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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1. 13:36



항상 제 마음에 있는 다섯권의 신앙서적을 소개합니다. 책 선물을 할 때 이 다섯권을 먼저 고려합니다. 워낙에 좋은 책들이고 유명한 책이라 읽은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책들이 신앙의 성장에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나이들어 보입니다. 전에는 이런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텐데, 어느덧 저도 청년이라 우길 수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ㅡ.ㅡ 굳이 청년을 지목한 이유는 그 시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한참 성장할 수 있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를 돌아볼 때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질문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청년들에게 권합니다. 채현국 이사장이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라 했던 것을 기억할 겁니다. 지금 한국 개신교는 욕먹을 짓을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소위 교회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먼저 복음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도 한 때는 순수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저들처럼 성장하지 않으려면 지금 더 열심히 말씀과 세상을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소개한 이 책들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1.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 고든 맥도날드


제 블로그에서 여러번 소개했었던 책입니다. 이 책은 신앙의 외면적인 면이나 행동적인 면이 아닌 내면세계라 지칭한 영적인 부분을 다스리라 강조합니다. 저자는 내면의 영역을 동기부여, 시간사용, 지혜와 지식, 영적인 힘, 회복(휴식)으로 나누어 각 영역에서 어떻게 내면의 질서를 유지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나갈지 깊이 있는 가이드를 제시합니다.


특히 각 장마다 나오는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들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그 중 몇개를 옮겨 봅니다.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이러한 질서로운 상태를 지키기로 매일같이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 , 그것은 내가 날마다 지식과 지혜 안에서 성장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 , 그것은 늘 나의 삶의 영적 중심부를 드넓히기로 결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서문과 열네개의 장 그리고 후기로 되어 있습니다. 330쪽 정도 되는데 빈틈 없이 알찬 내용으로 차 있습니다.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닙니다. 옆에 두고 내면세계의 질서가 흐트러졌다고 느껴질 때마다 꺼내어 보시기 바랍니다.


2. 순전한 기독교 - C.S. 루이스


루이스에게는 항상 '기독교 최고의 지성'이라는 말이 따라 붙습니다. 그만큼 그는 탁월한 지성으로 많은 이들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도왔습니다. 이 책은 라디오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기독교를 설명하던 내용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루이스는 기독교 안의 여러 교파들을 가로지르는 (카톨릭을 포함해서) 가장 근본적인 기독교의 진리가 무엇인지 이 책에서 정리하였습니다.


루이스는 인간이란 무엇인지에서 시작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종교성을 탐구한 후, 하나님과 예수님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그 기본적인 신앙 위에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보편적 도덕을 포함해, 더 높은 차원의 행동 기준을 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신학적인 질문들(예를 들어 삼위일체)에 대해 설명합니다.


누군가 "만원밖에 없고,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순전한 기독교를 사서 봐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중요한 책입니다. 기독교가 왜 '개독교'가 아닌지, 기독교가 얼마나 훌륭한 종교인지 알 수 있습니다.


3. 소명 - 오스 기니스


제자로서 살려고 한다면 누구든 소명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나의 소명은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까 하는 질문들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 신학을 해서 목회자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려도 해봅니다. 저도 그랬었습니다.


이 책에서 오스 기니스는 바로 이 질문에 집중합니다. 부름 받았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각자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도록 부름받기 전에 먼저 어떤 존재가 되도록 부름받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무엇을 하기 전에 어떤 존재가 되어야하는지의 단계적 소명의식은 세상일을 하찮게 생각하는 중세의 왜곡이나 무슨 일이든 괜찮다는 현대의 왜곡 모두 피할 수 있게 해줍니다.


소명은 한번 정해진 무엇이 아닙니다. 그보다 하나님 앞에서 걸어가는 자세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삶의 구체적 진로가 정해지기 전에, 혹은 이제 그 길을 걸어가기 시작할 때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랍니다.


