정은. 스튜어디스가 다가 와서 마실 것을 권한다.

동준: 정은씨. 마실 거 한잔 하세요.

정은: (웃음을 되찾고..) 예. 감사합니다... 야 남정은 출세했네요. 비행기도 다 타보고. 저 비행기 안에 처음 들어와 보거든요. (웃으면서 여기저기 구경을 한다.) 비행기가 이렇게 생겼구나.

동준: 마음 편하게 있어요... 한참 가야돼요... 아마 나중엔 지겨울걸요?

정은: 네 알았어요. (웃음)

기분 좋아하는 정은을 보며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동준... 비행기 출발한다는 기장의 방송이 있고... 비행기 서서히 움직인다...

정은: 실장님. 이제 비행기 출발하나봐요.

동준: 그런가보죠. 한동안 못 볼텐데 창 밖으로 한국의 모습 실컷 보세요...

정은: (웃으며) 네 실장님...

정은. 창문으로 고개 돌리고 ... 이제 한국을 떠나고 경민과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침울해진다. 바깥 경치를 보다가... 멀리 보이는 건물에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쳐다보는 경민을 본다.

정은: (경민인 것 같아...) 경민? (멀어서 확실하지 않다...)

비행기 이륙하고... 이제 보이지도 않는 건물이지만 그 방향에서 눈을 때지 못하는 정은.

정은: (계속 창문쪽으로 향하고) 경민아... 미안해. (회상 장면: 마지막 회 까페에서 정은에게 가지 말라고 하는 경민의 모습) ... 정말 미안해 경민아.

동준: ... (정은이 우는 것을 알지만 모르는 척 잡지를 꺼내서 보기 시작)

비행기 이제 완전히 이륙해서 하늘로 사라진다.


##### 3. 비행기 안

수면시간... 어두운 상태에서 정은 울다가 잠든 모습... 동준 그런 정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흘러 내린 이불을 덮어주고...


##### 4. 아직 비행기 안

식사 시간...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하는 두 사람

정은: 죄송해요 실장님. 아까는 제가...

동준: ... 아니예요. 제 앞에서는 정은씨 감정 숨기실 필요 없다고 그랬잖아요. 마음 가는데로 하라구.

정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죄송해요 실장님... 제가 처음으로 한국을 떠난다고 하니까 마음이 들떴나봐요.

동준: 또 죄송... 아니 뭘 그렇게 죄송할게 많아요? (놀리며)

정은: (웃음) 하... 또 그랬네요... 버릇인가 보죠 뭐...

한시간 있으면 내린다는 기장의 방송이 있다...

동준: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지겹지 않았어요?

정은: 아니요? 지겹긴요. 전 재미있던데요? 오랜만에 편안히 생각도 할 수 있고... 가만히 있으면 맛있는 음식 가져다 주고...

동준: 정은씨는 모든 일을 다 긍정적으로 봐서 참 마음에 들어요. 그거 쉬운거 아닌데...

정은: (웃음) 그런가요? 왠 일이예요. 실장님이 칭찬도 다하고...

동준: (웃는 정은의 모습을 보며 따라 웃고)


##### 5. 영국 공항 앞

정은 동준과 함께... 이제는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신기한 듯 구경한다.

동준: 정은씨 어때요. 외국에 나온 느낌이.

정은: 모든게 신기해요... 이렇게 외국인을 많이 보는 거는 영화 볼 때나 있는 일인데... 꼭 제가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동준: 그렇죠? 저도 처음에 외국 나올 때 그런 느낌 받았어요.

정은: 실장님두요... 헤 전 제가 촌스러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동준: 아니예요... 처음에는 다 그렇게 느낄 걸요.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근데 며칠 지나면 금방 익숙해져요.

정은: 정말 딴 세상에 온 것 같아요. 꿈꾸는 것 같기도 하고...

동준: 맞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힘들면 외국에 나가고 싶어하나 봐요... 전에 일은 잊고 새로 시작하고 싶어서...
정은: (동준 방금 말에 뭔가 느낀듯... 화제를 바꾸는 정은) 실장님... 이제 뭐 해야 돼요? 숙소엔 어떻게 가죠?

동준: 기다려 봐요. 회사에서 누가 나올거예요... 저도 아직 여기서는 운전하기가 뭐해서요. 사람이 나오기로 했어요.

정은: 왜요? 여기서는 운전 안하세요?

동준: 여기는 차가 왼쪽 차선으로 가잖아요. 저도 여기서 운전하는 거는 익숙하지 않아요.

정은: 아 참 그렇지. 깜박 했네요... 영국이랑 일본은 방향이 반대죠?

동준: (놀리며) 정은씨가 왠 일이예요? 전 정은씨는 그 정도 상식을 줄줄 꿰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정은씨도 상식 좀 더 늘려야겠네요... 그래야 좋은 광고를 만들죠.

정은: (힐겨보며) 실장님~ 지금 저한테 복수하시는 거죠...

동준: 알았어요... 하... 미안. 미안...

정은: 실장님. 두고 봐요~~ ... 근데 실장님 운전 안하면 우리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겠네요?

동준: 왜요... 놀러가고 싶으세요? 우린 일 하러 온건데 (또 농담)

정은: 당연하죠. 처음으로 외국 나온 건데 일만 하다 가면 억울하잖아요... (시무룩)

동준: 걱정말아요... 여기도 전철, 버스 다 있어요. 저 여기 친구도 있구요. 또 지내다 보면 여기 운전하는 것도 익숙해 지겠지요.

정은: 맞아. 실장님 여기 친구 있다는 것 기억나네요... 우리 실장님은 국제적이시니까...

동준: 어 저기 회사 사람 왔나봐요... 우리 가죠.

정은: 예 실장님...

두 사람 차를 타고 숙소로 출발


##### 6. 숙소.

조금은 어두운 복도. 정은과 동준의 방은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동준: 여기가 제 방이구요. 바로 옆에 여기가 정은씨 방이예요.

정은: 잘 됐네요... 저녁 때 같이 밥도 해먹고 할 수 있겠네요.

동준: 왜요... 음식 해먹을려구요?

정은: 그럼요. 굳이 나가서 사 먹을 필요 있나요. 여기 요리도 할 수 있다면서요. 근데 음식 재료는 어떻게 사나? 실장님의 샤브샤브도 먹고 싶은데...

동준: 여기서도 왠만한 건 다 살 수 있어요... 하여간 정은씨는 참 알뜰해요.

정은: 알뜰한 것 빼면 저한테 뭐 볼게 있나요... (웃음)

동준: 알았어요. 그러면 방에 들어가서 짐 풀고 좀 쉬고 있어요. 저 회사에 전화 좀 하고 어디 저녁 먹으러 가죠...

정은: 예 그럼 이따가 뵈요. (각자 방에 들어간다...)


##### 7. 정은방

방에는 침대. 책상. 티비 등이 놓여있다. 가방은 내려놓은 정은... 침대에 걸터 앉아 방안을 구경하는데. 방안에 혼자 있다는 것에 쓸쓸함을 느끼는 정은. 자기가 내려놓은 가방에 눈길이 멎는다.

경민: (회상 장면) 나 진짜, 짐을 하도 풀었다 쌌다 하니까 이제 아주 도가 텃어요... 이거 싸는데 5분도 안 걸렸어... 쌀 때 마다 기록갱신이야...

정은: (눈에 눈물 고이며... 하지만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야 남정은 너 바보같이 왜 이래... 경민이 같은 거 이제 잊어버리자고 했잖아... 왜 잊어버리지 못해... 왜... (끝내 터뜨리는 울음) 이제 그만 잊어버려... 이제 그만...

비어있는 방에서 계속 울고 있는 정은... 옥탑방 안에 혼자 앉아 있는 경민의 장면이 오버랩된다.


##### 8. 식당

오늘도 역시 ^^;;; 동준과 정은은 같이 식사를 하고 있다... 정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난 기분 좋은 표정...

동준: 여기 음식 어때요. 제가 좋아하는 식당인데요..

정은: 예 맛있네요.

동준: 여기 분위기가 참 좋지요... 전에 한번 와보고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었어요.

정은: 그래요? 그럼 소원 풀으셨네요...

동준: 소원이요? 글쎄요... 소원이 풀린건지 모르겠어요...

정은: 왜요? 다시 오셨으면 된 것 아닌가요?

동준: 꼭 한번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한번 와 보고 싶었어요... 정은씨랑 왔으니까 원대로 되긴 됐는데... 어째 더 마음이 허전해지는 건 왜죠?

정은: (조금 놀람) 실장님...

동준: 미안해요. 저... 정은씨한테 부담 주기 싫어서... 이런 이야기 안할려구 했는데. 어떻게 해버렸네요.

정은: 실장님... 그런 건 아니구요...

동준: 저 정은씨 마음 편하지 않다는 알아요... 아직 경민씨 생각한다는 것두요... 하지만... 가끔은 고개를 돌려서 정은씨를 바라보는 제가 있다는 것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한참 동안 말을 못하는 두 사람...

정은: 실장님... 제 마음이 아직 정리가 안되서요...

동준: (정은의 말을 끊으며) 미안해요... 제가 괜히 좋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네요... 우리 이러지 말고 나가죠? 여기 밤거리가 분위기가 아주 좋아요...

