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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 바라보기'에 해당되는 글 40건
2007. 10. 16. 23:10
아침에 회사를 가면서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손석희씨가 어느 공무원과 인터뷰를 하더군요. 주제는 5000만원 이상 세금을 체납한 사람들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였습니다. 대략 대화 내용은 이랬습니다.

손석희: 5000만원 이상 세금 체납자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하신다고 들었는데 다 되었는지요?
공무원: 네. 130명에 대해서는 이미 출국금지 조치를 신청했고 나머지 오천팔백명 (숫자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이정도였음)에 대해서는 12월까지 출국금지 신청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손석희: 12월이라면 두달 정도 남았는데, 그전에 이분들이 출국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공무원: 그런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자료 정리하고 어쩌구 저쩌구 하면 12월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라고 하더군요. 아니 그럼 그럴 가능성은 생각도 안하고 발표했다는 건가요? "12월까지 너희들 출국 금지 신청해놓을거다. 지금은 출국할 수 있지만, 너희들 나중에 출국금지 당할 놈들이니까 지금도 절대로 출국하면 안돼"라고 말한다면, 세금체납자들이 얌전히 앉아서 기다릴까요? 출국금지 당할 때까지? 이런 말 나오면 도망갈 계획 없던 사람도 나가고 싶어지지 않겠습니까? 말 그대로 12월까지 시간이 필요하면 그때 발표를 하면 될텐데 지금 발표하는 이유는 도데체 뭘까요.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시기라 그럴까요?

정말 저 사람들 머리에는 뭐가 들었는지... 이거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2007. 9. 13. 22:01
도데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기사를 쓰고, 편집을 하고, 인쇄에 넘기기까지 몇십명의 손을 거쳤겠지요.
그중의 어느 누구도 "멈춰"라는 소리를 안했나 봅니다.

대한민국 언론 다 죽었다에 한표 더 추가합니다.


2007. 9. 9. 23:13
전자신문 9월 6일자 컬럼에 이런 글이 실렸다.

리나라가 선진국과 비교할 때 가장 경쟁력이 약한 곳 중 하나가 상위 10%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하위 10%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미국계 기업의 임원도 종종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본사 임원이 일하는 걸 보면 기가 질립니다. 거기다 또 얼마나 똑똑한지. 이들이 정력적으로 일하는 걸 보면 상위 10%가 미국을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걸 자주 느낍니다.”

미국회사에서 8년 넘게 일을 한 내 경험상 이 말은 정말 맞다.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이 별 욕심없이 대강 대강 사는 듯하지만, 그들을 이끄는 리더들은 정말 놀랍도록 똑똑하다.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만 봐도 그렇다. 논리정연하고 이해력 빠르고, 무척이나 많은 일을 하면서도 또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다. (물론 모든 리더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지 부쉬다 ^^) 다른 부분은 모르지만, 내가 몸담아왔던 소프트웨어 사업을 보면, 지금까지 계속해서 미국이 주도를 해왔다. 게임등 응용분야에서는 한국이 반짝 했을지 모르나, 모든 이론및 기본 기술은 미국의 학계나 회사들이 주도해왔다. 통신쪽에 근무하는 친구의 이야기도 그렇다. 한국의 모바일기술이 뛰어난듯 하나, 모든 근본 기술은 다 미국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미국이 천혜의 조건을 타고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출발한 것도 있다. 또 전세계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미국에 들어가 그 나라를 도와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은 엘리트가 인정받는 사회다. 그리고 엘리트를 적극적으로 키우는 사회분위기가 조성이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영재교육을 보자. 여러가지 영재교육이 있지만 그 중 유명한 곳이 존홉킨스 대학이 진행하는 CTY(Center for Talented Youth)다. 이 프로그램은 만 13세 미만의 영재를 선발해서 지속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여름방학동안 학교에서 캠프도 하고, 이후 카운셀러와 상담을 통해 재능을 가진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도록 관리해준다. 선발 기준은 12세의 경우, SAT를 쳐서 12학년 평균 이상이 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초등학교 6학년이 대입 선발고사를 봐서 고3 평균 이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단 영어와 수학만 본다.

