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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에 해당되는 글 3건
2014. 8. 31. 13:22

페이스북에서 진행되는 감사 릴레이를 받아 적은 글입니다.


=========


세상이 참 말이 아닙니다. 300명 넘게 죽임을 당했지만 이유도 정확히 모릅니다. 이유 좀 알자는 애원이 빨갱이짓으로 몰립니다. 시리아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사냥을 당하고, 팔레스타인의 많은 이들이 폭격에 목숨 아니면 삶의 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진행되는 감사릴레이에 불편해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아직도 몸부림치는 유가족들이 있는데 좋은 가족 주셔서 감사하다는 고백이 자랑처럼 보이지 않겠느냐, 이유야 어떻든 덕이 되지 않는다라는. 일정 부분 동의가 됩니다. 


그럼에도 감사는 크리스찬의 정체성입니다. 은혜를 받은 우리는 감사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범사란 모든 일을 말합니다. 선택 사항이 아니지요. 명령이요 하나님의 뜻이라 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살다 보면 즐거운 일도 있고, 화나는 일도 있습니다. 전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습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더 없으니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이 기억 납니다. 그때 제가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고생만 하시다 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감사는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럴 필요는 없다 생각합니다.


한글 번역에선 명확하지 않지만, 영어는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로 번역합니다. Give thanks to all circumstances가 아니구요. 모든 일이 감사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 마음이 뻐근한 기억이 있고 가슴에 돌을 얹어놓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일들에 대해 저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더 큰 가치와 목적을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을 통하여 저를 성장하게 하는, 예수님을 조금 더 닮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 아픈 일, 힘든 일 생기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고난을 거치게 하시고, 그 과정 속에 우리를 성장시키신다는 겁니다. 은혜지요. 그래서 저는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감사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제목들을 적어봅니다. 


첫째, 한국은 제가 태어나고 애정하는 곳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회가 발전해야하는데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도데체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시간과 정성을 들여 좋은 세상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음이 감사합니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저와 제 가족만 챙기며 살수 있지만, 아파하는 이들과 같이 아파하는 애통함을 가짐이 감사합니다. 단식으로 유가족의 아픔에 동참할 수 있는 건강도 감사합니다. 


둘째, 돈과 거리를 두며 살았습니다. 가난한 시절을 거쳤고, 직장생활을 한 이후로도 넉넉하게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뭐 잘못한 건 없습니다. 다만 남들에게 생기지 않는 일로 손해를 보고, 남들에게 생기는 이득은 피해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이 탓하지 않고, 제 책임이라 생각하고 더 열심히 살려는 마음 주심에 감사합니다. 주기적인 어려움 속에 교만하지 않게 된 것도 감사하고, 가난을 겪었기에 가난을 이해할 수 있음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넉넉하지 않아도 다른 이를 돕고 섬기는 마음을 가진 아내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저라면 제 코가 석자라 주위 사람을 몰라라 했을텐데 아내 덕분에 다른 이를 섬기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셋째, 여러 불의한 목회자를 거쳤음에도 교회 떠나지 않은 건 기적입니다. 바람 핀 목사, 교회돈 횡령한 목사 등 여럿 거쳤습니다. 개신교인이라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한국 교회는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붙잡아 신앙 지키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썩어가는 개신교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교회를 맘에 품고 기도하게 하심이 감사합니다. 고비마다 좋은 스승을 만나 올바른 신앙으로 이끌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감사 릴레이를 전해준 이 은상 목사님 감사합니다. 원래 3일 계속 하는게 규칙이라 하네요. 그런데 오늘 적은 것에서 교만한 저의 모습을 봅니다. 상황에 따르지 않고 진리를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그래도 나는 훌륭해 하는 건 교만입니다. 내일도 그런 모습이 보이면 감사 제목은 혼자만 보고 나누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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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1. 13:36



