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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6'에 해당되는 글 2건
2008/07/16 15:36
너무 많이 가지는 건 가능하다. 시계를 하나 가진 사람은 몇시인지 안다 (최소한 확신한다). 하지만 시계가 두개면 정확히 몇시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 리 세갈
It's possible to own too much. A man with one watch knows what time it is; a man with two watches is never quite sure - Lee Segall

많이 가질수록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는 있다. 하나뿐인 시계가 죽어버린다면, 어찌 할 수 없지만, 두개를 가진 사람은 그 점에서 더 안전하다. 하지만 하나뿐일 때만큼 절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선택의 문제에서는...

내가 해야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하나라면 그 일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가능한 선택이 여러개라면, 여러 길 사이에서 마음이 오고 간다면 그만큼 속도는 느려질 것이다. 때로는 나자신을 절박한 상황에 몰아넣을 필요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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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탄 | 2008/07/18 21: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절박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되면서도 부러웠던 적이 있었지요.
세상 일에서 한 걸음 떨어져 관조하던 때의 이야깁니다. ^^
지금은?
저물어가는 생의 오후를 보며 - 써 놓고 나니 너무 비감하지만 그냥 쓸게요. -
겨우 절박함이라는 것을 이해하지요.
절박함에 서고 난 소감은?
여기, 벼랑이네요.
날아오르지 못하면 추락할 것 같아요. ^^
쉐아르 | 2008/07/19 13:05 | PERMALINK | EDIT/DEL
저도 사실 절박해본적이 얼마 없는 것 같습니다.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또 조금 하면 어느 정도 성과는 이루어 왔던 것 같습니다.

날아오르지 못하면 추락한다... 저도 이런 마음을 품어야겠습니다. 또 지금 제 상황이 어쩌면 그렇게 절박한 상황일 수도 있구요.
brandon419 | 2008/07/20 02: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내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면 모든 것을 걸 수 있다라는 상황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세대에게는 현실로 다가올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저의 경우에는요. 저도 지금 뭔가에(시험공부^^) 몰두해야 할 상황인데, 만일 고3 때 같이 (실제로 저는 고3때 공부를 열심히 안했지만, 열심히 했던 다른 수험생같이^^) 매달릴 수만 있다면 단기간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현실은 풀타임으로 일하고 아이들 돌보고 많진 않지만 집안 일도 하고 교회 일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박하사탕에 나오는 명대사, 나 돌아갈래 를 외치며 어디서부턴지 꼬인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현재 얼키고 설킨 복잡한 것들을 말 그대로 다 털어버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게 다 털어버릴 수가 없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또 발동만 걸리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발동이 안 걸리는게 문제야 라는 생각 역시 오래동안 해왔는데 그래서 발동 걸리는 시점이나 상황을 기다려왔었는데 그런 상황은 결국 오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냥 달리고 있습니다. 달리다 보면은 발동이 걸리겠지 하면서요.^^
쉐아르 | 2008/07/23 06:20 | PERMALINK | EDIT/DEL
맞습니다.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고3때 공부한만큼만 한다면 못할 일이 없을 거라구요. 다시는 그런 열심을 못낼 것 같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또 신경써야할 것도 많아졌으니까요.

'나 돌아갈래~' 자주 듣고 자주 부르는 노래입니다 ^^ 그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요. 오늘은 왠지 박하사탕 영화를 꺼내 보고 싶은 날입니다.
한방블르스 | 2008/07/22 04:29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글을 보고 생각이 납니다.
멈쳐진 시계와 10분 느린 시계 둘 중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매몰비용을 잘 활용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지요. 자기 자신을 극한으로 모는 것일테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한계상황으로 몰아넣더라도 http://maggot.prhouse.net/71 이사람 보다 절박 할까요. 저는 가끔 이 사진을 봅니다. 내가 힘들다고 하는 상황이 너무 배부른 투정이 아닐런지.
쉐아르 | 2008/07/23 06:26 | PERMALINK | EDIT/DEL
링크 걸어주신 사진을 보고... 저도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한번도 저런 상황에 처해보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힘들다는 것은 상대적입니다. 어떤 경우든 배부른 투정으로 만드는 극한 상황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니까요.

저도 자주 찾아가 그 사진을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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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6 07:44
#1.

고든 맥도날드의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은 내게 삶에 대한 진지함을 가르쳐 주었다. 회사일로 미국으로 옮길 때 처음 택한 집이 그가 담임하던 그레이스 채플과 20분 거리였다. 부족한 영어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에 참석하기로 한 것은 내겐 당연한 것이였다.

당시 르윈스키 스캔들로 인해 클린턴이 곤경에 처해있었다. 어느 주일날. 설교를 일찌감치 끝낸 맥도날드는 교인들 앞에서 준비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클린턴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힘들어하며, 평소에 친분이 있던 맥도날드에게 카운셀링을 부탁했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영적으로 회복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맥도날드는 이를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클린턴을 방문해서 도와주고자했고, 모든 비용은 자신이 낼 터이니, 일주일에 하루 그 일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도록 교인들이 허락해달라 부탁하는 것이였다.

#2.

1987년 그레이스 채플을 담임하며, 기독학생회(IVF) 총재를 하고 있던 (소위 잘나가던) 고든 맥도날드는 간음의 죄를 범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빌 하이벨스, 찰스 스윈돌등 고든을 아끼던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어 그와 그의 가족을 도왔다. 1년의 기간이 지난후 그의 회복을 확인한 동료들은 회복식을 베풀어 주었다. 죄의 자백에서 회개, 그리고 회복까지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레이스 채플 교인들은 고든을 찾아가 그를 다시 교회로 불러 들였다.

