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564)
책 그리고 글 (87)
미래 빚어가기 (79)
시간/행동 관리 (44)
조직을 말한다 (16)
마케팅 노트 (14)
짧은 생각들 (33)
사랑을 말한다 (27)
세상/사람 바라보기 (40)
그밖에... (83)
일기 혹은 독백 (85)
신앙 이야기 (24)
음악 이야기 (19)
법과 특허 이야기 (13)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사랑'에 해당되는 글 21건
2007. 10. 11. 04:57
몇개 포스팅의 주인공인 저의 그녀 ^^ 를 공개합니다.




2007. 10. 11. 04:54
음... 요즘 몸도 게을러지고 마음에 여유도 없는 관계로 글을 못쓰고 있습니다.  쓰고 싶은 것은 많은데 말입니다 ㅡ.ㅡ;;;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을 한번 올리지요. 전에 크레아티님이 사진도 올려달라 말씀 하셔서 핑계 낌에 ^^;;; 링크에 보면 제 홈피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거기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요즘 한참동안 사진을 올려놓지 못했지만요...

기회가 되면 이 블로그 성격에 맞는 사진 에세이를 올려볼까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사진과 글'이 저를 지탱하는 큰 축인데... 이 블로그에서 사진을 빼놓을려니 좀 허전하기도 하구요 ^^;;;

아래 글은 2005년 12월초에 작성한 글입니다. 사진은 완성하는데 몇달 걸렸구요. 왜 그런지는... 보시면 압니다 ^^;;;


'사랑을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떠나 산다는 것 #3  (10) 2008.01.16
더불어 한장 더...  (0) 2007.10.11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는가...  (8) 2007.09.29
떠나기와 떠나보내기  (0) 2007.09.27
지금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4) 2007.09.08


2007. 9. 29. 01:54
2006년 7월 14일에 이런 글을 남겼더군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는듯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사진집을 하나 보고 싶어 서점에 갔다가 최민식님의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구입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미 보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에 조은 시인의 글이 어우러져... 우리네 지난날 (아니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어려운 삶을 아무 기교없이 솔직하게 보여주더군요.

저는 이런 사진이 좋습니다. 살아있는 모습, 그 모습을 솔직히 보여줄 수 있는 사진. 결국 사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 삶의 모습들을 드러내는 (노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모습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더군요. 테크닉이 보족해서가 아닙니다. 장비가 없는 것도 아니지요. 그건 제가 그들의 삶을 최민식 선생님이 그러하듯 정면으로 쳐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입니다.

사진 찍기 시작할 때 봤던 사진에 대한 잠언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아마추어작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흑백필름에 담아놓고 그것을 예술이라 부른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략 이런 말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 고속터미날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두팔이 없으신 한 남자분이 구걸을 하고 다니시더군요. 제 카메라 가방에는 135mm를 달고 "흑백"필름이 담긴 F3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분의 모습을 보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머니 속에 담긴 동전을 드리고 떠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사진집에 보면... 아마도 돌아오지 않는 부모를 기다리며 우는 듯한 남자아이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이 사진을 찍고 최민식 선생님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도 그 장소를 그냥 떠나시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아이의 어깨를 에워싸며 위로의 말한마디라도 남기고 가셨지 않았을까요? 그 행동을 "마음에서 우러나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 삶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글을 쓰는 삶"... 그게 제가 여생을 보내고 싶은 방법입니다. 아직 사진에도 글에도 부족함이 많지만... 저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테크닉이 아닌듯 합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 제 주위 사람들에 대한 자그마한 사랑... 그것을 먼저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그밖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퍼문답  (3) 2007.11.10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2) 2007.11.08
그밖에... 를 추가합니다  (0) 2007.09.27
더 좋은 사진을 찍는 스물한가지 방법  (0) 2007.09.27
사랑  (0) 2007.09.20


2007. 9. 29. 01:41
2005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 쓴 글입니다.
===============================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하니 옛날 일들이 생각이 납니다.

전 가끔 가다 생각하면 제 아내를 좀 유별나게 아껴주는 것 같습니다.
먼저 화내는 일도 없고, 제가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도 화해를 시도하는 것도 저고...
"내가 사랑한 100명의 여인" 같은 특별한 프로젝트도 하고... ^^;;;

하지만 그녀를 나와는 다른 세상으로 보낼뻔한 일을 생각하면
바보 같단 느낌이 들더라도... 계속 아끼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할 뻔 경험이 있으셨던 분이라면...
왠만한 일 가지고는 갈라놓기가 쉽지 않을겁니다.
================================

1993년 4월 23일날 저는 결혼을 했었지요.

신혼 여행 다음주부터 시작한 주말 부부 생활은 너무 힘든 일이였고...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음 출장지가 거제도로 결정난 때... ㅡ.ㅡ;;;
전 바로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다음 회사로 옮겼습니다.

그 다음 회사는 전 회사처럼 장기 출장은 안가지만...
조건이 하나 있었지요. 바로 2개월 해외 출장... ㅜ.ㅜ;;

큰 아이를 가진 후 배가 불러오는 아내는 저희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죠
울산이 처가인 덕에 자주 가지도 못하고... 많이 외로움을 타는 것을 아는데
저 혼자 말도 안통하던 미국에 와서 생활하는 것은 여러모로 힘들었습니다.

하루에 두시간 넘도록 전화 통화를 하고...
일주일에 두세통씩 편지를 주고 받아도...
떨어져 있다는 것의 아쉬움을 달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가까와 오던 18일...
아내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계단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돌계단에 부딪혔습니다.
그때 저희 집이 이층이였는데...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좁은 돌계단이였지요.

실신해 있는 아내를 저희 아버님이 다행히 발견 119를 불러 병원에 싫고 갔답니다.
그때 저는 미국에 있었고... 연락을 받고... 비행기 일정 바꾸고... 갑자기 짐싸고...
한국에 들어올 때까지 약 48시간이 걸렸지요.

공중에 떠 있기에 어떤 연락도 할 수 없었던 그때...
한국에 돌아가면 제 아내를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그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이대로 끝난다면 너무한 것 아닌가...
처음 만나 제 사랑임을 확인한지 채 일년이 조금 넘었을 때였습니다.