4. 아직도 가야할 길 - M. 스캇 펙


저자인 스캇 펙은 나중에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이 책을 쓸 때는 아직 신앙을 갖기 전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추천하는 이유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는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정신과의사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왜 사람이 성장해야하는가, 왜 유아적인 사고나 종교적 맹신에서 벗어나야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선악과의 문제를 성장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게으름'은 '죄'라는 시각을 제시합니다.


삶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훌륭하게 사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왜 그 길을 가야하는가 질문해 봐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 위해서는 젖을 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에 대해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에도 다분히 성경적인 길잡이를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닥치는 여러 어려움이 우리를 단련시키어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훈련이라는 것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5. 그리스도의 십자가 - 존 스토트


다섯권중 유일한 신학책입니다. 신학을 전공해야 읽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네권에 비해서는 읽기가 어려운 편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기독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존 스토트는 누구나 인정하는 복음주의의 대표적인 설교가요 신학자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십자가'에 집중합니다. 왜 십자가가 필요했는지, 십자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의'라는 관점에서 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어야하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경외감마저 들게 됩니다. 왜 기독교를 "불타는 논리 (Logic on Fire)"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신학적으로 어떤 자세를 취하든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십자가를 뺀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제임스 패커는 "옷을 팔아서라도 이 책을 사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좋은 책입니다. 십자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반드시 거쳐야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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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10:14

JCS 1막의 줄거리와 노래를 소개하는 JCS #2. Story & Songs [Part I]을 쓴 게 2011년 9월, 벌써 3년이 지났더군요. 늦었지만 안하는 것보다 났다고 생각하기에 2막에 대해 이어서 쓰겠습니다. 록 뮤지컬 JCS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은 JCS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1막에 대해 적은 이전 글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2막의 중심은 예수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시작해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1막에서 보여준 여러 갈등(예수-유다, 예수-제자, 예수-마리아, 예수-종교지도자, 예수-백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며 충돌 혹은 발전하거나 봉합됩니다.  


#13.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복음서에 따르면 최후의 만찬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JCS의 설정은 자유롭습니다. 예를 들어 73년판 영화에서 최후의 만찬은 야외에서 대낮에 일어납니다.


이 장면 제자들의 합창으로 시작하는데 그 가사가 참 재미있습니다. "언제나 사도가 되길 원했지. 열심히 하면 될 거라 생각했어. 은퇴하면 복음서를 쓸거야. 죽고 나면 우리 이야기를 하게 말이야." 이어서 예수가 빵과 포도주를 주며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살과 피다, 이것을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갑자기 바뀝니다. 예수는 "내가 미쳤구나. 너희 멍청한 얼굴을 보니 내가 죽고 나면 십분만에 내 이름은 아무 의미가 없을 거야"라고 말하며, 베드로는 나를 세번 부인하고 이중 한 명은 나를 팔 거라 말합니다.


이어지는 유다와 예수의 논쟁이 압권입니다. 내가 왜 당신을 팔려고 했는지 아느냐라는 유다의 말에 예수는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어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라고 말하지요. 유다는 삐져서 계속 빈정되고, 예수는 화를 냅니다. 결국 유다는 예수를 이해할 수 없다며 떠납니다. (이때 Superstar의 멜로디가 잠깐 사용됩니다.)



2012년 공연 장면입니다. 이런 분위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4. 겟세마네/그저 말하고 싶어요 (Gethsemane/I Only Want to Say)


JCS에서 가장 유명한 곡중 하나입니다. 제자들이 자는 모습을 보고 기도하러 외진 곳으로 간 예수는 아버지에게 내가 왜 죽어야하는지 알려달라며 항의를 합니다. 그는 처음에 시작할 때는 마음에 감동이 있었지만 이제는 너무 힘들다고 고백합니다. 어느 누구에게서 이 정도를 기대할 수 있냐 따집니다. '내가 어떻게 죽는지 똑똑히 지켜보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체념한듯 독이 든 잔을 마시겠다고 하지요. 당신이 모든 카드를 가지고 있으니 내 마음 바뀌기 전에 데려가라구요.