항상 제 마음에 있는 다섯권의 신앙서적을 소개합니다. 책 선물을 할 때 이 다섯권을 먼저 고려합니다. 워낙에 좋은 책들이고 유명한 책이라 읽은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책들이 신앙의 성장에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나이들어 보입니다. 전에는 이런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텐데, 어느덧 저도 청년이라 우길 수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ㅡ.ㅡ 굳이 청년을 지목한 이유는 그 시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한참 성장할 수 있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를 돌아볼 때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질문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청년들에게 권합니다. 채현국 이사장이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라 했던 것을 기억할 겁니다. 지금 한국 개신교는 욕먹을 짓을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소위 교회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먼저 복음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도 한 때는 순수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저들처럼 성장하지 않으려면 지금 더 열심히 말씀과 세상을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소개한 이 책들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1.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 고든 맥도날드


제 블로그에서 여러번 소개했었던 책입니다. 이 책은 신앙의 외면적인 면이나 행동적인 면이 아닌 내면세계라 지칭한 영적인 부분을 다스리라 강조합니다. 저자는 내면의 영역을 동기부여, 시간사용, 지혜와 지식, 영적인 힘, 회복(휴식)으로 나누어 각 영역에서 어떻게 내면의 질서를 유지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나갈지 깊이 있는 가이드를 제시합니다.


특히 각 장마다 나오는 "내면세계가 무질서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들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그 중 몇개를 옮겨 봅니다. "나의 내면세계를 질서 정연한 상태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이러한 질서로운 상태를 지키기로 매일같이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 , 그것은 내가 날마다 지식과 지혜 안에서 성장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 , 그것은 늘 나의 삶의 영적 중심부를 드넓히기로 결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서문과 열네개의 장 그리고 후기로 되어 있습니다. 330쪽 정도 되는데 빈틈 없이 알찬 내용으로 차 있습니다.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닙니다. 옆에 두고 내면세계의 질서가 흐트러졌다고 느껴질 때마다 꺼내어 보시기 바랍니다.


2. 순전한 기독교 - C.S. 루이스


루이스에게는 항상 '기독교 최고의 지성'이라는 말이 따라 붙습니다. 그만큼 그는 탁월한 지성으로 많은 이들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도왔습니다. 이 책은 라디오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기독교를 설명하던 내용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루이스는 기독교 안의 여러 교파들을 가로지르는 (카톨릭을 포함해서) 가장 근본적인 기독교의 진리가 무엇인지 이 책에서 정리하였습니다.


루이스는 인간이란 무엇인지에서 시작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종교성을 탐구한 후, 하나님과 예수님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그 기본적인 신앙 위에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보편적 도덕을 포함해, 더 높은 차원의 행동 기준을 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신학적인 질문들(예를 들어 삼위일체)에 대해 설명합니다.


누군가 "만원밖에 없고,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순전한 기독교를 사서 봐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중요한 책입니다. 기독교가 왜 '개독교'가 아닌지, 기독교가 얼마나 훌륭한 종교인지 알 수 있습니다.


3. 소명 - 오스 기니스


제자로서 살려고 한다면 누구든 소명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나의 소명은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까 하는 질문들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 신학을 해서 목회자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려도 해봅니다. 저도 그랬었습니다.


이 책에서 오스 기니스는 바로 이 질문에 집중합니다. 부름 받았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각자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도록 부름받기 전에 먼저 어떤 존재가 되도록 부름받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무엇을 하기 전에 어떤 존재가 되어야하는지의 단계적 소명의식은 세상일을 하찮게 생각하는 중세의 왜곡이나 무슨 일이든 괜찮다는 현대의 왜곡 모두 피할 수 있게 해줍니다.


소명은 한번 정해진 무엇이 아닙니다. 그보다 하나님 앞에서 걸어가는 자세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삶의 구체적 진로가 정해지기 전에, 혹은 이제 그 길을 걸어가기 시작할 때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랍니다.


4. 아직도 가야할 길 - M. 스캇 펙


저자인 스캇 펙은 나중에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이 책을 쓸 때는 아직 신앙을 갖기 전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추천하는 이유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는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정신과의사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왜 사람이 성장해야하는가, 왜 유아적인 사고나 종교적 맹신에서 벗어나야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선악과의 문제를 성장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게으름'은 '죄'라는 시각을 제시합니다.