(망할 놈의 노스웨스트... 그 와중에 비행기 하나를 취소했습니다 ㅠ.ㅠ
덕분에 뉴욕에서 열시간을 기다려야했지요. 그것도 대기자 명단에 올린 채로... )

아내의 머리 뼈에 금이 가고... 안에 출혈도 있고...
애를 포기하냐 산모를 포기하냐 하는 상황이였습니다...
하지만 다행이도 제가 도착했을 때는 둘 다 위기는 넘긴 상황이였습니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아내를 만났을 때...
저를 보며 힘없이... 하지만 반가운 표정으로 웃으며 제 손을 잡던 아내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해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저희 아내는 아직 중환자 실에 있었습니다.
병원측이 편의를 봐주어 다행히 중환자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아
저는 하루 종일 아내 옆에서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병실에 있었지만...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는 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였습니다.
어쩌면 볼 수 없었던 사람...
어쩌면 나혼자 보내야 했었을 크리스마스를
지금까지 열한번이 넘게 같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러니...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고 아껴주지 않겠어요 ^^;;;
커플분들... 모두들 있을 때 잘 하시기 바랍니다.

뒷이야기)
저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아내 옆에서 같이 있어주었지만...
제 아내는 그게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고 합니다.
응급실의 그 애타는 만남도... 중환자실에서 제가 옆을 지켜준것도... ㅡ.ㅡ
제가 보기에는 멀쩡했었는데... 괜히 억울합니다.

'사랑을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불어 한장 더...  (0) 2007.10.11
내가 사랑한 100명의 여인  (4) 2007.10.11
떠나기와 떠나보내기  (0) 2007.09.27
지금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4) 2007.09.08
그와 그녀의 만남  (12) 2007.08.25


2007. 9. 27. 22:59
2006년 7월 30일에 기록한 글입니다
================================

조금전 고속 터미널에 가족들을 울산 가는 우등 고속에 태워보냈다.
네시 사십분차를 탔으니 아홉시 반이나 되어야 도착할 것 같다.

가족들 보내고 나면 혼자서 사진이라도 찍을 생각에
핫셀이랑 디엘이랑 무겁게 들고 나갔는데...
가족들 보내고 나니 갑자기 기운이 빠져 그냥 호텔로 돌아왔다.

참 사람 마음이 이상하다.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출장을 다니면서
가족들을 두고 혼자서 떠나는 것을 올해 몇번이나 했다.

출장와 있을 때도 혼자 있고, 인숙은 아이들과 같이 있었다.
지금도 인숙과 아이들을 보내놓고 나 혼자 있다.

팀을 굳이 나눈다면 항상 나와 가족들이건만
오늘의 허전함은 나혼자 출장 떠날 때와 비교할바가 못된다.
일주일이면 내가 울산에 가서 가족들을 만날텐데도 말이다.

이게 떠나는 자와 떠나 보내는 자의 차이인가?
떠나는 차를 바라보다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이의 허전함인가?
떠나는 이는 이동하고 있기에 그 허전함을 못느끼는 건가?

혹시나 인숙이 한달에 한번씩 이만큼의 허전함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아닌가 함에 갑자기 미안하다.

떠나기는 떠나 보내기보다 열배는 쉬운 것 같다.

'사랑을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사랑한 100명의 여인  (4) 2007.10.11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는가...  (8) 2007.09.29
지금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4) 2007.09.08
그와 그녀의 만남  (12) 2007.08.25
이름 불러주기  (2) 2007.07.29


2007. 9. 20. 07:2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어떻게든 볼려고 하는 배우가 몇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주진모라는 배우죠. 2000년도에 "성난얼굴로 돌아보라"라는 시청률 낮아서 일찍 종영한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때 주진모를 처음 보았지요. 눈매가 멋진 배우라 생각했는데, 참 오랫동안 안뜨더군요 ㅡ.ㅡ;;;

이번에 '사랑'이라는 영화를 찍었기에 오늘 11시 10분 늦은 거 보고 지금 들어왔습니다. 남자배우 조련사라는 곽경택 감독이 주진모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궁금했습니다. 사랑에 목숨건 인연이라고 할까요? "지랄 같네 사람 인연"이라는 카피가 어울리는 작품이였습니다. 광고성 ^^ 뉴스에서 이야기하듯, 주진모 연기는 참 좋더군요. 너무 한 방향으로 치우친 연기인듯 하지만, 그건 배역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겠지요.

영화는 글쎄요... 기대하고 봐서 그런지 2% 부족합니다. 누구 말대로 "너무 익숙해 마음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그게 곽감독의 바램이였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그래도 조금 아쉽습니다. 감정이 폭주할 때는 그대로 내어버려두고, 분노가 치밀때는 보는 사람이 후련하게 퍼부어주었으면 하는데, 그때마다 등장하는 감독의 절제(혹은 이야기 만들기의 부족?)가 마음 한구석 아쉬음이 쌓이게 만들더군요.

흥행 성적은... 별로 안좋을 것 같습니다 ㅡ.ㅡ;;; 주진모는 이번에도 작품운은 별로 없는 것 같네요. 하지만 연기는 늘었으니 완전히 손해는 아니겠지요 ^^

"사랑"이 도데체 뭔지. 생각해 보면 마음 가는 방향 조금만 틀어도 언제 그런 일 있었냐 싶게 돌아설 수 있는게 사람간의 관계인 것 같은데... 그래도 사랑 없는 세상을 생각하면 무슨 재미로 사나 싶네요.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런 삶은 필요 없는 것 같다." 주진모의 마지막 대사처럼 "사랑" 참 지랄 같은 겁니다.

***

사족 1: 생각해보니 제가 좇아가면서 보는 배우들을 살펴보면 주진모, 김래원, 맷데이먼 등등... 남자들이네요. 흠... 전 분명 여자를 좋아하는데... ^^;;; 여자는 지금 아내 한명으로 족하나 봅니다 <--- 검열을 대비한 멘트? ^^

***

사족 2: 원래 영화평을 적을려고 만든 블로그가 아닌데 영화평을 몇번 올리게 되는군요. 그래서 아예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습니다.



2007. 9. 8. 15:31
회사 일 때문에 70%의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합니다. 그런 생활이 일년 좀 넘었네요.

평일에는 그래도 회사 사람들과 생활을 하다 보니 좀 괜찮습니다. 바쁘게 지내면 별 생각 안나지요. 하지만 주말만 되면 많이 힘드네요. 회사일로 출장을 온거다 보니, 좋은 호텔에서 먹고 싶은 데로 먹으며 편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즐겁지가 않네요. 일부러 주말에 할 일을 잔뜩 짊어지고 오지만, 그럴로 해결할 수 없는 빈공간이 있습니다.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랑하는 이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라는 진리가 새삼 사무칩니다.

그래서 저를 자꾸 내어모나 봅니다. 많은 일을 떠맡고, 책을 읽고, 글을 쓰도록이요. 성장에의 욕심. 완벽에의 충동. 그게 지금 저를 버티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을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는가...  (8) 2007.09.29
떠나기와 떠나보내기  (0) 2007.09.27
그와 그녀의 만남  (12) 2007.08.25
이름 불러주기  (2) 2007.07.29
무엇이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까?  (0) 2007.07.29


2007. 8. 25. 02:35
제가 글을 쓰는 곳에는 항상 끌고 다니는 글이지요... ^^

이 글은 몇년전 혼자 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
한국 가있는 가족을 기다리며 쓴 체험 소설입니다.