예수역에게 가장 중요한 곡이다 보니 이 역을 맡은 배우 모두 최선을 다해 부릅니다. 73년판 영화를 100번은 넘게 보고 음반도 많이 들었기에 테드 닐리가 부른 겟세마네가 제게는 가장 귀에 익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96년 앨범의 스티브 발사모를 더 좋아하시는 것 같더군요. 최근에 나온 2012년 아레나 투어의 벤 포레스터도 멋진 연기와 노래를 보여줬습니다.   



73년도 영상에서 테드 닐리가 부른 겟세마네입니다.


#15. 체포 (The Arrest)


겟세마네에서의 기도가 끝나면 유다가 다가와 입맞춤으로 누가 예수인지 병사들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예수는 제사장에게 끌려갑니다. 이때 백성들이 야유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랬냐? 가장 큰 실수가 뭐라 생각하냐?"라면서요. 예수를 보고 제사장은 묻습니다.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 말에 예수는 "너가 그렇게 말하였다"라 답하고, 제사장은 증거가 충분하다며 예수를 빌라도에 데려갑니다.


#16. 베드로의 부인 (Peter's Denial)


예수가 말한데로 베드로는 예수를 세번 부인합니다. 그 모습을 본 막달라 마리아는 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비난하지요. 베드로가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자, 마리아는 이게 바로 예수가 말한 거라며 어떻게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미리 알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짤지만 좋아하는 곡입니다. 복음서의 기록과는 다르지만, JCS의 설정에서는 마리아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마리아의 생각을 바뀌기 시작합니다.


#17. 빌라도와 예수 (Pilate And Christ)


빌라도와 예수의 짧은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끌려오는 예수를 보고 빌라도는 "이 불쌍한 인간 뭐냐?"라며 별 신경 안쓰다가 예수라는 말을 듣고 관심을 보입니다. 너가 유대의 왕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가 그건 너의 말이라 대답하자, 빌라도는 곤경에 처한건 바로 예수라 지적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갈릴리 출신이기에 헤롯왕에게 보냅니다.


#18. 헤롯 왕의 노래 (King Herod's Song)


JCS에서 가장 코믹한 노래입니다. 그래서 한번만 등장하는 헤롯임에도 사람들 기억에 많이 남는 노래입니다. 한국 초연에는 곽규석씨가 헤롯역할을 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를 단지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는 일반인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헤롯은 예수에게 너의 소문을 많이 들었으니 내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하지요.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봐. 아니면 물 위를 걸어보던가, 그러면 너를 그냥 보내줄께라면서요. 계속 요청해도 아무 반응이 없자 헤롯은 예수가 사깃꾼이라며 데리고 가라고 소리칩니다.


나중에 '크리스찬의 JCS 사용법'이라는 글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장면 마지막 가사는 중간에 변경됩니다. 초창기 앨범을 들어보면 마지막에 헤롯은 예수에게 '내 인생에서 사라져 줘 (Get out of my life)'라고 말하지만, 언제부턴가 '여기에서 사라져. 너 그것보다는 더 잘해야할꺼야'로 가사가 바뀝니다. 개인적으로 초기 가사가 더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19. 다시 시작할 수 없을까요, 제발 (Could We Start Again, Please)


헤롯왕의 궁전에서 빌라도에게로 다시 끌려가는 예수를 보며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는 '다시 시작할 수 없냐'며 간청합니다. 당신 말하는게 뭔지 알겠다. 근데 너무 지나쳤다. 너무 무서워지기 전에 다시 시작할 수 없겠냐는 그들의 염원을 노래합니다.


짧은 노래이지만 멜로디가 아름다워 좋아하는 곡입니다. 베드로와 마리아라고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이 너무 아프기에 이렇게라도 간청하는 거지요. 이 곡은 너무 밋밋하게 부르면 안 어울립니다. 그래서 이본느 엘리만의 간절한 모습이 담긴 73년판을 좋아합니다.


