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30. 00:49
명동 한복판에서 강간/살인이 발생했다고 합시다. 갈때까지 간 말종 하나가 지나가던 참한 여자를 강제로 추행한 겁니다. 어찌된 일인지 경찰 한명 지나지 않았습니다. 길을 걸어가던 어떤 사람들은 강간 장면을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뭔가 하며 몇분 동안 구경하다 자기 길로 갔습니다. 그중 몇명은 야동을 라이브로 본다며 흐뭇해하며 끝까지 구경하다 스너프 필름까지 보고 만족해하며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중 어느 누구도 강간/살인범을 말리지 않았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생길 일은 아니지만 만약 생긴다면 누가 법적으로 책임이 있을까요? 보고 놀라 도망간 사람? 몇분 구경하다 바쁘다고 간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즐기며 구경한 사람?
(한국법은 어떤지 모르지만 미국)법에 따르면 누구도 책임이 없습니다. 범인을 도와주거나 응원한 사람, 아니면 피해자와 관계가 있어 도와주어야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민사상으로나 형사상으로나 아무 책임이 없습니다. 형법 강의 초기에 가장 토론을 많이 하게 되는 주제가 바로 이겁니다.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법적으로 상대방의 위험을 막을 의무가 없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전혀 잘못이 없습다. 자신이 강간당하는 것을 지켜봤다는 이유로 술집의 손님들을 고소했던 영화 '피고인'의 경우는 실제 상황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1964년 뉴욕의 퀸스에서 Kitty Genovese라는 여인이 강간/살인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처음 공격부터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한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여인은 도와달라 외쳤고 몇명의 이웃들은 창밖으로 범행장면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범행이 거의 끝날 무렵 Karl Ross라는 남자가 신고하기까지 아무도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와서 범인을 체포했을 때는 이미 여인은 무참한 죽임을 당한 후였습니다. 언론이 38명이라 과장 보도를 하긴 했지만, 신고를 해서 그 여인을 살릴 수 있었던 사람이 열명은 충분히 넘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뉴욕에서 발생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번일은 더 잔인하다 할 수 있지요. 이른 아침 한 여인이 강도를 당할뻔 했습니다. 곁에 있던 30대 초반의 Tale-Yax가 그 여인을 보호하다 칼에 찔렸습니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그 남자 옆을 한시간 넘게 스물 다섯명의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어떤 사람을 가지고 있던 셀폰으로 사진도 찍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건으로 신고받고 지나가던 911요원이 Tale-Yax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결국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앞에도 말했지만 Kitty Genovese가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았던 이웃. 죽어가는 Tale-Yax를 보고도 지나친 스물다섯명의 사람들. 모두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습니다. 도와주어야할 의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책임이 없는 걸까요? 자신이 생명을 걸고 Tale-Yax처럼 강도와 싸우는 거라면 상황이 다릅니다. 나조차도 그 상황이 되면 주저하게 될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손 안에 있는 셀폰으로 911에 전화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었던 작은 선행을 하지 않았기에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을 했던 그 남자는 죽었습니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그 남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착한 일을 하다 죽게되니 스스로 자랑스럽다는 생각은 일분도 안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후회하지 않았을까요? 원망하지 않았을까요?
로스쿨 일학년을 거의 마치며 느끼는 건 법은 정말 최소한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을 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선거관리법 같은 거는 말구요) 모든 사람이 법'만' 지키면서 산다면 그 사회는 정말 건조한 사회일 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법보다도 훌륭한 게 있습니다. 양심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윤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법을 넘어서서 양심에 맞추어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사람 사는 세상, 인간됨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 최소한의 법조차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아마 제가 바라는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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