저와 제 아내의 이름만 실명이고 다른 분들은 가명임을 미리 밝힙니다.

그리고 좀 깁니다... ^^

******************************************************************

#1 첫번째 만남

1991년 어느 겨울 토요일.

재호는 교회 청년회 회장이였다. 회장에게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새로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것이다. 새로온 청년들에게 될 수 있는대로 편안하면서도 반갑게 인사를 해서, 그들이 부담갖지 않으면서, 반면에 '나를 반기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인상을 주어 또 오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는 것이 재호의 평소 지론이였다.

그날도 재호는 새로온 청년들에게 인사를 했다. 두 명의 자매가 청년회에 처음 나왔다. 친구라고 소개한 두 명 중에, 미안하게도 재호는 한명은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지금은 그때 둘이 같이 왔었는지, 아니면 혼자 뿐이였는지... 그날 청년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사실 기억이 안 난다. 재호에게 중요한 것은 그날 그녀를 처음 만났다는 것이다. 청년회 회장의 신분으로 참으로 하나님한테 죄송한 일일테지만 재호의 기억 속에 다른 이들을 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이재호입니다."

재호는 최대한 담담한 모양으로 인사를 했다. 좋으면 좋을수록 오히려 밖으로는 아무일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재호의 처세술이라면 처세술이였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재호는 그녀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사귀는 사람 있으세요? 없다면 저는 어때요?' 새로온 형제 자매를 사심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맞이하는 것이 회장이 가져야 할 자세이건만 재호는 그녀를 '사심없이' 맞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 한번만 봐 주세요”

교회 근처의 대학을 나왔다는 그녀는 지금은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인숙"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그녀는 긴 코트안에 조끼를 받쳐입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 보면 복잡한 듯 하면서도 세련되어 보였고, 긴 생머리를 머리 뒤에 말아서 묶은 모습이 뭐랄까, 동양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하얀 얼굴과 큰 키에 날씬한 몸 맵시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이미 재호는 그녀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었다.

재호는 아직 사랑을 몰랐다. 남녀공학을 나오고 오래 교회 생활을 하면서 여자와 사귄다는 말이 나돈 적은 여러번 있었으나, 재호는 아직 제대로 여자를 사귀어보지를 못했다. 사람을 애타게 그리워 해 본 적도 없었고, 재호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피했고, 재호를 좋다고 하는 여자들은 재호의 맘에 와닿지를 못했다. 결국 나이가 스물 여섯이 되었건만 재호는 손 한번 따뜻이 잡아본 여자가 없었다.

재호는 인숙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하나님 저한테 이 여자를 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인숙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저런 여인에게 사귀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또 골키퍼 있는 곳에 골 넣겠다고 덤빌만큼 용기있는 재호도 아니였다.

* * * * *

어느 토요일. 인숙은 청년회 모임에 왔다. 지금은 찬양시간. 앞에는 한 남자 청년과 여자 청년이 나와서 찬양을 인도하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자리에 앉았을 때 앞에 앉아있던 한 선배가 뒤를 돌아다 보며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왜 안나오셨어요?"

처음에 왔을 때 인사를 한 청년부 회장이다. 이름을 재호라고 했던가? 나이는 인숙보다 두 살위. 조그만 키에 좀 통통한 귀여운 인상이 밉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인숙이 올 때면 항상 저렇게 앞에 앉아 있다가 뒤를 돌아보며 인사를 했다. 웃는 모습이 편안한 남자. 인숙에게 있어서 재호의 첫 모습은 그렇게 다가왔다.

#2 두번째 만남

재호는 교회를 떠났다. 안좋은 일로 떠났던 것은 아니고 매형이 새로 교회를 시작해서 도와주기 위해 잠시 옮긴 것이였다. 이년 동안 다른 교회를 다니는 동안 재호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갔다. 담석을 오래 가지고 있던 재호의 어머니는 담석을 제거한 후에도 건강이 그렇게 좋아지지를 않았다. 교회 근처였던 집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재호에게는 세 명의 누나가 있었다. 재호의 부모는 늦게 본 재호를 빨리 장가보내고 싶어했다. 어머니의 건강도 안좋았고 게다가 재호는 삼대독자가 아닌가? 직장을 들어가자마자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보라는 부모의 성화가 시작됐다. 또 그동안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못해본 재호도 이제는 자신의 짝을 만났으면 하는 욕심도 있고 해서, 짧은 시간이지만 선도 보고 소개팅도 하고 여러명을 만나보게 되었다. 하지만 두번 이상 만나는 일도 없이 그렇게 두해의 시간이 흘러갔다.

1993년 그해 열 한명째 여자를 만나면서 재호는 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지쳤다고나 할까? '난 안돼나 보다. 그냥 이 여자랑 결혼해 버릴까? 뭐 남녀 사이가 별게 있겠어? 살다보면 정도 들고 그러는거 아니야?' 이번에는 선으로 만난 여자였다. 하지만 둘이 동갑이라 말놓고 그냥 편안히 친구처럼 몇번을 만났다. 여자 부모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오고, 재호도 싫다 좋다 부정도 안하니 재호의 부모도 이제는 짝을 만났나 보다 생각했다. 중매장이도 이제 한 껀 올리나 싶어 양가 부모의 상견례까지 주선하고 이러다가 재호는 정말 그녀와 결혼까지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였다.

* * * * *

인숙은 계속 그 동네에 살면서 같은 교회를 다녔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이제는 친구도 제법 생겼고 청년부의 임원까지 맡게 되었다. 인숙이 이 교회를 다닌 이유는 인숙의 아버지 때문이였다. 이 교회 목사님이 인숙의 고향인 울산에 들렸을 때, 인숙 아버지가 그 목사님 대접을 하면서 서로 연이 닿았고, 인숙 학교가 교회 근처다 보니 이 교회에 다니라고 적극 추천을 하신 것이다. 학교 졸업하고 굳이 그 동네에 살지 않아도 될 인숙이 계속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이유는 교회 때문이였다.

* * * * *

1993년 12월 5일

그날도 인숙은 청년회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치고 청년회실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재호가 들어왔다. 무슨 사정이 있다고 교회를 옮겼던 재호가 얼마전에 다시 청년회로 돌아온 것이다. 인숙은 재호를 볼 때마다 고개돌려 자기에게 인사하던 그 사람 좋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재호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를 들은 인숙은 재호가 좋게 보이지많은 않았다. 선배 언니와 사귀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또 인숙 친구와도 한번 사귀었다가 헤어지기도 했었다. 별로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바람둥인가 ... ? 어울리지 않게.