#20. 유다의 죽음 (Judas' Death)


갇혀있는 예수를 보고 마음이 찔린 유다는 제사장을 찾아와 받은 돈을 돌려줄테니 예수를 풀어달라고 애원합니다. 제사장들은 이제 와서 뭔 소리냐며 유다를 돌려보내지요. 유다는 괴로워하며 마리아가 불렀던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일부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를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면서요.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해 이 일을 하게 했다고, 당신이 나를 살인하는 것이라며 원망하며 목을 매어 자살합니다. (이런 해석을 한 이들이 여럿 되지만 성경의 증거와는 다릅니다.)


#21. 빌라도 앞의 재판 (Trial Before Pilate)


다시 끌려온 예수에게서 잘못을 발견할 수 없었던 빌라도는 예수를 보호하려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를 못밖으라고 계속 소리치지요. 빌라도는 이 자는 그저 미쳤을 뿐이라며 39대의 채찍질로 예수를 보내려합니다. 십자가에 못밖으라는 외침 속에 39대의 채찍질이 시작됩니다. 1부터 39까지 숫자가 늘어날수록 빌라도의 숨소리는 거칠어집니다. 앨범으로 들을 때는 잘 모르지만, 영상에서는 처음 한두대에서 마리아가 소리를 지르며 기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채찍을 맞고 쓰러져 있는 예수를 일으키며 빌라도는 너는 어디에서 왔냐. 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내가 너를 구할 수 있는데 왜 아무 말이 없냐며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빌라도에게 이 모든게 너의 손을 벗어난 것이라 답합니다. 결국 빌라도는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며 손을 씼고 예수를 십자가 형에 내어 줍니다.


이곡에서의 빌라도는 이전 (#17. 빌라도와 예수)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갑자기 예수를 변호하고 나오지요. 약간 뜬금없습니다. 빌라도의 변화를 위해 1막에서 빌라도의 꿈을 배치합니다만, 그래도 캐릭터의 연속성이 조금 부족한게 개인적으로 불만입니다.


#22. 슈퍼스타 (Superstar)


십자가에 달리려는 예수 앞에 이제는 죽은 유다가 나타나 ‘난 당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라며 노래를 합니다. 왜 그렇게 이상한 땅에 그 시기에 나타났냐. 지금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했을 때 나타났으면 더 좋았지 않겠느냐라면서요. 그리고 도데체 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했느냐 계속 질문합니다. 


JCS의 중심 주제라 할 수 있는 질문이지요. 도데제 예수가 왜 그랬는지 알고 싶다는 겁니다. 소란스럽고 가벼운 분위기의 곡이지만 던지는 질문은 묵직합니다.


#23. 십자가에 매달림 (The Crucifixion)


망치소리와 악마의 웃음소리가 들리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힙니다. 예수의 부활을 보여주지 않는 JCS에서는 마지막 장면으로, 십자가에서 고통 속에 죽어간 예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일곱마디의 말을 했습니다. 가상칠언이라고 하지요. JCS에서는 앨범에 따라 나오는 말이 다릅니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버지여 당신의 손에 내 영혼을 의탁하나이다” 이 셋은 항상 등장합니다. 어떤 앨범에는 “내 어머니는 어디 있느냐,”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등의 다른 말도 나옵니다.


#24. 요한복음 19장 41절 (John Nineteen Forty One)


JCS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쓸쓸한 곡입니다. 이 곡의 제목인 요한복음 19장 41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었는데 그 동산에는 아직 사람을 매장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습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무덤에 묻힘을 말합니다. 


73년도 영화에서 이 장면이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는 배우들이 대형버스를 타고 촬영장소에 도착하면서 시작합니다. 영화 속의 영화 같은 설정이지요. 하지만 마지막 배우들이 버스를 타고 돌아갈 때는 예수역을 맡은 테드 닐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동산 위에 십자가가 남아있지요. 


