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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30. 22:15

"마케팅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 마케팅 팀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 David Packard

Packard의 말이 아니더라도 현대 기업에게 마케팅은 기업의 생사를 가름할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사적 마케팅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지요. 하지만 그게 굳이 지금 상황에 마케팅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마흔을 넘어가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여러가지 일중에서 제가 찾은 답은 "고객에게 더 다가가야" 하겠다는 것입이다. 누구든지 고객을 더 잘 이해하고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고객과 더 가까운 부서에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마케팅 부서지요.

지금은 출장때문에 잠시 쉬고 있지만, MBA를 시작한 이유도 마케팅 때문이였습니다. 시장 분석이나 전략 수립 등을 하고 싶었지요. 거기에는 회사의 방향을 설정하는 리더쉽에 대한 불만도 사실 한 몫 했었지만요.

아직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부서변경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옮겨질 것 같긴 합니다만. 일단 옮기기 전에 공부를 먼저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부서 옮기고 나서 처음부터 배우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요. 사정상 학교는 못다니니, 일단 책을 가지고 셀프스터디를 하기로 했습니다. 뭐, 한 삼십권 읽으면 되지 않을까요? ^^;;

처음에 잡은 책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나온 Marketer's Toolkit이라는 책입니다. 200 페이지밖에 안되지만 핵심을 잘 설명해놓은 책이라 처음 시작하기에는 괜찮네요. 근데 책을 읽기만 하면 얼마 지나 다 잊어버릴까 싶어 한장 한장 요약을 해놓을려고 합니다. 나중에라도 여기 와서 정리해놓은 것을 보면 쉽게 기억할 수 있을테니까요. 거기다 다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은 일이구요.



2007. 7. 29. 23:38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위기를 미리 잡아놓으면 미팅이 빨리 진행되더군요"
"개인 의견은 반역 행위입니다"
"어디 의견 있으신 분 있습니까?"

아무리 자유스럽게 의견 교환을 하라고 하더라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개인 의견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억지로 용기를 내서 한번 낸 의견이 무시되거나, 오히려 달갑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면 자유스러운 의견개진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맡고 있는 조직에 일년이 안된 신입사원부터 13년이 넘은 팀장들까지 있는데,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게 쉽지가 않다. 경력이 5,6년 넘어간 사람들은 아는 것도 많고, 또 변화에 대한 욕심도 있어서 참신하고 가치있는 의견을 많이 낼 수 있다. 그런데 짠밥에 밀리다보면 이 사람들도 주눅이 드는 것 같다.

위에서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줘도 이야기하기 힘든게 인지상정인데, 후배직원의 의견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아예 분위기를 깨는 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위에서 풀어줘야된다.

나부터 다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고, 자유스럽게 의견이 교환될 수 있는 창구를 생각해야겠다. 지식 공유 시스템 같은 거라든지, 자주 브레인스토밍을 한다던지 하면서 말이다.


2007. 7. 29. 15:12
환상의 커플을 보고... 2007년 1월 17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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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와이프와 나와 열심히 본 드라마가 있다. 바로 환상의 커플이라는 드라마다. 원작 자체가 재미있고, 또 한예슬이라는 배역에 정말 적격인 배우의 몸사리지 않는 연기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난 기본적으로 그런 사랑 이야기에 언제나 관심이 있다. 사랑만으로 극복해나가는 장벽. 사랑의 힘. 그런것에 나는 아직도 감동을 받는다.

