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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14. 14:20
날씨가 좋아 오랜만에 바깥일을 좀 했습니다. 잔디를 긁어주는 일입니다. 죽은 잔디를 그대로 두면 땅을 덮어 공기 순환을 막기에 가끔씩 긁어 주어야합니다. 근데 이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힘을 주어 긁다보면 몇번 안되어 허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날씨라도 덥다치면 땀깨나 흘립니다. 워낙에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바깥일을 싫어하는데, 그중 잔디 긁는 일은 피하고 싶은 첫째가는 일입니다.

그래도 해야할 일은 해야합니다. 힘 들어도 꾹 참고 잔디를 긁습니다. 그리고 소설속의 한 인물을 생각합니다. <모모>에 나오는 '청소부 베포'입니다. 모모의 친한 친구인 베포는 거리를 청소합니다. 꼭두새벽부터 시작해 쉬지 않고 천천히 거리를 씁니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심호흡을 하면서, 한 번 숨을 쉴 때마다 비질를 합'니다.

어느날 베포가 모모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거야. 우리 앞에는 끝없이 가득한 거리가 뼏쳐 있을 때가 많아. 너무나 끝도 없이 아득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거야". "그럴 때 우리는 서둘기 시작하지. 그리고 점점 더 성급해지는 거야. 눈을 들어 앞을 볼 때마다, 자기 앞의 길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는 거야. 그래서 점점 더 기를 쓰게되고 불안에 사로잡혀 애를 쓰다가 마침내는 숨이 차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돼. 그런데 길은 여전히 우리의 앞에 버티고 있는 거야. 이런 식으로 일을 해서는 안 돼".

생각에 잠겼던 그가 말을 이어갑니다. "길 전체를 한꺼번에 생각하면 안 돼, 알겠니? 오로지 다음 한 걸음, 다음 번 한 숨, 다음 번 한 번 비질만 생각해야 돼. 이렇게 끊임없이 다음 번의 한 번 동작만 생각해야 하는거야". "그러면 기쁨을 누릴 수가 있어. 그게 중요한 거야. 그렇게 하면 자기 일을 잘 해 나갈 수가 있어. 그래야만 하는거야".

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제가 효율과 효과에 집착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효과적이지 않는 것은 후퇴라고 생각합니다. 또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을 사람이 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 여깁니다. 발전 없는 삶은 죽은 삶이라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와 똑같이 어떤 때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오히려 지름길을 찾을 수 없는, 꾸역 꾸역 앞으로만 전진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디로 나가야할지 모르는 날들. 앞에 놓여진 길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닥치면 저는 '베포'를 기억합니다. 한 번에 한 발자국. 한 숨 쉬고 비질 한 번.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나아가야 할 때가 지금이라 생각하면서요.

잔디를 긁을 때면 앞으로 얼마나 남았나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운이 다 빠집니다. 그보다 내가 선 곳에서 갈퀴가 닫는 그 부분까지만 생각하려 애씁니다. 그렇게 한 곳을 마치고 다음 곳으로 넘어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끝이 납니다. 요즘 회사 일도 그렇습니다. 끊임 없이 생기는 문제에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 끝이 날까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속적 발전은 항상 생각하되, 눈 앞의 문제에 최선을 다합니다.

요즘 주위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그 사람들에게 멀리 보지 않는게 오히려 더 좋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멀리 보면 너무 힘들 때가 있거든요. 그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쉬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그 시기를 지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꾸준함입니다. 어떤 때는 달리지 않더라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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