참고로 JCS에서 부활을 다루지 않았기에 초창기에는 기독교가 JCS 공연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빛나는 십자가를 보여주면서 공연을 마치는 식으로 어느 정도의 타협점을 찾은 것 같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크리스찬의 JCS 사용법'에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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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5. 01:57

지난 백일 내 마음을 지배했던 감정은 슬픔과 절망이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곳에서 추위와 배고픔, 무엇보다 버려짐의 고통 속에 죽어갔을 아이들. 그 죽음이 물욕과 무능에 기인한 것이기에 더 마음이 아팠다. 그뿐이랴. 배부른 자들이 더 배를 채우고자 벌이는 행사 덕에 쫓겨나는 사람들. 연일 떨어지는 살상무기에 대항조차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 그렇게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눈만 돌리면 슬픔이 있다. 


그럼에도 세상은 잘도 굴러간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듯이. 아니 오히려 슬픔을 불편해하며, 슬픔보고 눈 앞에서 사라지라한다. 나나 내 새끼만 괜찮으면 그걸로 끝인 거다. 교회의 침묵은 절망을 더하였다. 집회에 참석했다. 몇천명이 모여 하나님을 말하던 일주일 누구도 세월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흔한 추모기도조차 없었다. 소름끼쳤다. 


백일이 지났다. 슬픔과 절망은 사그러지지 않는다. 시청 앞 그들과 같이 할 수 있었다면 좀 나았을까? 이 슬픔과 절망이 십만분의 일로 줄어들 수 있었을까? 아니 이 슬픔과 절망이 십만배로 증폭되지는 않았을까?


어디 계셨어요. 내가 정말 힘들고 아플 때, 그때를 돌아보면 혼자만의 발자욱이 보여요. 당신은 왜 그때 저를 버리셨어요. 아니야. 너를 버린게 아니야. 나는 너를 엎고 그 길을 지나갔단다.  


힘들어 하던 친구에게 또 힘들어 하던 나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다. 난 아직도 믿는다. 이 슬픔과 절망을 그 분이 기쁨과 희망으로 바꾸어주실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지친다. 어느 때에야 그러실지. 마라나타. 오실려면 좀 빨리 오세요. 


백일동안 눈물을 참았다. 힘들다. 이제 그만 참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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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13. 02:00

기독교 국가도 아닌데 여기 저기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들린다. 문창극 총리 후보의 '일제 지배와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라는 발언 때문이다. 다른 경기 다 지더라도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하는게 한국 정서인데, 그걸 건드렸으니 아무래도 총리 되기는 힘들지 싶다. 그거야 순리에 의해 결정될 것이고, 그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그의 강연을 원본으로 보았다. 없는 시간 쪼개어 영상을 본 것은 내가 속한 온누리 교회의 장로에 대한 최소한 예의기도 하고, 가감없이 그가 말한 진의를 직접 파악하고 싶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하나님의 뜻' 발언은 교회 안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그 말의 사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일병탄이 있기전, 조선의 상황은 좋지 않았고 일제 지배는 우리 민족이 깨어나게 해준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이다. 놔두면 공산주의에 넘어갈 뻔한 나라 분단되게 해서 남한을 지키고, 미국의 도움을 계속 받게 되었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은 미개했고, 공산주의는 게으른 조선민족이 좋아할만한 사상이었다는 말이 타당하냐는 질문을 뺀다면, 교회안에서 신도들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제 지배나 분단을 정당화한 것이 아니라는 문창극의 억울해 함이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누구는 이완용의 재림이라 말하는데, 전체 맥락을 보면 그 정도는 아니다. 


나를 비롯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게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선택적 관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크리스찬은 암이 걸렸다 기적적으로 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 말하고, 암으로 죽게 되어도 하나님의 뜻이라 받아들인다. 교회가 갈라지면 양쪽 모두 하나님은 내 편이다 주장하고, 또 정말 그렇게 믿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느게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은 도데체 어느 편에 서 있는 것이냐는 거다. 내가 해석하고 싶은데로, 내게 유리한데로 선택해 '하나님의 뜻'을 갖다 붙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하지만 신앙의 눈으로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 하나님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어지도록 만드시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한 대로 참새 한 마리나 들풀 하나도 그분의 주권 밑에 있다는 것이 크리스찬의 믿음이요 고백이다. 그렇기에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다. 나에게 일어난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를 '하나님의 뜻'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거다. 