정은: 예... (따라 일어서는 정은)


##### 9. 밤거리

밤거리를 걷는 동준, 정은

동준: 정은씨 아까는 미안했어요. 안 그래도 정은씨 여러가지로 복잡할텐데... 괜히 더 부담을 준 것 같네요.

정은: ... 저 실장님. 저 실장님한테 맨날 죄송해요... 항상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동준: 그냥 죄송한 감정 뿐인가요? (전보다 적극적인 동준)

정은: 예?

동준: 아... 아니예요 됐어요. 정은씨. 아까 제가 한 말 잊어버리세요.

정은: ... 실장님

동준: 제가 한 말 신경쓰지 말고... 그냥 전처럼 편하게 지내요.

정은: ... 실장님은 참 바다 같으세요. 다 품어주는...

동준: 바다요... 바다라... 듣기 좋네요. 제가 정말 바다 같았으면 좋겠어요... 정은씨 다 품어줄 수 있게.

말없이 몇 발자욱 걷고.

정은: 실장님. 저 떠나오기 전에 아빠한테 약속 했어요. 저 딴 생각 안하고 열심히 공부만 하겠다구요.

동준: 그래요...

정은: 저... 그래서 이제 경민이 생각도 안할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동준: ... 그게 쉽지는 않을텐데요.

정은: 알아요... 하지만 저 여기있는 동안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딴 생각 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동준: 그래요. 정은씨는 잘 해낼 거예요. 나 정은씨 믿어요.

정은: 고마와요. 실장님. 그래서 이야기인데요. 실장님도 경민이 이야기 제 앞에서 안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뭐 일부러 하실리야 없지만 혹시라두요.

동준: 알았어요. 정은씨 결심이 참 무섭네요... 그래요. 열심히 해요. 저 정은씨한테 직장 상사로서 기대가 커요...

정은: 네. 실장님. 저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 10, 숙소

동준: 이제 내일부터 본격적인 연수의 시작이예요... 정은씨 이제 내일부터 힘들어질테니까 오늘 푹 쉬어요...

정은: 네 실장님도요...

동준: 그리고 내일 아침 7시에 밑에서 보죠. 어디가서 아침이라도 먹고 회사 가아죠.

정은: 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 11. 정은방

불을 켜고 문에 서서 비어있는 방안을 쳐다보는 정은. 결심과는 달리 계속 경민이 생각나고. 자리에 털석 주저앉아... 눈물 흘리는 정은...


##### 12. 정은방 베란다

베란다에서 바깥 경치를 보며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정은...

정은: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까... 딴 생각 하지말고 열심히 하자... 너 이렇게 바보처럼 굴려고 경민이 떠난 것 아니잖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계속 눈물 흘리고 있는 정은... 이때 동준도 바람을 쐬러 옆의 베란다로 나오고... 동준과 얼굴 마주친 정은 얼굴 돌리며 방으로 들어간다. 상황을 짐작한 동준... 씁슬한 표정으로 베란다에 그대로 서서 경치를 보고 있다...


##### 13. 여기 저기

공부하는 정은의 모습... 동준과 식사하면서 즐겁게 웃는 모습... 길거리에서 동준과 걸어가는 모습...

동준: 정은씨. 여기온지 세달밖에 안됐는데 참 빨리 적응을 잘 하네요.

정은: 그럼요... 이젠 영화보는 것 같지도 않구요. 외국인들 만나도 '하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웃음)

동준: 참 대단해요. 정은씨는. (웃음) 우리 이번 주말에는 어디 놀러갈까요?

정은: 정말요? 좋죠. 우리 이번에는 좀 멀리 가죠. 맨날 이 근처만 봤잖아요...

즐겁게 웃는 정은... 하지만... 정은과 동준 옆으로 다정하게 토닥거리며 지나가는 커플... 그 커플을 쳐다보는 정은이의 표정이 좀 침울해진다. 이를 쓸쓸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동준...


##### 14. 정은방

정은 책상에 앉아 한국에 전화를 걸고 있다.

정은: 엄마? 저예요 정은이... 잘 계시죠?

순덕: 아유. 얘는 전화 좀 자주 하고 그래라... 넌 엄마 아버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니?

정은: 안 궁금하긴요... 궁금하죠. 국제전화다 보니 자주 못하는 거죠... 알았어요. 자주 걸게요...

순덕: 어떻게 너는 잘 지내니? 밥은 잘 챙겨먹고?

정은: 네. 그럼요. 이제 여기 생활에 많이 적응되었어요.

순덕: 그래야지... 얘 그 실장은 잘 있니? 너 실장이랑 잘 지내는 거지?

정은: 실장님이야 잘 있지요... 엄마 넘겨짚지 마세요... 저 여기 공부하러 온 거예요...

순덕: 그야 알지... 하지만 난 너랑 그 실장이랑 잘 되었으면 좋겠다...

정은: 저희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요.

순덕: 그런 사이 아니긴... 사귀겠다고 인사까지 와 놓구서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그런 일 없더라도 그렇지 이것아... 몇년 동안 둘이서 객지에서 같이 지내면 없던 정도 생기겠다... 너 그 실장이 그렇게 잘해주는데 딴 생각하지 말고 너두 잘해... 알았어?

정은: 엄마는... 제발 그만 하세요.

순덕: 으이그... 알았어... 내 더 말 안하마.

정은: (긴장된 목소리) 근데 엄마 혹시 저한테 연락 온 것 없었어요? 누가 찾아온다던가...

순덕: 없었는데... 왜 너 경민이라도 찾아왔을까봐 그러지.

정은: 아니요. 제가 걔를 왜요... 올 때 고등학교 친구들한테 연락을 다 못하고 와서 그렇죠...

순덕: 너 맘 내가 모를줄 알어? 경민이고 너 친구고... 너 찾아온 사람도 없고 전화한 사람도 없어... 너 찾지도 않는 경민이는 그만 잊어버리고 그 실장한테나 잘 하라니까...

정은: (오히려 짜증을 내며) 엄만 내가 경민이 언제 찾았다고 그래요... 알았어요. 나중에 또 전화할께요...

전화끊는 정은. 약간은 어두운 방안이 오늘 따라 굉장히 쓸쓸해 보인다... 한참 생각하던 정은 책상 서랍에서 반지함을 꺼내 그 안에 있는 경민의 커플링을 쳐다본다...

정은: 경민이 이 나쁜 놈아... 바보 같은 놈... 그지... 날라리... 야 이경민... 이 바보야...  나 찾고 싶지도 않아? 나 여기 있는데... 여기와서 너 생각 잊은 적 한 번도 없는데... 넌 나를 찾지도 않는거니? 벌써 포기한 거야? 벌써 날 잊은거냐구... (끝내 눈물을 흘리는 정은)


##### 15. 길거리 카페

카페에서 동준과 정은 차를 마시고 있다.

동준: 정은씨. 한국 음식 먹고 싶지 않아요?

정은: 당연하죠. 왜요? 한국 식당 가시게요.

동준: 아니요... 식당 음식 말고 집에서 만든 한국 음식 먹으러 가게요...

정은: 정말요? 와 신나라? 어딘데요?

동준: 이번 주말에 제 친구가 집으로 초대를 했어요. 기억나죠... 친구들끼리 결혼했다는...

정은: 예... 그... 실장님이 좋아했다는...

동준: 예 맞아요...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인데요... 둘 다 좋은 친구들이예요.

정은: 그래요... 잘 됐네요. 저 실장님이 좋아하셨다는 그 분 어떤 분인지 한번 보고 싶었어요.

동준: 훗... 왜요? 왜 보고 싶었는데요?

정은: ... 그거야. 그냥 궁금해서 그렇죠... 왜요? 궁금해 하면 안되나요?

동준: 아니요... 전 정은씨가 나한테 관심이 더 생겼나해서 그렇죠... 하하... 농담이에요.

정은: (말못하고 머뭇)

동준: 그런데 그 집 가서 제가 좋아했었다는 내색하지 마세요. 그 친구들은 그런 거 모르거든요.

정은: 정말요? 여자분도 몰라요? 그럼 완전히 해바라기 사랑이셨네요?

동준: '해바라기 사랑'이요? (피식 웃고...) 뭐 그런 셈이죠... 그저 바라보기만 했으니까...

정은: (그런 동준이 조금은 애처로운듯) ... 실장님 꼭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요.

동준: 고마워요 ... 근데 그 말 꼭 듣기 좋은 말은 아니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은씨가 그런 말 하는 건...

정은: (갑자기 당황) 아니 저는 그런 게 아니라요...

동준: .. 괜찮아요... 원래 전 해바라기 사랑만 하는가 보죠 뭐... 그래도 정은씨는 내 마음 아니까 그 전보다는 많이 발전된 거네요. 그거면 됐어요

억지로 웃음을 띄우는 동준. 동준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정은...


##### 16. 동준 친구의 집

동준과 정은 선물 가방을 들고 벨을 누른다... 문이 열리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재원 (동준 친구): 야~ 유 동준... 이게 도데체 얼마만이냐?

동준: 그래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재원: 그럼 나야 잘 지내지... 자식 영국에 온지 몇달이나 됐으면서 이제야 오냐... 맨날 연락해도 바쁘다는 소리만 하구... 여기 이 분이 너가 말한 정은씨 맞지?

정은: 네... 안녕하세요. 남정은이라고 합니다...