"오빠. 직장 들어갔으니까 한 턱 내야지. 언제 한번 밥 얻어먹으러 가야 되겠네."
"그래? 언제든지 와. 올때 전화하고."

재호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인숙 친구 은설이가 농담삼아 한 소리에 재호는 선선히 응락하며 명함까지 돌리는 것이였다. 자기에게까지 명함을 주는 재호를 보고 인숙은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나 싶었다. '직장 들어갔다고 유세 부리냐? 촌스럽게 명함을 돌리고.'

* * * * *

교회에 다시 돌아갔을 때 재호는 인숙을 보고 조금 놀랐다. 재호가 회장을 맡고 있을 때 몇주 나오다가 보이지 않던 인숙이 지금은 청년회 임원이 되어있는 것이였다. 교회에 와서 말도 없고 조금은 도도해보여서 재호가 제대로 말한번 붙이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캐주얼한 옷차림에 좀더 쾌할해 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재호의 눈에는 예쁘고 아름다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재호는 또 겉으로 담담한 척을 해야만 했다.

그냥 일상적인 대화들이 오가고 있을 때, 은설이가 도움의 손길을 뻗혔다. 물론 은설이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였겠지만... 직장 들어갔으니 한턱 내라는 소리에 재호는 당장 자신의 명함을 꺼내어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인숙도 포함해서. 그러면서 속으로 외쳤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전화 안해도 돼. 사실 이건 인숙 너한테만 주는거야."

인숙이가 전화를 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재호는 양가 상견례까지 한 성희와 인숙을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살다보면 정이 들거라는 마음에 지금까지 왔는데... 갑자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제대로 말도 못해보았지만 만약 인숙이와 그 여자중 선택하게 된다면, 재호는 백번 천번 인숙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숙은 자기에 대해 아무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내가 왜 이러나?

#3. 기다림... 약속... 실망...

월요일 아침. 재호는 자신이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명에게 새로 만든 명함을 주며 연락하라고 한 것인데, 꼭 인숙이 자기에게 연락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그런 마음이 드는 이유가. 한턱 내라고 한건 인숙이 아닌 은설이였는데. 그래도 재호는 인숙의 전화를 기다리며 오전을 보냈다.

당연하다는듯이 기다리던 전화가 왔고... 당연하다는듯이 그것은 인숙이 아니였다.

"오빠. 저녁 사준다고 했죠? 언제 가면 돼요? 나 뭐 부탁할 것도 있는데... 수요일날 괜찮아요?"

은설이였다. 너 밥 사주겠다고 명함 돌린 것 아닌데... 어쩌냐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재호는 은설이와 수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금요일에는 성희를 만나기로 했다. 수요일, 금요일 각각 여자와 만날 약속이 있지만 이게 뭔가. 아무 영양가도 없는 만남인것을. 집에서는 약혼식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성희. 갑자기 성희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호는 인숙과 만나기도 전에 성희와 어떻게 헤어지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 * * * *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인숙은 재호가 준 명함을 꺼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편안한 인상을 주는 재호. 자기에게 명함을 주면서 "꼭 연락해"라고 신신당부까지 하던 재호에게 밥 한끼 얻어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이번 주에는 언제 시간이 비나? 오늘은 늦게 끝나고, 수요일도 늦고... 마침 화요일은 수업이 다섯시에 끝났다. 그래 내일 정도면 좋겠네 하고 인숙은 재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인숙인데요? 연락하라고 하셨죠? 어때요 내일 저녁에 저 일찍 끝나거든요."
"내일 나도 아무 일 없는데. 잘됐네. 그럼 내일 여섯시에 만나."

재호가 너무 선선히 응낙을 해서 오히려 인숙이 당황스러웠다. '아니 이 남자는 할 일도 없나? 뭐 이렇게 좋아해? 뭐 어쨋든 저녁 한끼 얻어먹게 됐네? 비싼 것 사달라고 해야지...' 재호와의 만남에 별 의미를 두지 않으면서도 재호와 만날 생각을 하니 은근히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 * * * *

드디어 인숙의 전화를 받은 재호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인숙이와 첫 만남를 할 수 있다. 이건 정말 김칫국이다. 분명히 상대는 밥 한끼 얻어먹자는 것일텐데 데이트라니... 그래도 재호는 인숙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뭘 할까? 어떤 모습으로 나갈까?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까? 재호는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키도 작고 얼굴도 그저 그렇고. 인숙 같은 여자가 자기를 좋아할까? 인숙이는 나보다 키도 큰데? 그런 걱정도 들고... 어쨋든 걱정반 기대반으로 재호는 화요일을 기다렸다.

* * * * *

드디어 화요일. 기다렸던 화요일이었지만 재호는 아침부터 우울했다. 아침 일찍 인숙이 오늘 못나가겠다고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될 수 있는데로 실망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게 담담한 억양으로 통화를 마쳤지만, 재호는 왠지 자기에게 오던 기회가 다시 멀어져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나한테 그런 행운이 오겠어 하는 마음도 들고 어쨋든 우울한 하루였다.

점심 후에 팀장이 재호를 불렀다. 전부터 준비해왔던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울산 근처의 언양으로 출장 계획이 잡혔다. 일주일이다. 다음주에는 인숙이 시간이 된다 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한주 두주 지나가 버리면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인연이 아닌가?

재호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며칠동안 같이 지내지도 않고 서로 목숨을 걸만큼 사랑할 수 있는가? 그건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려놓은 상대방의 허상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로미오와 줄리엣도 주위의 방해 없이 계속 사귀었다고 해봐? 아마 둘이 서로 싸우다가 성격차이로 헤어졌을걸? 적어도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려면 사계절은 같이 보내야지.

하지만... 둘이서 밥 한끼 먹은 적 없었지만... 인숙과 흐지브지 되어버린다면 재호는 평생 아쉬움 속에 지날 것 같았다. 첫눈에 반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적어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그 사람을 만날 때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지 않을까? 인숙이 바로 그 사람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인숙과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을 더욱 더 아쉽게 만들었다.

#4. 첫 데이트

1993년 12월 8일 수요일.

인숙은 전화번호부를 뒤지며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인숙이 담당한 수업 중 하나가 취소가 되어서 저녁 5시 이후에 시간이 비게 된 것이다. 갑자기 생긴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그런데 그날 따라 친구들이 바쁜 척을 한다. 연락이 안되거나, 연락이 되도 선약이 있단다. 못된 기집애들. 결국 약속을 못 만든 인숙은 재호가 생각이 났다. 어제 못간다는 말에 조금 기분이 나빠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실망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오늘 만나자고 해볼까? '그런데 이 남자 오늘 시간이 있을까... ?'