미국의 대학들은 어떤가? 아이비리그나 그에 버금가는 학교들은 사회적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다. 안그래도 뛰어난 학생들을 데려다가 정말 좋은 환경에서 가차없는 하드트레이닝을 시킨다. MIT 학생중 하나가 이런 불평하는 걸 들었다. "교수들은 학생들이 잠을 안자도 되는 로봇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러니 결과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분위기는 꼭 대학교뿐만이 아니다. 고등학교 교과는 학생의 수준에 따라 세등급으로 나뉘어지며 깊이 있는 공부를 원하는 학생은 언제나 최상 등급(AP)를 들을 수 있다. 고등학생이 대학교 강의를 듣는 것도 흔치않게 볼 수 있다. 초등학교만 해도 어떤 학교들은 (공립임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뛰어난 아이들을 모아 따로 교육을 시킨다. 수학에 뛰어난 아이들에게 따로 과제를 내어서 관리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교육은 평준화를 지향하는 교육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못들어간 학부모들이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을 한번도 들어보지를 못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서울대 폐지론이 나온지는 한참 되었다. 나름 이유는 있다. 서울대 출신들이  사회 곳곳에서 너무 큰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연으로 연결된 그 고리가 너무 단단해 다른 학교 출신들이 뚫고 들어가기 힘들다.
이번에 들으니 특목고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있는 특목고도 다시 검토하겠단다. 거기에도 이유는 있다. 지금의 특목고는 대학교 입시학원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을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내리는데 큰 공을 했을 뿐이다.

평준화에서 벗어나 특별교육을 지향하는 거라면 무조건 입시가 되어버리는 한국의 현실이 짜증나기는 하다. 영재교육을 시킨다고 하니, 영재교육에 들어가기 위한 학원이 생기는 현실이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앞에 말한 CTY에 보내기 위해 준비시키는 학원은 미국에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한국에는 있다. 80밖에 안되는 아이도 이런 학원에서 준비시키면 100으로 보이게 할 수 있기에 영재가 아니어도 영재로 선택되게 할 수 있다. 서울공대에 교수친구들이 몇명 있다. 그 친구들 하는 말이 요즘 서울대에 들어오는 학생들중 적지않은 수가 실제는 90인데 110, 120을 만들어서 온 경우라고 한다. 그런 학생들은
들어와서 엄청 힘들어 한단다. 이런말 하면 욕먹겠지만 서울대 올 학생이 아닌데 서울대에 들어왔다는 거다. 매사에 이러니 서울대 폐지론이니 특목고 제한 같은 말이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의 상위 10%가 미국의 상위 10%를 넘게되는 날이 있을까? 난 절대 아니라고 본다. 능력이 있던 없던 서울대 출신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꼽다고 생각하는 사회분위기에서는 진정한 엘리트가 나올 수도 없고, 또 나온다 한들 맘놓고 힘을 발휘할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미국의 상위 10%를 이길 수 있겠는가? 사실 나도 서울대를 나왔다. 하지만 거기 출신이라고 맘놓고 이야기를 못한다. 대부분의 서울대 출신들이 출신학교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그게 한국 사회 분위기다.

서울대 출신이 정말 능력이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사회 분위기가 엘리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정말 능력있는 사람이 대우받고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당연하게 인정되는 사회가 되어야 할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벽이 너무 높다.

내가 맡고 있는 조직에 정말 능력이 뛰어난 대리가 있다. (어느 학교 출신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서울대는 아니다 ^^) 왠만한 과장보다 낳기에 이 사람을 특별 승진시키고 싶은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전에 차별화에 대해 글을 적었지만, 뛰어난 사람을 드러내놓고 뛰어나다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을 거다. 만약 에디슨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뭐를 하고 있었을까? 헬렌켈러는? 아인슈타인은? 등등. 답은 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들이 이룬 업적을 못이루었을 거라는 거다. 엘리트를 인정하지 않는, 오히려 훼방하는 한국사회를 비판하는 자조적인 비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비유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서울대는 폐지하잖다. 동료가 특진이라도 하면 그걸 기분좋게 봐주질 못한다. 내 아이 특목고에 못들어가니 아예 폐지하잖다. 이를 두고 이율배반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

서울대 폐지론이나 특목고 제한이나 마땅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는 부수적으로 생기는 문제점을 없애고자 아예 제도 자체를 없애자고 하는 것이다. 원래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포기하겠다는 거다. 이런식으로 끌어내려서 평준화를 시키는 것이 정말 정답일까? 아니라고 본다. 엘리트가 제대로된 엘리트 역할을 못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야지 엘리트를 없애는 것은 답이 아닌거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엘리트, 그러면서도 자기만을 위해 사회 전체를 성장으로 이끄는 리더가 되는 엘리트. 그런 사람이 건강한 엘리트다. 이런 엘리트를 키우고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한국 상위 10%는 절대로 미국 상위 10%를 이길 수 없을 거다.