재원: 안녕하세요... 한재원입니다. 동준이 이 친구가 얼마나 이야기를 많이 하던지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정은: 예? 실장님이요? (동준 쳐다보며) 실장님 저 흉보신 거 아니죠?

재원: 흉이라뇨... 예쁘고 착하고 일 잘하고... 하여간 온갖 좋다는 말은 다 갖다 붙이던데요...

정은: 아유 실장님은 도데체 무슨 말을 하신거예요? (투정)

동준: 이 친구가 이야기 했잖아요... 예쁘고 착하고 일 잘하고... (웃음)

정은: 어휴... 실장님도 참...

재원: (두사람 모습을 보며 흐믓) 동준아. 식사 조금 있으면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정은씨도 일단 여기 소파에 앉으세요... (부엌을 보며) 진수씨 동준이랑 정은씨 왔어...

진수: 예 저 나가요...

진수 부엌에서 나오고... 정은, 진수와 얼굴이 마주칠 때 약간 굳어지는 동준의 얼굴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조금 어색해지는데...

##### 17. 동준 친구 집

동준/정은, 재원/진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진수: 저 차린건 없지만... 맛있게 드세요

정은: 차린게 없다니요. 여기 해물탕에 갈비에... 잡채... 샐러드... 게다가 해물파전까지... 와!! 이거 다 직접 만드신거예요?

진수: 재원씨가 좀 도와줬어요. 제가 해물 직접 만지는 걸 잘 못하거든요.

동준: 아니 너희 마지막에 만났을 때만 해도... 맨날 라면만 끓여먹더니... 어쩌다 요리 한다는 게 김치찌개였구. 그리고 재원이 너 음식할 줄 아는 거 아무것도 없었잖아... 몇년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진수: 에이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나 그때 김치 담그는 것도 알았고 또 볶음밥, 잡채 이런 거 가끔 하고 그랬어...

동준: 그래? 근데 왜 난 기억나는게 김치찌개랑 라면 밖에 없냐?

진수: 그거야 너가 기억력이 안좋으니까 그렇지... 나 너 왔을 때 볶음밥도 해주고 그랬어.

재원: 그만들 해라. 오랜만에 만나서. 그리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진수 너 처음에는 음식이 좀... 그렇긴 했지...

진수: 야! 한재원. 너 지금 손님 앞에서... (삐짐) 야 넌 그럼 먹지마

정은: (티격대는 세 사람이 정답게 보인다) ... 저 저기요... 근데 세 분 싸우는 거 밥먹고 나중에 하시면 안 될까요? 맛있는 거 앞에 두고 참기가 힘든데요...

재원: 아참 그렇죠. 야야 너희들 문제는 밥 먹고 나중에 해결해... 일단 먹자구.

정은: 근데 세 분 다 참 다정하신 것 같아요. 오랜 친구 분들이신가 봐요.

동준: 뭐. 그런 셈이죠. 뭐 학교 다닐 때는 삼총사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까.

정은: 어머. 그래요? 전 그 정돈 줄 몰랐어요 (정은 해물탕 한번 떠 먹고...) 와!!! 이 맛 정말 환상인데요? 식당 차리셔도 되겠어요.

재원: (웃음) 여기 살다보면 다 그렇게 되요. 음식 값이 비싸니까 바깥에서 안 먹고 집으로 사람을 부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집으로 사람 초대해놓고 음식 사다가 놀 수는 없으니까 하나씩 해보게 되구. 그러다 이렇게 솜씨가 늘었나 봐요.

정은: 너무 행복하시겠어요. 음식 잘하는 부인 두셔서...

진수: 어유 너무 그러시지 마세요. 사실 요리는 동준이가 제일 잘 했어요. 전 먹는 거만 잘 먹죠...

정은: 실장님 요리 잘하시는 건 저도 알아요. 특히 샤브샤브는 예술이더라구요.

진수: 어 동준이 샤브샤브 드셔보셨어요? 그거 아무한테나 안해주는데... 이거 두분 그냥 회사 동료 사이 맞아요? (놀리며) 좀 수상한데...

재원: (역시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 맞아. 정은씨 이야기 할 때는 신나서 떠드는게 뭔가 있는 것 같아...

동준: 야 야.. 그만 좀 해. 밥 좀 먹자...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 좋기도 하면서 조금 쓸쓸하기도 한 정은.


##### 18. 동준 친구 집 계속

식사 후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네 사람

정은: 오늘 정말 너무 너무 맛있게 먹었습니다.

진수: 뭘요... 전 맛있게 먹어주니까 고맙던데요?

동준: 정은씨. 여기 진수씨랑 친하게 지내세요... 처음에는 쌀쌀맞아 보여도 좀 친해지면 잘해주거든요. 혹시 제가 일 있어서 어디 가거나 할 때 도와줄 수도 있고.

진수: 야... 쌀쌀맞긴 내가 뭘 쌀쌀맞냐? (정은 보고 웃으며) 그래요. 정은씨. 여기서 저 무뚝뚝한 동준이랑만 지내면 너무 답답할 거예요. 전화도 좀 하고 또 주말에는 우리 집에 놀러 오고 그러세요.

정은: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 놓으세요. 제가 한참 어린데요. 그리고 언니라고 불러도 되나요? 제가 맏이라 언니가 있었으면 했거든요... 그래도 되죠?

진수: 와 정은씨 성격 너무 좋네요... 나도 정은씨 같은 동생 만나서 기분 좋네요... 우리 뭐가 맞나 봐요? 오늘 처음 봤는데 말도 잘 통하고...

정은: 에이 언니 말 놓으라니까요.

진수: 그래요? 그럼 그래 볼까 (웃음. 정은 따라서 웃고)

(두 사람을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재원... 일어나며)

재원: 아... 밥을 너무 많이 먹었나? 좀 답답~하네. 진수야 나 좀 바람 좀 쐬고 올께... 정은씨 그럼 이야기 하고 계세요... 동준아... 너도 같이 갈래 (둘이서 나간다)

진수: 으이그... 또 담배 피러가지? 그 놈의 담배 좀 끊으면 안돼? 손님까지 와 있는데.

재원: 담배는 누가 담배를 핀다 그래... 난 그냥 동준이랑 바람 좀 쐴려구 그러지

(동준과 재원 베란다로 나간다...)

진수: (투덜) 아니 그걸 왜 그렇게 못 끊지? 저 추운 베란다에서 벌벌 떨면서도 꼭 담배를 피워야 되나?

정은: 언니 담배 냄새 싫어하시나 봐요?

진수: 당연히 싫지... 그렇게 싫다구 해도 전에는 꼭 집안에서 피워댔어. 지금이야 애 때문에 얌전히 나가서 피는 거지.

정은: 어머 언니 애기 있으세요?

진수: (흐뭇) 음 얼마전에 알았어... 나이에 비해 좀 늦었지? 어때 이제 좀 배가 나오지 않았나?

정은: 모르겠는데요? 와 그러고 보니 언니 정말 날씬하네요... 예쁘고...

진수: 무슨? 그런 이야기 하면 아줌마 놀리는 거지. 정은이야 말로 정말 예쁜데 뭘. 게다가 상냥하지 성격좋지... 동준이가 여자 보는 눈은 있네.

정은: 아유... 뭘요... 부끄럽게

진수: 근데 둘이 정말... 아무 사이 아니야? 동준이가 바라보는 표정이 심상치 않던데?

정은: 저... 솔직히 아무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쩔쩔 매며) 저 좀 설명할려면 복잡한데요... 지금은 그냥 편하게 지내는 사이예요.

진수: 그래? 그 말 들으니까 더 궁금한데? ... 이거 나중에 개인 면담 한번 해야겠는걸?

정은: (말바꾸며) 근데 언니 실장님 잘 아시나 봐요?

진수: 동준이가 아까 말했잖아 삼총사라고. 학교 다닐 때 맨날 붙어 다녔거든. 동준이랑 남편이랑 나랑... 정말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지...

정은: 그랬구나...

진수: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동준이 꽉 잡아... 아마 세상에 동준이만큼 괜찮은 남자 없을거야... 모르지. 나도 남편 아니였다면 동준이 짝이 되어 있었을지도...

정은: 잡긴 누굴 잡아요? 근데 언니 실장님 좋아했나 봐요.

진수: 글쎄. 좋아했다기보다. 동준이가 이해심이 많잖아... 남의 말 잘 들어주고... 그거야 같이 지내 봤으니 잘 알겠지... 그래서 오히려 남편보다 동준이랑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아. 동준이랑 더 말이 잘 통할 때도 있고. 나랑 재원이랑 싸우고 나면 항상 동준이가 중간에서 화해시켜 주곤 했지...

정은: (진수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이) 맞아요. 실장님 그러시고두 남았을 거예요.

(이때 베란다에 나갔던 동준과 재원 들어온다.)

재원: 아니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다정히 하고 있었어?

진수: 무슨 말이긴... 아줌마가 할 이야기가 남편 흉말고 더 있어? (웃음) 그러는 남자들은 무슨 이야기 했는데...

재원: 다 알려고 하지마. 남자들한테도 말못할 이야기들이 있다고... (웃음)

동준: 재원이한테 들었어. 이제 곧 애기 엄마 된다면서? 축하해...

진수: 고마워. 그런데 나 축하하는 것 보다도 너도 그만 고르고 장가가... 세상에 노총각만큼 처량해 보이는게 없어.

