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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11. 09:08

당신 인생의 이야기 - 8점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행복한책읽기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설정을 기반으로 한 소설을 판타지라 분류한다면 SF(Science Fiction)도 엄밀하게  따지면 판타지이다. 그렇기에 도서관에 가면 판타지와 SF는 항상 섞여있고, 판타지와 SF를 같이 다루는 잡지가 60년 동안 장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SF를 일반적인 판타지와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조금이나마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가상의 세계의 출발점이 순수한 상상에 의존하는 판타지와 달리, SF는 과학이 단초가 된다. 현재 있는 과학이론을 기반으로 미래를 상상할 때 이만큼까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논리적 연상이 SF의 특징이다.

테드 창의 소설은 이 점에서 특이하다. SF 소설의 문법을 따르되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환타지에 가까운 씨앗에서 시작된다. 천사가 종종 등장해 인간에게 흔적을 남기고 사람이 죽어 천당에 가는지 지옥에 가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라면. 바빌론 사람들이 그들의 세계관으로 SF를 쓴다면. 과거와 미래를 모두 알되 거기에 순응하는 종족이 있다면. 이름만으로 진흙 인형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고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면 등. 그런 면에서 과학소설(Science Fiction) 작가라 부르지않고 더 넓은 분류인 상상소설(Speculative Fiction) 작가라 정의한 위키피디아의 정의가 이해가 된다. 

테드 창은 스물네살에 데뷰작 '바빌론의 탑'을 발표한 후 최연소및 데뷰작에 의한 최초의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네뷸라상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휴고상 후보에 오르는 화려한 등장을 했다. (참고로 테드 창은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나는 그때 도데체 뭐했나 ㅡ.ㅡ) 그럼에도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11개의 작품만을 발표했고 그중 앞의 8편을 묶은 것이 '당신 인생의 이야기'이다.

  • 바빌론 시대의 세계관으로 바벨탑 사건을 썼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바빌론의 탑'
  •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지적인 유희 '이해'
  •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실한 명제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 '영으로 나누면'
  • 흔한 외계인 이야기에 담겨진 현란한 언어학과 운명론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
  • 이름에 물리적 힘이 있다면 - 연금술사 같은 분위기의 '일흔 두 글자'
  • 건담 만화 같은 상상 속 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찰 '인류 과학의 진화'
  • 신과 지옥이 현실적 증거를 보여준다면 모두가 신을 믿을까에 대한 질문 '지옥은 신의 부재'
  • 기술을 통한 (의식 발전의) 지름길이 존재할수 있을까?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다큐멘타리'

작품 하나 하나 탁월하다. 참신하다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 새로운 (때로는 비과학적인) 세계관을 설정해놓고는 그때부터는 과학적으로 사유하며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첨가되는 과학 및 여타의 학문도 정교하다. 이름에 힘이 있다는 마술 같은 이야기위에 진지한 분석기법을 도입하는 식이다. 빛은 최고로 빠른 길을 따른다는 페르마의 원리를 목적론적 관점에서 해석할 때는 철학적 성찰의 모습까지 보인다. 모든 것이 지적 호기심을 유감없이 자극하며 꽤나 유쾌하게 진행이 된다. (출판사의 이름처럼) 행복한 책 읽기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몇개의 이야기에서 한껏 이야기를 부풀려놓고는 급하게 쓸어담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발상이나 전개는 대단히 흥미로운데 용꼬리로 전락하는 작품들이 있다. 정말 재밌게 보던 드라마가 사정상 조기종영하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모든 작품이 읽을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테드 창의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은 많다. 어떤 이는 직업(현재 Technical Writer 일을 하고 있다)을 때려치고 글만 쓰라고 불평한다 ^^ 나도 그가 작품을 많이 내길 바란다. 최근에 낸 'The Merchant and the Alchemist's Gate'는 60여 페이지밖에 안되는 책임에도 100불 정도의 가격에서 거래가 되고 있다. 다음에는 인공지능에 관한 글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새로운 작품이 기대가 된다.

책을 읽으며 'X 특공대'를 보며 인간세계와 육차원간의 전쟁 이야기를 쓰던 (아쉽게도 이 작품은 프롤로그만 쓰여지고 중단되었다) 열살의 소년을 기억했다. 그 소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책을 덮고 나니 어쩌면 이젠 중년이 되어버린 그 소년이 나를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든다. 그런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