그럼에도 인과관계는 조심해야 한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팜으로 십자가의 구원이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종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유다의 범죄를 배후에서 조종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악한 행위로 받은 고난을 은혜로 바꾸는 하나님이시지만, 악한 행위를 만드시는 분은 아니다.


몇년전 정리해고 후 한동안 직장을 못구해 고생한 적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가 감사하다. 겸손을 배웠고, 이웃의 어려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 고난을 만드셨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스스로 힘듬에 처하게 만든 것이지, 겸손을 배우라고 나를 실직시킨 것은 아니다. 그 상황에서 더 좋게 만드신 것이지. 


문 후보자가 식민지 근대화론자인지 식민지 수혜론자인지 모르겠다. (후자에 가까운듯 하다.) 어쨋든 일제의 지배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해도, 옆동네 침략해 노예로 삼고, 일 잘하라고 집 지어주고 잘 먹인 것에 불과하다. 그 시기는 우리 민족에게 고통이었고,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것은 그들의 악한 욕심 때문이었다. 그 상황에도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지켜주셨음에 감사할 수는 있지만, 일제의 지배를 '하나님의 뜻'이라 선언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게 무엇이 있나. 당장 세월호 참사도 하나님의 뜻이 되는 건가? 하나님은 악'도' 사용하신다. 하지만 악을 만들어내시는 분은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성을 허락하신건 분별하라 주신 것이다.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어느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악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를 이끌어가는 그분의 편에 제대로 설 수 있다. '모든게 팔자'라는 식으로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이라 이름 붙이면 안된다. 올바른 역사의식이 필요한 이유다. 


복지 문제나 한일관계 청산 등 그의 발언을 살펴 보면, 그는 보수를 넘어 극우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뜻' 발언이 낙마의 원인은 아닌듯 하지만, 총리가 되기엔 부족해 보인다. 더구나 그가 믿는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다른 분 같다. 모르겠다. 그가 믿는 '중요한 고비마다 대한민국을 지켜 주'다 '베일 뒤에서' 나타나 박근혜를 당선시켜 한국 역사에 개입한 그 신은 미개한 조선으로 일제의 지배를 받게 했을 지도. 하지만 그 신이 내가 믿는,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고 믿는 그 하나님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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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10. 02:03



저널링에 관한 세권의 이북을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정식 출판한 건 아니고 아마존의 개인출판을 이용한 것 같더군요.


 <Keep a Journal: The Basics>는 싼 맛($0.99)에 샀는데, 싼게 비지떡이 한국에서만 통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더군요. 저널 쓸 때 사용할 수 있는 형식을 소개한다며 자유형태 혹은 리스트나 아웃라인 등을 쓸 수 있다는, 굳이 저널링과 관련없는 내용을 겉멋을 잔뜩 들여 써논 책입니다. 싸더라도 비추.


<The Four Methods of Journal Writing>은 저널링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이해하고, 나아가 회고록(memoir)을 쓸 수 있는 단계별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The Artist's Way에서 소개한 모닝페이지를 첫단계로, 의미 분석을 위주로 하는 저널링, 미래 지향적인 Invention Journaling을 거쳐 회고록을 쓰는 마지막 단계를 설명합니다. 분량이 적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글쓴이가 뉴에이지에 빠진 사람이라 뉴에이지적 요소가 다분합니다. 


<The Ultimate Guide to Journaling>은 나쁘지는 않지만 제목만큼 Ultimate하지는 않습니다. 저널링의 의미와 목적을 다루고, 다양한 주제로 저널링을 할 수 있게 주제를 다양하게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아직 가야할 길, 신체중 마음에 안드는 부분, 꿈 이야기, 감사 목록 등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며 글을 써보기를 제안합니다. 또한 그림을 사용하는 저널링도 다룹니다. 그렇게 다양한 주제로 저널을 쓰는 목적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저널 쓰기가 그게 그거 같아질 때 한번씩 들추어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저널링(Journaling)에 해당하는 한국말이 뭘까요? 일기보다는 광범위한 글쓰기인데 마땅한 말이 없네요. '수기'라 번역하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