재원: 노총각도 노총각 나름이지... 동준이는 아직도 멋있는데 왜... (웃음)

세 사람의 대화를 웃으면서 듣고 있는 정은.


##### 19. 동준 친구 집 앞

동준: 오늘 너희 덕분에 즐거웠다. 나중에 또 보자...

정은: 예 정말 오늘 잘 먹고 잘 놀다 갑니다.

진수: 정은 동생. 나중에 꼭 전화해... 우리 이 재미없는 남자들 빼고 한번 놀러 가자고.

재원: 관둬... 착한 정은씨 물들이지 말고 (웃음) ... 근데 차로 바래다 준다는데 왜 꼭 전철을 타고 갈려고 그래.

진수: 으이그 눈치없긴... 분위기 좋은 밤길 두사람이서 데이트 좀 하겠다는데 왜 낄려구 그래.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 동준과 정은...

동준: 나 간다. 잘 있어라. 또 연락할게...

재원/진수: 그래 잘 가라. 자주 전화해.


##### 20. 밤거리

정은: 두 사람 사는 모습 너무 행복해 보여요.

동준: 그러네요. (조금은 쓸쓸한 억양)

정은: 근데 실장님... 저 아까 많이 놀랬어요.

동준: 뭘요?

정은: 실장님 연기 잘하시데요. 진수 언니 보고 처음에는 좀 놀라는 것 같더니... 그 다음부터는 참 자연스럽게 대하시더라구요.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듯이.

동준: 그랬나요? 아 그거야. 습관이 되서 그렇죠. 연기 아니예요. 처음에는 좀 힘들었지만... 계속 그렇게 지내니까 이젠 자연스러워요. 그리고 또 이제는 아무 감정도 없는데요 뭐... 근데 왠 일로 그런데에 그렇게 관심이 많아요?

정은: 예!! 아니 전 그냥... (오히려 큰 소리) 뭐 전 그런거 관심가지면 안돼요? 실장님이 좋아했었다는데 왜 관심이 안 가요?

동준: (웃음) 전 그냥 물어본건데 뭘 그리 과민반응을 하고 그래요?

정은: 제가 무슨 과민반응을 했다고 그러세요? 실장님도 참...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은 정은을 보고 좋아하는 실장.


##### 21. 숙소

동준: 잘 쉬어요... 내일은 회사 안가니까 오랜만에 늦잠도 자구요...

정은: (웃음) 정말 그래야겠어요. 이번 주는 좀 힘든 주였거든요... 그래두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어서 다시 힘이 났어요.

동준: 다행이네요. 그럼 잘 자요.

각자 방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


##### 22. 동준방

소파에 앉아서 아까 재원과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한다.

재원: 그래. 너는 정은씨랑은 어떤 사이냐?

동준: 무슨 사이긴...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야.

재원: 자식... 난 뭐 눈치도 없는 줄 아냐? 그리고 너 누구 좋아하면 그거 얼굴에 다 써놓고 다녀. 그걸 알아?

동준; ...

재원: 동준아. 한가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말 한다고 기분 나빠하지 말고... 너 정은씨 좋아하면 이번엔 진수한테 했던 것처럼 하지 마라....

동준: ... 너 ... 알고 있었어?

재원: 그걸 말이라고 하냐. 세상에 유동준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리고 말 했잖아. 넌 얼굴에 써놓고 다닌다고.

동준: 미안하다... 걱정마. 나 이제 진수에겐 아무 감정이 없다. 이젠 그냥 좋은 친구일 뿐이야.

재원: 미안하긴... 오히려 내가 고맙지. 너가 내색하지 않고 계속 친구로 남아준 게 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래서 너가 진수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서도 모른체 한 거구... 너가 진수 좋다고 나섰으면... 우리가 친구로 남아있었겠어? 나도 진수를 포기하진 않았을테구. 그럼 결국 둘 중의 하나는 떨어져 나갔겠지.

동준: ... 그거야. 진수가 너를 더 좋아했으니까 그렇지...

재원: 진수에 대해서야 너한테 고맙지만... 너 정은씨한테는 그러지 마라. 너가 그랬잖아. 사랑한다면 그걸 지켜야 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라구...

동준: 근데 그게 말처럼 되는게 아니더라. 사람 마음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회상장면 끝나고... 전화를 걸려고 망설이는 동준... 들었던 전화기를 내려 놓는다. 어두운 방안에서 생각하는 동준...


##### 23. 정은방

정은도 비어있는 방에서 혼자서 생각을 하고 있다. 아까 진수를 만났을 때 멈칫했던 동준의 얼굴이 생각나고... 그런 생각이 난다는 것에 당황한 정은. 동전 지갑 속에 넣어둔 경민의 커플링을 꺼내서 본다... 한참 바라보던 정은. 다시 커플링을 동전지갑 안에 넣고...


##### 24. 아침 식당

왠지 어색한 두 사람. 말없이 차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다.

동준: ... 정은씨. 오늘 쉬는 날인데 어디 놀러가지 않을래요? 오랜만에 날씨도 괜찮은데

정은: (왠지 내키지 않는다) 오늘요? 저 ... 다음에 가면 안 될까요? 저는 오늘 그냥 제 방에서 쉬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주 너무 힘들었거든요.

동준: (실망) 그래요? 그럼 뭐 할 수 없죠. 뭐 그럼 오늘은 각자 쉬다가 저녁 때 식사나 하러 갑시다.

정은: 네. 실장님은 뭐하실 꺼예요?

동준: 글쎄요. 뭐 생각해 놓은 건 없는데. 나도 숙소에서 밀린 잠이나 잘까 해요.

정은: 네 (편않지 않은 웃음)


##### 25. 동준방/정은방

(** 왜 그거 있죠? 화면 나누어서 두 장소 동시에 보여주는 것...)

동준.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고... 정은 뭔가 초조한듯 방에서 왔다 갔다... 옆방에 동준이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듯 동준 방을 가끔 가다 쳐다본다.


##### 26. 식당

영국온 첫날 갔었던 그 식당.

동준: (식사를 마치며) 어때요? 오늘 쉬니까 좀 피로가 풀렸나요?

정은: 예. 많이 좋아졌어요.

동준: 다행이네요.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정은: 아니예요... 연수와서 계속 영어공부만 할 수 없잖아요. 빨리 정식 연수 들어갈 수 있게 열심히 해야죠.

동준: 하여간. 정은씨 욕심은 알아줘야 되요.

정은: 저요... 랭귀지 코스 빨리 끝내구요. 연수 예정보다 빨리 시작하면 한국에 돌아가는 것도 빨라질 수 있나요?

동준: 왜요? 한국에 빨리 돌아가고 싶으세요?

정은: 예... 좀. 그냥 부모님이랑 정우랑 보고 싶기도 하고 친구들도 보고 싶고...

동준: 그것 뿐인가요? (마음 상함) 그럼 중간에 한국 한번 다녀오지 그래요? 내가 회사에 한번 이야기 해 볼게요.

정은: (심각해지는 정은) 아니예요.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저 한국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자신 없어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동준. 조금은 기분이 상해서 원래 하려던 말보다 다른 말이 튀어나오고)

동준: 이제는 정리가 좀 된 줄 알았는데 아니였나요?

정은: (모르는 척) 무슨 정리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두 사람...)

동준: ... 우리 어디 술이나 한 잔 하러 갈래요?

정은: 술이요? ...

동준: 그래요. 술이요. 오래간만에 서로 고민 상담 좀 하자구요...

정은: 좋아요. 근데 고민 상담은 소주를 마셔야 되는데...

동준: 그래요? 그럼 가는 길에 사가지고 숙소에서 먹죠 뭐... 먼저 들어가요. 제가 술 사가지고 갈게요.

정은: 그럼 제가 음식 좀 준비해 놓을게요. 제 방으로 오세요.


##### 27. 가게

술을 사고 돈을 내는 동준... 오늘은 꼭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고...


##### 28. 정은방

정은과 동준 술을 마시고 있다... 아무 말이 없는 두 사람.

동준: 정은씨 오늘 따라 우울해 보이네요... 고민 있으면 이야기 해보세요... 오늘 고민 상담해주기로 했잖아요...

정은: (좀 짜증이 난듯이) 실장님. 실장님은 제가 무슨 일로 이러는지 모르세요?

동준: ...

정은: (화를 내며) 제가 경민이 때문에 이런다는 거 뻔히 아시잖아요. 경민이 못 잊어서 괴로워 한다는 거... 실장님은 화도 안나세요? 왜 실장님은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기만 하세요?

동준: (할말 없음) ...

정은: 제가 요즈음 왜 힘든지 아세요? 제가 무얼 두려워 하는지 아세요?

동준: ...

정은: (울먹이며) 저 실장님 좋아하게 될까 봐 겁이나요...

동준: (뜻 밖의 말에 놀라며) 정은씨...

정은: 실장님이랑 더 가까와 질까봐... 실장님을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렵다구요...

동준: (정은의 말을 아직 이해 못한든)

정은: (** 정은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정은의 대사를 따로 나누어 놨습니다.)

저 사실 처음에 경민이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경민이 생각만 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고...

동준: 알아요... 정은씨 힘들어 한 거...