재호는 오늘도 시간이 된다고 했다. 결국 5시에 신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니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 맨날 약속도 없나보지?.' 그래도 인숙은 기분이 좋았다. 만약 재호가 약속이 있다고 못 만난다고 했다면 아마 조금 서운해했을 것 같았다.

* * * * *

"은설이니? 어 나 재호야. 어쩌냐. 오늘 내가 급한 사정이 생겼다. 어떻게 내일 보면 안되겠니?"
"뭐 할 수 없죠. 그대신 오빠 내일은 꼭이예요."

인숙의 전화를 받고 재호는 당장 은설이한테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취소했다. 은설이한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숙이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 * * * *

약속시간 5분전. 재호는 약속장소 건널목에서 시계를 보며 서있었다. 미리 가서 기다릴까? 아직 5분이 남았는데? 처음부터 너무 좋아라하고 일찍 나타나면 인숙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까? 남자가 너무 적극적으로 나가면 상대방은 좀 물러서게 되지 않을까? 한 5분 정도 늦게 나타나서 내가 자기한테 매달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 게 좋지 않을까?

괜한 걱정과 잔머리에 약속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작전이라면 작전이랄 수도 있게 재호는 약속시간보다 정확히 5분 늦게 도착했다. 인숙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인숙은 긴 코트를 입고 나왔다. 인숙은 그 모습이 참 어울렸다. 키가 커서 그런가. 늦게 나왔다고 미안하다고 해도 처음이라 그런지 괜찮다고 맘 좋게 받아넘긴다.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저녁은 먹어야 하겠기에 둘은 식당을 찾았다.

이왕이면 좋은 것으로 선심을 쓰고자 하는 재호의 마음과 직장인 선배가 자진해서 밥 사주겠다는 데 이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는 인숙의 마음이 합쳐져, 조금 비싼 철판구이 집으로 가기로 했다. 주인 아줌마가 직접 와서 팬 위에 기름으로 '장수'라고 글씨를 써주는 것이 기억에 남는 그 식당에서 재호와 인숙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개인적인 질문들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 * * * *

무슨 남자가 처음부터 늦어? 은근히 화가 나면서도 인숙은 혹시 재호가 무슨 일이라도 있나? 오늘 바람맞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약속시간 5분이 지나서야 재호가 나타났다. 10분 전부터 길에서 재호를 기다린 인숙은 재호가 얄미웠지만 처음 만남인데 5분 늦은 거 가지고 뭐라 할수도 없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졸지에 이해심 많고 너그러운 여자가 되어버렸다.

장수라는 곳에서 철판구이를 먹으며 교회 선배와 후배가 이런 곳에서 만난다면 할만한 이야기, 즉 뻔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나서 인숙과 재호는 철판구이집을 떠났다. 밥 사달라고 했다고 밥만 먹고 헤어질 수도 있겠지만, 재호는 그냥 인숙이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볼려고 했는데 그 곳엔 카페가 없었다. 결국 찾다 찾다 들어간 곳이 '알프스'라는, 이름도 꼭 10년전 양식집의 이름을 하고, 분위기도 꼭 10년전의 분위기를 가진 곳에 들어갔다.

하지만 식당이 좀 촌스럽다고 해서 그게 둘 사이의 분위기를 망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재호는 아주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은 아니였다. 하지만 인숙은 재호와 이야기하면서 그가 뭔가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편안하기도 하면서 뭔가 색다른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난 직업을 10년만에 한번씩은 바꾸어보고 싶어. 변화하지 않고 안주하는 것은 퇴보라고 생각하거든."

그런 재호의 모습이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것 같아도 다른 이들과 달라서 신선했다. 이 남자 그래도 괜찮은 남자네? 다음번에 재호가 또 한번 만나자고 하면 거절할 것 같지는 않다고 인숙은 생각했다.

* * * * *

신사동에서 집으로 갈려면 재호와 인숙은 같은 버스를 타야 했다. 먼저 인숙이 내리고 재호는 몇 정거장 더 가서 다른 버스를 갈아타고 갔다. 좌석버스안에서 옆에 사이좋게 앉아서 이야기하면서 재호는 인숙이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졌다. 여자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는 재호는 처음으로 여자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숙은 금방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얼마 안된다는 말에 재호는 그냥 그 버스를 타고 갔지만, 인숙을 보내자 마자 재호는 후회를 했다. 집에까지 바래다 주었어야 하는데.

인숙은 장로님 아버지와 권사님 어머니를 두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침 일곱시면 가정예배를 드리는 신앙교육이 잘 되어 있는 가정이였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음에도 인숙은 막히지는 않은 조금은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놀기도 좋아하고 말도 잘하고, 이해심도 있고. 장녀라 그런지 사람을 잘 챙기는 것 같기도 하다. 눈에 뭐가 씌었나? 뭐하나 나무랄데 없는 과분한 여자였다. 재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집에 온 재호는 갑자기 허탈감을 느꼈다. 빈 방에서 홀로 침대에 누운 재호는 인숙이 보고 싶었다. 헤어진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지금까지 재호는 짝사랑이라고 불리는 걸 해봤다. 여자친구도 있었다. 여자를 그리워한 적도 있었다. 여자 때문에 마음 아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막연히 누군가를 그리워했던 것이라고 재호는 생각했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누군가를 그 대상으로 삼아 그리워 하는 것과,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사랑한다는 것인가? 한달 후면 스물 여덟이 되는 재호는 사람을 그리워하는게 무엇인가 이 나이에 어렴풋이 느끼게 된 거다.

재호는 인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숙이 전화를 받았다.

"잘 들어갔나 궁금해서 걸었어"
"잘 들어왔죠. 오빠는요? 힘들지 않아요? 내일 일찍 가야 된다면서요."
"힘들긴 뭐. 괜찮아. 지금 뭐해?"
"뭐 지금 들어와서 그냥 음악 들으면서 과자 먹고 있어요. 씻어야 되는데... 나갔다 오면 보통 이렇게 쉬어요."

처음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건데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재호네 회사는 아침 출근이 일곱시다. 하지만 재호는 인숙과의 전화 통화를 끝내고도 설레임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살다보면 정이 들 것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재호의 마음 속에는 없었다. 이제 어떻게 성희와 헤어질 것인가? 아직 인숙 맘도 모르는데? 인숙이 나랑 사귈려고 할까?

* * * * *

인숙은 집에 들어오면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앉아서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다. 늦은 시간에도 살 찔 걱정 안하고 잘 먹는 것은 인숙 집안의 내력이였다. 오디오에서 "기억 속의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다. 오태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인숙은 방금 통화를 끝낸 재호를 생각했다. 별 생각없이 밥 한끼 얻어먹자고 만난 것이였는데, 여운이 많이 남는 만남이였다. 오늘 처음 만났음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밤 늦게까지 전화 통화도 하고. 이거 이러다 사귀는 거 아냐?