2007. 9. 8. 09:12
한때 유시민의원을 싫어한 적이 있었다. 그건 먼 미국에서나마 마음 속으로 열렬히 지지했던 노무현대통령이 당선후 보여줬던 여러가지 실수들 때문이였다. 모든 것을 투쟁으로 몰고가며, 툭하면 못해먹겠다 투덜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대통령의 그릇이 아니라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까지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유시민의 식견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항소 이유서"의 날카로움,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탁월한 시각이 이제는 없어졌다고 지레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년동안 노대통령을 통해 한국내에 벌어진 변화를 보며, 아직도 그의 경박함은 싫어하지만, 그래도 한국 역사상 이만한 대통령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끝까지 그를 지지했던 유시민의 판단이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따지고 보면 유시민만큼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한다. 얼마전 아는 선배와의 대화중 유시민에 대한 일화를 말한 적이 있다. 밤늦게까지 가투(거리투쟁)을 하고 어느 하숙집에 몰려가 다같이 잠이 들었다. 그런데 누가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책을 읽더란다. 바로 유시민의원이였다.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다.

그가 내세운 대통령 후보 출마조건이나, 최근의 100분 토론에서의 아무도 당할 수 없는 논객의 모습까지, 요즘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일이 즐겁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의 튀는 모습을 보며 가볍다라는 느낌을 토로할지 모르나, 이미 그는 누구보다도 무거웠던 사람이기에 겉모습만 보고 그를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의 선배이기도 하다. 후배로서 그에게 요구하고 싶다. 한국이, 그리고 이 세계가 좀더 낳은 세상으로 발전할 수 있게 그의 모든 것을 발휘하기를 원한다. 어쨋든 그는 어느 후보보다도 임팩트가 강한 사람이다. 그마저 다른 사람들처럼 묻혀져버린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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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원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 - 유시민처럼 철들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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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의 유시민이 있게 했다고 할 수 있는 그의 항소이유서를 여기에 옮겨본다.





2007. 9. 7. 11:00
種瓜得瓜 種豆得豆
종과득과요 종두득두라

天網恢恢 疏而不漏
천망이 회회하니 소이불루라

외심은데 외나고 콩심은데 콩난다
하늘의 그물이 넓고도 넓어
작은것도 능히 빠져나가지 못한다

정채봉선생이 쓴 <초승달과 밤배>라는 책에서 나온 글입니다. '난나'라는 아이가 80년대 중반의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면서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책이지요. 소중히 여기던 책이였는데, 20년의 세월이 지나며 아쉽게도 책이 어디로 사라졌습니다.

책 속에서 누군가 '난나'에게 이 문장을 들려줍니다. 제 기억에 난나 할아버지였던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당시는 아직도 노태우가 정권을 잡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정채봉 선생은 백성을 총칼로 죽이고 정권을 잡은 사람들을 향해 이 말을 하고 싶었나 봅니다.

세월은 흘러 그 말대로 되었습니다. 저 책을 읽었을 때는 오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이 이미 와 있습니다. 아직 호위호식하는듯 하나, 전두환이 예전처럼 맘놓고 살지는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통해 80년의 광주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제정신 못차리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군인이 민간인을 향해 총을 쐈다는 것은 유언비어요 환타지라는 '전사모' 사람의 말을 듣고 오래전 읽은 이 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명박은 후보가 되자 마자 전두환을 찾아서 인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듯 해도, 세월이 지날 수록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위도, 죄를 지었음에도 잘 사는듯 보이는 무리들도 죄값을 치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게 하늘의 원칙이라는 믿음을 아직은 저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

천망회회 소이불루는 <노자> 73장, 그리고 <위서> 임성왕전에 나온다고 합니다. 노자의 원문에는 소이불실(疏而不失)이라 써지만, 위서에서 소이불루(疏而不漏)라고 쓴 이후 그렇게 많이 쓴다고 하네요.