정은: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도 무디어 지더라구요... 울지 않고 잠드는 날도 늘어나고...
그 동안 실장님이 저한테 얼마나 의지가 되어주셨는 줄 몰라요...
아침에 일어나면 같이 식사를 하고... 저녁에도 같이 식사를 하고... 주말에는 같이 놀러 다니고...
저 경민이랑 지낸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실장님이랑 보냈어요...

어떤 때는 경민이 생각보다 실장님 생각을 더 많이 하는 저를 보고 깜짝 놀랠 때도 있어요...
지금은 실장님 얼굴 떠올리는게 경민이 얼굴 기억하는거보다 더 쉬워요...

동준: 정은씨...

정은:

저 실장님 친구분들 사는 모습 보고 너무 부러웠어요.
나도 저렇게 좋은 사람 만나서 서로 아끼며 살아야지...
실장님이 나를 그렇게 아끼고 도와주는데...
실장님 곁에 있다면 나도 저렇게 포근한 가정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

근데요... 근데요...

(울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내가 실장님을 좋아할 수도 있겠구나...
내가 유동준이라는 사람의 부인이 될 수도 있겠구나...

...

그래서... 이경민과 남정은은 그렇게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로 끝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 (흐느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요...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어요...

...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경민이 때문에 그렇게 아파했는데...
경민이 다시는 안 보겠다고 가지말라는 거 뿌리치고 여기까지 왔는데...
왜 경민이 생각만 하면 왜 이렇게 외로운지, 왜 이렇게 걔가 보고 싶은지...

...

저 이런 말씀 실장님한테 하는 거 실장님 마음 아프게 한다는 것 알아요.
제가 실장님한테 나쁜 짓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저 이렇게 경민이와 끝낼 수는 없어요...

(정은 계속 울고 있고... 동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 29. 동준방

소파에 앉아서 혼자 외로이 있는 동준... (불쌍해... -_-;;;)

정은: (목소리만. 울음 섞인 목소리) 실장님... 죄송해요. 저 한국 좀 다녀올게요. 저 연수를 관둬야 된다면 관둘게요... 저한테 이 연수가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있다가 정말 저에게 소중한 것을 놓질 것만 같아요.

정은: (목소리만. 침착해진 목소리) 실장님. 저 경민이 다시 한번 만나기 전에는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요... 경민이를 완전히 잊어버릴 수도... 실장님 마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저 이대로 경민이와 헤어지면 아마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 거예요.

계속 앉아 있는 동준...


##### 30. 동준/정은

각자 힘들어 하는 동준과 정은의 모습... 경민의 커플링을 보며 고민하는 정은의 모습... 식사도 따로 하고 어쩌다 숙소 복도에서 만나도 대화 없이 각자 방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


##### 31. 길거리 카페

동준과 정은 오랜만에 같이 식사 중... 둘다 말이 없다.

정은: (억지로 말을 꺼내며) 실장님. 지난번에 제가 말한 거요...

동준: (정은의 말과는 상관없다는듯한 억양으로) 정은씨. 저 어제 회사에 전화했습니다. 정은씨 집안에 일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일주일 동안 한국에 다녀올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다음주 월요일에 좌석이 있더군요... 일주일 남았으니까 서둘러 준비하세요.

정은: (의외의 결과에 놀라며) 실장님...

동준: 대신 일주일 만입니다. 일주일후면 다시 복귀해야 됩니다...

정은: 실장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동준: (목소리가 조금 떨린다) ... 아마 이게 제가 정은씨한테 해 줄수 있는 마지막 배려일 것 같네요.

정은: (놀라며) 예? 그게 무슨...

동준: (머뭇거린다. 그러다 결국 말을 꺼낸다.) 정은씨 제가 진수 만났을 때 참 자연스러웠다고 했었죠? 지금은 진수 앞에서 아무 일이 없이 행동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예요. 오랫동안 그렇게 행동해 왔고, 또 지금은 진수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쉬웠던 것은 아니였어요.

정은: ...

동준: 처음에는 참 힘들었어요.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고 그냥 아무 일이 없는듯이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 제가 그랬죠... 제 친구를 좋아하는 줄 알면서도 제 감정을 없애기가 쉽지 않았다고... 두 사람이 결혼하는 그 날에도 저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겉으로는 두 사람을 축하하면서두요...

정은: (울먹이며) 실장님...

동준: 저 정은씨 앞에서 다시 그렇게 행동할 자신 없습니다... 다시 제 감정 숨기며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더 이상 없습니다. 그래서... (머뭇) 저 떠나겠습니다.

정은: (놀람) 실장님.

동준: 어디로 갈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은씨 한국 갖다 오면 아마 저는 없을 겁니다.

눈물 흘리며 동준을 바라보는 정은... 복잡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동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줄 압니다. 하지만 저도 정은씨한테 지금 이 이야기를 안하면 평생 후회하며 살 것 같아서요... 저 전에 그 식당에 일부러 가자고 한 건 정은씨에게 청혼할려고 간 것이었습니다.

정은: ...

동준: 전 정은씨 상처가 많이 치료된 것 같고... 또 우리 사이가 전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은씨도 저한테 더 많이 관심을 가지는 것 같고... 그런데 그건 저만의 착각이였던 것 같네요.

정은: ...

동준: 저 먼저 올라갈게요... 나중에 천천히 와요... 그리고 내일 아침은 각자 해결하기로 하죠...

정은: (일어서 돌아서는 동준을 향해) 실장님! 조금만 더 계시면 안돼요?

동준: (멈추어선다)

정은: 실장님. 가지 마세요... 죄송해요.... 근데 저 실장님까지 가 버리면 저는 어떻게 할 지 모르겠어요. (또 울며...)

동준: (냉정해진 동준) 제가 있어서 정은씨 마음의 빈자리가 채워진다면 ... 저 계속 정은씨 곁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 그 빈자리는 제가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닌 곳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준... 가 버리고 남은 정은... 너무 힘들어 하고...


##### 32. 정은

정은방... 동준과 경민의 얼굴을 떠 올리며... 고민하는 정은.


##### 33. 정은방.

전화하는 정은.

정은: 진수 언니? 언니 저한테 시간 좀 내 줄 수 있어요? ... (씁슬한 웃음) 예... 개인 면담 좀 할려구요...


##### 34. 식당.

정은과 진수 차를 마시고 있다.

진수: 후... 그런 일이 있었었구나... 너랑 경민이라는 친구... 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네...

정은: ...

진수: 두 사람 다 상대방을 끔찍히 생각한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티격태격 한거야?

정은: 모르겠어요. 이상하게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싸우게 되요. 일도 자꾸 꼬이구요.

진수: 정말 ... 애들도 아니고.

정은: 맞아요... 둘 다 어렸나봐요. 경민이도 어렸고 저도 어렸고... 전에는 경민이 때문에 제가 많이 아파했다고 생각했어요... 다 경민이 탓이라고 생각한거죠... 하지만 이제 보면 저도 잘한 것 만은 아니예요... 제가 경민이를 조금 더 이해하고 받아줬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진수: 상대방을 정말 사랑하면 쉽게 받아줄 수 있는 것도 오히려 더 못 받아주게 되고 그러는 거야.

정은: 그런가요? ... 언니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진수: 근데... 동준이랑은 어떻게 할 거야?

정은: 글쎄요... 저 때문에 실장님이 떠나는 건 정말 싫어요...

진수: 정은이 참 행복한 고민이네... 그렇게 멋있는 두 사람이 다 정은이를 좋다고 하니... (침울한 정은의 표정을 보고) ... 미안... 농담이야... 농담. 그게 행복한 고민이 될 수가 없다는 거 나도 잘 알지...

정은: 진수 언니. 실장님이 언니 좋아한 거 알고는 계셨어요?

진수: 글쎄... 훗... 나 그렇게 무딘 여자 아니야. 친한 친구가 나에 대한 감정이 바꼈다는 것도 모르면 말이 안되지...

정은: 근데 왜 언니는 지금 남편을 택하셨어요? 언니가 그랬잖아요? 실장님이랑 더 이야기가 잘 통했다고 ...

진수: 정말 몰라서 물어?

정은: 네?

진수: 정은이는 왜 동준이 말고 경민이를 선택하려고 하지?

정은: 저 경민이 선택했다고 말한 적 없는데요...

진수: 내 생각에 정은이는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은데? 누구를 선택할 지....

정은: ...

진수: 그리고 나를 보자고 한 건 스스로에게 옳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확신을 주기위해서 만나자고 한 거 아니야? 어때 내 말이 맞지?

정은: ... 언니 말이 맞아요.

진수: 나 동준이 친구로서 정말 좋아해... 동준이랑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하지만 사랑은 그것과는 다른 감정인 것 같아... 재원씨 어떤 때는 웬수 같지만... 그 사람 없으면 마음이 너무 허전해...

정은: 저도 그 마음 이해해요.

진수: 마음이 시키는 데로 해... 가슴에 묻어 둔 사랑은 평생 가는 거야... 그거 시간 지난다고 지워지지 않아.

정은: 알았어요... 언니 고마와요...

진수: 그래... 정말 한국에 갈거야?

정은: 모르겠어요... 막상 한국에 갈려니 자신이 없어요. 제 마음의 앙금이 아직 사라진 것 같지도 않고... 경민이 만나면 또 다시 싸우게 될까봐 걱정이고... 딴 생각 안하고 정말 공부만 하겠다고 아버지한테 약속드리고 왔는데... 아버지 실망시켜 드리는 것도 마음이 아프구요.