삶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훌륭하게 사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왜 그 길을 가야하는가 질문해 봐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 위해서는 젖을 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에 대해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에도 다분히 성경적인 길잡이를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닥치는 여러 어려움이 우리를 단련시키어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훈련이라는 것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5. 그리스도의 십자가 - 존 스토트


다섯권중 유일한 신학책입니다. 신학을 전공해야 읽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네권에 비해서는 읽기가 어려운 편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기독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존 스토트는 누구나 인정하는 복음주의의 대표적인 설교가요 신학자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십자가'에 집중합니다. 왜 십자가가 필요했는지, 십자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의'라는 관점에서 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어야하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경외감마저 들게 됩니다. 왜 기독교를 "불타는 논리 (Logic on Fire)"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신학적으로 어떤 자세를 취하든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십자가를 뺀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제임스 패커는 "옷을 팔아서라도 이 책을 사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좋은 책입니다. 십자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반드시 거쳐야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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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10:14

JCS 1막의 줄거리와 노래를 소개하는 JCS #2. Story & Songs [Part I]을 쓴 게 2011년 9월, 벌써 3년이 지났더군요. 늦었지만 안하는 것보다 났다고 생각하기에 2막에 대해 이어서 쓰겠습니다. 록 뮤지컬 JCS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은 JCS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1막에 대해 적은 이전 글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2막의 중심은 예수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시작해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1막에서 보여준 여러 갈등(예수-유다, 예수-제자, 예수-마리아, 예수-종교지도자, 예수-백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며 충돌 혹은 발전하거나 봉합됩니다.  


#13.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복음서에 따르면 최후의 만찬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JCS의 설정은 자유롭습니다. 예를 들어 73년판 영화에서 최후의 만찬은 야외에서 대낮에 일어납니다.


이 장면 제자들의 합창으로 시작하는데 그 가사가 참 재미있습니다. "언제나 사도가 되길 원했지. 열심히 하면 될 거라 생각했어. 은퇴하면 복음서를 쓸거야. 죽고 나면 우리 이야기를 하게 말이야." 이어서 예수가 빵과 포도주를 주며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살과 피다, 이것을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갑자기 바뀝니다. 예수는 "내가 미쳤구나. 너희 멍청한 얼굴을 보니 내가 죽고 나면 십분만에 내 이름은 아무 의미가 없을 거야"라고 말하며, 베드로는 나를 세번 부인하고 이중 한 명은 나를 팔 거라 말합니다.


이어지는 유다와 예수의 논쟁이 압권입니다. 내가 왜 당신을 팔려고 했는지 아느냐라는 유다의 말에 예수는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어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라고 말하지요. 유다는 삐져서 계속 빈정되고, 예수는 화를 냅니다. 결국 유다는 예수를 이해할 수 없다며 떠납니다. (이때 Superstar의 멜로디가 잠깐 사용됩니다.)



2012년 공연 장면입니다. 이런 분위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4. 겟세마네/그저 말하고 싶어요 (Gethsemane/I Only Want to Say)


JCS에서 가장 유명한 곡중 하나입니다. 제자들이 자는 모습을 보고 기도하러 외진 곳으로 간 예수는 아버지에게 내가 왜 죽어야하는지 알려달라며 항의를 합니다. 그는 처음에 시작할 때는 마음에 감동이 있었지만 이제는 너무 힘들다고 고백합니다. 어느 누구에게서 이 정도를 기대할 수 있냐 따집니다. '내가 어떻게 죽는지 똑똑히 지켜보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체념한듯 독이 든 잔을 마시겠다고 하지요. 당신이 모든 카드를 가지고 있으니 내 마음 바뀌기 전에 데려가라구요.