2007. 9. 5. 18:03
오늘 아침 신문에서 "한국사람들 세계에서 제일 많이 일한다"라는 기사를 봤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간 2천305시간을 일한단다. 그런데 일인당 생산성은 미국의 68%이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누가 한국 사람들 일안하고 딴짓한다"라는 기사 쓰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에 돌아와 뉴스를 검색하니 많은 기사가 그런 식의 논조로 쓰여있다. 연합뉴스의  "노동 생산성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제목의 사설이 눈에 띈다. 중간에 회사는 수출로 번돈 부동산에 투자하지 말고 기계도 사고, 교육에도 투자하라는 말을 한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뒷받침을 하란다. 하지만 마지막은 이렇게 장식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근로자 본인의 마음가짐이다. 개인 용무 등으로 근무시간을 슬렁슬렁 탕진하고 초과근무로 수당이나 챙기려 든다면 생산성 향상은 요원한 일이다. 회사는 어떻게 되든 아랑곳하지 않고 투쟁만 외치는 강성 노조 역시 생산성에는 암적인 존재다. 근로자가 아무리 많아도 허구한 날 파업만 일삼는다면 어떻게 생산성이 오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근무윤리를 다시 한 번 뒤돌아봐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결국 직장인들이 일은 제대로 안하고 찾을것만 찾는게 가장 큰 문제라는 거다. 조선일보는 "개미처럼 일만하는 한국, 배짱이가 웃는다?"라는 제목을 사용했고, 한국경제신문에서는 아예 대놓고 "근무시간에 뭐 하기에..노동시간 미국의 1.5배..생산성은 68%"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했다. 객관적으로 쓴 기사들도 사실보도 이상은 더 이상 적지 않고 있다.

이 기사를 보며 다들 무슨 생각을 할까?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근로자들은 이 기사를 보고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일하는 사람은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했을테고, 경영자들은 직원들 정신교육을 더 시켜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런데 정말 그런가? 한국의 근로자들이 정말 일을 못할까? 아니면 근무태만? 내 경험상 아니다. 한국회사외 미국회사를 오가면서 느낀 것은 한국 사람들이 참 똑똑하고 성실하다는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식의 평가가 아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나누어서 일을 해도, 먼저 일 끝내놓고 다른 나라 팀 도와주는 건 한국 팀이다. 영어만 조금 안될뿐 성과에서 딸리지 않는다. 내가 일했던 회사들만 보고 내리는 제한적인 평가가 아니다. 하다못해 '복지부동'이니 '철밥통'이니 욕먹는 한국 공무원도 미국 공무원에 비하면 더 빠릿빠릿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물론 일은 훨씬 더 빨리 처리된다.

업무 강도를 보면 한국쪽이 느슨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68%는 아니다. 90%정도라고 할까? 미국회사 직원들도 업무시간에 웹서핑하고, 은행 다녀오고 다 한다. 그럼 뭐가 문젠가? 일 열심히 하고, 성과도 떨어지지 않는데 왜 생산성은 미국근로자의 68%라고 할까?

생산성은 국민총생산(GNP)를 근로인구로 나눈 수치다. 근로인구야 어차피 정해져있는거니 결국 생산성의 차이는 GNP로 결정이 나는데, GNP가 어떻게 사람들 일하는 것으로만 결정이 날까? 그 많은 원인을 무시하고 달랑 생산성 수치만을 놓고 한국 근로자를 평가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게 내 생각이다.

일단 규모가 틀리다. 땅떵어리의 크기가 다르고, 인구의 수도 틀리다. 특히나 자본의 크기가 너무나 다르다. 일이천 아무리 굴려봐야 몇십억에서 나오는 이익을 당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백마지기를 가지고 있다 한들, 자기 땅으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그래서 비행기로 농약을 치는 기업형 농장을 당할 수 있을까? 충분한 인구가 있기에 국내에서 사업을 키우고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업들의 경쟁력은 시작부터 다른 것이다.

미국은 자원도 있다. 큰 땅덩어리도 자원이고, 석유및 풍부한 지하자원도 있다. 관광자원도 충분하다.학교가 좋으니 다 찾아와서 미국 전체의 부를 늘려준고, 전세계의 인재들이 몰려와 미국기업을 위해 일을 한다.

또 하나 시스템이 있다. 개개인은 평균이라 하더라도 정립된 프로세스가 전체로 하여금 최대한의 생산성을 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인정하고 그걸 차곡차곡 쌓아가는 문화가 만든 또 하나의 차이다.

그럼 해결책은 뭘까? 사실 잘 모르겠다. 물론 이제는 "땅파서 돈버는게 아니라 고부가가치 사업에 투자를 해야한다"는 식의 누구나 할 수 있는 해결책은 나도 말할 수 있다. 당연히 그게 해결책일거다.

하 지만 그전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람들 절대로 일 못하지 않는다"라는 거다. 아니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사람들 - 미국 본토, 중국, 인도, 일본, 영국 사람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뛰어나면 뛰어나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괜히 민족적 자부심 때문에 이런 이야기하는 거 아니다. 정말이다.