진수: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보고 싶으면 보러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정은: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네요...


#### 35. 고민하는 정은

한국에 가야할 지 고민하는 정은... 실장 생각 때문에도 걱정이 많고...


##### 36. 고민하는 동준

고민하는 동준. 먼 발치에서 혼자 카페에 앉아있는 정은을 쳐다보며... 정은의 힘들어 하는 모습에 같이 아파한다...


##### 37. 길거리 카페

혼자 앉아 있는 정은에게 동준 다가온다...

동준: (마치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 정은씨... 한국 갈 준비 잘 되가요?

정은: (갑작스런 동준의 변화에 놀라며) 어... 실장님. 여기 왠 일이세요?

동준: 왠 일이긴요? 그냥 정은씨 어떤가 걱정되서 왔죠...

정은: (놀람) 실장님...

동준: 제가 그랬잖아요... 제대로 하는 거 없고, 사고만 치고, 내 마음 받아주지 않는데도... 자꾸 걱정 되고 생각이 나는 걸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다구요.

정은: (울먹이며) 실장님...

동준: 걱정하지 말고 갖다 와요. 내 신경쓰지 말구요... 가서 경민씨랑 만나서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와요.

정은: 저 다녀오면 실장님은 안 계실거잖아요...

동준: 아니요. 있을게요... 저 그냥 전이랑 똑같아요.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잘 지내는 거 힘들 줄 알았는데 ... 이미 한번 해봐서 그런지 어렵지 않네요... (미소... 하지만 슬프기도)

정은: 실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말을 잊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동준: 이런 말하면 서운할 지 몰라도... 이번엔 제 자리를 빨리 찾을려고 해요...

정은: ?

동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 정은씨 경민씨 떠날 수 없을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정은씨에 대한 감정 계속 간직하는 것도 옳은게 아닌 것 같구요.

정은: ...

동준: 정은씨에 대한 마음 정리할려고 생각하니까... 정은씨에게서 좋은 직장 동료... 아니 좋은 친구의 모습을 발견했어요.

정은: 저한테서요?

동준: 그래요. 정은씨한테 연인이 되지는 못하지만 좋은 친구로는 남고 싶어요... 모르겠어요... 나중에는 또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드네요...

정은: 실장님... 정말 고마와요... 실장님 정말..

동준: 바다 같다고 할려고 그러죠? 그래요. 정말 바다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정은: (기뻐서 웃지만 눈물도 나고...) 정말 다행이예요... 실장님 못 보게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어요.

동준: (놀리며) 정은씨 너무 욕심 많은 거 아니예요? 경민씨 하나로 만족 못하나 보죠?

정은: 실장님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전 실장님이 좋아서 그러는 건데...

동준: 어... 그런 말 이제 하지 말아요... 어렵게 마음 정리해 가는데... (웃음)

정은: ... 실장님... (울음) 너무 고마와요... 정말 실장님 없었으면 저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동준: ... 그게 제가 제일 잘 하는 건가 봐요... (미소)

눈물 흘리면서도 미소를 띄며 동준을 바라보는 정은... 정은의 미소에 미소로 답하는 동준.


##### 38. 동준 사무실

일하고 있는 동준. 정은 다가와서...

정은: 실장님. 시간 있으세요?

동준: 어 정은씨... 여긴 왠 일이예요. 지금 학원에 있을 시간 아닌가요?

정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잠깐 나왔어요.

커피 마시는 장소에 가서 차를 마시며...

정은: 실장님. 저 한국 안 갈래요.

동준: 아니 왜요?

정은: 제가 한국에 가고 싶었던 거 사실 실장님 때문이였어요... 실장님이 제 마음을 흔들어 놓셨거든요. (미소) 근데 이제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제가 누구를 선택해야할지도 알겠구요... 그리고 생각해 봤는데요. 저 아직 경민이를 다시 만날 준비가 안된 것 같아요... 아직 경민이에 대한 화가 다 풀린 것도 아니고. 지금 만나면 아마 또 싸우기만 하다가 헤어질 것 같아요.

동준: 걱정되지 않아요? 정은씨는 그렇다고 해도 ... 그러다 경민씨 딴 여자 만나서 가버리면 어쩔려구요...

정은: 그렇게 가 버린다면 저도 그냥 차버리면 되죠 뭐... 그땐 저도 미련 없어요... (웃음)

동준: 그런 이야기가 쉽게 나와요?

정은: (웃음을 멈추며) 저나 경민이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일단 시작한 공부는 끝을 내고 싶어요... 저 지금 한국 들어가면 다시 나올 자신 없거든요... 또 경민이 앞에 한단계 성장한 정은이로서 나타나고 싶기도 하구요.

동준: 그러다 정말 경민씨 못만나면요? ... (웃음) 이거 아직까지 저한테 기회가 있는 건가요?

정은: (창밖의 하늘을 보며) 실장님. 죄송한데요. 그렇지는 않을 거 같아요... 경민이 만나지 못하더라도... 경민이에 대한 마음... 제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동준: (씁쓸하다) 부럽네요. 경민씨가...

정은: 실장님... 저 바보같은 짓 하는 거 아닌가요? 그냥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여기에 남는 일... 솔직히 불안하기는 해요.

동준: (웃으며) 그래요... 정말 바보같기는 하네요. 제가 보기에 두 사람 다 바보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경민씨도 한국에서 정은씨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정은: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실장님 정말 고마와요. 제 마음을 이해해 줘서. 저 딴건 몰라도 정말 괜찮은 부하 직원이 될게요...

동준: 그리고 좋은 친구도요...

정은: 네 실장님... (미소)


##### 39. 정은방 베란다

미소띤 표정으로 경치를 보고 있는 정은. 눈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

정은:

경민아... 잘 있니? 나 너 많이 보고 싶다...
나 이제 확실히 알았어...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건 너라는 걸...
잠시나마 실장님 때문에 마음 흔들린 것 미안해... (웃음)

나 아직도 너 커플링 가지고 있다. 사실 너랑 관계된 게 이거 하나 밖에 없어...
올 때는 너 잊어버릴려고 아무 것도 안가지고 왔거든.
이것도 버릴려구 하다가 아까와서 가지고 왔는데 ... 버렸으면 엄청 후회할 뻔 했네...

오늘 실장님 한국에 가셨어...
이제 일년 동안 혼자 지내야 돼...
그래도 걱정마... 나 이제 여기서 잘 지내. 영어도 많이 늘었고.

혹시나 너 나 기다렸다면 일년만 더 기다려 줄래.
설마 나 잊어버리고 다른 여자한테 간 건 아니지?
그랬기만 해봐... 내 가만 안둘거니까...

이제 일년. 나 그만큼 성장된 모습으로 너 앞에 나타날게...
기다려 줘. 경민아...

기다려 줘...



2008. 7. 14. 21:17
The Positivity Blog에서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스티븐 킹의 일곱가지 팁'이라는 글을 봤습니다.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창작론'에 나온 스티븐 킹의 원칙을 잘 정리했기에 제 나름대로 번역및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저도 얼마전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었습니다. 오디오북이었으므로 사실 '들었다'가 정확하겠네요 ^^ (내용은 미탄님의 서평 참조) 원제는 'On Writing: A Memoir of the Craft'이지요. 번역하자면 '글쓰기: 그 기술에 대한 회고'라고 할까요? 창작론 부분도 좋았지만, 저는 앞부분에 등장하는 자서전부분이 더 좋았습니다. 가족을 위해 '글을 더이상 못쓰게 되어도 좋다는' 각오로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을 극복하는 부분에서 그에 대한 선입관을 없애게 되었습니다.

호러나 스릴러. 이른바 순수문학을 하는 이들에게는 폄하될 장르 소설을 쓰지만, 스티븐 킹의 작품은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으로 인정되는 느낌입니다. 최소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그의 능력은 정말 탁월한듯 합니다. 그의 작품은 발표되고 2~3주면 베스트셀러에서 사라진다고 하네요. 그 사이에 몇백만부가 팔려 더 이상 살 사람이 없어서랍니다 ^^;;

각설하고 (그의 첫번째 원칙 ^^) 그가 말하는 일곱가지 팁이 무엇인지 옮겨보겠습니다. 전에 쓴 저의 글쓰기 방법과 연결해서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 감히 스티븐 킹과 비교하려는 거냐? ㅡ.ㅡ)

1.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라

읽는 이로 하여금 배경이나 서론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킹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별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2. 초안을 쓰고, 한동안 쉬게하라

킹은 초안을 쓰고 나면, 서랍에 넣어두고 몇달동안 보관했다 다시 읽어보고 수정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Positivity Blog의 주인도 포스팅을 일단 쓰고 나서 하루나 이틀 뒤에 수정을 한다고 하네요. 그렇게 함으로 처음 썼을 때의 마음을 어느 정도 정돈하고, 머리가 깨끗해진 상태에서 글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3. 글의 양을 줄여라

이건 누구나 말하는 글쓰기의 원칙입니다. 여러번 다시 읽으면서 필요없는 단어나 문장을 지워야합니다. 글이 짧을수록 (대체적으로) 의미는 명확해지고, 더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그렇다고 너무 줄이면 역효과가 납니다. 킹은 10%룰을 제안합니다. 처음 글에서 10% 정도 줄이면 글이 깔끔해질 수 있습니다. 원블로그 주인도 10%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네요.