이 드라마를 보면 여자주인공인 나상실이 남자주인공을 부를 때 꼭 "장철수"라고 성과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 하지만 이 나상실이라는 캐릭터가 다른 사람에게는 이름을 잘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가 았다. 예를 들어 같이 사는 아이들에게는 "어린이들", 강아지한테는 "개", 경쟁은 전혀 안되자민 그래도 삼각관계의 한 축인 유경이는 "꽃다발"로만 불리운다. 이름을 부르는 대상은 굳이 따지자면 강자, 빌리 (원남편), 프린세스 (고양이) 정도라고 할까. 워낙에 등장인물이 적은지라 일반화시키기에는 좀 무리지만 자기와 정말 가깝지 않다면 이름을 잘 부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 많은 사람들이 학창시절에 암송하던 시절이 있다. 그 시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그때야 별 생각없이 지난 대목이였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때는 나와 대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까지 할까?

미국에 와서 살다보면 더 그런 것을 느낀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안불러주는 것이 무례하게까지 인식되는 미국 사회에 와서 처음에 그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 어릴 때부터 훈련이 되어서인지 미국애들은 이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외운다. 한번 스쳐 지나간 사람이 다음번에 만났을 때 내 이름을 불러주는데, 나는 그 사람 이름이 뭔지 전혀 생각이 안날 때 참 당황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게 참 힘이 들어 뭘 그렇게 이름을 부르나 싶었는데 몇년 살다보니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상대방을 인식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깔린 의식 -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한다는 것, 그것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옆집 아저씨라고 부를 때는 어디 가나 옆집에만 살면 옆집 아저씨가 되지만, 내가 그를 마이크라고 부를 때 그 사람은 바로 그 "마이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옆집 아저씨 이름이 또 생각이 안난다 ㅡ.ㅡ 마이크는 다른 골목 아저씨다.)

다시 환상의 커플로 돌아가면, 마지막 나상실이 조안나인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며 "어린이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리라고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 아이들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그 아이들과 인간적인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또 교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끔 한번씩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묻어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예한"이라고 큰 아이를 부르면 세례 요한을 닮은 삶을 살라고 기대했던 내 마음이 느껴지고, "예지"라고 작은 아이를 부르면 귀여운 얼굴의 생글거리는 미소가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인숙"이라고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 그녀와 십삼년 동안 쌓아온 세월 만큼의 그리움이 느껴진다 (뭐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

나상실은 장철수의 이름을 부르는 횟수만큼 그에게 가까워지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름을 부르면서, 상대방을 불특정 다수의 하나로가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개인으로 존중할 때 상대방에 대한 감정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는 더 강해지는 것일 거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하나님은 개개인의 이름을 사용하여 불렀다는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생을 살다가 마쳤으며,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날런지. 우리 주위에 스쳐간 몇백 몇천의 이름들도 다 외우지 못하는 유한한 인간에 비해, 하나님은 모든 이들의 이름을 아신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나는 믿고 있다.

또 다른 구절에 "...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이사야 45:4)" 라는 말씀도 하신다.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힘세신 분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나의 이름을 정해주시고 나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기분좋게 하는 일인지 경험해보지 못하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름을 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얼마나 정다운지. 그것은 그 개인에 대해 안다는 것이고 단순히 여러명 중의 하나가 아니라 개개인을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이제 이름을 부를 때 좀더 생각하고 불러야겠다. 아니 잠깐 잠깐 이름을 생각하며, 또 그 사람 하나 하나를 생각하며 잠시 멈추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 이제는 좀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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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29. 14:59
2006년 8월 17일에 쓴 글. 지금도 내 생각에 변화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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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않은 이에게서 세상을 너무 모른다는 평을 들었다.
세상이 얼마나 살기 힘든데
그렇게 순진하게 대해서 어떻게 살아가겠냐는 거다.

같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약지 못하다라는 평도 많이 듣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자기 앞가림 하며 어떻게든 손해 안볼려고 하는데
나한테는 그런게 없다고 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내일부터 휴가라고 나와 온 가족은 짐을 쌌다.
내일 아침에 첵크아웃하고 짐을 맡겨놓고 갈 것이다.
사실 며칠 호텔 더 쓴다고 회사에서 뭐라 할 사람 별로 없다.
그냥 청구서에 호텔빌 전체로 올리면 그냥 넘어갈 일이다.