"일하는 시간은 1.5배, 그런데 생산성은 68%"식의 단편적인 평가는 아무 소용 없다. 한국 사람들 일 못하거나 태만한 것 절대로 아니다. 이런 기사에 주눅들지 말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불리한 조건에서도 그들을 능가하겠다는 욕심에 가득찬 자부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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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한경 홈페이지에 들어가고 스포츠신문에 잘못 들어왔나 착각했다. 경제 신문의 사진 분류가 왜 <포토>, <연예>, <레이싱 모델>일까? 게다가 가장 많이본 뉴스가 "아찔한 수영복 퍼레이드!". 이거 경제신문 맞나?

* 기사를 보면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프랑스 이런 나라들이 미국에 이어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이 나라들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게 없으니 뭐라 말을 못하겠다. 한국 미국간의 차이와는 다른 또다른 장점들이 있을 것이다.


2007. 8. 22. 01:00
80년의 오월 어느날... 잠결에 일어난 나는 누나와 어머니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광주는 아주 피바다래... 사람들이 죽고 아주 눈 뜨고 못 봐준데..." 죽어서도 "공산당이 싫어요"하고 외쳤던 이승복의 용기를 부러워하던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유언비어구나...

그로부터 4년후 고등학생이였던 나는 어느 책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글을 보았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 책은 조갑제가 쓴 "민중은 없다"라는 책이였습니다. 아이러니하지요? 그래서 한참동안 조갑제는 저에게 민주언론인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자세하지는 않았지만 그 책에 광주사태의 전말이 나왔었고, 광주 사람들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제 친구는 열변을 토하면서 이야기하더군요. "왜 한국 사람들은 정부가 하는 말을 못 믿는거지?" "이러니까 유언비어가 없어지지 않는거야"

그리고 86년 대학에 들어가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보았습니다. 소위 "넘어 넘어"로 불리우던 당시 대학생들의 필독서였지요. 그리고 알았습니다. 광주가 무엇이였는지. 그리고 정권을 위해서 자신의 동족에게 총을 겨누었던 그 자가 나라의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요. 믿겨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이 나라의 처참한 현실이였습니다. 그 현실은 저 같은 주변인조차도 마음 한구석에 고난 받는 사람들에 대한 짓누르는 부담을 안고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때때로 나가서 돌도 던지게 하구요.

그리고 2007년... 광주의 그 날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20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였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변한 것이겠지요.

저는 이 영화가 고맙습니다. 이 영화는 시대의 아픔을 눈 앞에 보여주며, 그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있었음을 광주에 대해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젊은 세대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저 하루 하루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저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 사건을 기억만 하는 것으로, 그저 역사적 사실로 인식하는 것만으로 끝내서는 안되겠지요. 그 아픔이 왜 일어났는지, 사람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강자의 폭력에 의해 약자들의 행복이 어떻게 부서질 수 있는지 알아야합니다.

지금 세상은 확실히 80년과는 다릅니다. 눈에 보이는 폭력은 더 이상 없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살기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때와는 다른 모양의 폭력이 존재하는 것 같거든요. 아마도 가장 큰 것은 자본을 통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 힘은 지금도 80년 5월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그보다 더 비참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랜드의 자본논리에 밀려나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는 아줌마들, 돈을 벌기 위해 오늘도 하루에 여러명의 남자들을 상대해야하는 여자들, 대리를 마치고 택시비 아까워 걸어서 집에 돌아가는 나약한 가장들...

힘이 있는 사람이 사람에 대한 귀중함을 모르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 할 때 한없이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화려한 휴가"는, 아니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웃는 가운데 "신애" 혼자만 굳어 있는 마지막 장면... 그것은 살아있음이 오히려 죽음보다 못할 수도 있는 지금도 약자라는 이름으로 고통받은 우리 주위의 이웃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요.


2007. 8. 19. 00:13
얼마전 신문에서 NHN USA의 김범수 대표가 8월말로 사임하고 남궁훈 COO에게 자리를 물려준다는 기사를 봤다.

한게임을 통해 새로운 세계을 만든 사람, 가장 성공한 벤처 기업인, 꿈꾸는 승부사. 김범수 대표에 대한 언론의 평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에 대한 기대, 내 자신에 대한 도전, 그리고 자격지심이 버무려진 복잡한 감정이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는 성공한 기업가 이전에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젊은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산공과에 같이 입학해, 같이 대학원에 갔다. 그는 92년에 SDS에 입사를 했고, 나는 육개월방위를 마친 후 93년에 SDS에 입사했다. SDS의 생활이 내가 원했던 것과는 다르기에 나는 94년 말에 자동화 솔루션을 만드는 한연테크라는 작은 회사로 이전했고, 그는 SDS에 계속 근무하며 유니텔을 통해 인터넷 사업에 진출하게 된다.