4. 감정이입이 되게 하라.

킹의 작품에 등장하는 상황은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겁니다 ^^ 그렇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 이입이 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럼에도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게 킹의 탁월함입니다. (제 아들이 '미저리'를 읽으며 몇번을 무섭다고 멈추던 것이 기억나네요.)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솔직한 표현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은 좋은 쪽이나 나쁜 쪽이나 '사람'같이 느껴지는 솔직함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읽는 사람이 비정상적인 상황임에도 자신과 작품속의 인물을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원칙은 대화의 스타일입니다. 간단하게 쓰고 또 일상적인 표현을 써야합니다.

5.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너무 신경쓰지 마라

킹도 좋은 피드백을 필요로 한다고 인정합니다. 소설을 쓰면 아내로 하여금 처음 읽게하는데, 아내가 웃다 지쳐 울거나, 아니면 글에 감동받아 눈물 흘릴 때는 좋아 죽겠답니다. 하지만 그는 작품과 킹 자신을 혼동하는 사람들로부터 불쾌한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지옥에나 가라고요. 요즘은 악성댓글을 많이 받겠죠 ^^ 그리고 킹은 문학비평가로부터 좋은 소리를 별로 듣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아침 글을 씁니다. 비평에 너무 신경쓰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6. 많이 읽어라

킹은 무언가 읽으면 항상 교훈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글쓰는 원칙, 좋은 아이디어, 세상 이야기, 혹은 피해야할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배울 것은 있습니다. (항상 자동적으로 교훈을 얻는 것은 아닐겁니다. '뭐라도 배우려는' 의지가 필요하지요.)

좋은 작가가 될려면 많이 읽어야 합니다. 범위를 넓히고, 지식을 쌓아야합니다. 새로운 것을 나의 것에 섞어보면서 어떻게 발전하나 지켜봐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많이 읽을 수 있을까요? 킹은 어디를 가든지 책을 들고 다니라고 합니다. 최대한 읽어야합니다.

7. 많이 써라

이거 너무 당연한 거죠 ㅡ.ㅡ;;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겁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마이클 조단, 타이거 우즈... 이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훈련을 합니다 (우즈는 매일 골프 연습 하기전, 몸을 다치지 않기 위해 하는 신체 단련 운동만 두시간 한다고 합니다.)

'영감이 안떠올라서'같은 핑계는 소용없습니다. 미탄님 (혹은 송숙희님?) 표현대로 '꾸역꾸역' 써야합니다. '파인딩 포레스터'의 포레스터가 말하는 것처럼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고 한글자씩 누르다 보면 글이 나오기도 합니다. 혹은 무작위로 주제를 정하고 '200단어 내외로 쓰기'같은 연습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연습 없이는 발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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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9. 09:38
이 글은 알라딘에서 진행하는 '문학에 관한 10문 10답 트랙백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이번 기회에 문학에 대한 저의 기호를 짚어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1.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가장 좋아하는 종류는 역사 소설입니다. 요즘 인기를 끄는 팩션보다는 전통적 의미의 역사소설(예: 칼의 노래나 장길산)을 좋아합니다. 역사소설만 구해서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소설 자체를 많이 안 읽는지라. 이 글을 쓰다 보니 다시 관심이 갑니다. 그리고 추리소설에 푹 빠져서 살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딕슨카의 밀실 추리를 참 좋아라 했지요 ^^

2. 올여름 피서지에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음... 피서지에서 책을 읽고 있을 여유가 생길까 의문입니다만... 가져간다면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싶네요. 관심은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읽은 것이 없거든요.

3.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지금 현재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작가는 '김훈'입니다. 그의 문장을 특히 좋아합니다.

4.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소설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잭 라이언'입니다. 톰 클랜시 소설(애국전쟁, 붉은 10월...)에서 등장하는, 교수에서 CIA 국장을 거쳐 미대통령까지 되는 인물입니다. 그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좋아합니다. 물론 소설 자체도 재미있구요.

5.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인물 /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감정 이입이 되어 몰입했던 인물로는 미카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에 나온 바스티안입니다. 현실에서 부족한모습이지만, 상상의 세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하는 그 모습이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되었지요.

6.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소설책을 선물해본 적이 별로 없네요. 앞으로 선물한다면 미카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7. 특정 유명인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싶은가요?

없습니다. 다만... 이 이벤트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유명인사'로 MB를 지목할 것이라는 짐작이 드네요 ^^

8. 작품성과 무관하게 재미면에서 만점을 주고 싶었던 책은?

한국에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아들이 추천해서 읽은 '프로젝트 17 (Project 17)'이라는 소설을 꼽고 싶습니다. 여섯명의 고등학생이 다큐멘타리를 찍기 위해 문닫은지 오래된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약간' 공포소설입니다. 여섯명을 돌아가며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정말 재미있습니다. 하이틴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라 주제나 결말이 좀 시시하긴 해도 ^^ 재미면에서는 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9.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칼의 노래' 중 "그는 그 한문장이 사람들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0. 당신에게 '인생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삼국지는 지금의 저를 만든 책중 하나입니다. 더불어 '갈매기의 꿈'이 있습니다. (짧은 책이기도 하지만) 중학교 때 전체를 거의 다 외울 정도로 많이 읽었습니다. 제 생각에 큰 영향을 준 책입니다. 또한 저에게 '정신적 역마살'을 끼게 한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도 기억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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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3. 14:49
바리데기 - 6점
황석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세상에 존재하는 부조리는 글쓰는 이의 중요한 소재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조리를 극명하게 드러내어 이를 없애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혹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부조리를 까발리어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부조리가 사라질 수 없고, 세상의 모순은 확대재생산되어 간다면, 세상을 향해 외치던 이로서는 허탈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내가 읽은 황석영의 첫 작품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다. <넘어 넘어>로 불리우던, 당시로는 유일하게 광주항쟁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던, 80년대를 살며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든 읽어봤을 필독 도서다. 솔직히 이 '황석영'이 대입 시험에 등장했던 <장길산>의 그 황석영인줄 전혀 생각못했었다. (황석영이 <넘어넘어>를 쓸 줄 알았다면 대입시험에 그의 이름이 등장했을까? 절대 없었을 것이다.)

부조리에 대한 고발은 그의 문학의 큰 줄기이다. <장길산>이 지나간 역사를 들어, 그 시대의 부조리를 이야기하였다면, <넘어 넘어>는 살아가고 있는 그 시대의 모순을 목숨걸고 고발하였던 작품이다.

이후 그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소설의 소재가 되어도 충분할 인생의 곡절을 겪었다. 그런 그가 최근에 <바리데기>를 들어 다시 세상의 부조리를 이야기했다. 80년대와 차이가 있다면 스케일이 커졌다고 할까? 전작 <심청, 연꽃의 길>이 제국주의 시대에 가상의 인물 '청'을 등장하여 그 당시의 모순을 이야기했다면, <바리데기>의 '바리'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지금의 세상 어딘가에 꼭 한명 있을 것 같은, 우리 세상의 아픔을 담고 있는 여인이다.

태어나며 받았던 남존여비의 차별은 어쩌면 바리가 받았던 가장 신사적인 부조리였을 것이다. 북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그리고 영국으로 흘러가는 그녀의 삶에는 시대의 모순이 새겨져 있다. 인민이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던 그 곳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 자본주의의 돈맛을 알아 다른 이의 생명을 죄의식 없이 짓밟는 인간들. 나라의 독립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임에도, 힘이 없기에 폭력에 의지하고, 또 그래서 악으로 치부되는 민족. 지독한 인생 피할 곳은 중독밖에 없기에 다른 이의 호의를 죽음으로 돌려주는 불쌍한 인생.

작가는 바리의 삶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잘 엮어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실적인 묘사. 바리가 무당의 끼를 타고났다는 설정을 통해, 여러 등장인물들의 절망과 희망을 드러내는 것은 탁월했다. 특히 상세히 묘사된 북한, 그리고 탈북자들의 상황은 같은 시대에 이렇게 다른 삶이 있나 하는 이질감까지 느끼게 했다.

하지만 작가는 세상에 대한 고발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소설 속의 바리는 고난과 아픔을 겪고 생명수를 찾아오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허나 어쩌나. 생명수 하나 찾아서 없어질 세상의 모순이 아닌 것을. 결국 바리가 찾아온 '생명수'는 어설픈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고 만다. 잘 풀어나가던 이야기 보따리를 마지막에 황급히 닫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차피 세상의 모순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작가의 절망 때문이 아닐까? 9.11 이후 이라크 침공이 진행되는 시대속에 아랍인 남편 알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바리에게서 '생명수'는 보이지 않았다. 허탈했다.

'바리가 구한 생명수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작가는 '생명수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바리는 그것을 찾기라도 했을까요?'라고 답한다. 이 부분에서 작가에 대한 배신감마저 느낀다면 심한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무기력함을 공유해야 하는 것일까?