인숙은 재호와의 만남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그냥 교회 선배 만나서 한끼 얻어먹은 건데 뭐... 그래도 그 만남이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부인하고 싶지 않았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근사한 남자 한명 나타나기를 기다려왔는데... 재호는 그런 기대와는 안 맞는 남자였다. 그냥 편한 오빠, 안보면 조금 허전할 것 같은 사람. 인숙에게 재호는 그런 사람이였다.

#5. 설레임... 고백

어제와 오늘이 참 다르다. 아침에 울리는 알람 소리가 반갑고, 네시간도 채 못잔 머리가 멍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나오고, 전철에서 회사까지 걷는 길의 그 차가운 바람마저도 시원하다. 은설이랑 약속만 없었다면 오늘도 인숙에게 만나자고 하고 싶은데. 재호는 은설이를 어릴 때부터 봐왔다. 아마 오늘마저 약속을 취소하면 삐질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아예 다음주에 만나자고 할걸.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재호는 하루종일 인숙에게 전화하고 싶은 걸 참느라고 고생했다. 만나자 마자 자꾸 전화하고 그러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너무 적극적으로 나가면 또 도망가는거 아닐까? 그런 걱정에 재호는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전화를 하지 않았다.

은설이와는 김치볶음밥을 먹으러 갔다. 은설이한테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뭐 철판볶음이나 김치볶음이나 같은 볶음밥인데 뭐. 은설이가 아르바이트로 회원모집을 하는데 그거 하나 들어달라고 만나자고 한 것이였다. 괜찮아보여서 하나 들어주고 밥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음반가게가 보인다. 인숙이 좋아한다는 오태호 시디를 하나 샀다. 얼굴을 보니 좀 느끼하게 생겼던데… 노래는 잘 한다. 인숙에 대한 것을 하나 더 알게 된 것 같아 기분 좋다. 인숙이 보고 싶다. 또 전화를 할까? 참다 못해 결국 전화를 했지만 인숙이 받지를 않았다. 친구라도 만나고 오나? 인숙을 보고 싶은 마음과 내일 만날 성희에 대한 부담 땜에 또 재호는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 * * * *

목요일은 인숙에게 힘든 날이다. 다른 날보다 많은 수업. 밥먹을 시간이 마땅치 않아 수업 다 마친 후에야 혼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면 비어있는 집안은 유난히 더 쓸쓸해 보였다. '혼자다' 라는 생각이 드는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오늘은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방이 넓어 보인다. 이럴때 누군가와 이야기라도 나누면 좋으련만. 재호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오늘은 전화 안할려나? 혼자 있는 인숙과는 달리 부모님과 같이 사는 재호라 함부로 전화할 수도 없었다. 내일은 회사로 한번 전화해볼까?

* * * * *

인숙과의 만남이 있은 후 성희와 만나는 것은 재호에게 정말 힘든 일이였다. 재호는 이제 자기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았다. 아니 인숙이 자기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성희와 계속 의미없는 만남을 가질 수는 없었다. 밥을 먹으면서 재호는 별로 말도 없이 뚱하게 있었다. 재호는 그러면 성희가 '무슨 일 있어?' 라고 물어보기를 기대했는데. 그러면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텐데. 오늘 따라 왜 그리 성희가 눈치없어 보이는지.  

"야 넌 눈치도 없냐?"

뜬굼없이 눈치없냐는 물음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성희에게 결국 재호는 아무 이야기도 못하고 식당에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오락실이 있어서 같이 농구도 했다. 안하던 거를 해서 그런가 다른 날보다도 더 즐거워하는 성희를 보며 재호는 미안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재호는 인숙 생각이 났다. 집에서야 처음에 뭐라 하겠지만 재호는 인숙을 포기할 수 없었다. 성희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이건 사랑이 아니였다.

* * * * *

오늘은 인숙이 전화를 받았다. 일상적인 대화로 시작한 통화가 10분 20분 30분을 넘어갔다. 재호의 마음에 조바심이 생겼다. 이 여자가 바로 내가 찼던 여자다. 이젠 놓칠 수 없다.

"인숙아. 사실은 나 집에서 결혼하라고 하는 사람 있다."

갑자기 전화기 저쪽에서 침묵이 흐른다. 이미 말문이 터졌다. 재호는 마음 속에 맺혀있던 말을 다 쏟아놓고 말았다.

"나 사실 '살다보면 정이 들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집에서 하자는데로 따라가고만 있었어. 하지만 너를 만나고 그게 잘못된거라는 거를 깨달았어. 나 너 굉장히 좋아하나봐. 나 너 없으면 안될 것 같아. 인숙아. 너 나랑 사귀지 않을래? 아니 나랑 평생 같이 있어주지 않을래?"

재호는 만난지 이틀만에, 그것도 전화로 인숙에게 프로포즈를 해버리고 말았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사랑한다고 말할려면 최소한 사계절은 같이 보내야 한다고 믿던 재호가, 데이트 한 번이 전부인 인숙에게, 집안에서 결혼시키려는 여자도 있는 상황에서 '나 너 아니면 안돼' 하는 폭탄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이게 운명적인 사랑인가, 첫눈에 뭐가 씌여서 그런건가 그런 건 지금 재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재호의 머리속에 있는 것은 인숙과 같이 있고 싶다는 것, 그 마음 뿐이였다.

* * * * *

재호의 이야기는 인숙에게 충격이었다. 만난지 이틀만에 결혼하자고 프로포즈를 그것도 전화로 하는 것도 황당하지만, 아니 요즘 세상에 '살다보면 정이 들거라고' 생각했다니.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정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정말 신기한 남자였다. 근데 이상한 것은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듣고도,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하고 도망가지 않는 인숙 자신이였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재호의 말도 듣기 싫지 않았고, 사랑도 없는 결혼을 그냥 끌려가다 할지도 모른다는 재호의 믿겨지지 않는 말에도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동정심이 가는 것이다.

정말 요즘 세상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그것만은 고쳐주고 싶었다. 그래 한번 이야기를 해보자. 최소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막아줘야지. 이건 정말 재호 오빠가 불쌍해서 도와주는 거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나 그 오빠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라구 그렇게 다짐을 했지만 그래도 자기가 좋다고 고백하는 재호의 말이 싫지만은 않은건 왜일까?