지금 돌아보면 우습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를 편하게 "범수야"라고 부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 NHN Japan의 천양현 대표가 교회 선배이면서 김범수 대표와 절친한 친구라는 것이다. 천대표에게는 형이라 부르며 그 친구인 김범수에게 반말하는 것이 어색해 난 한번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그만큼 소심했다. ^^)

98년이였던 것 같다. 동창 결혼식에서 나는 그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때 김대표는 게임에 관련된 사업을 할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평소에 게임을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나있던 나에게 게임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때 미국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한창 준비중이였고, 또 한편으로는 게임사업으로 내 진로를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을 했다. 내가 그때 그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는 더 성공했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친구가 만든 회사다 보니 관심이 있던 차에 최근에 나온 "이것이 네이버다"와 "네이버 성공신화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을 통해 김범수가 한게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는지 알게 되었다.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한명만 남았었다고 한다. 설사 내가 김대표와 같이 일을 했더라도 계속 그의 곁을 지킬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는 회사를 세우겠다는 꿈이 있었고, 그에 비해 나는 참 소박한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엄청나게 가입자가 늘어났지만, 무료 사이트의 한계를 알고 있던 그였기에 김대표는 네이버와의 합작을 이끌어냈다. 중국시장을 가치를 알기에 염려하는 사람이 많았음에도 천억을 투자해서 중국의 렌종을 인수한 것도 김대표의 승부수라고 한다. 일찍부터 NHN Japan과 USA를 만들어 몇년간에 걸쳐서 도전을 했고 이제 그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보면 왜 그를 승부사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한게임의 출발부터가 그렇다. 회사내 벤처부터 출발해 다소 안정적인 길을 밟았던 네이버의 이해진 대표와는 달리, 김범수는 SDS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전재산과 사채까지 끌어 게임방 사업을 시작했다. 게임방을 통해 안정된 자금을 확보후 바로 한게임을 시작한 그의 모든 경로가 흐름을 읽고 바로 승부수를 던지는 그의 결단의 결과였던 것이다.

학교에서 그는 어찌 보면 조용한 사람이였다. 굉장히 안정적이였다고 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이 대학생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미 그는 몇살 더 먹은 사람이 할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동네였기에 부모님끼리도 알고 지냈는데, 김대표가 과외로 번 돈을 어머니에게 주었는데, 너는 도데체 뭐하는 거냐라고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ㅡ.ㅡ;;;

네이버와의 합작후, 그의 행로는 많이 알려져 있다. 가장 성공한 인터넷 벤처 기업인으로, 또 게임 산업의 가장 큰 맏형으로 그가 감당해야할 몫은 굉장히 큰 것이였다. 미국 진출을 진두지휘 했으며, 이제 그는 일선에서 물러나며 또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그가 NHN에서 물러난 후 어떤 일을 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인터뷰 기사에는"벤처와 해외 사업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후배 벤처기업인들을 지원해 우리나라 벤처산업 활성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펼쳤다. 업계에서는 진짜 이유가 뭐냐라는 것에 대해 말들이 많은 가보다. 내부 알력설도 있고, 스스로 게임사업에 대한 감각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제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의 새로운 꿈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이제 회사 일에서 물러났다고 하니 여유가 더 생겼겠지. 한번 만나서 물어봐야겠다. 하지만 모든 걸 떠나서 나는 그가 쉬기 위해 물러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그랫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언제나 꿈꾸는 김범수로 남을 거라고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친구 중에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 그건 단순히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어찌 보면 같은 출발점이였지만 그 친구와 나의 모습은 현저히 다르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그와 내가 처한 위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내가 가졌던 꿈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다.

"꿈꾸는 자가 자유롭다." 이제 그의 좌우명을 내가 좀 빌려써야겠다 ^^


2007. 8. 11. 00:46
1987년인 걸로 기억이 된다.