광주의 죽음을 한참동안 이야기할 수 없었던 나라가, 대통령을 온국민의 놀림감으로 삼는 나라로 바뀌었다. 최류탄 연기로 눈물 흘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거리에 나가 정부를 비판할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만큼 더 밝아졌을까? 그만큼 더 나아졌을까? 잘 살게 해준다면 윤리의식은 개에게나 주라고 반이 넘는 국민이 합의했던 사건은 또 다른 모순이다. 진실을 찾는 목소리가 개인의 이해관계로 필터링되는 세상의 소통은 해결책이 없을 또 다른 부조리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전보다 더 지능적으로, 더 치사하게 진화해갈 뿐이다.

<바리데기>에 생명수는 없었다.

다만 답을 제시하고자 붓을 들었으나, 답을 찾지 못한 작가의 회피하는 모습만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를 비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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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21. 14:51
김훈의 글은 섬세하고 예리했다. 멀찌기 서서 혼자 내지르는 둔한 장검처럼 보였으나, 실은 옆에 서서 내 심장을 서걱 서걱 잘라내는 날선 일본도에 가까웠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소박하지도 않았다. 그 중간 어디쯤에 있었고, 그 경계 밖에 있는 것도 같았다.

그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버리고자 했다. 그래야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연민을 버렸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 그 안의 영웅은 사라졌고, 모두가 영웅이 되었다. 전쟁의 시대를 살아간 그 모든 사람들은 영웅이 아니였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있었고, 살아남았기에 죽은 이의 절망을 안고 살았다. 모두가 영웅이였고, 모두가 영웅이 아니였다.

그는 사람의 악함을 알았고, 약함을 알았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이 공존할 때, 사람은 살기위해 악해졌고, 살기위해 약해졌다. 그런 사람을 김훈은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었다. 그의 눈에 사람은 애처롭기만 했다. 살아갈 명분을 얻기 위해 신하의 목에 칼을 겨누는 임금과, 죽을 의미를 찾기 위해 자신을 살려준 적을 죽이고자 하는  장군 옆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모두가 애처로웠다.

그는 거대담론을 경멸했다. 사람은, 죽음을 옆에 두고도, 먹고 살아남을 힘이 필요했다. 그 힘을 줄 수 없는 나라는 전쟁을 사는 이에게는 비어있는 이름이었다. 생명을 주지 않고, 대신 생명을 내어노라 하는 사상은 자유스러운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죽을 자리는 사상이 아니였다. 주장이 아니였다. 그의 죽을 자리는 글이였고, 일상이였고, 살아있음이였다.

그가 연민하던 세상은 그 정의함으로 김훈을 몰아세웠다. 그는 떠났다. 아무것도 나눌 것 없이 남으로서 살기로 했다. 사람들은 그를 버렸고, 또 그를 받아들였다. 버렸을 때의 김훈과 받아들일 때의 김훈은 같은 사람이되 같은 사람이 아니였다. 사람들이 원하는 글을 김훈은 내주었고, 사람들은 그를 환호했다.

그는 홀로 남아 자신의 오류와 싸웠다. 싸움이 끝나가던 날, 그리고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는 날 그는 붓을 들어 한 줄을 써넣었다. 그는 그 한문장이 사람들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으로 적을 맞으리

*******************************

부제: 문장 연습 #1 - 김훈 따라하기 #1

'한국 문학의 허리를 곧추 세운'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 칼의 노래를 이제야 읽었습니다. 제가 책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장군보다도 작가 김훈이였고, 그리고 그의 문장이였습니다. 책을 읽으며 머리 속에 떠도는 문장들이 떠나지 않아 어설프나마 그의 문체를 따라 글을 썼습니다.  일부 그의 문장을 그대로 따라한 곳이 있습니다. 의도적인 표절입니다.

김훈 작가는 2000년 시사저널 편집국장 시절 <한겨레 21>의 쾌도난담의 발언으로 인해 편집국장에서 물러난 적이 있있습니다. 칼의 노래는 그 다음해에 나왔고, 서문에 보면 그때 심경이 조금 묻어나는 듯 합니다. 위의 몇가지 표현은 그 사건과 서문의 글을 보며 나름대로 생각을 더한 것입니다.


칼의 노래 - 10점
김훈 지음/생각의나무




2008. 5. 29. 14:57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 10점
고든 맥도날드 지음, 홍화옥 옮김/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대학 시절에 IVF(한국 기독 학생회) 활동을 했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당시 IVF내의 필독도서중 첫번째로 꼽히던 책이 (줄여서 '내면세계'라 부르던) 이 책이었다. 학생때 한번 읽기는 했지만 제대로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졸업하고 몇년 지나서인듯 하다. 그때의 나는 생각의 중심이 굳게 서있지 않았다. 여러번 혼란을 겪었고, 나아지는 것은 없으면서도 생각의 겉멋만 든 그런 모습이였다. 그때 접한 이 책은 나를 얼마나 부끄럽게 만들었던지. 열매없이 지내버린 시간이 너무나 아쉬웠다. 미국으로 옮긴 후 고든 맥도날드 목사가 담임하고 있던 그레이스 채플에 출석할만큼 이 책의 영향은 컸다.

처음 접한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반갑게도 개정판이 있었고, 책 속의 고든은 지나간 시간만큼 더 성장한듯 하다. 그가 겪었던 실패와 회복이 그를 더 성숙하게 만든 것일까? 그 답은 모르지만,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내 내면세계에 비해, 그의 마음 속 정원은 너무나 깔끔해 때로는 질투가 나기도 한다.

번역판의 제목도 좋지만 나는 이 책의 영어 제목을 더 좋아한다. "Ordering Your Private World." 개인의 영역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겉모습을 잘 가꾸는 사람은 많으나, 남이 보지 않을 때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성숙함을 필요로 한다. 신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성품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분명히 목사가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기독교 서적이라는 틀로 제한하기에는 이 책이 너무 아깝다. 고든이 제시하는 보편적 교훈은 비기독교인에게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면세계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고든은 '함몰 웅덩이' 증상을 소개한다. 지하수가 고갈되어 지표를 지탱할 힘이 없을 때, 그 땅은 겉보기에는 단단해 보여도 속은 텅비어 있고, 언젠가는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내면에 질서가 없다면 사람은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 손대고 있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든다면 이미 내면세계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살아가며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다. 고든이 표현한 '벽에 부딛히는 순간'이었다. 그런 나에게 고든은 묻는다. "내면 생활을 정돈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지고 있습니까?"

내면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고든은 다섯가지 영역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기, 시간사용, 지적 성장, 영적성장, 그리고 쉼이다.

우선 내 삶의 동기가 무엇인지,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이 책은 질문한다. 크게 두가지 유형이 있다. '쫓기는  삶 (driven life)'이 있고 '부름받은 삶 (called life)'이 있다. 쫓기는 삶은 외형적인 성공을 바라고 사는 삶이다. 무엇이든 더 크게, 더 잘 하기를 원한다. 그 욕심은 소중한 것이되, 그것 뿐이라면 곤란하다. 고든은 세례 요한의 삶을 통해 부름받은 삶의 특징을 설명한다. 자신의 위치와 목적을 알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삶. 그런 삶이 부름 받은 삶이다.

무질서함은 시간의 무분별함으로 나타난다. 흘러서 새버리는 시간을 잡기 위해, 고든은 시간예산 세우기를 제안한다. 중요한 항목에 사용할 금액을 미리 정해놓듯, 시간에도 미리 정해놓는 예산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방치된 시간은 중요한 일보다는 약점을 보충하기 위해 쓰이고, 외부의 지배를 쉽게 받으며, 급한 일에 소모되고,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 주로 사용되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 사용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미리 계획 세움을 통해 시간을 통제해야한다.

지성을 훈련시키는 것은 하나의 의무다. 카터 전 대통령의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책을 쓴 계기를 소개하며, 우리도 지성을 훈련시키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고든은 강조한다. 훈련되지 않은 지성은 읽혀지지 않은 책과 같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으며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또한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투자하는 '공격적인 공부'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영적인 질서는 고난의 시기를 극복하게 해준다. 마음 속 정원이 한없이 고요하고 평온할 때, 우리는 비로서 삶의 중심을 찾을 수 있다. 마음속이 혼란스러우면 정말 중요한 것을 못듣는다. 침묵과 고독, 일기쓰기, 묵상 등을 통해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소음을 없애고 마음 깊숙히 침잠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회복이 필요하다. 시간이 남아서 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한순간에 마침표를 찍는 '회로 닫기'로서의 쉼을 가질 때 참다운 회복이 있다. 이전 한 일의 의미를 생각하고, 지금 삶의 원칙을 검토하며, 앞으로 해야할 일을 삶의 목표, 즉 사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든처럼 "죄책감 없이 안식일의 쉼을 추구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그런 쉼을 가질 때, 분주함에 혼란스러워진 내면세계에 다시 질서를 가져올 수 있다.

열네개의 장과 서문과 후기로 이루어진 책은 꽉 차서 군더더기가 없다. 이전판도 좋았지만, 개정판은 오랜 세월 보살핀 잘 정돈된 정원을 보는듯 하다. 각 장별로 제시되는 질문들에 답해보는 것도 스스로의 내면질서를 체크하는 좋은 수단이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책에서 말하는 질서있는 내면세계를 못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난감하긴 하나, 책을 통해 얻은 교훈으로 최소한 내 마음밭의 바위들은 발견하지 않았나 싶다. 그 바위들을 제거하고 나서 이 책을 다시 펼칠 생각이다. 그때는 바위에 가려져 있던 작은 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