예수역에게 가장 중요한 곡이다 보니 이 역을 맡은 배우 모두 최선을 다해 부릅니다. 73년판 영화를 100번은 넘게 보고 음반도 많이 들었기에 테드 닐리가 부른 겟세마네가 제게는 가장 귀에 익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96년 앨범의 스티브 발사모를 더 좋아하시는 것 같더군요. 최근에 나온 2012년 아레나 투어의 벤 포레스터도 멋진 연기와 노래를 보여줬습니다.   



73년도 영상에서 테드 닐리가 부른 겟세마네입니다.


#15. 체포 (The Arrest)


겟세마네에서의 기도가 끝나면 유다가 다가와 입맞춤으로 누가 예수인지 병사들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예수는 제사장에게 끌려갑니다. 이때 백성들이 야유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랬냐? 가장 큰 실수가 뭐라 생각하냐?"라면서요. 예수를 보고 제사장은 묻습니다.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 말에 예수는 "너가 그렇게 말하였다"라 답하고, 제사장은 증거가 충분하다며 예수를 빌라도에 데려갑니다.


#16. 베드로의 부인 (Peter's Denial)


예수가 말한데로 베드로는 예수를 세번 부인합니다. 그 모습을 본 막달라 마리아는 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비난하지요. 베드로가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자, 마리아는 이게 바로 예수가 말한 거라며 어떻게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미리 알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짤지만 좋아하는 곡입니다. 복음서의 기록과는 다르지만, JCS의 설정에서는 마리아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마리아의 생각을 바뀌기 시작합니다.


#17. 빌라도와 예수 (Pilate And Christ)


빌라도와 예수의 짧은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끌려오는 예수를 보고 빌라도는 "이 불쌍한 인간 뭐냐?"라며 별 신경 안쓰다가 예수라는 말을 듣고 관심을 보입니다. 너가 유대의 왕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가 그건 너의 말이라 대답하자, 빌라도는 곤경에 처한건 바로 예수라 지적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갈릴리 출신이기에 헤롯왕에게 보냅니다.


#18. 헤롯 왕의 노래 (King Herod's Song)


JCS에서 가장 코믹한 노래입니다. 그래서 한번만 등장하는 헤롯임에도 사람들 기억에 많이 남는 노래입니다. 한국 초연에는 곽규석씨가 헤롯역할을 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를 단지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는 일반인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헤롯은 예수에게 너의 소문을 많이 들었으니 내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하지요.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봐. 아니면 물 위를 걸어보던가, 그러면 너를 그냥 보내줄께라면서요. 계속 요청해도 아무 반응이 없자 헤롯은 예수가 사깃꾼이라며 데리고 가라고 소리칩니다.


나중에 '크리스찬의 JCS 사용법'이라는 글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장면 마지막 가사는 중간에 변경됩니다. 초창기 앨범을 들어보면 마지막에 헤롯은 예수에게 '내 인생에서 사라져 줘 (Get out of my life)'라고 말하지만, 언제부턴가 '여기에서 사라져. 너 그것보다는 더 잘해야할꺼야'로 가사가 바뀝니다. 개인적으로 초기 가사가 더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19. 다시 시작할 수 없을까요, 제발 (Could We Start Again, Please)


헤롯왕의 궁전에서 빌라도에게로 다시 끌려가는 예수를 보며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는 '다시 시작할 수 없냐'며 간청합니다. 당신 말하는게 뭔지 알겠다. 근데 너무 지나쳤다. 너무 무서워지기 전에 다시 시작할 수 없겠냐는 그들의 염원을 노래합니다.


짧은 노래이지만 멜로디가 아름다워 좋아하는 곡입니다. 베드로와 마리아라고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이 너무 아프기에 이렇게라도 간청하는 거지요. 이 곡은 너무 밋밋하게 부르면 안 어울립니다. 그래서 이본느 엘리만의 간절한 모습이 담긴 73년판을 좋아합니다.