내가 가입해 있던 IVF라는 대학생 선교단체의 목요일 모임에 참석을 했다. 그날 따라 매주 말씀을 전하던 고직한 간사님이 아닌 조금 마른듯한 남자가 앞에 나왔다. 박성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자신이 이랜드의 사장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당시 이랜드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는 윤리적인 그룹이라고 소문이 나며 특히 기독청년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회사이다. 그날 처음으로 박성수가 같은 학교 공대 선배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 어렵게 이대앞에 옷가게를 만든 사연, 별 밑천도 없이 겁도 없이 옷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의 도움으로 사업이 번창했고 마침내 이랜드라는 회사로 성장한 이야기, 후진국에서는 뇌물을 안주면 일이 성사가 안될 때가 많은데 끝까지 정직하게만 사업을 해왔다는 이야기 등. 당시 나에게는 참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 이야기들이다. 특히 벌써 상당한 크기의 중견회사임에도 자신의 수입은 따로 직접 운영하는 한 매장에서 얻는다는 말에 정말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생겼다. 당시 나를 포함해서 그 단체의 대부분이 원하던 것이 복음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 변혁이었기에, 그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박성수 선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 적이 있다.

1999년이였나? 큰 누나가 살던 동네에 2001 아웃렛이 생겼다.

목사와 사모님인 누나 내외의 차를 타고 2001 아웃렛을 지나면서 매형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랜드가 문제다. 엉뚱한데에 신앙을 갖다붙여서 노동력 착취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옆에서 누나가 이런 이야기도 한다. "2001 아웃렛에 가면 음식들이 순 중국산이다. 기독교 기업이라고 하면서 국산품은 하나도 없고 무조건 싼 거만 들여다가 팔아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내가 봐도 2001 아웃렛의 분위기는 80년대 중반의 산뜻했던 잉글랜드 매장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기독교 기업으로 사람들을 더 즐겁게 만들고자 하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먼, 적당한 상권에 싸구려 상품을 가져다가 파는 도때기 시장의 모습이였다. 물건을 사는 사람도 물건을 파는 사람도, 여유나 즐거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007년 이랜드는 악덕기업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이랜드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더 나쁜 일을 저지르는 회사도 많을텐데, 왜 이랜드만 갖고 그러는지. 몇천명씩 정리하는 기업들도 있을텐데 고작 700명 그것도 비정규직을 임용직으로 바꾼 걸 가지고 이 난리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뭔가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사탄의 유혹에 빠진 조합원들이 난리를 치고" "잘못된 언론 보도에 휘둘리는 기독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달란트에 불만있는 불성실한 종"의 편을 들고 있다고 불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법대로 했다지만, 협약서를 회사 편의에 맞추어 위조한게 드러났다. 회사는 계속 성장해 박성수 본인은 83억, 부인은 100억의 주식배당을 받았지만, 노조원은 성과가 좋다고 볼 수 없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2004년부터 3년간 1원도 연봉이 오르지 않은 직원도 있다.

얼마전 고속터미널 앞의 뉴코어를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 있는 노조원들의 천막이 있었다. 그 천막위에 전날 방송에서 본 농성중 끌려가던 아줌마의 모습이 겹쳐졌다. 지난해 130억 십일조를 사회에 환원해 주위로부터 복받았다고 인정받는 박성수 장로의 (훈장같은게 달린 이상한 옷을 입고) 웃는 모습은, 200만원만 받았으면 좋겠다며 회사를 떠난 이랜드 직원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독하게 군다고 해봐야, 매장에서 물건 팔던 아저씨 아줌마들이다. 옷장사로 시작한 박성수가 그들앞에 나서서 이야기로 풀지 못할 이유가 도데체 무엇인가? 무엇이 무서워서 외국에 머물며 나서지 않는 것인가? 이렇게 대신 불러온 용역업체 직원들과 싸움을 붙여야 하는걸까? 따지고 보면 그네들도 해고당한 사람들과 별반 다를게 없을텐데 말이다.

1987년 어느 목요일 밤에 봤던 박성수와 지금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박성수가 같은 사람이라는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도데체 박성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자신에 대한 교만, 세상 권력에 대한 욕심, 아니면 돈맛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나?

분명한건 그가 기독교적 기업이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를 한 것 같다. 기독교적 기업이란 일주일에 한번 쉰다고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M&A과정에서 없어졌지만.) 직원들이 일주일에 한번 QT를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매장의 성공을 기도제목이라 벽에 붙여놓고 같이 기도한다면 이랜드의 하나님은 도데체 무엇인가? 노조는 성경에 없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면, 재고 상품을 신상품으로 속여파는 것은 성경에서 배운 것일까? 회사의 이익의 10%를 사회에 돌려준다면 그건 잘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랜드가 운영하는 세개의 재단은 12명의 직원이 운영하는데, 6개월 인건비 포함 사무비가 2억 5천만원이였다고 한다. 정말 제대로 사회에 환원하고 있기는 한건지 의문이다.