하지만 비어있는 방에 대해 회사돈이지만 나가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난 그렇게 어리석고... 약지 못하고... 찾아먹을 것을 찾아먹지 못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꼭 내가 성인군자같다.

사실 속으로는 움흉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오천원짜리 점심먹고 만이천원으로 올려놓고...
칠천원으로 와이프 귀걸이를 사주기도 한다.

그렇게 자잘한 거는 내 앞가림을 하면서도
하루에 십만원이 그냥 나가는 거는 못보겠다.
그냥 내가 좀 더 불편하고 말지하며 쓸데없는 충성심을 부린다.

세상 험하다는 것도... 세상 모른다는 것도 비슷하다.
비록 짧은 생이지만 평균보다는 더 많이 험한 꼴 보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 맘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 건 한참 전이였던 것 같다.

그래도 난 진심이 통할 거라 믿는다.
정도를 걷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다다르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세상에 타협하는 것은 세상을 이길만한 자신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세상을 모른다느니 약지 못하다느니 말을 하면
난 속으로 그 사람을 비웃는다. "너가 내 살아온 길을 알기나 해"라고.

두고봐라. 난 내 길로 내 방법으로 성공할련다.
누구의 도움을 구하지도 않고도, 약은 척 꽤를 부리지도 않고도
내 스스로를 믿고 내 속도로 걸어갈련다.


...


제길... 써놓고 나니 다 내 자랑이구나. 아무 것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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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29. 14:57
Take the lead라는 영화가 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한 영화인데 안토니오는 여기서 사교춤 선생으로 나온다. (어떤가 어울리지 않는가? ^^) 내용은 교훈적인거다. 안토니오는 우연히 고등학교의 문제아들을 만나게되고 정학처붅중인 아이들에게 사교춤을 가르치게 된다. 원래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끼와 어울려서 그들은 나중에 대회에까지 나가게 되고 결국 사교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까지 현대적으로 바꾼다는 이야기이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생길 법도 한 일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는 많이 있다. 소위 문제아들을 변화시킨다는. 어떤 영화에서는 음악이고, 어디서는 운동이고, 운동도 아마 종목별로 영화 한편씩은 다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 그 변화시키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운동, 음악, 춤? 에너지를 발산시킨다는 점이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하는 그 자체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뭘까?

그 속에 담겨진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관심. "난 너가 지금보다 더 낳은 삶을 살기를 바래"라고 하는 말을 하던 하지 않던 나타나는 그 관심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좋은 정책이란 무엇인가? 회사를 잘 운영한다는 것은 뭘까? 같은 정책이 어디서는 좋은 결과를 낳고 어디서는 나쁜 결과를 낳는 이유는 뭘까?

나이가 들어서인지... 갈수록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 사무치게 다가온다. 사람에 대한 관심, 사람에 대한 애정. 그런 것들이 없이 제시되는 비전, 상대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이 내던져지는 교훈들은 아무런 힘이 없다.

내 아이들에게 내가 하는 말들. 공부잘해라. 최선을 다해서 살아라... 등등. 그 속에 나는 아이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담고 있는가? 물론 관심이야 있지. 그래도 아빠인데. 하지만 그 관심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 그런 관심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고 있는가?

내가 담당하고 있는 팀의 문제들을 해결한답시고 여기저기 부딪히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을 기울인다고 하면서도 그 이면에 있는 이유가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 무엇이 나를 드라이브하고 있는가? 다시 내 자신의 동기를 점검해야겠다.

제대로 살겠다는 고상함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위한다고 하는 그런 대의명분이 있어야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면 결국 실패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이론도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판단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실패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도 회사일도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 워낙에 잘난체 잘하는 나로서 가장 부족한게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인 것 같다. 사람들한테 나이스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이념이나 정책이나 혹은 상식을 뛰어넘는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도 사랑이, 배려가 이 세상에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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