#20. 유다의 죽음 (Judas' Death)


갇혀있는 예수를 보고 마음이 찔린 유다는 제사장을 찾아와 받은 돈을 돌려줄테니 예수를 풀어달라고 애원합니다. 제사장들은 이제 와서 뭔 소리냐며 유다를 돌려보내지요. 유다는 괴로워하며 마리아가 불렀던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일부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를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면서요.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해 이 일을 하게 했다고, 당신이 나를 살인하는 것이라며 원망하며 목을 매어 자살합니다. (이런 해석을 한 이들이 여럿 되지만 성경의 증거와는 다릅니다.)


#21. 빌라도 앞의 재판 (Trial Before Pilate)


다시 끌려온 예수에게서 잘못을 발견할 수 없었던 빌라도는 예수를 보호하려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를 못밖으라고 계속 소리치지요. 빌라도는 이 자는 그저 미쳤을 뿐이라며 39대의 채찍질로 예수를 보내려합니다. 십자가에 못밖으라는 외침 속에 39대의 채찍질이 시작됩니다. 1부터 39까지 숫자가 늘어날수록 빌라도의 숨소리는 거칠어집니다. 앨범으로 들을 때는 잘 모르지만, 영상에서는 처음 한두대에서 마리아가 소리를 지르며 기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채찍을 맞고 쓰러져 있는 예수를 일으키며 빌라도는 너는 어디에서 왔냐. 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내가 너를 구할 수 있는데 왜 아무 말이 없냐며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빌라도에게 이 모든게 너의 손을 벗어난 것이라 답합니다. 결국 빌라도는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며 손을 씼고 예수를 십자가 형에 내어 줍니다.


이곡에서의 빌라도는 이전 (#17. 빌라도와 예수)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갑자기 예수를 변호하고 나오지요. 약간 뜬금없습니다. 빌라도의 변화를 위해 1막에서 빌라도의 꿈을 배치합니다만, 그래도 캐릭터의 연속성이 조금 부족한게 개인적으로 불만입니다.


#22. 슈퍼스타 (Superstar)


십자가에 달리려는 예수 앞에 이제는 죽은 유다가 나타나 ‘난 당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라며 노래를 합니다. 왜 그렇게 이상한 땅에 그 시기에 나타났냐. 지금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했을 때 나타났으면 더 좋았지 않겠느냐라면서요. 그리고 도데체 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했느냐 계속 질문합니다. 


JCS의 중심 주제라 할 수 있는 질문이지요. 도데제 예수가 왜 그랬는지 알고 싶다는 겁니다. 소란스럽고 가벼운 분위기의 곡이지만 던지는 질문은 묵직합니다.


#23. 십자가에 매달림 (The Crucifixion)


망치소리와 악마의 웃음소리가 들리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힙니다. 예수의 부활을 보여주지 않는 JCS에서는 마지막 장면으로, 십자가에서 고통 속에 죽어간 예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일곱마디의 말을 했습니다. 가상칠언이라고 하지요. JCS에서는 앨범에 따라 나오는 말이 다릅니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버지여 당신의 손에 내 영혼을 의탁하나이다” 이 셋은 항상 등장합니다. 어떤 앨범에는 “내 어머니는 어디 있느냐,”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등의 다른 말도 나옵니다.


#24. 요한복음 19장 41절 (John Nineteen Forty One)


JCS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쓸쓸한 곡입니다. 이 곡의 제목인 요한복음 19장 41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었는데 그 동산에는 아직 사람을 매장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습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무덤에 묻힘을 말합니다. 


73년도 영화에서 이 장면이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는 배우들이 대형버스를 타고 촬영장소에 도착하면서 시작합니다. 영화 속의 영화 같은 설정이지요. 하지만 마지막 배우들이 버스를 타고 돌아갈 때는 예수역을 맡은 테드 닐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동산 위에 십자가가 남아있지요. 


참고로 JCS에서 부활을 다루지 않았기에 초창기에는 기독교가 JCS 공연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빛나는 십자가를 보여주면서 공연을 마치는 식으로 어느 정도의 타협점을 찾은 것 같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크리스찬의 JCS 사용법'에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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