알면 알수록, 이랜드는 기독교기업이 아니라,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착각하는 박성수 개인의 사교집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랜드 윤리경영(www.elandethic.com)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윤리경영이란 "사회가 기업에 가진 윤리적, 법적, 상업적, 공공의 기대를 초월하여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이라 소개한다. "공공의 기대를 초월하는 그 무엇"이 바로 기독교적 가치관이라 주장하고 싶은 듯 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2005년 9월 20일 이후 회사는 이 사이트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랜드는 윤리경영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요즘 이랜드가 하는 일을 보면 딱 그런 생각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노조간부들을 체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박성수가 무릎꿇고 농성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07. 7. 26. 17:45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이면우 교수님의 글을 읽게 되었다. 월간조선에 기고하신 "이공계 현실을 비판하다"라는 글이다.

내가 졸업한 산업공학과에서 인간공학을 가르치신 교수님. 학부과정에서는 딱 하나 인간공학만 가르치셨음에도, 그 과목 하나가 보통 과목 세개 정도 합친듯 힘들었었다. 다른 산업공학과 교수분들도 이면우 교수를 스승으로 모셨기에, 그 같은 횡포 ^^ 에도 어쩔 수 없었다.

대학원생이 시키는 일에 대해 세부전공이 아니라고 난색을 표하면 "학생이 전공은 무슨 전공. 아는 것도 없으면서" 하셨던 교수님.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분이 말씀 하신데로 "내안의 배터리를 완전 방전할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된다.

교수님이 그렇게 열심이셨던 것을 알기에 지금의 이공계 현실에 대한 자조적인 진단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혁신 혁신 말은 하지만, 정작 리더의 결단이 없는 부분에 그치는 혁신. 창의력을 강조하지만 세계 최초에 딸려오는 리스크는 부담하지 않으려는 회사들. 공대생이 실험을 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등. 지금은 내가 학교에 있었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을 것임에도 세계와 경쟁하기에 우리 공대의 실정은 너무나 뒤쳐져 있나 보다.

그럼에도 이공계 회피라는 현상은, 그리고 그 현상을 몰고온 이공계에 대한 미비한 투자는 자본주의의 어쩔 수 없는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곧 힘이다. 그리고 자본을 가진 사람이 돈을 번다. 돈이 돈을 버는 사회라는 것이다.

워렌 버핏은 미경제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사람이 하는 일이 뭔가? 나쁘게 이야기하면 결국 돈놓고 돈먹기다. 될성 싶은 회사나 투자 항목에 돈을 넣고  거기서 생기는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스스로 창출해내는 가치가 뭐가 있나?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인류가 모르던 새로운 과학이론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워렌은 자본을 굴리는 법을 알기에 그리고 막대한 자본을 굴릴 수 있기에 지금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기요사키가 말한 부자아빠의 비결이 뭔가? 부동산 투자를 하든, 주식 투자를 하든 결국 자본을 굴리라는 것 아닌가? 자본이 돈을 벌게 해준다는 것.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진리이다. 결국 돈 놓고 돈 먹기다.  

이런 상황에서 이공계에 얼마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겠는가? 힘들여 박사를 받아도, 아무 미련없이 세탁소를 시작해 돈을 버는 것이 미국에 있는 교포들의 현실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회사를 다녀도, 거기서 나오는 것은 생활비에 불과하다. 정작 돈은 부동산이나 주식투자, 그리고 유산 상속으로 벌지 않는가? 그런데 누가 골치아프게 미적분을 하며, 약품 냄새 맡으며 실험실에서 젊음을 보낼려고 할까? 같은 약품 냄새 맡을거면 의사가 되거나 약사가 되지.

전세계는 자본주의의 광풍에 휩싸여 있다. 아무리 존엄한 인간을 외친다 한들 결국 사람들은 자본주의 논리에 맞추어 생각하고 판단할 것이다. 그건 누구라도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엔지니어에서 관리자로 후에 내 자신의 회사를 꿈꾸는 경영자로 진로를 바꾼 '변절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현실이 맘에 안든다. 슬프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현실에 물들지 않기 위해,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쓰기 위해" 나는 아직도 오천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불어 이율배반적이지만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그냥 학문이 좋아서, 그냥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에 현실 부적응인 채로 이공계에 매진했으면 한다. 이공계뿐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휩싸이지 않고 학문을 예술을 할 수 있기 바란다. 그들의 부인이, 그들의 자식이 그 '무능력'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다면 그건 기분좋은 보너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