#3.

고든이 클린턴을 돕겠다고 이해를 구하던 그날, 나는 그의 간음사건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예배당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칩거중에 있던 고든을 찾아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라 용기를 주던 당사자가 그 자리에 앉아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한번 겪었던 죄로 인해 힘들어 하는 클린턴을 돕겠다는 고든. 목회자에게 휴일로 주어지는 하루를 클린턴을 위해 쓰겠다며 양해를 구하는 고든에게 교인들은 기립박수로 지지를 보냈다.

아쉽게도 그가 돕고자 했던 클린턴은 완전히 죄에서 돌아선 것 같지는 않다. 요즘도 스캔들을 벌이는 것을 보면. 하지만 고든 스스로는 아름다운 회복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한창 나이에 은퇴를 했다. 그리고 뉴햄프셔의 한적한 농원을 사들여 가족과 지내며 책도 쓰고, 기독교 잡지사에서 일하며서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4.

베드로는 예수의 수제자였다. 예수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좇아가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던 그였다. 하지만 예수가 잡혀가던 날 베드로는 세번이나 예수를 부인했다. 마지막으로 (저주하며) 부인했을 때 베드로는 뜰안에서 심문을 받다가 고개를 돌린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와 후회의 눈물을 흘리던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모든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예수가 부활 이후 제자들 앞에 나타났을 때, 베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번을 걸친 만남에도 베드로는 침묵했다. 베드로의 부인은 비밀이 아니였던 것 같다. 다른 이들도 베드로의 부인을 알았다. 그건 베드로에겐 정치적 죽음이였다. 희망이 없어진 베드로는 다시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그 베드로에게 예수는 다시 다가갔다. 처음 베드로가 예수를 따르기 시작했던 그때처럼, 고기도 못잡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베드로에게 예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게했다. 예수임을 깨닫고 뭍으로 나온 베드로를 예수는 떡과 생선을 구워 맞이했다.

배신한 제자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한 예수 옆에 앉은 베드로. 아무 말 없이 어색하게 먹기만 하는 그 마음. 아마 목이 매여 몇번이나 물을 들이켰을지도 모른다. 침묵을 깨고 예수가 묻는다. 세번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자신을 배반한 수제자가 회복될 수 있도록 예수가 손을 붙잡아 주었다.

#5.

'회복'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나는 두사람이 생각이 난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질 인생의 나락에 처했었던 두 사람. 그 사람을 살린 것은 바로 '은혜'다.

죄를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는 마음. 그리고 그 절망하는 마음을 붇잡아 회복시켜주는 은혜. 그것이 바로 기독교다. 회개와 은혜가 없다면 기독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진정한 회개가 없으니 은혜를 보기도 힘든듯 하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혹은 혀에 발린 사과만으로 넘어가려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리고는 은혜로 용서받았다고 한다. 완전 싸구려 은혜 아닌가.

기독교는 회복을 줄 수 있는 종교다. 은혜가 있는 곳이다. 더 많은 이들이 그 은혜를 맛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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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최근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쉐아르님의 블로그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와 베드로를 예를 들어 죄를 범하였으나 회개하고 참된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도 그 예를 들었습니다. 성경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고 말하고 있지요. 은혜는 이미 하나님 편에서 인간에게 베풀어졌으나, 인간이 그 죄의 길에서 돌이킬 때 (회개)에야 비로소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회..
데굴대굴 | 2008/07/16 09: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용서'라는 단어가 떠오르는군요.. ^^ (이것도 요청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라죠...)
쉐아르 | 2008/07/16 15:12 | PERMALINK | EDIT/DEL
그렇지요. 용서는 은혜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지고 드는 사람은 다르다 하겠지만요 ^^;;

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요구할 수는 없는, 하지만 갈망하는 것이지요.

은혜나 용서가 꼭 요청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
brandon419 | 2008/07/20 02:3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제게 있어 하나님이 정말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분 안에서는 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분은 늘 기회를 주십니다. 어제 실패했어도 오늘 새 날을 주시고 오늘 또 실패해도 내일 아침에 새로운 하루를 주십니다. 넘어지고 아파하고 다시 일어서고, 또 넘어지고 아파하고 다시 일어서고, 또 넘어지고 이번엔 한참 누워서 뭉기적 거리다 다시 일어서고... 부끄럽고 미안해서 눈치라도 볼라치면 아무일 없다는 듯이 여전히 손을 내밀어 주시고 쓰다듬어 주시는 그 분을 느끼며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용서는 말 그대로 잘못을 잊고 없애주는 거지만 그 분이 주시는 은혜는 잊고 없애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 위에 풍성히 뭔가를 얻어서 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주변이 없어서 표현을 잘 못하겠지만 예를 들면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가 자신을 머슴으로라도 받아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용서)이었지만 아버지는 소를 잡고 잔치(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 같은거요. 저 역시 많은 분들이 제가 느끼는 이러한 은혜입음을 느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쉐아르 | 2008/07/23 06:22 | PERMALINK | EDIT/DEL
누구 말대로 그 맛(^^)에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있지요. '자기만족'이라는 것으로는 설명안되는 풍성함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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