#6. 당혹… 그리고 어색함

전화기를 놓으며 재호는 홀가분함 속에 당혹함을 느꼈다. 마음에 담아놓은 말을 내어놓았기에 답답함은 사라졌지만 한편으로 걱정스러움이 커져갔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마음에 들만한 선물이라도 하나 준비하고 했어야할 고백을 겨우 한번 만난 인숙에게 이렇게 갑자기 해버린 것이다. 혹시 싫다고 하면 어쩌나? 도망가면 어쩌나? 혹시나 잘 될수 있는 사이를 내 성급함이 망쳐놓은 것은 아닐까?

다른 걱정도 생겼다. 부모님한테는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갑자기 인숙 이야기를 꺼내면 당황해 하시지는 않을까? 성희한테는 어떻게 이야기를 하지? 중매장이는 또 얼마나 극성을 떨까? 난 정말 이런 거 잘 못하는데. 재호는 여자를 사귀는 것도 잘 못하지만 자기 좋다고 하는 여자한테 딱 잘라서 싫다는 이야기도 못했다. 지금까지 써온 방법은 오직 그냥 침묵하는 것. 만나자고 해도 안 나가기. 이번에도 그래야 하나?

복잡한 마음에 잠을 뒤척이면서도 재호는 인숙 생각을 하며 잠이 들 수 있었다.

* * * * *

토요일 아침. 이른 아침에 전화가 왔다. 재호였다.

“인숙아.”

어제 한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눈 재호였지만, 그 목소리가 어쩐지 어색하다.

“어제 많이 놀랐지?”

“갑자기 그런 이야기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너한테 고백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 나 내가 말한 것 잊어달라든지, 아니면 부담없이 만나자든지 그런 말 하고 싶지 않아. 인숙아 나 너 좋아한다.”

자기를 좋아한다는 그 말이 싫지는 않음에도 인숙은 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래. 어제 생각한데로 원치않는 결혼을 하는 것만은 막아주어야지.

그 날은 인숙이 개인적으로 약속이 있었다. 꼭 만나고 싶어하는 재호의 바램에도, 둘은 다음날 일요일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 통화를 마쳤다.

#7. 확신

재호의 회사는 출장을 많이 다니는 회사였다. 인숙을 만난 다음 주 한 주 내내 재호는 지방 출장을 다녀와야했다. 보통 월요일부터 일을 하기위해서는 일요일 오후에는 출장지로 내려가야한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토요일날 인숙의 사정 때문에 만나지 못했기에 일요일은 만나고 출장을 가고 싶었다. 갑자기 재호의 앞에 나타난 인숙.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일주일을 떨어져 있으면, 또 그렇게 갑자기 사라질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재호는 혼자서 밤차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열한시 밤차를 탈려면 열시반에는 서울역으로 출발을 해야한다. 재호의 머리 속에는 인숙이와 몇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계산을 하고 있었다.

* * * * *

일요일 오후. 인숙이 교회 일이 있었기에 재호는 여섯시나 되어서야 인숙을 만날 수 있었다. 서로 얼굴을 보면 혹시 쑥스럽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약속장소에 도착했지만, 그런 걱정은 필요 없는 것이였다.

재호와 인숙은 할 이야기가 많았다. 아직까지 재호는 인숙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인숙도 재호에 대하여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재호는 인숙과 같이 있는 시간이 행복했고 인숙과 나누는 이야기가 좋았다. 인숙은 재호에게 사랑이 없는 결혼은 하지 말란다. '당연하지' 재호는 생각했다. 재호는 인숙을 만난 후에 사랑없는 결혼이라는 거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 너랑 평생 같이 있고 싶어'. 재호는 인숙을 통해 사랑이라는 것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이럴 때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난다. 재호는 이제 기차역으로 떠나야 했다. 여행 가방 하나 들고 길에 서 있는 재호. 인숙과 헤어지기가 참 싫다. 재호와 인숙은 한참동안 그렇게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호에게 인숙은 처음으로 그리움을 알게 한 여자였다. 조금이라도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다. 일주일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일주일 후에 다시 이곳에서 이렇게 인숙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런 확신이 재호에게는 아직 없었다.

* * * * *

인숙은 여행가방 하나 들고 밤차를 타러 가려는 재호의 모습이 안스러웠다. 아니 그 모습에서 자신과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재호의 마음이 느껴지기에, 이대로 재호를 그냥 보내면 혼자서 무척 아쉬워할 것 같았다.

* * * * *

머뭇거리는 재호에게 인숙이 추워보인다며 자기 목도리를 벗어서 재호의 목에 둘러주었다. 소리를 내어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 모습이 재호에게는 이렇게 느껴졌다.

'걱정하지 마요. 이 목도리가 오빠와 함께 있듯 나도 오빠 곁에 있을게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요.'

밤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잠자리도 편하지 않고, 타고 내리는 사람에 편하게 잠을 잘 환경이 아니였다. 하지만 재호에게 그 여행은 어느 때보다도 기분 좋은 여행 중의 하나였다. 재호는 다시 한번 자기 목에 걸린 목도리의 감촉을 느꼈다. 재호의 맘에 더 이상 망설임이나 걱정은 없었다. 인숙이 재호의 목도리를 매는 순간 자신도 인숙에게 매이겠다고, 인숙의 곁을 떠나지 않을거라고 재호는 결심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자기 목에 목도리를 걸어주기 위해 가까워진 인숙의 입술에 키스라도 한번 못한 자신의 용기 없음이 아쉬울 뿐이였다.

* * * * *

허전해진 목 주위를 차가운 밤 공기가 파고들었다. 하지만 인숙은 새로 무엇 하나 얻은 것 같아 그 차가움이 오히려 상쾌했다. 인숙은 일주일 동안 재호를 보지 못한다는 것에 새삼 허전함을 느꼈다. 두번 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마치 오랜 시간 같이 지낸듯한 사람. '벌써 정이 들었나?'하는 생각에 혼자 웃음을 짓던 인숙은 재호와 같이 있고 싶어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제는 부인하지 않기로 했다.

분명히 그 사람이 불쌍해보여서, 사랑이 없는 결혼만은 말리고자 만나는 건데... 과연 그것이 전부인가? 만약에 재호와의 만남이 계속되고 그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정해주신 배필이 재호라면 거부하지는 않으리라. 아니 그 만남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다고 인숙은 생각했다.

'사랑을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떠나기와 떠나보내기  (0) 2007.09.27
지금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4) 2007.09.08
이름 불러주기  (2) 2007.07.29
무엇이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까?  (0) 2007.07.29
한 밤중의 연애 상담  (0) 2007.07.25


2007. 7. 29. 15:12
환상의 커플을 보고... 2007년 1월 17일에 쓴 글
==========================================

최근에 와이프와 나와 열심히 본 드라마가 있다. 바로 환상의 커플이라는 드라마다. 원작 자체가 재미있고, 또 한예슬이라는 배역에 정말 적격인 배우의 몸사리지 않는 연기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난 기본적으로 그런 사랑 이야기에 언제나 관심이 있다. 사랑만으로 극복해나가는 장벽. 사랑의 힘. 그런것에 나는 아직도 감동을 받는다.

이 드라마를 보면 여자주인공인 나상실이 남자주인공을 부를 때 꼭 "장철수"라고 성과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 하지만 이 나상실이라는 캐릭터가 다른 사람에게는 이름을 잘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가 았다. 예를 들어 같이 사는 아이들에게는 "어린이들", 강아지한테는 "개", 경쟁은 전혀 안되자민 그래도 삼각관계의 한 축인 유경이는 "꽃다발"로만 불리운다. 이름을 부르는 대상은 굳이 따지자면 강자, 빌리 (원남편), 프린세스 (고양이) 정도라고 할까. 워낙에 등장인물이 적은지라 일반화시키기에는 좀 무리지만 자기와 정말 가깝지 않다면 이름을 잘 부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 많은 사람들이 학창시절에 암송하던 시절이 있다. 그 시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그때야 별 생각없이 지난 대목이였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때는 나와 대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까지 할까?

미국에 와서 살다보면 더 그런 것을 느낀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안불러주는 것이 무례하게까지 인식되는 미국 사회에 와서 처음에 그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 어릴 때부터 훈련이 되어서인지 미국애들은 이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외운다. 한번 스쳐 지나간 사람이 다음번에 만났을 때 내 이름을 불러주는데, 나는 그 사람 이름이 뭔지 전혀 생각이 안날 때 참 당황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게 참 힘이 들어 뭘 그렇게 이름을 부르나 싶었는데 몇년 살다보니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상대방을 인식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깔린 의식 -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한다는 것, 그것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옆집 아저씨라고 부를 때는 어디 가나 옆집에만 살면 옆집 아저씨가 되지만, 내가 그를 마이크라고 부를 때 그 사람은 바로 그 "마이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옆집 아저씨 이름이 또 생각이 안난다 ㅡ.ㅡ 마이크는 다른 골목 아저씨다.)

다시 환상의 커플로 돌아가면, 마지막 나상실이 조안나인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며 "어린이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리라고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 아이들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그 아이들과 인간적인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또 교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끔 한번씩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묻어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예한"이라고 큰 아이를 부르면 세례 요한을 닮은 삶을 살라고 기대했던 내 마음이 느껴지고, "예지"라고 작은 아이를 부르면 귀여운 얼굴의 생글거리는 미소가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인숙"이라고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 그녀와 십삼년 동안 쌓아온 세월 만큼의 그리움이 느껴진다 (뭐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

나상실은 장철수의 이름을 부르는 횟수만큼 그에게 가까워지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름을 부르면서, 상대방을 불특정 다수의 하나로가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개인으로 존중할 때 상대방에 대한 감정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는 더 강해지는 것일 거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하나님은 개개인의 이름을 사용하여 불렀다는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생을 살다가 마쳤으며,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날런지. 우리 주위에 스쳐간 몇백 몇천의 이름들도 다 외우지 못하는 유한한 인간에 비해, 하나님은 모든 이들의 이름을 아신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나는 믿고 있다.

또 다른 구절에 "...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이사야 45:4)" 라는 말씀도 하신다.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힘세신 분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나의 이름을 정해주시고 나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기분좋게 하는 일인지 경험해보지 못하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름을 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얼마나 정다운지. 그것은 그 개인에 대해 안다는 것이고 단순히 여러명 중의 하나가 아니라 개개인을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이제 이름을 부를 때 좀더 생각하고 불러야겠다. 아니 잠깐 잠깐 이름을 생각하며, 또 그 사람 하나 하나를 생각하며 잠시 멈추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 이제는 좀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다.

'사랑을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떠나기와 떠나보내기  (0) 2007.09.27
지금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4) 2007.09.08
그와 그녀의 만남  (12) 2007.08.25
무엇이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까?  (0) 2007.07.29
한 밤중의 연애 상담  (0) 2007.07.25


2007. 7. 29. 14:57
Take the lead라는 영화가 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한 영화인데 안토니오는 여기서 사교춤 선생으로 나온다. (어떤가 어울리지 않는가? ^^) 내용은 교훈적인거다. 안토니오는 우연히 고등학교의 문제아들을 만나게되고 정학처붅중인 아이들에게 사교춤을 가르치게 된다. 원래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끼와 어울려서 그들은 나중에 대회에까지 나가게 되고 결국 사교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까지 현대적으로 바꾼다는 이야기이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생길 법도 한 일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는 많이 있다. 소위 문제아들을 변화시킨다는. 어떤 영화에서는 음악이고, 어디서는 운동이고, 운동도 아마 종목별로 영화 한편씩은 다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 그 변화시키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운동, 음악, 춤? 에너지를 발산시킨다는 점이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하는 그 자체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뭘까?

그 속에 담겨진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관심. "난 너가 지금보다 더 낳은 삶을 살기를 바래"라고 하는 말을 하던 하지 않던 나타나는 그 관심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좋은 정책이란 무엇인가? 회사를 잘 운영한다는 것은 뭘까? 같은 정책이 어디서는 좋은 결과를 낳고 어디서는 나쁜 결과를 낳는 이유는 뭘까?

나이가 들어서인지... 갈수록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 사무치게 다가온다. 사람에 대한 관심, 사람에 대한 애정. 그런 것들이 없이 제시되는 비전, 상대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이 내던져지는 교훈들은 아무런 힘이 없다.

내 아이들에게 내가 하는 말들. 공부잘해라. 최선을 다해서 살아라... 등등. 그 속에 나는 아이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담고 있는가? 물론 관심이야 있지. 그래도 아빠인데. 하지만 그 관심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 그런 관심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고 있는가?

내가 담당하고 있는 팀의 문제들을 해결한답시고 여기저기 부딪히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을 기울인다고 하면서도 그 이면에 있는 이유가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 무엇이 나를 드라이브하고 있는가? 다시 내 자신의 동기를 점검해야겠다.

제대로 살겠다는 고상함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위한다고 하는 그런 대의명분이 있어야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면 결국 실패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이론도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판단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실패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도 회사일도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 워낙에 잘난체 잘하는 나로서 가장 부족한게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인 것 같다. 사람들한테 나이스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이념이나 정책이나 혹은 상식을 뛰어넘는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도 사랑이, 배려가 이 세상에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사랑을 말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떠나기와 떠나보내기  (0) 2007.09.27
지금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4) 2007.09.08
그와 그녀의 만남  (12) 2007.08.25
이름 불러주기  (2) 2007.07.29
한 밤중의 연애 상담  (0) 2007.07.25


prev"" #1 #2 #3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